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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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온두라스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선사 시대부터 다양한 역사를 거쳐왔다. 1502년 유럽인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1524년 스페인에 정복된 후 과테말라 총독령의 일부가 되었다. 1821년 독립 후 멕시코 제1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중앙아메리카 연합주에 속했고, 1838년 독립 공화국이 되었다. 바나나 산업의 발전과 미국의 개입, 엘살바도르와의 '축구 전쟁', 자연재해, 쿠데타 등을 겪었으며, 2021년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온두라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지형은 산악 지대가 많고 기후는 아열대 기후이며, 커피와 바나나 수출에 의존하는 저개발 국가이다. 인구는 메스티소가 다수를 차지하며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가톨릭과 개신교가 주요 종교이다. 온두라스의 문화는 원주민, 스페인, 아프리카, 카리브해 문화가 융합되어 형성되었으며, 축구와 야구가 인기 스포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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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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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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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온두라스 공화국 |
현지 이름 | República de Honduras |
표어 | 자유, 주권, 독립 |
국가 | 온두라스 국가 |
수도 | 테구시갈파 |
최대 도시 | 테구시갈파 |
공용어 | 스페인어 |
민족 | 메스티소 90%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라틴 아메리카인 혼혈) 아메리카 원주민 7% 흑인 2% 백인 1% |
민족 구성 연도 | 2016년 |
종교 연도 | 2020년 |
통화 | 렘피라 |
통화 코드 | HNL |
시간대 | CST |
UTC 오프셋 | −6 |
차량 통행 방향 | 오른쪽 |
국제 전화 코드 | +504 |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 .hn |
별칭 | 온두라스인 카트라초(아) |
정치 | |
정부 형태 | 단일제 대통령제 공화국 |
대통령 | 시오마라 카스트로 |
부통령 | 도리스 구티에레스 레나토 플로렌티노 |
의회 의장 | 루이스 레돈도 |
입법부 | 국민의회 |
역사 | |
독립 |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선언 (1821년 9월 15일) 멕시코 제1제국으로부터 독립 선언 (1823년 7월 1일)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독립 선언 (1838년 11월 5일) |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 1821년 9월 15일 |
멕시코 제1제국으로부터의 독립 | 1823년 7월 1일 |
중앙 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독립 | 1838년 11월 5일 |
면적 | |
총 면적 | 112,492 km² |
면적 순위 | 101위 |
인구 | |
인구 추정치 | 9,571,352 명 |
인구 추정 연도 | 2023년 |
인구 순위 | 95위 |
인구 밀도 | 85 명/km² |
인구 밀도 순위 | 128위 |
경제 | |
구매력 평가 기준 GDP | $750억 3000만 |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순위 | 108위 |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연도 | 2023년 |
1인당 구매력 평가 기준 GDP | $7,162 |
1인당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순위 | 134위 |
명목 GDP | $339억 9200만 |
명목 GDP 순위 | 106위 |
명목 GDP 연도 | 2023년 |
1인당 명목 GDP | $3,245 |
1인당 명목 GDP 순위 | 135위 |
지니 계수 | 52.1 |
지니 계수 연도 | 2018년 |
지니 계수 변화 | 증가 |
기타 정보 | |
인간 개발 지수 | 0.621 |
인간 개발 지수 연도 | 2021년 |
인간 개발 지수 변화 | 감소 |
인간 개발 지수 순위 | 137위 |
비고 | 인구 추정치는 에이즈로 인한 초과 사망의 영향을 명시적으로 고려함. 이는 기대 수명 감소, 유아 사망률 및 사망률 증가, 인구 및 성장률 감소, 연령 및 성별에 따른 인구 분포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 (2007년 7월 기준). |
각주 |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의 일부였음. |
2. 역사
온두라스는 과거 영국령 온두라스(현재의 벨리즈)와 구별하기 위해 '''스페인령 온두라스'''로도 불렸다.[198] 16세기에 스페인에 의해 정복되었고, 1821년에 독립한 이후부터 공화국이 되었다.
콜럼버스 이전 시대, 현대 온두라스는 서쪽의 중앙아메리카와 동쪽의 이스무스-콜롬비아 지역 두 문화권으로 나뉘었다. 극서쪽에서는 마야 문명이 번성했는데, 온두라스 국경 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마야 유적은 코판이었다. 코판은 9세기 말기 고전기에 쇠퇴했다.[12] 코판 외에도 요호아 호의 로스 나란호스, 코마야과 계곡의 야루멜라[13] 등 여러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150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온두라스 해안의 바이아 제도를 방문하여 최초로 유럽인이 온두라스 땅을 밟았다.[15] 1524년에는 질 곤살레스 다빌라(Gil González Dávila)가 정복자(conquistador)로서 온두라스에 입국했고,[19][20] 이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멕시코에서 군대를 이끌고 왔다. 정복에 대한 저항은 렘피라가 이끌었다. 스페인 정복 후 온두라스는 과테말라 왕국에 편입되었고, 은광업이 중요한 요소였다.[21]
온두라스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멕시코 제1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중앙아메리카 연합주에 편입되었다. 1838년 이후 독립 공화국이 되었고, 중앙아메리카 통합을 위한 여러 시도에 참여했지만 실패했다.
1870년대부터 외국 자본이 개입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북부 해안에서의 선박 운송, 특히 바나나를 중심으로, 그 다음에는 철도 건설에 투입되었다. 19세기 후반, 미국계 과일 및 인프라 기업들에게 토지와 면제를 제공하면서 쿠야멜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스탠더드 프루트 컴퍼니 등이 온두라스 북부에 폐쇄 경제를 구축했다. 1904년, 작가 오.헨리는 온두라스를 묘사하기 위해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26]
1941년 온두라스는 연합국에 가입했다.[25] 1969년에는 엘살바도르와 축구 전쟁을 치렀다.[33] 1974년 피피 허리케인이 온두라스 북부 해안을 강타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1979년 온두라스는 민정으로 복귀했다. 1998년 미치 허리케인은 광범위한 파괴를 일으켰다.
2009년에는 쿠데타로 인해 헌법 위기가 발생했다. 2021년,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온두라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52]
2. 1. 콜럼버스 이전 시대
현대 온두라스는 콜럼버스 이전 시대에 중앙아메리카 문화권(서쪽)과 이스무스-콜롬비아 지역(동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렌카족은 내륙 고지대에 거주하며 중앙아메리카 문화권에 속했지만, 톨텍 제국의 전성기처럼 다른 지역과의 연계 정도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198]극서쪽에서는 마야 문명이 수백 년 동안 번성했다. 온두라스 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마야 유적은 코판으로, 비마야 지역이나 마야 지역과 비마야 지역의 경계에 위치했다. 코판은 9세기 말기 고전기의 혼란 속에서 쇠퇴했지만, 이 문명의 마야인들은 초르티족으로 서부 온두라스에 남았다.[12]
코판 외에도 온두라스 전역에서 다양한 문명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나코 계곡의 라 시에라, 요호아 호의 로스 나란호스, 코마야과 계곡의 야루멜라,[13] 라 세이바와 살리트론 비에호[14] (둘 다 현재 카혼 댐 저수지 아래에 있음), 아구안 계곡의 셀린 농장과 쿠야멜, 세로 팔렌케, 트라베시아, 쿠루스테, 티카마야, 데스폴롱칼, 그리고 하부 울루아 강 계곡의 플라야 데 로스 무에르토스 등 많은 유적지를 연구해왔다.
기원전 1600년경 슬라 평원 우르아 강 하구 부근에 있었던 푸에르토 에스콘디도는 국내 최고(最古)급의 정주 유적이다. 전고전기(Preclassic period) 단계에서는 올멕(Olmec) 문명의 영향력이 강했는데, 쿠야멜 동굴(Cueva de Cuyamel)에서는 올멕 양식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1100년부터 기원전 400년경에 기원을 가지는 나코(Naco)는 장거리 교역으로 번영한 도시였다.[162] 나코 계곡 유역의 특산물은 카카오, 케찰(quetzal) 새의 깃털, 구리 광산, 금 등이었다.[163]
기원전 800년경에는 코판(Copán)에서도 유사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전고전기 중기부터 말기에 걸쳐 로스 나란호스(Los Naranjos)와 야르멜라(Yarumela)가 건설되었다. 야르멜라는 30헥타르에 달하는 대규모 제사장 중심지(ceremonial center)로,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었다. 로스 나란호스에서는 높이 19미터에 달하는 피라미드와 해자(堀)와 방벽이 축조되었다.[164]
고전기(Classic period)에 코판에서는 426년에 테오티와칸의 영향을 받은 키니치 야슈 쿠크 모(Kʼinich Yax Kʼukʼ Moʼ)가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코판의 전성기는 12대 “연기 이미슈”(재위 628년 - 695년)와 13대 “18 토끼” 또는 와샤크라훈 우바프 카위르(Wajsaklajun Ubah Kʼawiil, 재위 695년 - 738년) 때였다. 그러나 738년에 13대 왕이 살해되면서 코판은 쇠퇴했다.
15대 왕이 건설한 “신성문자의 계단”(753년 완공)과 16대 왕이 새긴 제단 Q(776년)는 특기할 만하다. 코판이 몰락하면서 위성 도시들이 일시적으로 번영했지만, 고전기 말기까지에는 폐기된다.
2012년, LiDAR 스캐닝은 라 모스키티아에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고밀도 정착지가 "흰 도시"의 전설에 해당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정착지는 서기 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최고조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2. 스페인 정복 시대 (1524-1821)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1502년 그의 마지막 신대륙 항해에서 현재의 트루히요 근처에 상륙하여 온두라스 해안의 바이아 제도를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15] 1502년 7월 30일, 콜럼버스는 그의 형제 바르톨로메오를 보내 섬들을 탐험하게 했고, 바르톨로메오는 유카탄에서 온 마야 무역선을 만났다. 이 배에는 잘 차려입은 마야인들과 귀중한 화물이 실려 있었다.[16][17] 바르톨로메오의 부하들은 화물을 훔치고 배의 선장을 납치하여 통역관으로 삼았는데, 이는 스페인인과 마야인 사이의 최초로 기록된 만남이었다.[18]1524년 3월, 질 곤살레스 다빌라(Gil González Dávila)는 정복자(conquistador)로서 온두라스에 입국한 최초의 스페인인이 되었다.[19][20] 이후 멕시코에서 군대를 이끌고 온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온두라스에 도착했다. 정복은 그 후 20년 동안 이루어졌는데, 처음에는 크리스토발 데 올리드(Cristóbal de Olid)에게, 그 다음에는 프란시스코 데 몬테호(Francisco de Montejo)에게 충성하는 무리들에 의해, 그리고 특히 알바라도를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복자들은 스페인 자원 외에도 멕시코의 무장 세력, 틀라스칼라인(Tlaxcalans)과 멕시카 군대 수천 명을 크게 의지했다.
정복에 대한 저항은 특히 렘피라에 의해 이끌어졌다. 온두라스 북부의 많은 지역, 특히 미스키토 왕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스페인 정복 후, 온두라스는 과테말라 왕국 내의 신대륙에 있는 스페인의 광대한 제국에 편입되었다. 트루히요와 그라시아스는 최초의 도시 수도였다. 스페인은 약 3세기 동안 이 지역을 지배했다.
온두라스는 과테말라 왕국의 속주로 편입되었으며, 수도는 처음에는 대서양 연안의 트루히요(Trujillo), 후에 코마야과(Comayagua),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온두라스 중부의 테구시갈파(Tegucigalpa)로 정해졌다.
은광업은 스페인의 온두라스 정복과 식민지 개척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21] 초기에는 광산에서 엔콤미엔다 제도를 통해 현지 주민들이 일했지만, 질병과 저항으로 인해 이러한 방식이 어려워지자 중앙아메리카 다른 지역에서 노예들이 끌려왔다. 16세기 말 현지 노예 매매가 중단되자, 주로 앙골라 출신의 아프리카 노예들이 수입되었다.[22] 1650년 이후로는 온두라스에 노예나 외부 노동자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스페인은 온두라스 남부, 즉 태평양 지역을 비교적 빠르게 정복했지만, 북부, 즉 대서양 지역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특히 푸에르토 카바요스(Puerto Caballos)와 트루히요(Trujillo) 연안에 몇몇 도시를 건설했지만, 동부 지역과 많은 독립적인 원주민 지역을 정복하지 못했다. 북동부의 미스키토 왕국은 특히 정복에 효과적으로 저항했다. 미스키토 왕국은 북유럽 사략선, 해적, 특히 영국령 자메이카(Jamaica)의 지원을 받았는데, 자메이카는 1740년 이후 이 지역 대부분을 보호령으로 삼았다.
2. 3. 독립 이후 (1821-현재)
온두라스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1823년 멕시코 제1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중앙아메리카 연합주의 일부가 되었다.[198] 1838년부터 독립 공화국으로서 정기적인 선거를 실시해 왔다. 1840년대와 1850년대에 온두라스는 중앙아메리카 연방(1842~1845), 과테말라 조약(1842), 쏜소네테 의회(1846), 나카오메 의회(1847), 중앙아메리카 국가대표(1849~1852) 등 중앙아메리카 통일을 위한 여러 시도에 참여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온두라스는 온두라스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채택했지만, 프란시스코 모라산 장군과 같은 중앙아메리카 연방 지지자들의 통합주의적 이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온두라스는 지역 통합 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하나였다.1870년대부터 국제 무역과 투자를 선호하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외국 자본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북부 해안에서의 선박 운송, 특히 열대 과일(바나나 등)을 중심으로, 그 다음에는 철도 건설에 외국 자본이 투입되었다. 1888년 카리브 해 연안에서 수도 테구시갈파까지 계획된 철도는 산페드로술라에 도착했을 때 자금이 부족해졌다. 그 결과 산페드로술라는 국가의 주요 산업 중심지이자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코마야과는 1880년 수도가 테구시갈파로 옮겨지기 전까지 온두라스의 수도였다.
독립 이후, 온두라스에서는 정권 교체를 포함하여 약 300건의 소규모 내란과 내전이 발생했다.[23][24]
19세기 후반, 온두라스는 자국의 북부 지역 개발을 대가로 미국계 과일 및 인프라 기업들에게 토지와 상당한 면제를 제공했다. 그 결과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북부 해안으로 와서 바나나 농장과 수출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다른 사업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1930년까지 쿠야멜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스탠더드 프루트 컴퍼니 등 바나나 수출 기업들은 온두라스 북부에 폐쇄 경제를 구축하고 인프라를 장악하여 자급자족적인 면세 부문을 만들었다. 이는 경제 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미군은 1903년, 1907년, 1911년, 1912년, 1919년, 1924년, 1925년에 온두라스에 상륙했다.[25]
1904년, 작가 오.헨리는 온두라스를 묘사하기 위해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26] 그는 온두라스에서 6개월 동안 거주했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가상의 국가 안추리아에 대한 책인 ''양배추와 왕들''을 출판했다.[27] ''제독''에서 오.헨리는 이 나라를 "작은 해양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언급하며, 당연히 과일이 경제의 전부였다고 썼다.[28][29]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문학 분석가에 따르면, "그의 문구는 열대 농업 국가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떠올리게 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더 날카롭다. 그것은 온두라스와 이웃 국가들의 정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미국의 과일 회사들을 가리킨다."[30][31] 과일 회사들은 중앙아메리카 노동자들을 북쪽으로 끌어들이는 것 외에도, 자메이카와 벨리즈 출신의 영어 사용 카리브해 노동자들의 이민을 장려했다. 이는 아프리카계 후손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대부분 개신교인 인구를 유입시켰지만, 1939년 이민법 개정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떠났다.[32]
온두라스는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격 이후 연합국에 가입했고, 1942년 1월 1일 25개의 다른 정부와 함께 국제연합 선언에 서명했다.
1940년대의 헌법 위기는 1950년대의 개혁으로 이어졌다. 한 개혁은 노동자들에게 조직할 권한을 부여했고, 1954년 총파업은 2개월 이상 북부 지역을 마비시켰지만 개혁으로 이어졌다. 1963년 군사 쿠데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라몬 비예다 모랄레스 대통령을 실각시켰다. 1960년, 모스키토 해안의 북부 지역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니카라과에서 온두라스로 이전되었다.[6]
1969년 온두라스는 엘살바도르와의 마찰을 겪던 도중 1970년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엘살바도르와 맞붙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축구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데, 이 때 온두라스의 상당수 영토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2007년, 온두라스의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온두라스 동부 모스키토 지역의 성장하는 마약 카르텔을 해결하기 위해 미군 특수부대를 이용한 미국의 온두라스 지원에 대해 논의했다. 이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군의 지속적인 존재를 위한 새로운 발판의 시작을 알렸다.[42]
셀라야 대통령 재임 시절, 온두라스는 2008년에 ALBA에 가입했지만,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2010년에 탈퇴했다.[43] 2009년, 대통령에서 의회 의장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쿠데타로 인해 헌법 위기가 발생했다. 미주기구(OAS)는 온두라스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온두라스를 정지시켰다.[44][45]
전 세계 국가들과 미주기구, 유엔[46]은 이 행동을 쿠데타로 공식적으로 만장일치로 규탄하고 사실상의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의회도사서관(Library of Congress)에 자문한 변호사들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쿠데타를 합법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46][47][48] 온두라스 대법원 또한 절차가 합법적이라고 판결했다. 사실상의 정부를 계승한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Comisión de la Verdad y Reconciliación)를 설치했고, 1년 이상의 조사와 논의 끝에 축출이 쿠데타였으며 불법이었다고 결론지었다.[49][50][51]
2021년 11월 28일, 야당 자유와 재건당(Liberty and Refoundation)의 좌파 대통령 후보이자 전 영부인인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대통령 선거에서 53%의 득표율로 승리하여 온두라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고, 12년간 이어진 우익 국민당의 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다.[52] 그녀는 2022년 1월 27일에 취임했다. 그녀의 남편인 마누엘 셀라야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같은 직책을 역임했다.[53]
2022년 4월, 2014년부터 2022년 1월까지 두 번의 임기를 역임한 전 온두라스 대통령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는 마약 밀매와 자금 세탁 혐의로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에르난데스는 이러한 혐의를 부인했다.[54]
3. 지리
온두라스는 서쪽으로 과테말라, 남서쪽으로 엘살바도르, 남동쪽으로 니카라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태평양의 폰세카 만, 북쪽으로는 온두라스 만과 카리브해에 면한다.
온두라스 영토의 약 80%는 산지이며, 해안을 따라 좁은 평원이 발달해 있다. 북동쪽에는 미개척 정글 라 모스키티아가 있고, 북서쪽에는 인구가 밀집한 산페드로술라 계곡이 있다. 태평양 쪽은 경사가 급하고, 카리브해 쪽은 완만하며 화산은 없다.
라 모스키티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리오 플라타노 생물권 보전지역이 있으며, 온두라스와 니카라과를 가르는 코코강이 흐른다. 북쪽 해안에는 바이아 제도와 스완 제도가 있다.
주요 천연자원으로는 목재, 금, 은, 구리, 납, 아연, 철광석, 안티몬, 석탄, 어류, 새우, 수력 발전 등이 있다.
3. 1. 기후
기후는 저지대의 열대 기후에서 산악지대의 온대 기후까지 다양하다. 태평양 연안은 일반적으로 카리브해 연안보다 건조하다.기본적으로 열대 지역이며, 남쪽에는 태평양을 따라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악 지대가, 북쪽 카리브해 쪽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남쪽 산악 지대에서는 연간 우기(6월부터 11월까지)와 건기(12월부터 5월까지)가 있으며,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낮아진다. 카리브해 쪽 평야 지대에서는 1년 내내 비가 많다.[183] 국토의 약 80%를 차지하는 산악 지대, 특히 국토 주요부의 해발 1,000미터에서 1,500미터 고원 지역에서는 영원한 봄에 가까운 기후가 된다.
지진 피해는 적지만, 허리케인 피해는 다른 중미·카리브해 국가들과 공통적이다. 예를 들어, 1998년 10월 미치 허리케인이 덮쳐 테구시갈파가 속한 프란시스코 모라산 주에서만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184]
3. 2. 생물 다양성
이 지역은 다양한 동식물 종이 서식하기 때문에 생물다양성 핫스팟으로 간주된다. 온두라스에는 6,000종이 넘는 속씨식물이 서식하며, 그중 630종은 난초이다. 약 250종의 파충류와 양서류, 700종이 넘는 조류, 그리고 110종의 포유류가 서식하는데, 그중 절반은 박쥐이다.[55]라 모스키티아의 북동쪽 지역에는 플라타노 강 생물권 보전 지역이 있다. 이 저지대 열대우림은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곳으로, 198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추가되었다.
온두라스에는 열대우림, 해발 약 3000m에 달하는 운무림, 맹그로브, 사바나 그리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있는 산맥과 메소아메리카 산호초가 있다. 베이 제도에는 큰돌고래, 쥐가오리, 앵무고기, 푸른 탕 무리와 고래상어가 있다.
벌목으로 인한 산림 벌채는 올란초 주에서 급증하고 있다. 농업을 위한 토지 개간은 대부분 개발되지 않은 라 모스키티아 지역에서 만연하여 토지 황폐화와 토양 침식을 야기한다. 온두라스의 2019년 산림 경관 무결성 지수 평균 점수는 172개국 중 126위인 4.48/10이다.[56]
온두라스 최대 담수원인 요호아 호는 광산 활동으로 인한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있다.[57] 일부 강과 개울도 광산으로 인해 오염되었다.[58]
4. 정치
온두라스는 대통령제 대의 민주주의 공화제 국가이다. 온두라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이며, 행정부는 정부에 의해 행사된다. 입법부는 온두라스 국회에 속하며,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59]
온두라스 국회(''Congreso Nacional'')는 128명의 의원(''diputados'')으로 구성되며, 비례 대표제에 의해 4년 임기로 선출된다. 의회 의석은 각 정당이 획득한 득표수에 비례하여 주 단위로 정당 후보에게 배정된다.[59]
1963년 군사 쿠데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라몬 비예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 1981년 로베르토 수아소 코르도바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권위주의적인 군사 정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오랫동안 보수적인 온두라스 국민당(PNH)과 자유주의적인 온두라스 자유당(PLH)이 정당 체제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축출되고 로베르토 미켈레티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2012년 말 AP통신이 보도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경찰의 범죄 연루를 믿고, 45%는 대법원에 대해 "불신"을 표명했으며, 72%는 2012년 11월 예비 선거에서 선거 부정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56%는 2013년 대통령, 의회 및 지방 선거가 부정될 것으로 예상했다.[60]
2017년 온두라스 총선은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과 살바도르 나스랄라 후보 간의 격전으로, 선거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과 논란을 야기했다. 2017년 12월 부분 재검표 후 에르난데스가 승리한 것으로 선포되었고, 2018년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63][64] 2022년 1월 27일,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대통령직을 이양받아 온두라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65]
4. 1. 정부 구조
온두라스는 대통령제 대의 민주주의 공화제의 틀 안에서 통치된다. 온두라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이다. 행정부는 온두라스 정부에 의해 행사되며, 입법부는 온두라스 국회에 속한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로부터 독립적이다.[59]대통령중심제 공화국을 채택하고 있으며, 모든 권한과 실권은 대통령 선거로 이루어져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온두라스 대통령의 임기는 4년 중임제이며 1번 중임은 가능하고 최대 임기는 8년이다.
4. 2. 정치 문화
온두라스는 19세기 초 독립 이후 오랫동안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겪었다. 20세기 초부터 온두라스 자유당과 온두라스 국민당의 양당 체제가 이어져 왔으며, 군사 정권의 역사도 길다.1907년에는 니카라과의 침공으로 온두라스 전역이 지배되기도 했으나, 미국의 중재로 미구엘 라파엘 다빌라 쿠에야르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1911년 마누엘 보니야의 반란으로 다빌라가 실각하고, 1912년 보니야가 대통령에 복귀했다. 1919년 내전이 발발하자 미국이 바나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내정에 간섭하기도 했다.
1933년 티부르시오 카리아스 안디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7년간 군사 독재를 실시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군사 정권이 이어졌으며, 1957년에는 소모사 왕조 체제의 니카라과와 국경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1963년에는 군사 쿠데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라몬 비예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축출되었고, 1981년까지 권위주의적인 군사 정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1960년대 말에는 엘살바도르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1969년 축구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는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축출되고 로베르토 미켈레티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치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셀라야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추진했으나, 의회와 대법원은 이를 위헌으로 판단하고 대통령과 대립했다. 결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셀라야 대통령은 체포되어 코스타리카로 추방되었고, 미첼레티 국회의장이 잠정 대통령에 취임했다.
2009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가 당선되었으나, 중남미 국가 대부분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셀라야의 대통령 복귀를 요구했다. 2010년 1월 로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셀라야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출국했다.
2013년 선거에서는 국민당의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가 당선되었고, 2017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큰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176] 2022년 1월에는 좌익 자유와 재건당의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온두라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65]
4. 3. 외교 관계
온두라스는 1962년 대한민국과 수교하였다.[199] 이듬해 한국 공관이 설치되었지만 후에 철수하였고, 주 과테말라 한국 공관이 겸직하고 있다.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온두라스는 선수단을 서울로 보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온두라스를 직접 잇는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온두라스를 여행하려는 한국인들은 제3국을 경유해야 한다. 온두라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수교하지 않았다. 현재 테구시갈파에 한국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199]엘살바도르와는 1969년 축구 전쟁으로 갈등을 겪었다.[199] 니카라과와는 2000년과 2001년 초 대서양 연안 국경 분쟁으로 긴장 관계를 유지했으며, 니카라과는 온두라스산 상품에 35%의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66]
미국은 온두라스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36] 온두라스의 한 기지에 소규모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36] 양국은 평화 유지, 마약 단속, 인도주의적 지원, 재난 구호, 의료 및 시민 활동 훈련을 공동으로 수행한다.[36] 2007년, 온두라스의 마누엘 셀라야(Manuel Zelaya)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온두라스 동부 모스키토 지역의 마약 카르텔을 해결하기 위해 미군 특수부대를 이용한 미국의 온두라스 지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42]
2009년 쿠데타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축출되고 코스타리카로 이송되었다.[170] 유엔 총회는 쿠데타를 규탄하고 셀라야의 복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170] 멕시코를 포함한 여러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온두라스와의 외교 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했다가 2010년 7월 멕시코와의 완전한 외교 관계가 다시 수립되었다.[67] 쿠데타 이후 미국은 엇갈린 메시지를 보냈는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쿠데타라고 언급하며 셀라야의 복귀를 지지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지하지 않았다.[68]
셀라야 대통령 재임 시절, 온두라스는 2008년에 볼리바르 연대(ALBA)에 가입했지만,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2010년에 탈퇴했다.[43]
2022년 4월, 2014년부터 2022년 1월까지 두 번의 임기를 역임한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전 온두라스 대통령은 마약 밀매와 자금 세탁 혐의로 미국으로 송환되었다.[54]
과거 온두라스는 중화민국(타이완)을 승인하는 소수 국가 중 하나였으나, 2022년 대통령에 취임한 시오마라 카스트로는 2023년 3월 14일 타이완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교 수립을 추진했다.[177][178] 3월 25일 온두라스는 타이완과의 단교를 발표했고,[179] 26일 베이징에서 온두라스 외무장관과 친강 중화인민공화국 외무장관이 국교 수립 관련 문서에 서명하여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교 수립이 이루어졌다.[179]
4. 4. 군사
온두라스는 육군, 해군, 공군을 보유하고 있다.[73]온두라스군은 병력이 약 1만 2천 명이다. 1995년부터 징병제가 폐지되고 모병제가 도입되었다. 1999년, 온두라스군은 치안 회복을 위해 투입되었다.[73]
2017년, 온두라스는 UN의 핵무기 금지 조약에 서명했다.[73]
4. 5. 행정 구역
온두라스는 18개의 주(departamentos)로 나뉜다. 수도는 프란시스코 모라산 주 중앙 지구에 있는 테구시갈파이다. 각 주는 그 아래에 298개의 시정촌(municipalities)으로 구성된다.1957년에 현재의 18개 주가 확정되었다. 온두라스의 지리학자 노에 비네다 포르테호는 자연 지리적 조건에 인문적 요소를 더하여 18개 주를 6개 지역으로 나누었다.[181]
지역 | 주 | 특징 |
---|---|---|
중동부 | 엘 파라이소, 프란시스코 모라산, 올란초 | 국토 중앙부의 산지와 산간 분지, 수도를 포함한 행정 중심 지역. 식민지 시대에 광산과 목축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농목림업이 성행한다. |
남부 | 촐루테카, 바예 | 중앙 산지 남쪽 기슭에 펼쳐진 평야 지역. 식민지 시대에 광산과 목축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농업산업과 수출용 멜론 생산이 이루어진다. 팬아메리칸 고속도로가 지나고, 태평양 연안의 수출 항구인 산 로렌소를 보유하고 있다. |
중서부 | 코마야과, 인티부카, 라 파스 | 코마야과 평야와 산악 지대. 평야 지역에서 시멘트 공업, 식품 공업이 발달했고, 산악 지역에서는 커피콩, 고원 채소·과일을 생산한다. |
서부 | 코판, 렘피라, 오코테페케 | 전반적으로 산지가 펼쳐져 있다. 옥수수, 커피콩, 담배 생산과 골짜기 평야에서는 목축이 이루어지며, 농업산업이 행해진다. |
북서부 | 코르테스, 산타 바르바라, 요로 | 산지와 하천의 작용에 의해 형성된 충적 평야가 카리브해까지 펼쳐져 있다. 바나나, 감귤류, 사탕수수, 목축 등 다양한 농업이 전개되고 있다. 금속, 화학, 시멘트 공업 등도 발달해 있다. 산 페드로 술라는 공항, 간선 도로, 철도의 교차점이며, 외항인 푸에르토 코르테스는 대서양의 주요 항구이다. |
북동부 | 아틀란티다, 콜론, 그라시아스 아 디오스, 이스라스 데 라 바이아 | 카리브 해안에 우세한 충적 평야와 도서 지역. 인구 밀도가 낮고, 바나나, 야자유 등 플랜테이션 농업이 성행하며, 관광 개발이 진행 중이다. |
2013년에는 고용 및 경제 개발 구역(Zonas de empleo y desarrollo económico, ZEDE)이라는 새로운 행정 구역이 설립되었다. ZEDE는 사법, 경제, 행정 수준에서 자체 정치 시스템을 갖춘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가지며,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5. 경제
온두라스는 가난한 저개발국으로, 커피·바나나가 수출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목재·면화가 이에 버금가는 주요 산출품이다.[93] 광물 자원으로는 금, 은, 납, 아연 등이 채굴된다.[93] 산페드로술라는 온두라스의 주요 상업 중심지이며, 많은 대기업과 회사의 본거지로, "라 카피탈 인더스트리알(La Capital Industrial)"이라고도 불린다.[92]
19세기 후반, 온두라스는 북부 지역 개발을 대가로 미국계 과일 및 인프라 기업(쿠야멜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스탠더드 프루트 컴퍼니)들에게 토지와 상당한 면제를 제공했다. 이들 기업은 북부에 폐쇄 경제를 구축하고 인프라를 장악하여 자급자족적인 면세 부문을 만들었지만, 온두라스 경제 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작가 오 헨리는 온두라스를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묘사했다.[26]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3년 온두라스의 국내총생산(GDP)는 약 185억 달러였다.[180] 온두라스는 니카라과와 함께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이며, 서반구에서도 10위 안에 드는 빈곤 국가이다.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Heavily indebted poor countries영어 (HIPC)”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부는 전력망(ENEE)과 유선 전화 서비스(온두텔(Hondutel))를 운영한다. CAFTA에 따라 2005년 12월 25일 통신 부문이 민간 투자에 개방되었다. 석유 가격은 규제되며, 국회는 기본 상품에 대한 일시적인 가격 규제를 종종 승인한다.
2005년 온두라스는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인 CAFTA에 서명했다. 같은 해 12월, 온두라스의 주요 항구인 푸에르토 코르테스가 미국의 컨테이너 보안 이니셔티브에 포함되었다.[94] 2006년 미국 국토안보부와 미국 에너지부는 안전한 화물 이니셔티브(Secure Freight Initiative, SFI)의 1단계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다음 6개의 해외 항구에 핵 감지 장치 및 기타 장치를 배치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5. 1. 빈곤
19세기 후반, 온두라스는 미국계 과일 및 인프라 기업들에게 토지와 상당한 면제를 제공하며 자국의 북부 지역 개발을 맡겼다. 그 결과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북부 해안으로 와서 바나나 농장과 수출 산업 관련 사업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1930년까지 쿠야멜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스탠더드 프루트 컴퍼니와 같은 바나나 수출 기업들은 온두라스 북부에 폐쇄 경제를 구축하고 인프라를 장악하여 자급자족적인 면세 부문을 만들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온두라스 경제 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25] 1904년, 작가 오 헨리는 온두라스를 묘사하기 위해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26]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문학 분석가에 따르면, "그의 문구는 열대 농업 국가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떠올리게" 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더 날카롭습니다. 그것은 온두라스와 이웃 국가들의 정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미국의 과일 회사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30][31]세계은행은 온두라스를 중하위소득 국가로 분류한다.[75] 2016년 기준, 인구의 66% 이상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75]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빈곤과 극빈 퇴치 추세가 역전되어, 단 3년 만에 빈곤율이 13.2%, 극빈율이 26.3% 증가했다.[85] 또한, 실업률은 2008년 6.8%에서 2012년 14.1%로 증가했다.[85]
온두라스 경제는 소규모 농업과 몇 가지 수출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자연재해는 특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1998년 미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는 특히 빈곤한 농촌 지역에 영향을 미쳐 불평등을 심화시켰고,[78] 농민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면서 식량 안보에 큰 영향을 미쳤다.[78] 미치 허리케인으로 인해 농업 경제 부문은 지난 20년 동안 3분의 1이나 감소했다.[78]
5. 2. 빈곤 감소 전략
온두라스의 빈곤선 이하 생활 인구는 2016년 기준 66% 이상이었다.[75] 세계은행은 온두라스를 중하위소득 국가로 분류하며, 1인당 소득은 약 600달러로 북미 최저 수준이다.[74][75] 2010년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7%로 라틴 아메리카 최고 수준 중 하나였지만,[75] 온두라스는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가장 낮은 개발 수준을 보이고 있다.[76] 2015년 인간개발지수는 0.625로 188개국 중 130위를 기록했다.[77]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빈곤 및 극빈 퇴치 추세가 역전되어, 3년 만에 빈곤율은 13.2%, 극빈율은 26.3% 증가했다.[85] 실업률 또한 2008년 6.8%에서 2012년 14.1%로 증가했다.[85]
소규모 농업과 몇 가지 수출품에 의존하는 온두라스 경제는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1998년 미치 허리케인은 농촌 지역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식량 안보에 큰 영향을 미쳤다.[78] 특히 농업 경제 부문은 지난 20년 동안 3분의 1이나 감소했다.[78]
1970년대 UN이 온두라스를 "식량 우선 국가"로 지정한 이후, 세계식량계획(WFP)은 영양실조와 식량 불안 감소를 위해 노력해 왔다.[81] 온두라스 농민 대다수는 극빈층이며, 현재 온두라스 어린이 4분의 1이 만성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81][82] WFP는 현재 온두라스 정부와 협력하여 2만 1천 개의 학교에 식사를 제공하는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81]
온두라스의 빈곤 감소 전략은 1999년에 시행되었으며, 2015년까지 극빈층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83] 그러나 이 전략은 인프라와 농촌 개발에 대한 집중 부족으로 인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84] 극빈층 비율은 전략 시행 2년 후 36.2%로 감소했지만, 2012년에는 66.5%로 증가했다.[85]
빈곤 감소 전략은 교육 및 보건 부문에 대한 투자 증가를 통해 사회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했다.[86] 가족 지원 프로그램은 조건부 현금 이전을 통해 극빈층의 건강과 교육을 위한 현금 이전의 효과를 높이려 했다.[86]
국제 금융 기구의 지원에 대한 비판가들은 세계은행의 빈곤 감소 전략이 온두라스 정책에 실질적인 변화를 거의 가져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86]
5. 3. 경제 불평등
온두라스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다른 어떤 라틴 아메리카 국가보다 높다.[85]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온두라스의 불평등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83]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불평등이 감소했지만 2010년에 다시 증가했다.[85]온두라스의 인간개발지수를 불평등을 고려하여 조정하면(IHDI) 0.443으로 감소한다.[77] 2015년 출생 시 기대 수명의 불평등은 19.6%, 교육의 불평등은 24.4%, 소득의 불평등은 41.5%였다.[77] 불평등으로 인한 인간 개발의 전반적인 손실은 29.2%였다.[77]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전반의 IHDI는 0.575이며, 전반적인 손실은 23.4%이다.[77] 2015년 전체 지역의 경우, 출생 시 기대 수명의 불평등은 22.9%, 교육의 불평등은 14.0%, 소득의 불평등은 34.9%였다.[77] 온두라스는 (불평등 조정 전후) 다른 지역 국가들보다 더 높은 기대 수명을 가지고 있지만, 교육의 질과 경제적 생활 수준은 더 낮다.[77] 소득 불평등과 교육 불평등은 국가의 전반적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77]
자원 분배와 관련하여 농촌 지역과 도시 지역 간에도 불평등이 존재한다.[87] 빈곤은 농촌과 원주민들이 사는 남부, 동부, 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온두라스의 북부와 중부에는 국가의 산업과 인프라가 있어 빈곤 수준이 낮다.[74] 빈곤은 농촌 온두라스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나타나는 패턴이다.[88] 농촌 지역 사회에 대한 빈곤의 영향은 광범위하다. 빈곤한 지역 사회는 일반적으로 벽돌집에 살고, 물질적 자원이 부족하며, 의료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며, 쌀, 옥수수, 콩과 같은 기본 식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89]


하층민은 주로 농촌 자영농과 무토지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다.[90] 1965년 이후 온두라스의 무토지 농민 수가 증가하여 도시 빈민 계층이 증가했다.[90] 이들은 종종 서비스업, 제조업 또는 건설업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 중심부로 이주한다.[90] 인구통계학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개혁 없이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가 증가하여 도시 중심부가 확장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층민 내에서 불완전 고용은 주요 문제이다.[90] 불완전 고용자들은 종종 계절 농장에서 파트타임 노동자로만 일하기 때문에 연간 소득이 낮게 유지된다.[90] 1980년대에 온두라스 농민 연맹, 온두라스 농민 협회, 온두라스 농민 연합과 같은 농민 단체와 노동 조합이 결성되었다.[90]
농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는 종종 안정적이거나 유망한 경력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91] 온두라스 군의 고위 관리 대부분은 엘리트 육군 사관학교에서 모집된다.[91] 또한, 군 입대의 대부분은 강제적이다.[91] 강제 모병은 주로 온두라스 정부, 군대, 상류층 온두라스 사회 간의 동맹에 의존한다.[91] 도시 지역에서는 남학생들이 종종 중등학교에서 찾아지는 반면, 농촌 지역에서는 도로 차단이 군대가 지원자를 직접 선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91]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는 개인이 징집을 더 쉽게 피할 수 있도록 한다.[91]
온두라스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낮은 회원 수와 소득 수준으로 정의되는 소규모 집단이다.[90] 하층에서 중산층으로의 이동은 일반적으로 고등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90] 전문직, 학생, 농민, 상인, 기업 직원, 공무원은 모두 온두라스 중산층의 일부로 간주된다.[90] 고용 기회와 산업 및 상업 부문은 성장이 느려 중산층 회원 수가 제한적이다.[90]
온두라스 상류층은 나머지 온두라스 인구보다 훨씬 높은 소득 수준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한 소득 불평등을 반영한다.[90] 상류층의 많은 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목화와 가축 수출의 성장에 성공을 돌린다.[90] 부유층은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정치적, 경제적 견해가 다르다.[90]
5. 4. 무역
이 나라는 가난한 저개발국으로, 커피·바나나가 수출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목재·면화가 이에 버금가는 산출품이다.[93] 금, 은, 납, 아연이 채굴된다.[93] 통화는 온두라스 렘피라(Honduran lempira)이다.19세기 후반, 온두라스는 미국계 과일 및 인프라 기업들에게 토지와 상당한 면제를 제공하여 북부 지역을 개발했다. 그 결과 쿠야멜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스탠더드 프루트 컴퍼니 등 바나나 수출 기업들은 온두라스 북부에 폐쇄 경제를 구축하고 인프라를 장악했다. 이들은 자급자족적인 면세 부문을 만들어 경제 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1904년, 작가 오.헨리는 온두라스를 묘사하기 위해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26]
정부는 전력망(에네르히아 나시오날 데 에네르히아 엘레트리카(Empresa Nacional de Energía Eléctrica, ENEE))과 유선 전화 서비스(온두텔(Hondutel))를 운영한다. CAFTA에 따라 2005년 12월 25일 통신 부문이 민간 투자에 개방되었다. 석유 가격은 규제되며, 국회는 기본 상품에 대한 일시적인 가격 규제를 종종 승인한다.
2005년 온두라스는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인 CAFTA에 서명했다. 2005년 12월 온두라스의 주요 항구인 푸에르토 코르테스(Puerto Cortés)가 미국의 컨테이너 보안 이니셔티브(Container Security Initiative)에 포함되었다.[94]
2006년 미국 국토안보부(U.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와 에너지부는 안전한 화물 이니셔티브(Secure Freight Initiative, SFI)의 1단계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다음 6개의 해외 항구에 핵 감지 장치 및 기타 장치를 배치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 파키스탄의 카심 항(Port Qasim)
- 온두라스의 푸에르토 코르테스(Puerto Cortés)
- 영국의 사우샘프턴(Southampton)
- 오만(Oman)의 살랄라 항(Port of Salalah)
- 싱가포르 항(Port of Singapore)
- 한국의 부산항 감만부두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3년 온두라스의 국내총생산(GDP)는 약 185억 달러였다.[180] 온두라스는 역사적으로 니카라과와 함께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이며, 서반구에서도 10위 안에 드는 빈곤 국가이다.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Heavily indebted poor countries영어 (HIPC)”으로 지정되어 있다.
5. 5. 에너지
온두라스 전력 부문의 약 절반은 민간 소유이다. 나머지 발전 용량은 ENEE(국영 전력 회사)가 운영한다.이 부문의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 재정적으로 건전한 공익 사업체 또는 외부 기증자의 양허 자금 없이 발전 및 송전에 대한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것.
- 사회적 혼란 없이 요금을 재조정하고 체납을 줄이며 전기 절도를 포함한 손실을 감소시키는 것.
- 두 개의 대형 신규 댐과 관련 수력 발전소 건설과 관련하여 환경적 우려와 정부 목표를 조정하는 것.
- 농촌 지역의 전력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
5. 6. 교통
온두라스의 교통 인프라는 철도 699km, 도로 13603km, 항구 6개[98], 공항 112개(포장 12개, 비포장 100개)[59]로 구성되어 있다. 교통 부문 정책은 공공토목교통주택부(스페인어: SOPRTRAVI)가 담당하고 있다.
6. 인구 통계
온두라스는 2023년 기준 약 10,593,798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99] 2010년 기준으로 15세 미만 인구는 36.8%, 15~65세는 58.9%, 65세 이상은 4.3%를 차지했다.[99]
1975년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민이 가속화되면서, 많은 온두라스인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2012년 미국 국무부 추산에 따르면 80만~100만 명의 온두라스인이 미국에 거주하며, 이는 온두라스 전체 인구의 약 15%에 해당한다.[36] 많은 온두라스인들이 비자 없이 미국에 거주하여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2010년 미국 인구 조사에서는 617,392명이 온두라스인으로 신고되었다.[100]
온두라스 주민은 메스티소가 90%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아메리카 원주민 7%, 흑인 2%, 백인 1%로 구성되어 있다.[88]
공용어는 스페인어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미스키토어 등 여러 토착 언어가 사용되며, 북부 해안과 카리브해 섬 지역에서는 영어도 사용된다.
주요 종교는 가톨릭 (46%)과 개신교 (39%)이며,[101] 온두라스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6. 1. 인종 및 민족
온두라스 주민의 인종 구성은 메스티소가 90%로 대부분이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7%, 흑인이 2%, 백인이 1%이다.[88]1930년 온두라스 인구 조사에서는 백인, 인디언, 흑인, 황인, 메스티소의 다섯 가지 분류가 사용되었으며, 1935년과 1940년 인구 조사에도 이 시스템이 사용되었다.[102] 여기서 메스티소는 백인, 아메리카 원주민, 흑인, 황인 범주에 명확하게 속하지 않거나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인 사람들을 지칭한다.[102]
과거에는 코판 유적을 건설한 마야계 민족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7개의 공인된 민족 집단으로 분화되어 있다. 특히 카리브해 해안에는 미스키토족, 렌카족, 흑인의 영향을 받은 가리푸나족 등의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온두라스의 미스키토족은 이웃 나라 니카라과의 미스키토족과 연속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아프리카계 온두라스인은 주로 카리브 해안 저지대에 거주하며, 대부분은 서인도 제도에서 식민지 시대에 유입된 노예의 후손이다. 19세기에는 철도 건설과 농장 노동력 확보를 위해 자메이카 출신 흑인 노동자들의 이주도 진행되었다.
팔레스타인인, 아랍인, 중국인, 베트남인, 일본인 등의 이주민도 있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많은 온두라스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이주하면서, 멕시코, 니카라과, 스페인, 캐나다, 특히 미국에 사는 친척을 둔 온두라스인들이 많다.
6. 2. 성별
온두라스 사회는 성 불평등이 존재하며, 이는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5년 온두라스의 성별개발지수(GDI)는 0.942로, 여성의 HDI는 0.600, 남성의 HDI는 0.637이었다.[77] 남녀 간 기대수명과 교육 연수는 큰 차이가 없지만, 1인당 GNI는 남성이 6254USD, 여성이 2680USD로 큰 격차를 보인다.[77]성불평등지수(GII)는 2015년 기준 0.461로, 159개국 중 101위를 차지했다.[77] 온두라스 의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5.8%이며, 중등 교육 이상을 받은 여성은 33.4%로 남성(31.1%)보다 높다.[77] 그러나 노동 시장 참여율은 남성이 84.4%, 여성이 47.2%로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인다.[77]
가족주의와 마키시모 문화는 온두라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며,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시스템이 유지되어 왔다.[106][107] 그러나 최근 페미니스트 운동과 세계 매체 접근성 증가로 이러한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도전이 커지고 있다.[107] 여성들의 교육 수준, 노동 시장 참여, 도시 이주, 만혼, 피임기구 사용이 증가하면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107]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심각한 문제로, 많은 여성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108] 갱들은 종종 성폭력을 사용하며, 여성 살해 또한 만연하다.[108] 2014년 성폭력 및 여성 살해 범죄의 처벌 불가능성은 95%에 달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온두라스는 팬 아메리카 보건기구(PAHO)의 노력으로 가정 폭력을 공중 보건 문제이자 처벌 대상 범죄로 인정했다.[105]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관련 규정은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110]
'시스테마 데 아프렌디사헤 투토리알'(SAT) 교육 프로그램은 성평등 교육을 통해 성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111] 이 프로그램은 성을 교육 과정에 통합하고, 성찰과 토론을 장려하여 성 의식과 성평등에 대한 열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111]
6. 3. 언어
스페인어는 거의 모든 온두라스인이 사용하는 공식 국가 언어이다. 스페인어 외에도 소수의 여러 토착 언어가 일부 지역 사회에서 사용된다. 온두라스 수어와 베이 아일랜드 크리올 영어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112]주요 토착 언어는 다음과 같다.
언어 | 어족 | 사용자 수 (온두라스 내) |
---|---|---|
가리푸나어 | 아라와크어족 | 약 10만 명 |
미스키토어 | 미수말판어족 | 2만 9천 명 |
마양나어 | 미수말판어족 | 1,000명 미만 |
페치/파야어 | 치브차어족 | 1,000명 미만 |
톨어 | 히카케어족 | 500명 미만 |
초르티어 | 마야어족 | 50명 미만 |
렌카어는 고립어로 20세기에 유창한 원어민 화자를 모두 잃었지만, 현재 약 10만 명의 민족 인구 구성원들 사이에서 부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많은 이민자 언어는 아랍어(4만 2천 명), 아르메니아어(1,300명), 터키어(900명), 월어(1,000명)이다.[112]
카리브해 연안의 흑인과 원주민들에 의해 영어, 미스키토어, 가리푸나어 등도 사용된다. 민족 언어 사용 인구는 대략 이슬레이뇨스(영어 사용) 2만 2천 명, 미스키토어 3만 2천 명, 가리푸나어 2만 명, 페치어/파야인 1,500명, 타와카어/스모 875명, 톨어/톨판(히카케) 350명이며, 렌카어와 콜티어는 스페인어 사용자에 포함된다. 스페인어와 원주민 언어 사용자 수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남성이 많고, 젊은 세대에게 많다. 또한, 2개 언어 교육이 이루어지는 지역이 증가하고 있다.[186]
6. 4. 주요 도시
테구시갈파(수도), 산페드로술라는 온두라스의 주요 도시이다.순위 | 도시 | 주 | 인구 (2013년 기준)[113] |
---|---|---|---|
1 | 테구시갈파 | 프란시스코 모라산 | 996,658 |
2 | 산페드로술라 | 코르테스 | 598,519 |
3 | 라세이바 | 아틀란티다 | 176,212 |
4 | 콜로마 | 코르테스 | 163,818 |
5 | 엘프로그레소 | 요로 | 114,934 |
6 | 코마야과 | 코마야과 | 92,883 |
7 | 촐루테카 | 촐루테카 | 86,179 |
8 | 단리 | 엘파라이소 | 64,976 |
9 | 라리마 | 코르테스 | 62,903 |
10 | 비야누에바 | 코르테스 | 62,711 |
6. 5. 종교
대부분의 온두라스 국민은 명목상 가톨릭 신자이지만(주요 종교로 간주됨), 가톨릭 신자 수는 감소하고 개신교 신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114][115] 2008년 국제 종교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CID 갤럽 여론조사 결과 인구의 51.4%가 가톨릭 신자, 36.2%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 1.3%는 이슬람교도, 불교도, 유대교도, 라스타파리안 등 기타 종교에 속한다고 밝혔으며, 11.1%는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거나 응답하지 않았다. 8%는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라고 응답했다.[101] 관습적인 가톨릭 교회 집계 및 회원 추산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는 81%이며, 사제(185개 이상의 본당)는 매년 본당의 사목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사람들은 종종 "본교"를 포기하지 않고 다른 교회에도 참석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복음주의 대형 교회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 곳 이상의 교회에 참석한다.[117] 이러한 변화와 유동성은 브라질에서도 흔한데, 복음주의 신앙으로 자란 사람들의 5분의 2는 더 이상 복음주의 신자가 아니며, 가톨릭 신자들도 종종 가톨릭 신자로 남아 있으면서 다양한 교회를 드나드는 것으로 보인다.[118]
온두라스에는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루터교, 몰몬교(몰몬교) 및 오순절교회가 번창하고 있다. 개신교 신학교도 있다. 여전히 유일하게 인정받는 "교회"인 가톨릭 교회는 운영하는 수많은 학교, 병원 및 사목 기관(자체 의과대학 포함)에서도 번영하고 있다. 대주교인 오스카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 추기경은 정부, 다른 교회, 그리고 자신의 교회에서도 매우 인기가 많다.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바하이교, 라스타파리 운동, 그리고 원주민 종파와 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119]
6. 6. 보건
온두라스의 보건 문서 참조.6. 7. 교육
온두라스 인구의 약 83.6%는 읽고 쓸 수 있으며, 2004년 초등 교육 순취학률은 94%였다.[120] 2014년 초등학교 졸업률은 90.7%였다.[121] 온두라스에는 스페인어와 영어의 이중언어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는 물론, 스페인어와 영어, 아랍어 또는 독일어의 삼중언어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와 다수의 대학교가 있다.[122]고등 교육은 온두라스 국립 자치 대학교가 온두라스 주요 도시에 센터를 두고 관할한다. 온두라스 국립자치대학교(1847년)가 주요 고등교육기관이다. 200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문자해독률은 80%이다.[187] 온두라스는 2024년 세계 혁신 지수에서 114위를 차지했다.[123]
6. 8. 범죄
온두라스의 범죄는 매우 심각하며, 범죄자들은 처벌을 거의 받지 않고 활동한다. 온두라스는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산페드로술라와 테구시갈파 같은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다.[124] 이러한 폭력은 온두라스가 주요 마약 밀매 경로 중 하나이고, MS-13과 18번가 갱과 같은 여러 도시 갱단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하루 평균 20건의 살인이 발생하여 살인 폭력이 정점에 달했다.[124] 온두라스 국립 폭력 감시소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온두라스의 살인율은 10만 명당 60건이었으며, 대부분의 살인 사건은 기소되지 않았다.[125] 그러나 2017년에는 10만 명당 42건으로 감소했다.[126]고속도로 강도와 차량 탈취는 흔하며, 범죄자들은 경찰 제복과 장비를 착용하고 도로 차단이나 검문소를 설치하기도 한다. 외국인 납치 보고는 드물지만,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몸값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납치 건수는 더 많을 수 있다.[125]
온두라스의 폭력은 콜롬비아 계획 시행 이후와 멕시코 대통령 펠리페 칼데론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증가했다.[127] 온두라스는 이웃 국가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와 함께 중앙아메리카 북부 삼각지대를 형성하며,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지역 중 하나로 여겨진다.[128] 범죄와 살인율 증가로 인해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했으며, 이 지역의 폭력 증가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로아탄과 만 섬들은 온두라스 본토보다 범죄율이 낮은데, 이는 2014년 정부와 기업이 관광객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125]
인구가 적은 그라시아스아디오스주 지역에서는 마약 밀매가 만연하고 경찰의 존재감은 희박하다. 마약 밀매업자와 다른 범죄 조직이 미국 시민을 위협하기 때문에 미국 대사관은 이 지역을 통한 미국 공무원의 여행을 제한하고 있다.[125]
1990년대까지 온두라스는 중남미 국가들 중 비교적 안전한 국가로 여겨졌으나, 1998년 허리케인 미치 피해와 2009년 군사 쿠데타로 인해 실업자와 빈곤층이 증가하고 마약 조직 범죄가 증가하면서 치안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2012년 인구 10만 명당 살인 발생률은 85.5로 세계 최악 수준이었다.[188] 특히 북서부에 위치한 산페드로술라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오명을 얻었으며, 2012년 통계에서 1,218건의 살인 사건이 보고되어 하루에 3명이 살해되었다.[189][190] 치안은 점차 회복되고 있지만, 2018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41명으로 여전히 분쟁 국가 수준이다.[191]
온두라스 강력 범죄의 중심에는 마라라고 불리는 갱단이 있다. 마라 살바트루차, 18번가 갱 등이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온두라스에서 살인, 강도, 납치를 저지를 뿐만 아니라 조직 간의 총격전으로 인해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원래는 미국에 있던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결성한 갱단이며, 미국 내 범죄를 이유로 미국 정부가 본국으로 강제 추방한 자들이 기원이다. 현재는 세계적인 범죄 조직이 되어 총 3만 명 정도가 갱단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중 1만 명은 미국에 있다.[192][193]
2018년 10월에는 온두라스에서 많은 이민 희망자들이 육로로 미국으로 향하는 캐러밴(중미 이민)이 발생했는데, 참가자들이 이민을 선택한 동기에는 빈곤과 함께 범죄 증가가 있었다.[194] 2020년 9월에도 유사한 캐러밴이 발생하여 3000명 이상이 도보나 히치하이킹으로 미국을 향했다.[195]
7. 문화
온두라스의 문화는 레카 원주민, 스페인, 카리브, 아프리카 문화가 융합된 특징을 보인다. 가리푸나족의 문화도 존재한다.
온두라스 국기는 세 개의 가로 줄무늬로 되어 있으며, 위아래 파란색 줄무늬는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가운데 흰색 줄무늬는 중앙아메리카 연합 5개 주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파란색 별을 포함한다. 가운데 별은 중앙아메리카 연합 중심에 위치한 온두라스를 의미한다.[131]
온두라스 국장은 1945년에 제정되었으며, 정삼각형 안에 세 개의 성 사이에 화산이 있고, 그 위에 무지개와 빛나는 태양이 있는 형태이다. 삼각형은 두 바다에 둘러싸인 지역을 상징하며, 금색 글씨로 "자유롭고, 주권적이며, 독립적인 온두라스 공화국"이라고 쓰여 있다.[131]
온두라스 국가는 1914년 마누엘 보닐라 대통령 재임 중 공모전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아우구스토 코엘료가 작사하고 독일 태생 온두라스 작곡가 카를로스 하틀링이 작곡했다. 1915년 11월 15일 알베르토 멤브레뇨 대통령 재임 중 공식 채택되었다.[131]
국화는 1969년 장미를 대체한 난초 ''Rhyncholaelia digbyana''이다. 오스왈도 로페스 아레야노 장군 정부는 ''Rhyncholaelia digbyana''가 "온두라스 토종 식물로 아름다움, 활력, 독창성이라는 뛰어난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국화를 변경했다.[131]
온두라스의 국목은 1928년 "우리 국장에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소나무"로 선포되었다.[131] 법적으로 어떤 종류의 소나무인지 명시되지 않았지만, 온두라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inus oocarpa''가 일반적으로 국목으로 여겨지며, ''Pinus caribaea''도 연관된다.
국가 포유류는 흰꼬리사슴(''Odocoileus virginianus'')이며, 과도한 남획을 막기 위해 지정되었다. 온두라스에 서식하는 두 종류의 사슴 중 하나이다. 국조는 검붉은아라(''Ara macao'')이며, 콜럼버스 이전 문명에서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다.
온두라스 문화에서 전설과 전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물고기 비(Lluvia de Peces)가 그 예시이며, 엘 카데호(El Cadejo)와 라요로나(La Llorona) 전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7. 1. 예술
온두라스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는 호세 안토니오 벨라스케스이다. 다른 중요한 화가로는 카를로스 가라이와 로케 셀라야가 있다. 온두라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로는 루실라 가메로 데 메디나, 프로일란 투르시오스, 라몬 아마야 아마도르, 후안 파블로 수아소 우세다, 마르코 안토니오 로사,[129] 로베르토 소사, 에두아르도 바르, 아만다 카스트로, 하비에르 아브릴 에스피노사, 테오필로 트레호, 로베르토 케사다 등이 있다.산페드로술라의 호세 프란시스코 사이베 극장은 시르쿨로 테아트랄 삼페드라노(산페드로술라 극장 서클)의 본거지이다.
온두라스는 지난 20년 동안 영화 산업의 붐을 경험했다. 2001년 영화 "아니타 라 카사도라 데 인섹토스"가 개봉된 이후 온두라스 영화 제작 수준이 높아졌으며, 멕시코, 콜롬비아, 미국과 같은 국가들과의 협업이 많아졌다. 가장 잘 알려진 온두라스 영화로는 "엘 젠드라", "아모르 이 프리홀레스", "카페 콘 아로마 아 미 티에라"가 있다.

7. 2. 요리
온두라스 요리는 레카(Lenca) 원주민 요리, 스페인 요리, 카리브 요리, 아프리카 요리가 융합된 요리이다. 가리푸나(Garifuna) 사람들의 요리도 있다. 코코넛과 코코넛 밀크는 단맛과 짠맛이 나는 요리 모두에 사용된다. 지역 특선 요리로는 튀긴 생선, 타말레(tamale), 카르네 아사다(carne asada), 발레아다(baleada)가 있다.다른 인기 있는 요리로는 치스몰(chismol)과 카르네 아사다(carne asada)로 구운 고기, 닭고기와 밥, 옥수수, 절인 양파와 할라피뇨(jalapeños)를 곁들인 튀긴 생선이 있다. 해안 지역과 베이 아일랜드(Bay Islands)에서는 해산물과 일부 고기를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여 조리한다.
온두라스 사람들이 즐기는 수프에는 콩 수프, 몬돈고 수프(내장 수프), 해산물 수프, 소고기 수프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수프는 플랜테인(plantain), 유카(cassava), 양배추와 함께 제공되며, 옥수수 토르티야(tortilla)와 함께 먹는다.
다른 전형적인 요리로는 몬투카(montucas) 또는 옥수수 타말레(tamale), 속을 채운 토르티야, 플랜테인(plantain) 잎에 싼 타말레가 있다. 온두라스 전통 요리에는 파파야(papaya), 파인애플(pineapple), 자두(plum), 사포테(sapote), 패션프루트(passion fruit), 바나나 등 다양한 열대 과일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덜 익은 상태로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된다.
7. 3. 매체
온두라스 가구의 절반 이상은 적어도 한 대의 텔레비전을 보유하고 있다. 공영 방송은 다른 대부분의 국가보다 훨씬 작은 역할을 한다. 온두라스의 주요 신문은 라 프렌사, 엘 에랄도, 라 트리부나 및 디아리오 띠엠포이다. 공식 신문은 La Gaceta|라 가세타es이다.[1]7. 4. 음악
푼타는 온두라스의 주요 음악이며, 카리브해의 살사, 메렝게, 레게, 레게톤과 같은 다른 음악들도 특히 북부 지역에서 널리 들린다. 멕시코의 란체라는 온두라스의 시골 지역에서 들을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음악가는 기예르모 안데르손과 폴라체이다. 반다 블랑카는 온두라스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음악 그룹이다.[1]카리브해 연안에는 가리푸나족의 공동체가 있으며, 그들의 음악은 탐보르(스페인어로 북)와 마림바를 많이 사용한다. 저명한 음악가로는 기예르모 안데르손이 있다.[4]
7. 5. 축제

온두라스의 주요 공휴일에는 9월 15일 온두라스 독립 기념일과 9월 10일에 가정, 학교, 교회에서 기념하는 어린이날(Día del Niño)이 있다. 어린이날에는 크리스마스나 생일 축하처럼 어린이들이 선물을 받고 파티를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거리에서 피냐타를 볼 수 있다. 다른 공휴일로는 부활절, 성목요일, 성금요일, 군인의 날(프란시스코 모라산의 탄생을 기념하는 10월 3일), 크리스마스, 7월 20일 렘피라의 날([130]), 그리고 섣달 그믐날이 있다.
온두라스 독립 기념일 축제는 아침 일찍 행진 밴드의 연주로 시작된다. 각 밴드는 다른 색상의 의상을 입고 치어리더가 함께한다. 같은 날 피에스타 카트라차(Fiesta Catracha)가 열리는데, 콩, 타말레, 발레아다스, 카사바와 치차론, 토르티야와 같은 전형적인 온두라스 음식이 제공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자정에 선물을 나눈다. 일부 도시에서는 자정에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섣달 그믐날에는 음식과 "코에테스"(cohetes, 불꽃놀이) 그리고 축제가 있다. 생일 또한 중요한 행사이며, 아이들을 위한 사탕과 선물이 가득한 피냐타가 포함된다.
라 세이바 카니발은 북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 라 세이바에서 5월 하순에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이시도르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일주일간의 축제를 위해 모인다. 매일 밤 이웃마다 작은 카니발(카르나발리토, carnavalito)이 열린다. 토요일에는 많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플로트와 전시가 포함된 대규모 퍼레이드가 있다. 이 축제는 많은 온두라스 사람들이 농산물과 동물을 선보이는 낙농 박람회와 함께 열린다.
날짜 | 한국어 표기 | 현지어 표기 | 비고 |
---|---|---|---|
1월 1일 | 설날 | Año nuevo | |
3월 19일 | 아버지의 날 | Día del Padre | |
5월 1일 | 메이데이 | Día de los trabajadores | |
5월 둘째 일요일 | 어머니의 날 | Día de la Madre | |
9월 10일 | 어린이날 | Dia del Niño | |
9월 15일 | 독립기념일 | Día de la Independencia | 중앙아메리카 독립기념일 |
9월 17일 | 스승의 날 | Día del Maestro | |
10월 3일 | 프란시스코 모라산 장군 탄생 기념일 | Nacimiento del General Francisco Morazán | 군인의 축일이기도 함 |
10월 12일 | 민족의 날 | Día de las Américas | |
12월 24일 | 크리스마스 | Día de la familia |
7. 6. 민속 신앙
온두라스 문화에서 전설과 전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고기 비가 그 예시이다. 엘 카데호와 라요로나 전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7. 7. 국가 상징
온두라스 국기는 세 개의 가로 줄무늬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아래의 파란색 줄무늬는 각각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나타낸다. 가운데 흰색 줄무늬에는 중앙아메리카 연합의 5개 주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파란색 별이 있으며, 가운데 별은 중앙아메리카 연합의 중심에 위치한 온두라스를 의미한다.[131]온두라스 국장은 1945년에 제정되었으며, 정삼각형 모양이다. 밑면에는 세 개의 성 사이에 화산이 있고, 그 위에는 무지개와 빛나는 태양이 있다. 삼각형은 두 바다에 둘러싸인 지역을 상징하며, 금색 글씨로 "자유롭고, 주권적이며, 독립적인 온두라스 공화국"이라고 쓰여 있다.[131]
온두라스 국가는 마누엘 보닐라 대통령 재임 중인 1914년 공모전을 통해 만들어졌다. 시인 아우구스토 코엘료가 작사하고, 독일 태생 온두라스 작곡가 카를로스 하틀링이 작곡했다. 알베르토 멤브레뇨 대통령 재임 중인 1915년 11월 15일에 공식 채택되었다.[131]
국화는 1969년에 장미를 대체한 난초의 일종인 ''Rhyncholaelia digbyana''이다. 오스왈도 로페스 아레야노 장군 정부 시절 ''Rhyncholaelia digbyana''가 "온두라스의 토종 식물로 아름다움, 활력, 독창성이라는 뛰어난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변경되었다.[131]
온두라스의 국목은 1928년에 "우리 국장에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소나무"로 선포되었다.[131] 법적으로 어떤 종류의 소나무를 국목으로 해야 하는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온두라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inus oocarpa'' 종이 일반적으로 국목으로 여겨진다. ''Pinus caribaea'' 종도 국목으로 연관된다.
국가 포유류는 흰꼬리사슴(''Odocoileus virginianus'')이며, 과도한 남획을 막기 위해 지정되었다. 온두라스에 서식하는 두 종류의 사슴 중 하나이다.
국조는 검붉은아라(''Ara macao'')이다. 이 새는 온두라스의 콜럼버스 이전 문명에서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다.
공식 명칭은 스페인어로 República de Hondurases이며, 일반적으로 Hondurases(온두라스)라고 부른다. 1862년에 공식 국명으로 결정되었다.[160]
"온두라스"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크리스토발 콜론(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 1502년 이곳에 상륙하려다 닻이 해저에 닿지 않아 "온두라"(hondura, 스페인어로 "깊이", "심해"를 의미)"[161]라고 명명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다.
7. 8. 스포츠


온두라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132] 1921년 중앙아메리카 이웃 국가들이 참가한 독립 100주년 기념 경기에서 온두라스의 첫 국제 대회가 시작되었다.[133] 1964년에는 축구 최상위 리그인 온두라스 프로 축구 리그가 설립되었다.[134] 대륙 수준에서 인정받는 이 리그에서, C.D. 올림피아는 온두라스 클럽 중 유일하게 1972년과 1988년에 CONCACAF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135][136]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북아메리카 최고 국가 중 하나로 여겨지며, 1981년 CONCACAF 골드컵 우승, 2013년 3위를 차지했다.[137][138] 세계적인 규모에서 온두라스는 1982년, 2010년, 2014년 세 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로스 카트라초스(Los Catrachos)"는 아직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139][140][141]
온두라스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야구이다.[142] 1950년 야구 월드컵 (1950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에서 온두라스의 첫 국제 대회가 시작되었다.[143] 1973년 이후 국제 야구 대회가 없어 야구 리그가 부족하다. 온두라스 야구 국가대표팀은 경기 일정이 드물어 북미와 남미 상위 10개국에 들지 못하지만, 청소년 수준에서는 경쟁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144][145] 마우리시오 두본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온두라스 출신으로 처음 데뷔하여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수준에서의 영감을 주고 있다.[146]
온두라스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고 다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해, 다른 모든 스포츠는 부차적인 수준이다.[147] 그러나 온두라스 선수들은 1968년부터 육상에, 1984년부터 수영 종목에 꾸준히 참가해왔다.[148] 유도, 복싱 등 하계 올림픽 격투기 종목에도 가끔 출전했다.[149][150] 온두라스의 성 불평등은 스포츠 업계에도 존재하는데, 온두라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세계 및 대륙 토너먼트에서 아직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소프트볼은 온두라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15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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