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오테로
1. 개요
루이스 오테로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1909년 폰테베드라 스포르팅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레알 비고 스포르팅,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등에서 활약했다. 레알 비고 스포르팅 소속으로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4번 우승했으며,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소속으로 2번 우승했다.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회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 본명 | 루이스 오테로 산체스-엔시나스 |
|---|---|
| 출생일 | 1893년 10월 22일 |
| 출생지 | 갈리시아 폰테베드라 |
| 사망일 | 1955년 1월 20일 |
| 사망지 | 갈리시아 라코루냐 |
| 포지션 | 수비수 |
| 1909–1911 | 폰테베드라 스포르팅 클럽 |
|---|---|
| 1911–1923 | 레알 비고 스포르팅 |
| 1923–1924 | 셀타 데 비고 |
| 1924–1930 |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
| 1920–1924 | 스페인 |
|---|---|
| 출장 | 4 |
| 1922–1923 | 갈리시아 |
| 남자 축구 | 올림픽 은메달 1920 안트베르펜 |
|---|---|
| 기타 메달 | 프린스 오브 아스투리아스 컵 은메달 19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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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비르지니오 로세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비르지니오 로세타는 수비수로 활약하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였고, 프로 베르첼리와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우승, 올림픽 동메달, 중부 유럽 국제컵 우승 등의 업적을 남겼고,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와 팔레르모에서 감독을 맡아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했다. -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리카르도 사모라
리카르도 사모라는 1920-30년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은퇴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으로서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라리가 최고 골키퍼에게 리카르도 사모라 트로피가 수여된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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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2. 클럽 경력
폰테베드라에서 태어난 오테로는 1909년, 16세의 나이에 고향 클럽인 폰테베드라 스포르팅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인 1911년에는 레알 비고 스포르팅으로 이적하여 약 10년간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팀의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 4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1919년과 1920년에는 코파 델 레이 준결승 진출을 경험했다.
1923년, 레알 비고 스포르팅이 포르투나 데 비고와 합병하여 셀타 데 비고를 창단하자, 오테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했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소속으로는 6시즌 동안 뛰면서 두 차례의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1. 셀타 데 비고와 데포르티보 이적 논란
폰테베드라 출신인 오테로는 1923년 레알 비고 스포르팅과 포르투나 데 비고가 합병하여 셀타 데 비고가 창단될 당시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키아로니, 곤잘레스와 함께 새로운 클럽의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1923년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계약하며 팀을 떠났다. 이 사건은 비고와 코루냐 두 도시 팀 간의 오랜 라이벌 관계를 촉발시킨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셀타 데 비고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선수들을 부당하게 영입(매수)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했다. 이 항의를 받아들여 갈리시아 연맹은 오테로를 포함한 세 명의 선수에게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1시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고,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역시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에 이들을 출전시키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는 스페인 연맹에 항소했다. 스페인 연맹은 데포르티보의 손을 들어주며 매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고, 갈리시아 연맹에 데포르티보의 선수권 대회 참가를 다시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세 선수에 대해서는 중복된 선수 등록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기존의 출전 정지 징계는 유지했다. 결국 갈리시아 연맹은 다수결 투표를 통해 스페인 연맹의 판결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출전 정지 징계가 끝난 후, 오테로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복귀하여 6시즌 동안 활약하며 팀의 두 차례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그는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스페인의 원년 선수단원이었다. 1920년 8월 28일, 오테로는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역사적인 첫 경기에 출전한 11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덴마크를 1-0으로 꺾었다. 그는 또한 스페인이 2-0으로 승리한 이탈리아와의 패자부활전 2라운드에도 출전했으며, 3일 후 네덜란드를 3-1로 꺾고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오테로와 몬초 길은 역사상 최초의 갈리시아 출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총 4번의 스페인 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는데, 1920년 올림픽에서 2번, 친선 경기에서 2번 출전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24년 12월 21일 레스 코르츠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친선 경기로, 스페인이 2-1로 승리했다.
3.1. 갈리시아 대표팀
레알 비고 스포르팅 소속 선수 시절, 그는 갈리시아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는 갈리시아 대표팀 역사상 첫 경기인 1922-23 아스투리아스 왕자컵 8강전에 출전하여 카스티야/마드리드 XI를 상대로 4-1 승리를 거둔 선발 11명 중 한 명이었다. 이 대회는 RFEF가 주최한 지역 대표팀 간의 아스투리아스 왕자컵 대회였다. 오테로는 갈리시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 대회의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호세 루이스 사발라에게 후반 두 골을 내주며 아스투리아스 대표팀에 1-3으로 패배했다.
4. 수상 경력
루이스 오테로는 선수 시절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여러 차례 우승 및 준우승을 경험했다. 레알 비고 스포르팅과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소속으로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총 6회 우승했으며, 스페인 대표팀으로는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은메달을, 갈리시아 대표팀으로는 아스투리아스 왕자컵 준우승을 기록했다.
4.1. 클럽
폰테베드라에서 태어난 그는 1909년 16세의 나이에 고향 클럽인 폰테베드라 스포르팅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2년 후 레알 비고 스포르팅으로 이적했다. 스포르팅에서 거의 10년 동안 뛰면서 4번의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1919년과 1920년 두 번이나 코파 델 레이 준결승에 진출했다.
1923년 레알 비고 스포르팅이 포르투나 데 비고와 합병하여 셀타 데 비고를 창단한 직후, 오테로는 클럽을 떠났다. 그는 키아로니, 곤잘레스와 함께 새로운 클럽의 규율에 불만을 품고 1923년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계약하기 위해 팀을 떠났다. 이 사건은 비고와 코루냐 팀 간의 역사적인 라이벌 관계를 촉발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셀타 데 비고는 데포르티보를 매수 혐의로 고소했고, 이로 인해 갈리시아 연맹은 오테로를 포함한 세 명의 선수에게 프로 의식을 문제 삼아 한 시즌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또한 데포르티보는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이들을 출전시키는 것이 금지되었다. 데포르티보는 왕립 스페인 축구 연맹에 항소했고, 연맹은 데포르티보의 손을 들어주며 매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연맹은 갈리시아 연맹에게 데포르티보의 선수권 대회 재참가를 촉구했지만, 세 선수가 중복된 기록(이중 계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선수들에 대한 제재는 유지했다. 갈리시아 연맹은 다수결로 스페인 연맹의 판결을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출전 정지 기간이 끝난 후, 오테로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돌아와 6시즌 동안 더 활동하며 두 번의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레알 비고 스포르팅
*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 (4회): 1914, 1919, 1920, 1923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 (2회): 1926–27, 1927–28
4.2. 국가대표팀
그는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스페인의 원년 선수단원이었다. 1920년 8월 28일, 오테로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적인 첫 공식 경기였던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덴마크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1-0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와의 패자부활전(2-0 승)과 네덜란드와의 동메달 결정전(3-1 승)에도 출전하여 스페인이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로써 오테로는 몬초 길과 함께 갈리시아 출신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총 4번의 스페인 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는데, 올림픽에서 2번, 친선 경기에서 2번 출전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24년 12월 21일 레스 코르츠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친선 경기로, 스페인이 2-1로 승리했다.
레알 비고 스포르팅 소속 선수였던 그는 갈리시아 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그는 갈리시아 대표팀의 첫 경기였던 1922-23 아스투리아스 왕자컵 8강전(카스티야/마드리드 XI 상대, 4-1 승)에 출전한 11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이 대회는 RFEF에서 주최한 지역 대항전이었다. 오테로는 갈리시아 대표팀 소속으로 이 대회의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아스투리아스 대표팀에게 1-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5. 사생활
그는 폰테베드라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