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업 (군도)
1. 개요
두업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건평후(建平侯) 두완의 아들이다. 건소 5년(기원전 34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평후에 봉해졌으며, 홍가 원년(기원전 20년)에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7년 후 면직되었다. 건평 4년(기원전 3년)에 다시 태상이 되었으나 3년 후 상당도위로 좌천되었고, 그 해에 사망했다. 시호는 강(荒)이며, 아들 두보가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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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사망 -
도절
도절은 고구려 유리명왕의 아들이자 첫 번째 태자였으며, 부여의 공격을 받았으나 폭설로 인해 물러났고, 기원전 1년에 사망하였다. -
1년 사망 -
정명 (전한)
정명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양안후에 봉해지고 대사마 위장군과 표기장군을 역임했으나 왕망에 의해 제거되었다. -
경조 두씨 -
두완
두완은 전한의 관료로 흉노 정벌에 참여한 후 태상까지 올랐으나 면직되었고, 건평후에 봉해졌으며, 신중한 옥사 처리와 검소한 생활로 칭송받아 효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
경조 두씨 -
두예
두예는 서진 시대의 장군이자 학자로, 촉한 정벌에 참여하고 오나라 정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춘추좌씨전》 연구에 깊이 있는 학자였다. -
전한의 공신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전한의 공신후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건소 5년(기원전 34년), 아버지 두완의 뒤를 이어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홍가 원년(기원전 20년),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7년 후 면직되었다.
건평 4년(기원전 3년), 다시 태상이 되었으나 3년 후 상당도위로 좌천되고 그 해에 죽었다. 시호를 강(荒)이라 하였고, 아들 두보가 작위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건평후 계승
건소 5년(기원전 34년), 아버지 두완의 뒤를 이어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홍가 원년(기원전 20년),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7년 후 면직되었다.
건평 4년(기원전 3년), 다시 태상이 되었으나 3년 후 상당도위로 좌천되고 그 해에 죽었다. 시호를 강(荒)이라 하였고, 아들 두보가 작위를 이었다.
2.2. 태상 임명과 면직
건소 5년(기원전 34년), 아버지 두완의 뒤를 이어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홍가 원년(기원전 20년),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7년 후 면직되었다.
건평 4년(기원전 3년), 다시 태상이 되었으나 3년 후 상당도위로 좌천되고 그 해에 죽었다. 시호를 강(荒)이라 하였고, 아들 두보가 작위를 이었다.
2.3. 복귀와 좌천
건소 5년(기원전 34년), 아버지 두완의 뒤를 이어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홍가 원년(기원전 20년),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7년 후 면직되었다.
건평 4년(기원전 3년), 다시 태상이 되었으나 3년 후 상당도위로 좌천되고 그 해에 죽었다. 시호를 강(荒)이라 하였고, 아들 두보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