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폰스
1. 개요
로마 폰스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선수 시절에는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5번의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 우승과 1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다. 1927년에는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아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와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했으며, 라 리가 출범 이후 바르셀로나를 지휘한 최초의 감독이기도 했다. 폰스는 선수와 감독으로 각각 코파 델 레이와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감독으로서 라리가 우승을 달성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선수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CSKA 소피아와 FC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하며 유러피언 골든 부츠, 라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4년 FIFA 월드컵 득점왕, 발롱도르를 수상한 불가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라리가의 축구 감독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CSKA 소피아와 FC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하며 유러피언 골든 부츠, 라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4년 FIFA 월드컵 득점왕, 발롱도르를 수상한 불가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
라리가의 축구 감독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현역 시절 폰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 5회 우승,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을 달성했다. 어니스트 위티, 프란시스코 브루, 파울리노 알칸타라, 잭 그린웰 등이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 선수들이다. 1910년과 1912년 사이에는 카탈루냐 대표팀 소속으로 최소 4경기에 출전했으나, 당시 기록이 불확실하여 실제 출전 경기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2년 12월 12일에는 카탈루냐 대표팀 소속으로 프랑스와 국제 친선경기를 치렀다.
2.2. 바르셀로나 첫 골 기록
폰스는 FC 바르셀로나의 초대 홈 구장인 캄프 델 라 카레르 인두스트리아에서 1909년 3월 14일 경기에 해당 경기장 첫 득점을 기록했다.
3. 감독 경력
바르셀로나 경영진으로 1년간 활동한 폰스는 1927년에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취임하여 주제프 사미티에르, 사히바르바, 플러트코 페렌츠가 있던 선수단을 지도하였고,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와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했다. 그는 라 리가 출범 이래 바르셀로나를 지휘한 최초의 감독이었지만, 도중에 감독직을 내려놓았고, 짐 벨러미가 그의 뒤를 이어 초대 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폰스는 FC 바르셀로나의 7대 감독이었으며, 이전 6명의 감독이 모두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카탈루냐 출신 스페인인으로는 이 클럽의 첫 감독이었다. 1927-28 시즌에 주 챔피언십과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했고, 1929년 라 리가 에스파뇰라 초창기에도 팀을 이끌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아르카디 바라게르 회장과 함께 시즌 도중에 물러났다. 새로 부임한 잉글랜드인 제임스 벨라미를 보좌하는 수석 코치를 맡았지만, 결과적으로 팀을 리그 초대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또한 클럽의 매니저도 겸임했다.
4. 최후
폰스는 56세에 바르셀로나에서 영면에 들었다.
5. 수상
5.1. 선수
현역 시절 폰스는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카탈루냐 선수권 대회에서 5회, 코파 델 레이에서 1회 우승했다. 어니스트 위티, 프란시스코 브루, 파울리노 알칸타라, 잭 그린웰 등이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활약한 동료 선수들이었다. 1910년과 1912년 사이에는 카탈루냐 대표팀 소속으로 최소 4경기에 출전했으며, 당시 기록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실제 출전 경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2년 12월 12일에는 카탈루냐 대표팀 소속으로 프랑스와 국제 친선경기를 치렀다.
RCD 에스파뇰과 아이리시 FC에서 한 시즌씩 보낸 후, 1903년 FC 바르셀로나에 합류하여 1913년까지 포워드로 활약했다. 바르셀로나의 초대 홈 구장인 캄프 다르 카레르 인도스트리아에서 열린 1909년 3월 14일 경기에서 경기장 첫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