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구니야스
1. 개요
루스 구니야스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무사로, 1830년에 태어나 1874년에 사망했다. 그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11대 당주의 아들로 태어나 형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미즈사와 읍주가 되었다. 보신 전쟁에서 센다이 번을 위해 시라카와구치 전투에 출진했으며, 항복 정사로 활약했다. 메이지 시대에는 센다이 번 소참사를 역임하고, 고토 신페이 등 인물을 추천하여 등용에 기여했다.
| 씨명 | 留守邦寧 (루스 구니야스) / 伊達邦寧 (다테 구니요리) |
|---|---|
| 출생 | 덴포 원년 3월 15일 (1830년 4월 7일) |
| 사망 | 메이지 7년 (1874년 11월 22일) |
| 어린 시절 이름 | 후쿠마쓰 (福松) |
| 개명 | 이다테 가네미치 (伊達景道) 이다테 구니요리 (伊達邦寧) 루스 구니요리 (留守邦寧) |
| 다른 이름 | 쇼칸 (将監) 쇼이치로 (将一郎) |
| 묘소 | 이와테현오슈시 다이안지 (大安寺) |
| 씨족 | 루스 씨 (미즈사와 이다테 가문) |
| 부모 | 아버지: 이다테 무네히라 어머니: 나카무라 가게사다 딸, 이요코 (以与子) |
| 형제자매 | 아이히메, 이다테 구니노리, 구니요리 등 |
| 자녀 | 루스 모토하루, 가게토미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
|---|---|
| 주군 | 이다테 요시쿠니, 이다테 무네모토 |
| 번 | 무쓰국센다이 번 |
| 참고 | 히라기시 마을 |
|---|---|
| 혼동 방지 | 도메 이다테 가문 당주인 이다테 구니요리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
-
루스씨 -
루스 마사카게
루스 마사카게는 다테 하루무네의 아들로 태어나 루스 씨를 계승한 무장으로, 다테 씨를 도와 세력 확장에 기여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다테 군 총대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다테 씨 일문으로 합류하여 이치노세키 2만 석을 받았다. -
루스씨 -
미즈사와번
미즈사와 번은 1695년부터 1699년까지 무쓰국 미즈사와에 존재했던 번으로, 센다이 번주 다테 쓰나무라가 동생 다테 무라요리에게 3만 석을 분할하여 성립되었으나, 번주 행렬과 하타모토 행렬 간의 충돌 사건으로 폐지되어 센다이 번에 흡수되었으며 초대 번주는 다테 무라요리이다. -
신직 (신사) -
마쓰다이라 노부야스 (1864년)
우에야마 번의 마지막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야스는 형의 강제 은거 후 번주가 되었으나 폐번치현으로 면직되었고, 자작 작위를 받았지만 방탕한 생활로 작위를 반납하여 가문이 몰락했다. -
신직 (신사) -
마쓰다이라 나가요시
마쓰다이라 나가요시는 일본의 군인, 야스쿠니 신사 궁사, 후쿠이 시립 향토 역사 박물관 관장으로, 해군 소좌로 진급하여 종전 처리를 담당했으며, 야스쿠니 신사 궁사로 A급 전범 합사를 실행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막말 센다이번 사람 -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가로, 해군대신,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하며 해군력 확장, 문화 통치 추진, 만주국 승인, 국제연맹 탈퇴 등의 행적을 남겼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
막말 센다이번 사람 -
다카하시 고레키요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의 일본 정치가이자 금융가로, 일본은행 총재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러일 전쟁 외채 조달 성공, 쇼와 금융 공황 극복 등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2. 생애
(내용 없음)
2.1. 출생과 가독 상속
덴포 원년(1830년) 3월 15일, 미즈사와 다테 가문 11대 당주 다테 무네히라의 다섯째 아들로 미즈사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후쿠마쓰였다.
덴포 14년(1843년), 원복하여 카게미치라고 이름을 지었다. 게이오 원년(1865년) 형 쿠니사다의 사망으로 가독과 지행 1만 6000석을 상속받아 미즈사와 읍주가 되었다.
2.2. 보신 전쟁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센다이 번 번주였던 다테 요시쿠니를 대신하여 시라카와구치 전투에 출진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 번 내부에서 항복론이 힘을 얻자, 번주의 명을 받아 항복 교섭의 정사(正使)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 패배로 인해 센다이 번은 기존 62만 석에서 28만 석으로 영지가 대폭 삭감되었고, 루스 구니야스 또한 미즈사와 영지를 잃게 되었다. 이후 은거한 요시쿠니를 대신하여 새롭게 번주가 된 다테 무네모토의 후견인이 되었다.
2.3. 메이지 시대
메이지 2년(1869년) 센다이 번 소참사(少参事)를 지냈다. 같은 해 이사와 현 대참사가 된 아시바 야스카즈에게 현청 급사 자리에 구신(舊臣)의 자제인 카타기리 세이지, 사이토 마코토, 고토 신페이를 추천했다. 이 추천과 아시바의 후원으로 사이토와 고토는 관료로서 출세하게 되었는데, 특히 고토 신페이는 훗날 만주 철도 총재, 도쿄 시장 등을 역임하며 일본 제국주의 정책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메이지 4년(1871년) 8월에는 국폐사 권궁사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권소교정이 되었다. 메이지 7년(1874년) 11월 22일 도쿄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