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트 4세 폰 외스터라이히 공작
1. 개요
레오폴트 4세 폰 외스터라이히 공작은 레오폴트 3세의 둘째 아들로, 내오스트리아 공작 빌헬름과 공동 통치하며 전오스트리아를 담당했다. 1391년부터 전오스트리아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으며, 1396년부터 1406년까지 티롤 백국을 통치했다. 1393년 부르고뉴의 카트린과 결혼했으나 자녀는 없었다. 1406년 빌헬름의 사망으로 가문의 수장이 되었으나, 후사가 없어 동생 에른스트와 프리드리히에게 영지를 분할했다. 그는 비엔나에서 사망하여 슈테판 대성당의 공작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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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년 사망 -
할릴 술탄 이븐 미란 샤
할릴 술탄은 티무르 제국의 통치자였으며, 티무르의 손자로서 티무르 사후 사마르칸드를 장악했으나 샤 루흐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사망했다. -
1411년 사망 -
얀 아펠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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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오스트리아 공작 -
빌헬름 폰 외스터라이히 공작
빌헬름 폰 외스터라이히 공작은 레오폴트 3세의 아들이자 1386년부터 1406년까지 내오스트리아 공국을 다스린 합스부르크 가문의 인물로, 폴란드 왕위 계승 실패 후 나폴리 왕국의 조반나 2세와 결혼했으나 후계 없이 사망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가 다시 분할되었다. -
14세기 오스트리아 공작 -
레오폴트 3세 정의공
레오폴트 3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으로서 영토를 확장하고 아드리아 해로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등 업적을 남겼으나 스위스 연방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
15세기 오스트리아 공작 -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
알브레히트 2세의 유복자로 태어나 헝가리, 보헤미아 국왕, 오스트리아 공작을 겸했으나 짧은 재위 기간 후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합스부르크 가문 알브레히트 계열이 단절되었다. -
15세기 오스트리아 공작 -
마차시 1세
마차시 1세는 1458년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하여 르네상스 문화를 진흥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과 군사 개혁을 통해 헝가리를 강대국으로 성장시켰으며, 오스만 제국에 맞서 헝가리의 독립을 지키고 영토를 확장했으나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2. 생애
레오폴트 4세는 레오폴트 3세와 베르데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386년부터 1396년까지 오스트리아 공이었으며, 1396년부터 1406년까지는 호렌부르크 조약에 따라 형 빌헬름이 사촌 알브레히트 4세와 공동으로 오스트리아 섭정이 되었기 때문에, 티롤과 전방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다.
1391년부터 전오스트리아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으며, 1393년 필리프 2세의 딸 부르고뉴의 카트린과 결혼했다. 1406년부터 1411년까지 어린 사촌 조카 알브레히트 5세와 함께 오스트리아 섭정을 맡았다. 티롤과 전방 오스트리아의 섭정은 동생 프리드리히 4세에게 양보했다. 카트린은 1425년에 사망했고, 그들 사이에는 생존한 자녀가 없었다.
레오폴트 4세의 남동생 철공 에른스트와 프리드리히는 당분간 성장하도록 내버려졌다. 그들은 1402년에 공작직을 받았다. 1406년, 그들의 맏형인 빌헬름 공작이 상속자 없이 사망했고, 레오폴트는 가문의 다음 수장이 되었다. 레오폴트 또한 아들이 없었다. 동생들은 미래의 영지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는데, 에른스트는 내오스트리아를, 프리드리히는 티롤 백국을 포함한 전오스트리아를 받기로 했다. 에른스트는 슈타이어마르크 등을 통치했고, 프리드리히는 겨우 20대 초반이었지만 티롤을 맡게 되었다. 레오폴트는 전오스트리아 영토의 책임을 맡았고, 동시에 가문의 수장 자리에 남았다.
1406년, 레오폴트는 어린 사촌 알브레히트 5세의 후견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그의 형제 에른스트와 갈등이 발생했다. 레오폴트는 비엔나에서 사망했으며 슈테판 대성당의 공작 묘지에 묻혔다.
레오폴트 4세가 죽은 후, 알브레히트 계의 당주 알브레히트 5세가 단독으로 오스트리아 공의 지위를 유지하며, 빈 궁정을 대표했다. 레오폴트 계에 속하는 레오폴트 4세의 두 동생들은 내 오스트리아와 전방 오스트리아의 일부를 할당받는 데 그쳤다. 에른스트 (철공)는 그라츠에, 프리드리히 4세는 인스브루크에 궁정을 두었다.
3. 가계
레오폴트 4세는 레오폴트 3세와 베르데 비스콘티의 차남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의 형제로는 맏형 내오스트리아 공작 빌헬름과 동생들인 에른스트,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1393년 그는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2세의 딸인 부르고뉴의 카트린과 결혼했지만, 자녀는 없었다.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레오폴트 3세 |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의 공작 |
| 어머니 | 베르데 비스콘티 | 밀라노의 참주 베르나보 비스콘티의 딸 |
| 맏형 | 내오스트리아 공작 빌헬름 | 레오폴트 4세를 공동 통치자로 삼음 |
| 동생 | 에른스트 | 내오스트리아 영지 상속 |
| 동생 | 프리드리히 | 티롤 백국을 포함한 전오스트리아 영지 상속 |
| 배우자 | 부르고뉴의 카트린 |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2세의 딸, 자녀 없음 |
3.1. 부모
레오폴트 4세는 레오폴트 3세와 베르데 비스콘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의 공작이었으며, 어머니는 밀라노의 참주 베르나보 비스콘티의 딸이었다.
3.2. 형제
레오폴트 4세의 형제로는 맏형 내오스트리아 공작 빌헬름이 있었는데, 그는 레오폴트 4세를 공동 통치자로 삼아 전오스트리아를 담당하게 했다. 레오폴트 4세는 오스트리아 행정에 대한 스위스의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1406년 빌헬름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레오폴트 4세가 가문의 수장이 되었고, 동생들은 영지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에른스트는 내오스트리아를, 프리드리히는 티롤 백국을 포함한 전오스트리아를 받기로 했다. 에른스트는 슈타이어마르크 등을 통치했고, 프리드리히는 티롤을 맡았다. 레오폴트 4세는 전오스트리아 영토의 책임과 함께 가문의 수장 자리를 유지했다.
레오폴트 4세 사후, 알브레히트 계의 알브레히트 5세가 오스트리아 공 지위를 유지했고, 레오폴트 4세의 두 동생들은 내오스트리아와 전방 오스트리아의 일부를 할당받았다. 에른스트는 그라츠에, 프리드리히 4세는 인스브루크에 궁정을 두었다.
3.3. 배우자
레오폴트 4세는 1393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2세의 딸인 카트린과 결혼했다. 카트린은 1425년에 사망했으며, 그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3.4. 후사
그는 1393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2세의 딸인 부르고뉴의 카트린과 결혼했다. 그녀는 1425년에 사망했고, 그들 사이에는 살아남은 자녀가 없었다.
4. 합스부르크 가문의 분열
레오폴트 3세와 베르데의 차남으로 태어난 레오폴트 4세는 1386년부터 1396년까지 오스트리아 공작이었다. 1396년부터 1406년까지는 호렌부르크 조약에 따라 형 빌헬름이 사촌 알브레히트 4세와 공동으로 오스트리아 섭정이 되었기 때문에, 레오폴트 4세는 티롤과 전방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다.
1406년, 맏형 빌헬름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레오폴트 4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레오폴트 4세 역시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들인 에른스트와 프리드리히 4세는 영지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에른스트는 내오스트리아를, 프리드리히 4세는 티롤을 포함한 전방 오스트리아를 받기로 했다. 에른스트는 슈타이어마르크 등을 통치했고, 프리드리히 4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티롤을 맡게 되었다. 레오폴트 4세는 전방 오스트리아 영토에 대한 책임과 함께 가문의 수장 자리를 유지했다.
1406년부터 1411년까지 레오폴트 4세는 어린 사촌 조카 알브레히트 5세 (후의 로마왕 알브레히트 2세)의 후견인(섭정)을 맡았는데, 이로 인해 동생 에른스트와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레오폴트 4세가 죽은 후, 알브레히트 계의 당주 알브레히트 5세가 단독으로 오스트리아 공작 지위를 유지하며 빈 궁정을 대표했다. 레오폴트 계에 속하는 레오폴트 4세의 두 동생들은 내 오스트리아와 전방 오스트리아의 일부를 할당받는 데 그쳤다. 에른스트는 그라츠에, 프리드리히 4세는 인스브루크에 궁정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