도다 다다토
1. 개요
도다 다다토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도다 가문의 5대 당주였다. 1754년 가문을 계승하여 종5위하 이나바노카미에 서임되었으며, 1774년 시모쓰케 우쓰노미야로 영지를 옮겨 우쓰노미야 성을 거성으로 삼았다. 막부의 요직을 역임하며, 1782년 오사카 성대, 1784년 교토 쇼시다이를 지냈으나, 교토 후시미에서의 소송 처리 문제로 출사가 정지되었다. 이후 면직되어 1798년 은거했으며, 1801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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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족 | 다와라 도다 가문 |
|---|---|
| 시대 | 에도 시대 중기 - 후기 |
| 출생 | 겐분 4년 9월 15일 (1739년 10월 17일) |
| 사망 | 간세이 13년 1월 30일 (1801년 3월 14일) |
| 가명 (통칭) | 가주로 |
| 계명 | 레이호인덴 기호젠도쿠 다이코지 |
| 묘소 | 도치기현우쓰노미야시 하나후사혼마치의 에이간지 아동공원 |
| 관위 | 종5위하・시종, 이나바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시게, 이에하루, 이에나리 |
| 부모 | 도다 다다요, 도다 다다미쓰 |
|---|---|
| 형제자매 | 아키모토 다카토모, 다다미쓰, 다다히로 , 기노시타 도시타네, 지쿄인 겐쿠 조혼, 아오야마 다다타카의 정실 |
| 배우자 | 혼다 마사타카의 딸, 렌시 |
| 자녀 | 다다모토, 다나카 다다스미, 나가이 나오스케의 정실, 리오, 호리 나오카타의 정실 |
| 섬긴 번 | 히젠시마바라번 번주, 시모쓰케우쓰노미야번 번주, 가와치・셋쓰국 내, 시모쓰케 우쓰노미야번 번주 |
|---|---|
| 시마바라 번주 임기 (도다 가문) | 1754년 ~ 1774년 (2대) |
| 우쓰노미야 번주 임기 (도다 가문, 재봉) | 1774년 ~ 1782년, 1787년 ~ 1798년 (1대) |
| 가와치국・하리마국 다이묘 임기 (도다 가문) | 1782년 ~ 1787년 |
| 오사카 조다이 임기 | 1782년 ~ 1784년 (42대) |
| 교토 쇼시다이 임기 | 1784년 ~ 1789년 (28대) |
| 이전 번주 | 도다 다다미쓰 (시마바라 번), 마쓰다이라 다다히로 (가와치・하리마 국에서 복귀), 우쓰노미야 번에서 전봉, 도키 사다쓰네, 마키노 사다나가 |
|---|---|
| 이후 번주 | 마쓰다이라 다다히로 (시마바라 번), 가와치・하리마 국으로 전봉, 도다 다다나가 (우쓰노미야 번), 우쓰노미야 번으로 복귀, 아베 마사토시, 오타 스케요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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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번주 -
아리마 하루노부
아리마 하루노부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기리시탄 다이묘로, 히젠 아리마 씨의 당주이자 히노에 번 번주였으며, 가톨릭 개종 후 덴쇼 소년사절단 파견, 임진왜란 참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이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 후 처형되었고, 그의 죽음은 에도 막부의 기독교 탄압 강화와 시마바라의 난의 배경이 되었다. -
시마바라번주 -
마쓰쿠라 가쓰이에
마쓰쿠라 가쓰이에는 아버지와 함께 시마바라성을 건설하고 가혹한 수탈과 기리시탄 탄압을 자행했으며, 시마바라의 난 발발 후 개역되어 참수형에 처해진 에도 시대 초기의 다이묘이다. -
우쓰노미야번주 -
혼다 마사즈미
혼다 마사즈미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나 도쿠가와 히데타다 시대에 실각하여 유배된 인물이다. -
우쓰노미야번주 -
혼다 다다히라
혼다 다다히라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혼다 타다요시의 장남으로 태어나 우쓰노미야 번과 고리야마 번의 번주를 역임하며 연공 감면, 백성 구휼, 성하 마을 신설, 번찰 발행 등 번정 개혁을 시도했다. -
1739년 출생 -
쇼보쿠왕
쇼보쿠왕은 류큐 왕국 제2쇼씨 왕조의 제13대 국왕으로 쇼케이왕의 장남이며, 왕비와 부인, 처를 두었고 5남 3녀를 두었다. -
1739년 출생 -
조지 클린턴
조지 클린턴은 1739년 뉴욕에서 태어나 프랑스-인디언 전쟁 참전, 변호사 활동을 거쳐 뉴욕 주지사와 부통령을 역임했으며, 미국 헌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고 1812년에 사망한 미국의 정치가이다.
2. 생애
도다 다다토는 도다 가문 5대 도다 다다요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 타다미츠의 아들이 요절하면서 1754년 후계자가 되어 가문을 이었다. 이후 주자반, 지샤 부교, 오사카 성대, 교토 쇼시다이 등 막부의 요직을 역임했다. 1774년에는 시모쓰케 우쓰노미야 번으로 영지를 옮겨 우쓰노미야 성을 쌓고 지역 발전에 힘썼다.
그러나 1787년 교토 고쇼에서 발생한 고쇼 센도마이리 사건과 교토 후시미에서의 소송 처리 문제로 인해 출사 정지 처분을 받았다. 곧 면직되었고, 1798년 은거하였다. 1801년 정월 그믐날, 향년 63세로 사망했다.
2.1. 가문 상속과 초기 활동
도다 다다요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 타다미츠의 아들이 요절했기 때문에, 1754년 5월에 후계자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가문을 잇고 종5위하·이나바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다음 해 1756년, 처음으로 성지로 돌아갔다.
1770년, 주자반이 되었다. 1774년, 영지를 시모쓰케 우쓰노미야로 옮겨 우쓰노미야 성을 거성으로 삼았다. 막부로부터 5000냥을 빌려 성을 조영하고, 1776년, 지샤 부교를 겸임했다. 1782년 9월, 오사카 성대가 되었다.
2.2. 우쓰노미야 번주 시기
호레키 4년(1754년) 5월, 형 타다미츠의 아들이 요절하여 후계자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가문을 잇고 종5위하·이나바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다음 해인 호레키 6년(1756년)에 처음으로 성지로 돌아갔다.
안에이 3년(1774년), 영지를 시모쓰케 우쓰노미야로 옮겨 우쓰노미야 성을 거성으로 삼았다. 막부로부터 5000냥을 빌려 성을 조영하였다. 같은 해 안에이 5년(1776년) 지샤 부교를 겸임하였다. 덴메이 2년(1782년) 9월, 오사카 성대가 되었다.
같은 해, 구 영지를 개정하여 가와치국, 하리마국으로 소령을 이봉하였다. 덴메이 4년(1784년) 5월, 교토 쇼시다이에 보임되어 시종에 임관한다. 같은 해 9월, 소령을 가와치국, 셋쓰국으로 옮겼다. 덴메이 7년 6월 7일(7월 21일), 교토 고쇼에서 고쇼 센도마이리가 일어났다. 같은 해 12월, 소시다이를 사임하고 구 영지 우쓰노미야로 전봉되었다. 이 해, 교토 후시미에서의 시민 간의 소송 처리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져, 출사가 정지되었다.
2.3. 막부 요직 역임
호레키 4년(1754년) 5월, 형 타다미츠의 아들이 요절하여 도다 다다토가 후계자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가문을 잇고 종5위하·이나바노카미에 서임되었다. 호레키 6년(1756년) 처음으로 성지로 돌아갔다.
메이와 7년(1770년), 주자반이 되었다. 안에이 3년(1774년), 영지를 시모쓰케 우쓰노미야로 옮겨 우쓰노미야 성을 거성으로 삼았다. 막부로부터 5000냥을 빌려 성을 조영했다. 같은 해 5년(1776년), 지샤 부교를 겸임하고, 덴메이 2년(1782년) 9월, 오사카 성대가 되었다.
같은 해, 구 영지를 개정하여 가와치국, 하리마국으로 소령을 이봉하고, 같은 해 4년(1784년) 5월, 교토 쇼시다이에 보임되어 시종에 임관한다. 같은 해 9월, 소령을 가와치국, 셋쓰국으로 옮기고, 같은 해 7년(1787년) 6월 7일(7월 21일) 교토 고쇼에서 고쇼 센도마이리가 일어났다. 같은 해 12월, 소시다이를 사임하고 구 영지 우쓰노미야로 전봉되었다. 이 해, 교토 후시미에서의 시민 간의 소송 처리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져, 출사가 정지되었다.
2.4. 고쇼 센도마이리 사건과 실각
호레키 4년(1754년) 5월, 형 타다미츠의 아들이 요절하여 도다 다다토가 후계자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가문을 잇고 종5위하·이나바노카미에 서임되었다. 호레키 6년(1756년), 처음으로 성지로 돌아갔다.
메이와 7년(1770년), 주자반이 되었다. 안에이 3년(1774년), 영지를 시모쓰케 우쓰노미야로 옮겨 우쓰노미야 성을 거성으로 삼았다. 막부로부터 5000냥을 빌려 성을 조영하고, 안에이 5년(1776년), 지샤 부교를 겸임하였다. 덴메이 2년(1782년) 9월, 오사카 성대가 되었다.
같은 해, 구 영지를 개정하여 가와치국, 하리마국으로 소령을 이봉하고, 덴메이 4년(1784년) 5월, 교토 쇼시다이에 보임되어 시종에 임관한다. 같은 해 9월, 소령을 가와치국, 셋쓰국으로 옮겼다. 덴메이 7년(1787년) 6월 7일(7월 21일), 교토 고쇼에서 고쇼 센도마이리가 일어났다. 같은 해 12월, 소시다이를 사임하고 구 영지 우쓰노미야로 전봉되었다. 이 해, 교토후시미에서의 시민 간의 소송 처리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져, 출사가 정지되었다.
곧 면직되고, 간세이 10년(1798년) 6월 21일에 치사·은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