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룬족
1. 개요
마룬족은 '야생', '도망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노예제도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형성한 공동체를 지칭한다. 마룬족은 카리브해, 인도양, 아메리카 대륙 등지에서 발견되었으며, 각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원주민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쿠바, 자메이카, 아이티 등지에서 마룬족이 형성되었으며, 이들은 식민 당국에 저항하며 자치권을 획득하거나 혁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에서는 킬롬보라는 마룬족 정착지가 존재했으며, 기아나 지역에서는 수리남 마룬족이 여러 부족을 형성하여 오늘날까지 그 후손들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블랙 세미놀이 대표적인 마룬족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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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의 민족 -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은 유럽인 도래 이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한 토착민을 통칭하는 용어로, "인디언"이라는 차별적 용어 대신 다양한 고유 명칭과 함께 사용되며, 식민화로 인한 피해 극복과 자기결정권 및 문화 보존을 위한 운동이 진행 중이다. -
남아메리카의 민족 -
브라질인
브라질인은 브라질 출생자, 브라질 시민권을 얻은 외국인, 해외에서 브라질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하며,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되어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공유하고, 로마 가톨릭 신자가 많다. -
아프리카계 사람 -
흑인
흑인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원주민을 지칭하며 노예 무역과 차별을 겪었고, 민권 운동을 통해 개선을 이루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 다양한 정체성을 포괄하는 문화적, 정치적 개념이다. -
아프리카계 사람 -
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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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 -
블루스
블루스는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 흑인들의 노동요에서 기원한 음악 장르로, 슬픔과 우울함을 표현하며 다양한 스타일로 발전하여 여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그 기원과 초기 역사는 불분명하다. -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 -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2. 어원
maroon은 스페인어 형용사 cimarrón이 프랑스어 marron을 거쳐 영어로 들어온 낱말로, 넓게는 '야생', '도망자'를 의미하며, 자원 없이 버려진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같은 철자의 적갈색 의미는 1700년대 후반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며 아마 마룬족의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3. 지리적 분포
마룬족은 아메리카 대륙 각지에서 노예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아프리카인들과 그 후손들이 형성한 공동체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접근하기 어려운 산악 지대나 숲, 습지 등에 정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쿠바에서는 탈출한 노예들이 타이노족과 합류하여 팔렝케라는 요새를 건설했다. 아이티에서는 마룬족 지도자 뒤티 부크만이 아이티 혁명을 이끌었다. 자메이카에서는 제1차 마룬 전쟁 이후 영국과의 평화 협정으로 자치권을 얻은 마룬족이 존재했다. 세인트빈센트섬의 가리푸나족은 흑인 노예와 원주민의 혼혈 민족이다. 온두라스의 미스키토 삼부족은 영국과 협력하여 스페인 영토를 공격하기도 했다.
3.1. 카리브해
쿠바, 아이티(당시 생도맹그), 자메이카, 도미니카,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섬, 온두라스만 등 카리브해 각지에서 탈출한 노예들과 원주민들이 합류하여 마룬족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3.1.1. 쿠바
쿠바에서는 탈출한 노예들이 산속에서 타이노족 난민들과 합류하여 마룬족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들은 고립된 지역에 팔렝케(palenque)라고 불리는 마을 또는 요새를 짓고 모여 살았으며, 특히 쿠바섬 서부에서 번성하였다. 스페인 식민 당국은 이들을 잡기 위해 여러 차례 군사 공격을 감행했는데, 1868년 10년 전쟁으로 쿠바가 독립하면서 탈주 노예들은 자유를 얻었다.
3.1.2. 아이티
아이티(당시 생도맹그)에서도 외딴 산악 지역으로 도망친 노예들이 마룬족이 되어 소규모 농업과 사냥을 하는 긴밀한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프랑스 식민 당국은 반복되는 노예 반란에 직면했으며 1791년 마룬족 지도자 뒤티 부크만(Dutty Boukman)이 프랑스 농장주에 전쟁을 선포하며 아이티 혁명에 참여했다.
3.1.3. 자메이카
자메이카 마룬족은 스페인이 자메이카 섬을 점령하는 동안 노예제에서 탈출하여 내륙의 타이노족과 합류하여 형성한 난민 공동체로, 많은 이들이 1655년 영국의 자메이카 침공을 둘러싼 혼란 중에 자유를 얻었다. 영국은 제1차 마룬 전쟁으로 불리는 무력 충돌 끝에 이들과 평화 협정을 맺고 자치권을 인정했다. 이후 이 마룬족들은 새롭게 탈출한 노예들을 사냥하는 대가로 영국 당국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1795년에는 트릴로니 타운(Trelawny Town)의 마룬족이 영국 당국과 충돌하여 제2차 마룬 전쟁이 일어났고, 마룬족의 항복 이후 영국은 이들을 노바스코샤를 거쳐 시에라리온으로 이주시켰다. 1840년대에 트릴로니 마론족 중 200명 가량이 자메이카로 돌아왔다. 2차 마룬 전쟁 이후 유일하게 자치권을 유지한 마을은 아콤퐁(Accompong)이었다.
3.1.4. 도미니카 연방,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섬
세인트빈센트섬에서 유래한 가리푸나족은 섬 내륙으로 도망친 흑인 노예와 섬의 원주민이 섞여 형성된 민족 집단이다. 도미니카와 세인트루시아에서도 비슷한 마룬족 사회가 형성되어 식민 당국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3.1.5. 온두라스만
상당수의 가리푸나족은 아메리카 본토로 쫓겨나 모스키토 해안이나 벨리즈를 비롯한 온두라스만 지역에 정착했다. 한편 온두라스의 미스키토 삼부족은 포르투갈 선박에서 선상 반란을 일으켜 온두라스-니카라과 해안에서 배를 난파시킨 뒤 내륙으로 도피하여 현지인과 섞인 탈주 노예의 후손들이다. 18세기 초 이들은 모스키토 해안의 주도권을 잡고 영국 당국에 협력하여 스페인 영토에 대한 광범위한 노예 습격을 주도했다.
3.2. 인도양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 마다가스카르와 아시아에서 네덜란드령 모리셔스로 끌려온 노예 수십 명이 탈주하여 수시로 식민 당국을 습격했으며, 1710년 네덜란드가 섬을 버리고 떠날 때 그대로 남겨졌다. 이 모리셔스 마룬족은 섬의 최초 원주민으로 알려져 있으며, 몇 년 뒤 프랑스 동인도 회사가 섬에 도착하였을 때 이들과 충돌했다. 레위니옹에도 여러 마룬족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3.2.1. 모리셔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 마다가스카르와 아시아에서 네덜란드령 모리셔스로 끌려온 노예 수십 명이 탈주하여 수시로 식민 당국을 습격했으며, 1710년 네덜란드가 섬을 버리고 떠날 때 그대로 남겨졌다. 이 모리셔스 마룬족은 섬의 최초 원주민으로 알려져 있으며, 몇 년 뒤 프랑스 동인도 회사가 섬에 도착하였을 때 이들과 충돌했다.
3.2.2. 레위니옹
레위니옹에도 여러 마룬족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3.3. 미국
블랙 세미놀은 13개 식민지에서 탈출하여 세미놀족 인디언과 합류한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스페인 제국 하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플로리다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룬족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1830년대 세미놀족과 함께 인디언 준주로 강제 이주되었다.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 다양한 주에서도 마룬족 공동체의 역사가 발견되며, 이들은 주로 호수 앞이나 습지 등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거주했다.
3.3.1. 플로리다
블랙 세미놀은 13개 식민지에서 탈출하여 세미놀족 인디언과 합류한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스페인 제국 하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플로리다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룬족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1830년대 세미놀족과 함께 인디언 준주로 강제이주되었다.
3.3.2. 기타 지역
블랙 세미놀은 13개 식민지에서 탈출하여 세미놀족 인디언과 합류한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스페인 제국 하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플로리다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룬족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1830년대 세미놀족과 함께 인디언 준주로 강제 이주되었다.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 다양한 주에서 마룬족 공동체의 역사가 발견되며, 이들은 주로 호수 앞이나 습지 등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거주했다.
3.4. 남아메리카
쿠바에서는 탈출한 노예들이 산속에서 타이노족 난민들과 합류하여 마룬족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들은 고립된 지역에 팔렝케(palenque)라고 불리는 마을 또는 요새를 짓고 모여 살았으며, 특히 쿠바섬 서부에서 번성하였다. 스페인 식민 당국은 이들을 잡기 위해 여러 차례 군사 공격을 감행했는데, 1868년 10년 전쟁으로 쿠바가 독립하며 탈주 노예들은 자유를 얻었다.
세인트빈센트섬에서 유래한 가리푸나족은 섬 내륙으로 도망친 흑인 노예와 섬의 원주민이 섞여 형성된 민족집단이다. 도미니카와 세인트루시아에서도 비슷한 마룬족 사회가 형성되어 식민당국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상당수의 가리푸나족은 아메리카 본토로 쫓겨나 모스키토 해안이나 벨리즈를 비롯한 온두라스만 지역에 정착했다. 한편 온두라스의 미스키토 삼부족(Miskito Sambu)은 포르투갈 선박에서 선상 반란을 일으켜 온두라스-니카라과 해안에서 배를 난파시킨 뒤 내륙으로 도피하여 현지인과 섞인 탈주 노예의 후손들이다. 18세기 초 이들은 모스키토 해안의 주도권을 잡고 영국 당국에 협력하여 스페인 영토에 대한 광범위한 노예 습격을 주도했다.
아이티(당시 생도맹그)에서도 외딴 산악 지역으로 도망친 노예들이 마룬족이 되어 소규모 농업과 사냥을 하는 긴밀한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프랑스 식민 당국은 반복되는 노예 반란에 직면했으며, 1791년 마룬족 지도자 더티 부크만이 프랑스 농장주에 전쟁을 선포하며 아이티 혁명에 참여했다.
자메이카 마룬족은 스페인이 자메이카 섬을 점령하는 동안 노예제에서 탈출하여 내륙의 타이노족과 합류하여 형성한 난민 공동체로, 많은 이들이 1655년 영국의 자메이카 침공을 둘러싼 혼란 중에 자유를 얻었다. 영국은 제1차 마룬 전쟁으로 불리는 무력 충돌 끝에 이들과 평화 협정을 맺고 자치권을 인정했다. 이후 이 마룬족들은 새롭게 탈출한 노예들을 사냥하는 대가로 영국 당국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1795년에는 트릴로니 타운(Trelawny Town)의 마룬족이 영국 당국과 충돌하여 제2차 마룬 전쟁이 일어났고, 마룬족의 항복 이후 영국은 이들을 노바스코샤를 거쳐 시에라리온으로 이주시켰다. 1840년대에 트릴로니 마론족 중 200명 가량이 자메이카로 돌아왔다. 2차 마룬 전쟁 이후 유일하게 자치권을 유지한 마을은 아콤퐁(Accompong)이었다.
3.4.1. 브라질
브라질에서는 킬롬보(quilombo)라는 마룬족 정착지들이 존재했으며,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17세기 초 알라고아스 지역에 건국되어 3만 명 이상의 자유민을 거느리고 줌비(Zumbi)라는 왕이 통치하던 팔마레스(Palmares)이다. 이곳에 사는 마룬족 주민들은 킬롬볼라(quilombola)라고 불렸다. 킬롬보는 계속해서 형성되고 파괴되었으나 킬롬볼라들의 후손 중 상당수는 노예 해방 이후에도 역사적인 킬롬보 정착지에 살고 있다. 1988년 브라질 헌법에서 이들의 원주민 지위가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