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코크랜
1. 개요
로이 코크랜은 미국의 육상 선수로, 1948년 런던 올림픽 400m 허들에서 금메달을, 4x400m 릴레이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39년 AAU 대회 400m 허들에서 우승했으며, 194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전쟁 후에는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생리학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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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로이 코크랜 |
|---|---|
| 국적 | 미국 |
| 출생일 | 1919년 1월 6일 |
| 출생지 | 미시시피주릭터 |
| 사망일 | 1981년 9월 26일 (향년 62세) |
| 사망지 | 워싱턴주기그 하버 |
| 키 | 178 cm |
| 몸무게 | 70 kg |
| 종목 | 400m, 400m 허들 |
|---|---|
| 개인 최고 기록 | 400m – 46.7 (1946년) 400m 허들 – 51.1 (1948년) |
| 소속 클럽 | 로스앤젤레스 육상 클럽 |
| 코치 | 빌리 헤이스 코모도어 코크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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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주 출신 -
존 그리샴
존 그리샴은 법학 박사이자 변호사, 미시시피주 하원의원이었으며, 법정 스릴러 소설 《타임 투 킬》, 《펠리컨 브리프》 등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무죄 프로젝트 이사로 활동하는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 -
미시시피주 출신 -
디플로
디플로는 메이저 레이저, Jack Ü 등 다양한 프로젝트 그룹과 솔로 활동으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미국의 DJ, 프로듀서이자 자신의 레이블 Mad Decent를 통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2020년부터 성 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
1948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 -
서윤복
서윤복은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이자 체육인으로,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 우승,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 그리고 숭문중고등학교 육상 감독, 서울운동장장, 대한육상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육상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
1948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 -
조지 로든
조지 로든은 자메이카 육상 선수로, 1950년 400m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으며, 2024년 사망했다. -
194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아흐메트 키레치
아흐메트 키레치는 터키의 레슬링 선수로, 1948년 런던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
194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델포 카브레라
델포 카브레라는 아르헨티나의 육상 선수로,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축구 선수에서 육상으로 전향하여 1951년 팬아메리칸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후 체육 교사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코크런은 1939년 AAU 대회 400m 허들에서 우승하고, 1940년 도쿄 올림픽 400m, 400m 허들, 4×400m 릴레이 미국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올림픽이 중단되었다. 1942년 해군 훈련소에 입대하여 태평양 전선에 참전했다.
전후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생리학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육상 경기에 참여, 1948년 AAU 대회 400m 허들에서 우승하며 1948년 런던 올림픽 대표로 선출되었다. 올림픽 결승에서 실론의 던컨 화이트를 중반에 역전, 0.7초 차이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4×400m 릴레이 미국팀 3번 주자로 뛰어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2.1. 초기 생애 및 선수 시절
코크런은 1919년 미시시피주의 스포츠 집안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와 육상을 했다. 툴레인 대학교에서 미식축구를 하고 싶어했지만, 1924년 파리 올림픽 4×400m 릴레이 금메달리스트인 형 코모도어 코크런의 권유로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에서 육상을 하게 되었다. 코모도어는 나중에 그의 코치가 되기도 했다.
코크런은 1939년 AAU 대회 400m 허들에서 우승했다. 1940년 도쿄 올림픽 미국 대표로 400m, 400m 허들, 4×400m 릴레이에 선발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올림픽은 중단되었다. 그 후 1942년에 해군 훈련소에 입대하여 태평양 전선에 참전했다.
전후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생리학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육상 경기에 참여, 1948년 AAU 대회 400m 허들에서 9년 만에 우승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대표로 선출된 그는 결승에서 실론의 던컨 화이트를 중반에 역전, 0.7초 차이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4×400m 릴레이 미국팀 3번 주자로 뛰어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2.2. 1940년 올림픽 좌절과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코크런은 1939년 AAU 대회 400m 허들에서 우승했다. 194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400m, 400m 허들, 4×400m 릴레이 미국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올림픽은 중단되었다. 그 후 1942년에 해군 훈련소에 입대하여 태평양 전선에 참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