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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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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르비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대성당은 1363년에서 1370년 사이에 카페 출신 아르메니아 상인에 의해 세워진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유래되었다. 이 교회는 교구의 모교회 역할을 했으며, 고대 아르메니아의 아니 대성당을 본떠 만들었다. 17세기부터 1945년까지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르비우 대교구 소속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 합병되면서 아르메니아 가톨릭 대교구가 폐지되고 건물은 약탈된 성물을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양도되었으며, 1997년 르비우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교구가 설립되었다. 2003년 재헌당되었으며, 현재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의 협력으로 개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성당 북쪽에는 베네딕토회 수녀원이, 남쪽에는 종루와 아르메니아 대주교 궁전이 위치해 있으며, 내부에는 얀 헨리크 로젠과 요제프 메호퍼의 작품과 성 그레고리우스 일루미네이터, 성모 마리아 성상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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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대성당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성모 승천 아르메니아 대성당
원어 이름Հայկական տաճար (하야카칸 타차르)
다른 이름비르멘스키 소보르 (Вірменський собор, 우크라이나어), 카테드라 오르미안스카 (Katedra ormiańska, 폴란드어)
아르메니아 대성당
아르메니아 대성당
국가우크라이나
위치르비우 구시가지
교단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이전 교단가톨릭 교회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역사
건축 연도1363년–1370년
건축
크기
추가 정보
주소르비우 구시가지

2. 역사

르비우 아르메니아 대성당은 14세기 중반 카페 출신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의 자금 지원으로 건립되었다. 초기에는 고대 아니 대성당을 모델로 삼았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 재건축, 확장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7세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소속이었으나, 소련 시대에는 폐쇄되어 창고로 사용되는 아픔을 겪었다. 소련 붕괴 후, 대성당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양도되었고, 2003년에 재헌당되었다. 현재는 폴란드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개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다.

2. 1. 14세기 ~ 1945년

1363년에서 1370년 사이에 카페 출신의 아르메니아인 상인이 자금을 대어 작은 아르메니아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는 교구의 중심 교회 역할을 했으며, 고대 아르메니아 수도에 있던 아니 대성당을 본떠 만들었다. 1437년에는 대성당 주변으로 아케이드 갤러리가 둘러싸게 되었다. 이 중 남쪽 부분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북쪽 부분은 성물실로 재건축되었다.

1527년에 대성당은 화재 피해를 입었다. 이후 1571년에는 돌로 만든 새로운 종탑이 세워졌다. 1630년에는 본당의 주요 공간인 신도석이 확장되었고, 1723년 재건축 과정에서 다시 한번 확장되었다.

17세기부터 1945년까지 대성당은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의 르비우 대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이는 미코와이 (니콜라스) 토로소비츠 주교와 그의 후임자인 바르탄 후나냔 주교가 아르메니아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통합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대성당은 1908년부터 1927년까지 복원 작업을 거쳤다.

2. 2. 1945년 ~ 현재

1920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르비우는 제2 폴란드 공화국의 도시였으나, 전쟁 후 소련에 합병되었다. 1945년, 새로운 소련 당국은 르비우의 아르메니아 가톨릭 대교구를 폐지하고, 관리자였던 디오니지 카예타노비치를 체포했다. 도시의 거의 모든 폴란드계 아르메니아인들은 현대 폴란드로 추방되었다. 대성당은 폐쇄되었고, 건물은 약탈된 성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 공식적으로 르비우의 아르메니아 가톨릭 대교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1938년 이후 비어있는 상태로 남아있다.[1]

소련 붕괴 이후,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교구를 재건하려 했다. 한편, 소련 시대에 르비우로 이주해 온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소속 아르메니아인들 또한 대성당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르비우 방문 직전에, 현지 우크라이나 당국은 아르메니아 가톨릭과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공동체가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 하에 대성당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양도했다.[2] 1997년 르비우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교구가 설립되었다.

2003년 5월 18일, 대성당은 전 아르메니아 가톨리코스 카레킨 2세와 다른 세 명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주교에 의해 재헌당되었다. 이 행사에는 아르메니아 국회 의장 아르멘 하차트리얀,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인 연합 회장, 프랑스계 아르메니아 가수 샤를 아즈나부르와 그의 아들, 아르메니아 배우 아르멘 지가르하냔, 그리고 우크라이나 주재 아르메니아 대사 흐라치야 실바냔 등이 참석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에서는 아우구스틴 주교가,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에서는 미하일 디미드가 대표로 참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를 대표해서는 종교 국가 기관장 빅토르 본다렌코가 참석했다. 그러나 이 재헌당식에는 폴란드계 아르메니아인이나 아르메니아 가톨릭 성직자는 초대받지 못했다.

2009년부터 대성당은 폴란드 문화부의 전적인 지원과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 아르메니아 문화 유산 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개보수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3. 건축 및 내부

르비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대성당은 여러 시대에 걸쳐 증축 및 개축되어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특히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아케이드는 대성당의 초기 건축 요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1] 대성당 주변으로는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수녀원, 종탑, 대주교 궁전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1][2] 내부는 후대에 추가된 장식과 역사적인 성상들로 채워져 있다.[1][2]

3. 1. 외부

대성당 바로 북쪽에는 아르메니아 베네딕토회 수녀원이 자리 잡고 있다. 남쪽에는 종탑과 아르메니아 대주교의 궁전이 접해 있는데, 이 건물들은 모두 17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3. 2. 내부

현재 대성당 내부 모습은 주로 얀 헨리크 로젠과 요제프 메호퍼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당에는 17세기 야즐로베츠에서 가져온 두 개의 기적의 성상이 보관되어 있는데, 하나는 성 그레고리우스 일루미네이터 성상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어머니 성상이다.

대성당 내부의 내진 모습

참조

[1] 웹사이트 The Eastern Catholic Churches 2013 http://www.cnewa.us/[...] Annuario Pontificio 2013-09-04
[2] 웹사이트 Interview with Patriarch Nerses Bedros XIX https://risu.org.ua/[...] Religious Information Service of Ukraine 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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