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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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유민은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혁명동지회를 지도했으며, 화북조선청년연합회, 화북조선독립동맹 등에서 활동했다. 광복 후 북한으로 귀국하여 조선신민당 조직부장,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역임했으나, 1958년 연안파 숙청에 연루되어 해임되었다.

리유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유민
한글이유민
한자李維民
로마자 표기I Yumin
인물 정보
출생1914년
출생지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남도 보성군
사망지평양, 북한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직업 및 소속
직업정치인
소속 정당조선로동당
학력
모교동제대학교
경력
직책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임기 시작1953년 12월 22일
임기 종료1957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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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나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광복 이후 38선 이북으로 귀국하여 북한 정권에 참여하였으나, 연안파 숙청에 연루되어 해임되었다.

2.1. 독립운동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난 그는 1932년 상하이로 망명해 퉁지 대학 독어과에서 수학한 뒤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고 1935년 8월 난징에서 결성된 혁명동지회를 지도했다. 1941년 1월, 태항산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 결성에 참여하여 조직부장에 취임했으며, 1942년 7월에는 태항산 팔로군 근거지에서 결성된 화북조선독립동맹의 중앙집행위원 겸 조직부장으로 선출되었다. 1944년 초에는 태항산에서 건립된 적구공작반(敵區工作班) 조직부 책임자가 되었다.

2.2. 북한 정권 참여와 숙청

광복 이후 38선 이북으로 귀국하여 1946년 3월 조선신민당 결성에 참여하고 조직부장이 되었다. 1948년 3월 북조선로동당 제2차 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8월에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

1950년 10월, 6.25 전쟁박헌영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했다. 1953년 12월에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으로 재직하였고, 1956년 4월에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58년, 연안파 숙청에 연루되어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