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협
1. 개요
김광협은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한 북한의 군인 및 정치인이다. 1915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했으며,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했다. 해방 후 소련 군정에서 군관구 사령관을 지냈고, 조선인민군 창설에 참여하여 제3사단장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 당시 제2군단장을 맡았으며, 이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민족보위상 등을 역임했다. 1970년 주체사상 비판으로 숙청되었다.
| 이름 | 김광협 |
|---|---|
| 한자 표기 | 金光俠 |
| 로마자 표기 | Gim Gwanghyeop |
| 출생 | 1915년 |
| 출생지 | 회령시, 함경북도, 북한 |
| 사망 | 1970년 |
| 국적 | 한국 |
|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 군사 경력 | 동북항일연군 소련군 동북민주연군 조선인민군 |
|---|---|
| 최종 계급 (소련군) | 상위 |
| 최종 계급 (북한군) | 대장 |
| 주요 전투 | 한국 독립운동 만주국 토벌 중국 국공내전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춘천 대첩 강릉 전투 울진-평해 전투 무극리 전투 동락리 전투 진천 전투 단양 전투 영덕-강구 전투 부산 방어선 전투 천평 계곡 전투 |
|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 임기 시작: 1953년 8월 임기 종료: 1957년 9월 |
| 민족보위상 | 임기 시작: 1957년 9월 임기 종료: 1962년 |
| 기타 경력 | 국가검열성 부상 겸 국가검열상 직무대리 내각 부총리 당무위원 |
| 지휘 | 조선인민군 지상군 제2군단장 |
| 자매 | 김성애 (누이동생) |
|---|---|
| 형제 | 김성호 (남동생) 김성갑 (남동생) |
| 매제 | 김일성 |
| 생질 | 김평일 |
| 생질서 | 김광린 |
| 학교 |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평양고급군사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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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군사종합대학 동문 -
김여정
김여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나 김정은의 여동생이며, 조선로동당 핵심 실세로 부상하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대외적으로 강경한 어조의 담화를 발표하며 대남·대미 압박을 주도하기도 한다. -
김일성군사종합대학 동문 -
김정철 (1981년)
김정철은 김정일의 차남이자 김정은의 친형으로,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으며 에릭 클랩튼의 팬으로 알려졌고, 김정은 체제 하에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요직에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
빨치산파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빨치산파 -
김영주 (1920년)
김영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일성의 동생이자 김정일의 삼촌이며, 한때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김정일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고, 7·4 남북 공동 성명 당시 북측 대표, 국가부주석 등을 역임했다. -
국공 내전 관련자 -
덩샤오핑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톈안먼 사건 무력 진압 등 비판도 받으며, 실사구시와 선부론을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일국양제 원칙을 제시한 중국의 정치가이자 개혁가이다. -
국공 내전 관련자 -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중국의 혁명가이자 정치가, 군사 전략가, 공산주의 이론가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아버지로서, 중국 공산당을 이끌며 최고지도자로서 중국을 통치했고, 마오쩌둥 사상의 창시자로서 그의 정책과 통치는 중국 사회, 경제, 문화, 외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1915년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태어나 1930년 16세의 나이로 중국으로 건너가 황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했다. 1935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했다. 일본 제국 패망 이후에는 조선인민군 창설에 참여하여 한국 전쟁에서 주요 지휘관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 휴전 이후 1957년 최고인민회의 제2기 대의원을 지냈고 1962년까지 민족보위성 수장을 역임했으며, 1960년에는 내각 부수상이 되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당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62년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66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서기가 되었으나, 1970년 김일성의 주체사상 유일체계를 비판하다가 정치적으로 숙청당했다.
2.1. 항일 무장 투쟁과 북한 정권 수립 (1915-1948)
1915년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태어나, 1930년 16세의 나이로 중국으로 건너가 황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파르티잔 활동을 했다. 1935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36년 동북항일연군 제5군 제2사 제4단 정치위원, 1940년에는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정치위원을 지냈다. 1940년 3월에는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총지휘부 경위대 정치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소련 영토로 이동한 후에는 제88여단 제4영 제7연대 연대장을 역임했다.
1945년 일본 제국 패망 이후 소련 군정의 동북민주군의 군관구 사령관이 되었으며, 같은 해 8월, 소련의 대일 참전과 함께 중국 동북부에 파견되어, 소련군 목단강 경비사령부 부사령에 취임했다. 1946년 7월, 동북 민주 연군 길동 군구 사령원 겸 경비 제1여단 여단장을 역임했다. 1948년 초 조선으로 귀국했으며, 같은 해 조선인민군 제3사단장이 되었다. 1948년 3월 북조선 노동당 제2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2. 조선인민군 창설과 한국 전쟁 (1948-1953)
1948년 조선인민군 창설과 함께 제3사단장에 임명되었으며, 한국 전쟁 발발 전에는 동부전선을 담당하는 제2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동부 전선에 침공했지만 춘천 공략이 늦어져 참모장으로 강등되었다. 1951년에 제3군단장이 되었고, 1952년 7월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가 설립되자 사령관에 취임했다. 1953년 2월에 조선인민군 대장이 되었다.
2.3. 정치 활동과 숙청 (1953-1970)
한국 전쟁 휴전 이후, 김광협은 1957년 최고인민회의 제2기 대의원을 지냈고 1962년까지 민족보위성 수장을 역임했다. 1967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북한과의 관계가 경색되자, 김광협이 김일성을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는 낭설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3월 쿠바 대사의 환송연회에 김일성이 김광협을 대동하고 나타나 이러한 의혹을 일축했다.
1970년 김광협은 김일성의 주체사상 유일체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정치적으로 숙청당했다.
김광협의 여동생 김성애는 김일성의 후처였으며, 김평일은 그의 외조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