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루이스 사발라
1. 개요
호세 루이스 사발라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와 공격수로 활동했다. 레알 유니온 유소년팀에서 시작하여 RCD 에스파뇰, 레알 오비에도, 발렌시아 CF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4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으며, 아스투리아스 자치 축구팀 소속으로 아스투리아스 공작컵에서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1922-23 시즌 아스투리아스 공작컵에서 5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아스투리아스 팀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하다.
| fullname: José Luis Zabala Arrondo (호세 루이스 사발라 아론도) | |
| 출생일 | 1898년 12월 14일 |
|---|---|
| 출생지 | 이룬, 기푸스코아 주, 스페인 |
| 사망일 | 1946년 4월 22일 |
| 사망지 | 바르셀로나, 스페인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연도 | 1914–1916 |
|---|---|
| 유소년 클럽 | 스포르팅 데 이룬 |
| 연도 | 1916–1917 |
|---|---|
| 클럽 | 클루브 이사라 데 에이바르 |
| 연도 | 1917–1918 |
| 클럽 | 우니온 데 이룬 |
| 연도 | 1918–1919 |
| 클럽 | 에스파뇰 |
| 연도 | 1919–1923 |
| 클럽 | 레알 클루브 데포르티보 오비에도 |
| 연도 | 1923–1926 |
| 클럽 | 에스파뇰 |
| 연도 | 1926–1929 |
| 클럽 | 레알 오비에도 |
| 연도 | 1929-1930 |
| 클럽 | 발렌시아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
|---|---|
| 국가대표 연도 | 1923-1924 |
| 국가대표 출장 | 4 |
| 국가대표 골 | 4 |
| 국가대표팀 | 아스투리아스 |
| 국가대표 연도 | 1922-1923 |
| 국가대표 출장 | 6 |
| 국가대표 골 | 7 |
| 국가대표팀 | 카탈루냐 |
| 국가대표 연도 | 1923-1926 |
| 국가대표 출장 | 4 |
| 국가대표 골 | 2 |
| 감독 연도 | 1932 |
|---|---|
| 감독 클럽 | UE 산츠 |
| 감독 연도 | 1934–1936 |
| 감독 클럽 | 지로나 FC |
| 감독 연도 | 1941–1942 |
| 감독 클럽 | 지로나 FC |
| 감독 연도 | 1943–1944 |
| 감독 클럽 | FC 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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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우니온의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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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우니온의 축구 선수 -
가브리엘 알론소
스페인 축구 선수 가브리엘 알론소는 셀타 비고, 레알 마드리드, 말라가에서 활약하며, 셀타 비고에서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우승을 경험했고, 스페인 국가대표로 195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4강 진출에 기여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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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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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2. 클럽 경력
호세 루이스 사발라는 고향 이룬의 레알 우니온 유소년팀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이자라 데 에이바르와 레알 우니온에서 짧게 활동한 뒤, 1918년 에스파뇰에 입단하여 미드필더로 한 시즌을 뛰었다. 그러나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입힌 후 카탈루냐 축구 연맹으로부터 3개월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로 인해 에스파뇰을 떠나 레알 클럽 데포르티보 오비에도에 합류했다. 그는 오비에도 소속으로 1920년 1월 25일 열린 첫 아스투리아스 더비에서 스포르팅 데 히혼을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2-2 무승부에 기여했다.
오비에도에서 4시즌을 보낸 후, 사발라는 1923년 에스파뇰로 복귀했다. 두 번째 에스파뇰 시절에는 뛰어난 공격수로 성장하여 스페인 및 카탈루냐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1926년 다시 레알 오비에도로 돌아갔으며, 선수 경력 마지막은 1929-30 시즌 발렌시아에서 보냈다.
2.2. 에스파뇰
이룬 출신인 사발라는 레알 유니온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이자라 데 에이바르와 레알 유니온을 거쳐 1918년 에스파뇰에 입단했다. 그는 미드필더로 한 시즌 동안 활동했으나,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입힌 후 카탈루냐 축구 연맹으로부터 3개월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징계로 인해 사발라는 에스파뇰을 떠나 레알 클럽 데포르티보 오비에도로 이적했다.
레알 오비에도에서 4시즌을 보낸 후, 사발라는 1923년에 다시 에스파뇰로 복귀했다. 두 번째 에스파뇰 활동 기간 동안 그는 뛰어난 공격수로 성장했으며, 라파엘 오라마스, 알프레도 아로니즈, 호세 파드론 등과 함께 공격 파트너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그는 스페인 및 카탈루냐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사발라는 1926년 다시 레알 오비에도로 돌아갔고, 이후 발렌시아에서 선수 경력을 마쳤다.
2.3. 레알 오비에도
에스파뇰에서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입힌 후 카탈루냐 축구 연맹으로부터 3개월 활동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로 인해 에스파뇰을 떠나 레알 클럽 데포르티보 오비에도에 합류했다. 이 팀은 1925년 레알 스타디움 클럽 오비에텐세와 합병하여 현재의 레알 오비에도가 되었다. 1920년 1월 25일 열린 스포르팅 데 히혼과의 첫 아스투리아스 더비에서 사발라는 당시 레알 클럽 데포르티보 오비에도 소속으로 팀의 첫 동점골을 기록하며 2-2 무승부에 기여했다.
오비에도에서 4시즌을 보낸 뒤, 1923년 에스파뇰로 복귀했다가 1926년에 다시 레알 오비에도로 돌아와 활동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호세 루이스 사발라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아스투리아스 지역 대표팀, 그리고 카탈루냐 지역 대표팀에서 활약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는 1923년 프랑스와의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포르투갈을 상대로는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는 스페인 대표팀에서 총 4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넣었다.
레알 오비에도에서 뛰던 시절에는 아스투리아스 대표팀 선수로 활동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는 아스투리아스 대표팀의 첫 친선 경기에서 팀 역사상 첫 골을 기록했으며, 아스투리아스 공작컵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1922-23 시즌에는 팀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득점왕(5골)에 올랐고,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통산 최다 득점(6골) 및 아스투리아스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7골)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1923년 에스파뇰로 이적한 후에는 카탈루냐 대표팀에서도 뛸 자격을 얻었지만, 당시 기록의 한계로 정확한 출전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또한, 1924년 3월 13일에는 카탈루냐 XI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7-0 대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3.1. 스페인 국가대표팀
그는 1923년 1월 28일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프랑스와의 경기에 데뷔했으며, 3-0으로 이긴 이 경기에서 팀의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1923년 12월 16일에 열린 다음 경기에서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베리아 더비에서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총 4번의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다.
:스페인 점수가 먼저 나열되었으며, 점수 열은 사발라의 각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냅니다.
3.2. 아스투리아스 대표팀
레알 오비에도 소속 시절, 그는 아스투리아스 대표팀 선수로 뛸 자격을 얻었다. 1922년 6월 4일, 세인트 미렌 FC와의 친선 경기는 아스투리아스 대표팀의 창단 첫 경기였는데, 사발라는 이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팀은 3-7로 패했지만, 사발라는 아스투리아스 대표팀 역사상 첫 골을 기록하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아스투리아스 대표팀은 1922년부터 1926년까지 아스투리아스 공작컵에 참가하여 총 7번의 공식 경기를 치렀다. 특히 1922-23 시즌 대회에서 사발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8강 재경기에서 비스케이를 상대로 두 골을 넣어 팀의 4-3 승리에 기여했고, 준결승에서는 카탈루냐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터뜨려 1-0 승리를 이끌었다. 결승전에서는 갈리시아를 상대로 후반전에만 두 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3-1 승리와 우승을 견인했다. 사발라는 이 대회에서 총 5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다음 시즌 대회에서는 사발라가 한 골을 추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스투리아스는 8강에서 비스케이에게 2-4로 패하며 탈락했다. 사발라는 아스투리아스 공작컵에서 통산 6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킨케, 후안 몬하르딘과 함께 대회 역대 최다 득점 공동 기록이다. 또한 사발라는 아스투리아스 대표팀 소속으로 총 7골(친선경기 1골 포함)을 기록하여, 팀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 남아있다.
1923년 에스파뇰로 이적하면서 카탈루냐 대표팀에서도 뛸 자격을 얻었으나, 당시 기록의 한계로 정확한 출전 횟수는 확인되지 않는다.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1922년 6월 4일 | 엘 몰리논, 히혼, 스페인 | 세인트 미렌 FC | 3–7 | 친선 경기 | |
| 2 | 1922년 11월 13일 | 엘 몰리논, 히혼, 스페인 | 비스케이 | 1–0 | 4–3 | 1922-23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8강 재경기 |
| 3 | 2–1 | |||||
| 4 | 1923년 1월 14일 | 엘 몰리논, 히혼, 스페인 | 카탈루냐 | 1–0 | 1–0 | 1922-23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준결승 |
| 5 | 1923년 2월 25일 | 코이아, 비고, 스페인 | 갈리시아 | 2–1 | 3–1 | 1922-23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결승 |
| 6 | 3–1 | |||||
| 7 | 1923년 11월 18일 | 산 마메스, 빌바오, 스페인 | 비스케이 | 2–2 | 2–4 | 1923-24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8강 |
3.3. 카탈루냐 대표팀
1923년 에스파뇰로 복귀하면서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뛸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기록의 한계로 인해 그가 카탈루냐 대표팀 소속으로 정확히 몇 경기에 출전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4. 수상 경력
(내용 없음)
4.2. 대표팀
* 아스투리아스 XI
**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컵: 우승 (1회) 1922-23
4.3. 개인
아스투리아스 XI
* 1922-23 프린세스 오브 아스투리아스 컵에서 5골로 최다 득점자
* 아스투리아스 공작 컵 역대 최다 득점자 (6골)
* 아스투리아스 역대 최다 득점자 (7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