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2세 (콩고)
1. 개요
마누엘 2세는 콩고의 마니콩고로, 다니엘 1세의 형제였다. 상 살바도르 약탈 사건으로 다니엘 1세가 사망한 후 킴판주 가문의 콩고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그는 페드루 3세를 암살하고 콩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페드루 4세와의 갈등 끝에 1715년 킨라자와 킴판주 가문 사이의 왕위 교체 합의를 이끌었다. 페드루 4세 사후, 1718년에 콩고의 마니콩고로 즉위하여 1743년 사망할 때까지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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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마누엘 2세 |
|---|---|
| 칭호 | 콩고 왕 |
| 통치 기간 | 1911년 ~ 1914년 |
| 이전 통치자 | 마누엘 세르케이라 |
| 다음 통치자 | 알바로 15세 |
| 출생 | 1870년 |
|---|---|
| 사망 | 1914년 |
| 신부 | 이사벨 아콰 데 브라간사 |
| 왕가 | 킴판주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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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1743년 사망 -
앙드레 에르퀼 드 플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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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 사망 -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토스카나 대공 코지모 3세의 딸이자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는 팔츠 선제후와의 결혼 후 남편 사후 피렌체로 돌아와 자선 활동에 헌신했으며, 메디치 가문의 미술품 컬렉션을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하여 피렌체의 문화적 유산을 영구히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
마니콩고 -
페드루 4세
페드루 4세는 17세기 후반 콩고 왕국의 왕으로 아구아 로사다 가문의 창시자이며, 왕위 계승의 어려움 속에서 왕국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고, 경쟁 가문 간 왕위 교대 계승 유언을 남겼다. -
마니콩고 -
은라자
2. 음밤바 로바타 통치
마누엘 2세는 다니엘 1세의 형제로, 상 살바도르 약탈 사건으로 다니엘 1세가 사망하자 킴판주 가문의 콩고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그는 음밤바 로바타로 후퇴하여 콩고 내전 이후 세 개의 주요 국가 중 하나가 된 어웨네콩고에 자리 잡았다.
1680년, 페드루 3세는 렘바를 통치하며 콩고 왕위를 주장했는데, 마누엘은 이에 복수를 맹세하고 페드루 3세를 암살했다. 이후 마누엘은 콩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페드루 4세와 상 살바도르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했다.
마누엘은 6년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1715년 페드루 4세와 킨라자 가문과 킴판주 가문이 왕위를 번갈아 계승한다는 합의를 맺을 때까지 음밤바 로바타를 통치했다.
2.1. 내전 시기 킴판주 가문의 지도자
마누엘은 다니엘 1세의 형제였으며, 그가 상 살바도르 약탈 사건으로 사망했을 때 킴판주 가문은 콩고 왕위의 주요 계승자가 되었다. 그는 음밤바 로바타로 후퇴하여 아웨네콩고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콩고 내전 이후 세 개의 주요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나머지 두 국가는 콩고 왕위의 다른 킨라자 가문 계승자들이 차지했다. 1680년, 페드루 3세는 렘바의 경쟁 왕국을 통치했으며, 그는 소요 남부의 루보타 지역에 거주하는 킴판주 가문 지지자들에게 반대하며 콩고 왕위를 주장했다. 마누엘은 복수를 맹세하고 페드루 3세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소요의 왕자가 배신적으로 협상한 휴전 조약을 내세워 페드루 3세는 킴판주 귀족과의 결혼을 통해 평화를 맺을 것으로 예상하며 함정에 빠졌다. 대신 마누엘은 신부로 변장한 채 소요 결혼 행렬에서 나타나 페드루 3세를 쏘아 죽이고 도주했다. 콩고 역사에서 이 사건은 귀족들이 지속적인 평화를 찾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 중 하나가 되었다.
페드루 3세 암살 이후 마누엘은 콩고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 싸웠고, 결국 상 살바도르 전투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페드루 4세의 부하였던 페드루 콘스탄티뉴 다 실바와 그의 지지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페드루와 마누엘의 군대가 충돌했지만, 결국 페드루가 승리하여 수도를 장악했고, 이는 사실상 콩고의 마니콩고가 되었다. 마누엘은 6년 동안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고 1715년 페드루와 마누엘 사이의 합의가 킨라자 가문과 킴판주 가문 사이의 왕위 교체를 재설정할 때까지 음밤바 로바타에서 경쟁적인 행정을 계속 통치했다.
2.2. 페드루 3세 암살
마누엘은 다니엘 1세의 형제였으며, 그가 상 살바도르 약탈 사건으로 사망했을 때 킴판주의 콩고 왕위 주요 계승자가 되었다. 그는 음밤바 로바타로 후퇴하여 아웨네콩고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콩고 내전 이후 세 개의 주요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나머지 두 국가는 콩고 왕위의 다른 킨라자 계승자들이 차지했다. 1680년, 페드루 3세는 렘바의 경쟁 왕국을 통치했으며, 그는 소요 남부의 루보타 지역에 거주하는 킴판주 가문 지지자들에게 반대하며 콩고 왕위를 주장했다. 마누엘은 복수를 맹세하고 페드루 3세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소요의 왕자가 배신적으로 협상한 휴전 조약을 내세워 페드루 3세는 킴판주 귀족과의 결혼을 통해 평화를 맺을 것으로 예상하며 함정에 빠졌다. 대신 마누엘은 신부로 변장한 채 소요 결혼 행렬에서 나타나 페드루 3세를 쏘아 죽이고 도주했다. 콩고 역사에서 이 사건은 귀족들이 지속적인 평화를 찾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 중 하나였다.
2.3. 페드루 4세와의 갈등
페드루 3세 암살 이후, 마누엘은 콩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페드루 4세의 부하였던 페드루 콘스탄티뉴 다 실바와 동맹을 맺고 상 살바도르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페드루 4세가 승리하여 수도를 장악했고, 사실상 콩고의 마니콩고가 되었다. 마누엘은 이후 6년 동안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음밤바 로바타에서 계속 통치했다.
2.4. 왕위 계승 합의
페드루 4세와 마누엘의 군대가 충돌했지만, 결국 페드루가 승리하여 수도를 장악했고, 사실상 콩고의 마니콩고가 되었다. 마누엘은 6년 동안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고, 1715년 페드루와 마누엘 사이에 킨라자와 킴판주 가문 사이에 왕위를 번갈아 계승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음밤바 로바타에서 계속 통치했다.
3. 콩고의 마니콩고 즉위
1718년 페드루 4세가 사망하자 킨라자와 킴판주 양 가문의 합의에 따라 마누엘이 콩고의 마니콩고 (마누엘 2세)로 즉위하였다.
3.1. 통치 기간 및 이후
페드루가 1718년에 사망하자 양가의 합의가 존중되어 마누엘이 콩고의 마누엘 2세로 즉위하여 왕가를 도시로 옮겼다. 그는 1743년 사망할 때까지 통치했으며, 왕위는 킨라자 가문 출신의 가르시아 4세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