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사와번
1. 개요
미즈사와번은 1695년 다테 쓰나무네의 둘째 아들인 다테 무라토가 형으로부터 영지를 분할받아 성립되었다. 1699년, 번주 다테 무라요리가 에도 성으로 향하던 중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개역되었고, 영지는 센다이 번에 귀속되었다. 초대 번주는 다테 무라요리이다.
| 번 명칭 | 미사와와 번 (水沢藩) |
|---|---|
| 별칭 | 나카쓰야마 번 (中津山藩) |
| 국가 | 일본 |
| 지방 | 도호쿠 |
| 위치 | 무쓰국 모모 생 군 (현재의 미야기현 오슈시 미사와와) |
| 등급 | 후다이 다이묘 |
| 석고 | 1만 5천 석 |
| 1683년 | 미사와와에 진야 설치 |
|---|---|
| 1721년 | 번으로 승격 |
| 1871년 | 폐번치현 |
| 초대 번주 | 시미즈 요시카쓰 |
|---|---|
| 가문 | 시미즈 가문 |
| 번청 | 미사와와 진야 (水沢陣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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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 이와테현에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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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씨 -
루스 마사카게
루스 마사카게는 다테 하루무네의 아들로 태어나 루스 씨를 계승한 무장으로, 다테 씨를 도와 세력 확장에 기여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다테 군 총대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다테 씨 일문으로 합류하여 이치노세키 2만 석을 받았다. -
루스씨 -
루스 구니야스
루스 구니야스는 1830년에 태어나 1874년에 사망한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무사로, 형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미즈사와 읍주가 되었으며, 보신 전쟁에서 활약하고 메이지 시대에는 센다이 번 소참사를 역임했다. -
리쿠추국의 번 -
센다이번
센다이번은 1601년 다테 마사무네가 센다이 성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성립된 에도 시대의 번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경제를 운영하며 보신 전쟁에서 패배하여 폐지되었다. -
리쿠추국의 번 -
이치노세키번
이치노세키번은 에도 시대 무쓰국 이치노세키(현재 이와테현 이치노세키시)에 있던 센다이번의 지번으로, 다테 무네카쓰에 의해 처음 설치되었다가 다테 소동으로 폐지된 후 다무라 다쓰아키가 이봉되면서 재설치되어 다무라 가문이 보신 전쟁을 거쳐 폐번치현될 때까지 다스렸으며, 막부 말기에는 학문이 발달했다. -
미야기현의 역사 -
리쿠젠국
리쿠젠국은 1869년 무쓰국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일본의 옛 행정 구역으로, 보신 전쟁 이후 미야기현과 이와테현으로 분할 편입되었으며, 14개의 군으로 구성되었다. -
미야기현의 역사 -
무쓰국
무쓰국은 일본 고대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미치노오쿠"에서 유래하여 설치된 국으로, 데와국과 분리되어 넓은 지역을 관할하며 호족 세력의 번성, 무사 가문의 지배 시대를 거쳐 메이지 유신 이후 5개 국으로 분할되었다.
2. 번의 개창
1695년(음력 7월 7일), 다테 쓰나무라가 동생 다테 무라토(다테 무라요리)에게 3만 석 영지를 나누어 주는 것을 막부에 요청하여 인정받으면서 미즈사와 번이 성립되었다. 무라토는 이름을 무라요리로 바꾸었다. 이전의 미즈사와 영지와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가독은 양자 다테 무라카게에게 물려주었다. 1696년(음력 1월 11일)에는 에도 롯폰기에 번저를 두었고, (음력 10월 19일)에는 3만 석 중 절반은 미즈사와와 대체한 구리하라 군, 모노 군에서, 나머지는 에도에 보관된 연공미에서 실물로 지급하는 식으로 고쿠다카가 확정되었다.
2.1. 센다이 번 가문의 계승
센다이번 3대 번주 다테 쓰나무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쓰루치요마루는 4대 번주가 된 다테 쓰나무라의 친동생이다. 쓰루치요마루는 원래 쓰나무라의 양자가 될 예정이었으나, 쓰나무라에게 친아들이 생기면서 11세에 다무라 가문의 분가로 독립하여 다무라 아키타카(田村顕孝일본어)로 개명하였다. 그 후 15세에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다테 무네카게의 양자로 들어가 이름을 다테 무라토(伊達村任일본어)로 바꾸고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5대 당주가 되었다.
2.2. 다무라 가문 분가 및 미즈사와 다테 가문 계승
센다이번 3대 번주 다테 쓰나무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쓰루치요마루는 4대 번주가 된 다테 쓰나무라의 친동생이다. 쓰루치요마루는 원래 쓰나무라의 양자가 될 예정이었으나, 쓰나무라에게 친아들이 생기면서 11세에 다무라 가문의 분가로 독립하여 다무라 아키타카(田村顕孝일본어)로 개명하였다. 그 후 15세에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다테 무네카게의 양자로 들어가 이름을 다테 무라토(伊達村任일본어)로 바꾸고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5대 당주가 되었다.
2.3. 미즈사와 번 성립
센다이번 3대 번주 다테 쓰나무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쓰루치요마루는 4대 번주가 된 다테 쓰나무라의 친동생이다. 쓰루치요마루는 원래 쓰나무라의 양자가 될 예정이었으나, 쓰나무라에게 친아들이 생기면서 11세에 다무라 가문의 분가로 독립하여 다무라 아키타카(田村顕孝일본어)로 개명하였다. 그 후 15세에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다테 무네카게의 양자로 들어가 이름을 다테 무라토(伊達村任일본어)로 바꾸고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5대 당주가 되었다. 1695년 음력 7월 7일, 형 쓰나무라가 무라토에게 3만 석 영지를 분할해 주는 것을 막부에 요청하여 인정받음으로써 미즈사와 번이 성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무라토는 이름을 무라요리로 바꾸었다. 그리고 전에 보유하고 있던 미즈사와 영지와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가독은 양자 다테 무라카게에게 물려주었다. 1696년 음력 1월 11일에는 에도 롯폰기에 번저를 두었고, 음력 10월 19일에는 3만 석 중 절반은 미즈사와와 대체한 구리하라 군, 모노 군에서, 나머지는 에도에 보관된 연공미에서 실물로 지급하는 식으로 고쿠다카가 확정되었다.
3. 번의 소멸
1699년 음력 10월 28일, 미즈사와 번은 개역되었고 무라요리는 센다이 번으로 돌아갔으며, 그 영지도 센다이 번에 귀속되었다.
3.1. 오카 다카쓰네와의 갈등
1699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에도 성으로 가던 다테 무라요리의 행렬과 하타모토인 오카 다카쓰네 일행이 충돌하였다. 그 와중에 다카쓰네가 무라요리의 가신 세 명에게 폭행을 당했으나, 무라요리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막부는 오히려 다카쓰네를 개역(改易)에 처했지만, 무라요리의 행태에 분노한 형 다테 쓰나무라는 폭행을 행한 가신 세 명의 목을 베고 무라요리의 칩거를 막부에 요청했다.
3.2. 막부와 쓰나무라의 대응
1699년 음력 9월 9일(중양절) 행사 참석차 에도 성으로 향하던 무라요리 행렬과 하타모토 오카 다카쓰네 일행이 충돌했다. 다카쓰네는 무라요리 가신 세 명에게 폭행당했지만, 무라요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막부는 오히려 다카쓰네를 개역(改易)했지만, 무라요리의 행동에 분노한 형 쓰나무라는 폭행 가신 세 명을 처형하고 무라요리의 칩거를 막부에 요청했다.
3.3. 개역과 센다이 번 귀속
1699년 음력 9월 9일(중양절) 에도 성으로 가던 무라요리의 행렬과 하타모토인 오카 다카쓰네 일행이 충돌하였는데, 그 와중에 다카쓰네가 무라요리의 가신 세 명에게 폭행당했다. 그러나 무라요리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막부는 오히려 다카쓰네를 개역(改易)에 처했지만, 무라요리의 행태에 분노한 형 쓰나무라는 폭행을 행한 가신 세 명의 목을 베고 무라요리의 칩거를 막부에 요청했다. 결국 그해 음력 10월 28일, 미즈사와 번은 개역되었고 무라요리는 센다이 번으로 돌아갔으며 그 영지도 센다이 번에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