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테아 폰 에르트만
1. 개요
도로테아 폰 에르트만은 178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이다. 오스트리아의 보병 장교와 결혼 후 빈으로 이주하여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으며, 베토벤은 그녀에게 피아노 소나타 28번을 헌정하고 "도로테아-체칠리아"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을 초연했으며, 베토벤 작품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알렉산더 세이어는 그녀를 "동시대 최고의 여성 베토벤 연주자"로 평가했고, 안톤 신들러는 베토벤 음악의 보존에 기여했다고 평했다. 1820년 밀라노로 이주했다가 남편과 사별 후 빈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
| 본명 | 마리아 안나 폰 에르트만 |
|---|---|
| 출생 | 1769년 4월 6일 |
| 출생지 | 레겐스부르크 |
| 사망 | 1829년 3월 31일 (59세) |
| 사망지 | 빈 |
| 직업 | 피아노 연주자 |
| 배우자 | 스테판 폰 에르트만 (1798년 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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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이민간 사람 -
루트비히 판 베토벤
베토벤은 독일의 작곡가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을 연결하는 중요한 인물이며,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현악 사중주곡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고 청력 상실에도 불구하고 창작 활동을 지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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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발터
안톤 발터는 18세기 후반 빈에서 활동하며 포르테피아노 제작으로 명성을 얻었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등 당대 음악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독일의 건반 악기 제작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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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제265대 교황으로 재임하며, 가톨릭 교리를 수호하고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보수적인 신념과 스캔들 대처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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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투
루마니아 출신 음악가 마이클 크레투는 솔로 활동과 프로듀서 경력을 거쳐 신비주의 음악 프로젝트 Enigma를 시작, "Sadeness (Part I)"와 "Return to Innocence" 등의 히트곡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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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20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과 빈 국립음대 출신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종신 지휘자를 역임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나치 시대 활동으로 논란이 있으며, 독특한 지휘 스타일과 음악적 완성도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해석하고 잘츠부르크 음악제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하며 클래식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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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바이로스
오스트리아의 삽화가이자 화가인 프란츠 폰 바이로스는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뮌헨에서 첫 전시회 성공 후 에로틱한 삽화로 이름을 알렸으며, 대표작 《탈의실에서 나온 이야기》는 외설 논란을 일으켰고 그의 작품은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 생애
도로테아 폰 에르트만은 178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도로테아 그라우만(Dorothea Grauman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798년 오스트리아 보병 장교인 스테판 폰 에르트만과 결혼하여 빈으로 이주했다. 슬하에 외아들 프란츠 카를을 두었으나 1804년 3월에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1. 베토벤과의 인연
베토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1798년에 오스트리아 보병 장교인 스테판 폰 에르트만과 결혼하여 빈으로 이주한 에르트만에게 피아노 레슨을 하였다. 베토벤은 그녀에게 피아노 소나타 28번을 헌정하고, "도로테아-체칠리아"(Dorothea-Cecilia독일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편지의 수신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1804년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에르트만을 위해 베토벤은 한 시간 동안 피아노 즉흥 연주를 하며 위로했다. 1809년 3월 5일, 에르트만은 니콜라우스 크래프트와 함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을 초연했다.
2.2. 음악 활동 및 평가
에르트만은 다수의 공개 연주회를 개최했으며, 특히 베토벤 작품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알렉산더 세이어는 "동시대 최고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여성 중에서는 최고의 베토벤 연주자였다"라고 평가했다. 안톤 쉰들러는 "마치 눈앞에 악보가 펼쳐진 것처럼 베토벤 작품의 가장 숨겨진 미묘함까지도 직관적으로 파악했다"라고 극찬했다. 쉰들러는 또한 "에르트만 부인이 없었다면 베토벤의 음악은 레퍼토리에서 아주 일찍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는데, 이는 그녀가 더 새롭고 "유행하는" 작곡가들의 등장에 맞서 베토벤의 스타일을 보존하기 위한 음악 살롱을 운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