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에벌
1. 개요
레이 에벌은 미국의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1938년 가수로 데뷔하여 1941년 영화 《선 밸리 세레나데》에 출연했다.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Sometime", "Polka Dots and Moonbeams", "At Last", "To You" 등을 불렀으나, 밀러와의 불화로 밴드를 떠나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텍스 베네케 오케스트라에 합류하기도 했다. 197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그의 형은 빅 밴드 가수 밥 에벌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At Last"의 오리지널 가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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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가수 -
존 레논
존 레논은 비틀즈 멤버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솔로 활동과 평화 운동으로 20세기 대중음악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예술가이다. -
영어 가수 -
닐 세다카
닐 세다카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하워드 그린필드와 함께 브릴 빌딩에서 십대 시절부터 작곡 활동을 시작하여 1960년대 틴아이돌로 인기를 얻었으며, 1970년대 엘튼 존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한 후 작곡가 및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이다. -
미국의 작사가 -
마빈 게이
마빈 게이는 소울, R&B, 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 흑인 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미국의 가수이자 작곡가, 배우이다. -
미국의 작사가 -
니콜 키드먼
니콜 키드먼은 호주 영화로 데뷔하여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호주계 미국인 배우이자 제작자로,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과 영향력을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미국의 남자 가수 -
폴 길버트
폴 길버트는 레이서 X와 미스터 빅의 멤버로 활동하며 속주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미국의 기타리스트이자, 솔로 활동과 기타 교육 활동을 병행하며 아이바네즈 시그니처 모델 기타를 사용하고 드릴 연주 기법으로도 유명하다. -
미국의 남자 가수 -
미시시피 존 허트
미시시피 존 허트는 1893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나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1928년 녹음 후 상업적 실패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1963년 재발견되어 활동하며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생애
레이 에벌은 뉴욕주 메캐닉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으며, 형은 빅 밴드 가수 밥 에벌리였다. 레이는 정식 음악 교육 없이 10대부터 노래를 시작했고, 1938년 글렌 밀러에게 발탁되어 그의 오케스트라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밀러와 함께 활동하며 "At Last" 등의 곡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20세기 폭스 영화 선 밸리 세레나데(1941)와 오케스트라 와이프스(1942)에도 출연했다. 그의 보컬 스타일에 대한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밀러의 신임을 받으며 활동했으며, 주로 발라드를 불렀다. 1940년부터 1943년까지 빌보드 남성 보컬리스트 인기 투표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1942년 밀러에게 해고된 후, 잠시 진 크루파 밴드를 거쳐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1943년부터는 자신의 오케스트라('레이 에벌 오케스트라', '세레나데 인 블루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으며, 이 활동은 1979년 사망 시까지 이어졌다. 솔로 활동 중에도 영화 미스터 빅(1943) 등에 카메오 출연했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여러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했다. 1970년에는 옛 동료 텍스 베네케의 오케스트라에 합류해 전국 투어를 하기도 했다.
2.1. 초기 생애 및 데뷔
레이 에벌은 뉴욕주 메캐닉빌(Mechanicville)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A. 에벌은 지역 경찰관, 간판 제작자, 주점 운영자였다. 그의 형은 빅 밴드 가수로 활동한 밥 에벌리로, 지미 도르시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했다. 레이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10대 시절부터 노래를 시작했다. 1938년, 빅 밴드의 남성 보컬리스트를 찾던 글렌 밀러는 밥 에벌리에게 노래하는 형제가 있는지 물었고, 레이는 즉석에서 밀러의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에벌은 자신이 형이 공연하던 테이블 옆을 지나가다 밀러에게 붙잡혀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1938년 가수로 데뷔한 에벌은 1941년 미국 영화 《선 밸리 세레나데》(Sun Valley Serenade)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음악 평론가들과 밀러 밴드의 일부 단원들은 에벌의 보컬 스타일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밀러는 그를 계속 기용했다. 음악 평론가 조지 T. 사이먼은 밀러가 에벌에게 너무 높은 키의 노래를 부르게 하여 그의 목소리에 부담을 주었다고 지적하며, 에벌이 더 낮은 키로 노래할 때 훨씬 풍부한 소리를 냈다고 평가했다.
에벌은 글렌 밀러와 함께 성공을 거두었고, 재즈 스탠더드가 된 "At Last"와 같은 영화 《오케스트라 와이프스》(Orchestra Wives)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는 20세기 폭스가 제작한 영화 《선 밸리 세레나데》(1941)와 《오케스트라 와이프스》(1942)에 출연했다. 이후 유니버설 영화 《미스터 빅》(Mr. Big, 1943) 등 여러 영화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에벌은 주로 발라드를 불렀으며, 1940년부터 1943년까지 빌보드의 남성 보컬리스트 인기 투표("College Poll")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그가 부른 주요 곡으로는 글렌 밀러가 작곡한 "Sometime"(1939), "폴카 도트와 문빔"(Polka Dots and Moonbeams), "To You" 등이 있으며, "At Last"는 1942년 빌보드 차트 9위에 올랐다.
그러나 글렌 밀러는 밴드를 매우 엄격하게 관리했으며, 부정적인 사건이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종종 사람들을 해고했다. 어느 날 에벌은 시카고 공연 중에 교통 체증에 갇혀 리허설에 늦었다. 밀러는 그 자리에서 그를 해고하고 1942년 6월에 스킵 넬슨으로 교체했다.
글렌 밀러를 떠난 후 에벌은 잠시 진 크루파의 밴드에 합류한 후 솔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43년부터 레이 에벌 오케스트라와 세레나데 인 블루 오케스트라라는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으며, 1979년 사망할 때까지 밴드를 유지했다. 이후 1970년에는 전 밀러 밴드 동료인 텍스 베네케의 오케스트라에 합류하여 전국 투어를 했으며, 그 후 10년 동안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재결성하기도 했다.
2.2.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 활동
1938년, 빅 밴드에서 활동할 남성 보컬리스트를 찾던 글렌 밀러는 당시 지미 도르시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하던 밥 에벌리에게 노래하는 형제가 있는지 물었다. 밥 에벌리가 그렇다고 답하자, 그의 동생인 레이 에벌은 즉석에서 밀러에게 고용되었다. 에벌은 자신이 밀러에게 발탁된 경위에 대해, 비슷한 외모의 형 밥 에벌리가 공연하는 곳에 갔다가 밀러의 눈에 띄어 오디션 제의를 받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음악 평론가들과 밀러 악단 단원들은 에벌의 보컬 스타일에 대해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밀러는 그를 계속 신임했다. 음악 평론가 조지 T. 사이먼은 밀러가 에벌에게 너무 높은 키로 노래하게 하여 그의 목소리에 부담을 주었다고 지적하며, 에벌이 더 낮은 키로 노래할 때 훨씬 풍부한 소리를 냈다고 언급했다.
에벌은 밀러와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영화 오케스트라 와이프스에 삽입되어 후에 재즈 스탠더드가 된 "At Last"와 같은 곡에 애착을 보이며 "내가 몰입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영화 선 밸리 세레나데(1941)와 오케스트라 와이프스(1942)에도 출연했다. 에벌은 주로 발라드를 불렀으며, 1940년부터 1943년까지 빌보드의 남성 보컬리스트 인기 투표("칼리지 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 시절 에벌은 "Sometime"(1939), "폴카 도트와 문빔", "At Last"(1942년 빌보드 차트 9위), "To You" 등 여러 히트곡을 불렀다. 하지만 밀러는 악단 운영이 매우 엄격하여 사소한 문제에도 단원을 해고하는 경우가 잦았다. 한 예로, 에벌이 시카고 공연 리허설에 교통 체증으로 늦자 밀러는 그를 즉시 해고했으며, 1942년 6월 스킵 넬슨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밀러 악단을 떠난 에벌은 잠시 진 크루파 밴드를 거쳐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3. 솔로 활동 및 그 이후
글렌 밀러에게 해고된 후, 에벌은 잠시 진 크루파의 밴드에 합류했다가 솔로 경력을 시작했다. 1943년부터는 '레이 에벌 오케스트라'와 '세레나데 인 블루 오케스트라'라는 자신의 악단을 이끌었으며, 이 활동은 1979년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솔로 활동 중에도 영화에 출연하여 유니버설 영화 미스터 빅(1943) 등 여러 작품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을 했다. 또한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다수의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며 대중들과 만났다.
1970년에는 과거 글렌 밀러 밴드 시절 동료였던 텍스 베네케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에 합류하여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공연을 펼쳤다. 이후 1970년대에는 다시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재결성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2.4. 사망
1979년 8월 25일 조지아주 더글러스빌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0세였다. 사망 당시 그는 첫 부인 자넷 에벌(Janet Eberle)과의 사이에 세 자녀, 두 번째 부인 조앤 에벌(Joanne Eberle)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3. 가족 관계
미국의 가수 겸 영화 배우인 밥 에벌리(Bob Eberly)는 그의 형이다.
에벌은 첫 번째 아내 자넷 에벌(Janet Eberle, 옛 성은 영)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후 조앤 에벌(Joanne Eberle, 옛 성은 젠톤)과 두 번째로 결혼하여 두 아들을 얻었다. 그는 1979년 8월 25일, 조지아주 더글러스빌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이때 나이는 60세였다.
4. 평가 및 유명세
그는 보통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At Last라는 아메리칸 올드 팝 곡의 오리지널 원곡 가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