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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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리아닌은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했다. 쿨투랄 레오네사, 레알 오비에도, 데포르티보 파베로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특히 레알 오비에도에서 1972-73 시즌 라리가 득점왕인 피치치 트로피를 수상했다. 1973년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한 차례 출전했다.

마리아닌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마리아노 아리아스 차모로
출생일1946년 5월 18일
출생지파베로, 스페인
신장1.75m
포지션공격수 (스트라이커)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데포르티보 파베로
1966–1967아틀레티코 벰비브레
1967–1972쿨투랄 레오네사
1972–1977오비에도
1977–1978쿨투랄 레오네사
1978–1979데포르티보 파베로
출장오비에도: 120경기
득점오비에도: 56골
국가대표 경력
1973스페인
국가대표 출장1경기
국가대표 득점0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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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마리아닌은 레온 도 파베로 출신으로, 인근의 벰비브레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967년에 쿨투랄 레오네사에 입단했다. 쿨투랄 레오네사에서 1971-72 시즌 36골을 기록하며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에 기여했고, 1978년에 다시 돌아와 은퇴했다. 이후 오비에도로 이적하여 1972-73 시즌 트로페오 피치치를 수상했고, 1974-75 시즌에는 20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에 기여했다. 1977년 오비에도를 떠나 데포르티보 파베로에서 잠시 활동 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 쿨투랄 이 데포르티바 레오네사

마리아닌은 레온 도 파베로 출신으로, 인근의 벰비브레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1967년에 쿨투랄 레오네사에 입단했다. 1971-72 시즌, 당시 세군다 디비시온에 속해 있던 쿨투랄 레오네사에서 17골을 기록했고, 4년 후에는 전국 최다 기록인 36골을 넣어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에 일조했다. 이후 1978년에 친정팀 쿨투랄 레오네사에서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레알 오비에도

마리아닌은 레온 도 파베로 출신으로, 인근의 벰비브레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67년 쿨투랄 레오네사에 입단하여 4년 후인 1971-72 시즌에 36골을 기록하며 팀의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에 기여했다. 이후 오비에도로 이적하였고, 1972년 9월 2일 라스 팔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했지만, 라 리가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했다.

2.2.1. 1972-73 시즌

마리아닌은 1972-73 시즌에 페널티 킥 골 없이 19골을 기록하며 트로페오 피치치 (득점왕)를 차지했다. 레알 오비에도는 이 시즌에 리그 12위로 마감했다. 1972년 11월 26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원정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마리아닌은 이시드로 랑가라에 이어 오비에도 선수로는 두 번째로 득점왕에 올랐다. 오비에도에서의 첫 시즌, 개막부터 골을 양산했고, 10라운드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를 제치고 득점 랭킹 1위에 올랐으며, 이후 후속 주자에게 따라잡히지 않고 시즌 19골로 라 리가 득점왕에 올랐다.

2.2.2. 1973-74 시즌

마리아닌은 1973-74 시즌레알 오비에도 소속으로 뛰었으나, 팀은 강등되었다. 하지만, 마리아닌은 이듬해 1974-75 시즌에 20골을 기록하며 오비에도가 1년 만에 라리가로 승격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와 같은 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마리아닌은 이를 거절하고 오비에도에 잔류했다.

2.2.3. 1974-75 시즌

마리아닌은 1973-74 시즌에 1부 리그에서 강등되었지만, 이듬해 1974-75 시즌에는 프로 무대 역대 최고 기록인 20골을 기록하며 소속 구단 레알 오비에도가 1년 만에 승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으나, 마리아닌은 이를 모두 거절하고 오비에도에 잔류했다.

2.2.4. 이후

마리아닌은 1977년 6월, 31세의 나이로 레알 오비에도를 떠나 쿨투랄 레오네사와 데포르티보 파베로에서 도합 2년을 보내고 은퇴했다. 오비에도에서 모든 대회 기록을 도합하여 65골을 기록했다.

2.3. 데포르티보 파베로

1977년 6월, 마리아닌은 31세의 나이로 오비에도를 떠나 쿨투랄 레오네사와 데포르티보 파베로에서 도합 2년을 보내고 은퇴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마리아닌은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1번 출전했다. 1973년 10월 17일 터키와의 친선경기에 후반 교체 선수로 투입되었으며,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오비에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스페인 대표팀에 데뷔했지만, 이후 더 이상의 출전 기회는 얻지 못했다.

4.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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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클럽

레온 도 파베로 출신인 마리아닌은 인근의 벰비브레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1967년에 쿨투랄 레오네사에 입단해 4년 후에는 전국 최다 기록인 36골을 넣어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에 일조했다. 이후 오비에도로 이적하였고, 1972년 9월 2일에 1-2로 패한 라스 팔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 리가 신고식을 치러 골도 기록했다.

마리아닌은 1972-73 시즌트로페오 피치치를 수상하였는데, 아스투리아스 연고 구단은 시즌을 12위로 마감했다. 이 시즌에 19번 골망을 갈랐는데, 단 한 골도 페널티 킥으로 넣지 않았고, 이 시즌 최고의 순간은 1972년 11월 26일에 3-3으로 비긴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원정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을 때였다. 마리아닌은 이시드로 랑가라에 이어 득점왕에 오른 두 번째 오비에도 선수가 되었다.

1973-74 시즌에 강등되었으나, 이듬해에 프로 무대 역대 최고인 20골을 기록해 소속 구단이 1년 만에 승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77년 6월, 31세의 나이로 오비에도를 떠나 쿨투랄 레오네사와 데포르티보 파베로에서 도합 2년을 보내고 축구화를 벗었다. 오비에도에서 모든 대회 기록을 도합하여 65골을 기록했다.

4.2. 개인

마리아닌은 레온 도 파베로 출신으로, 인근의 벰비브레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1967년에 쿨투랄 레오네사에 입단해 4년 후에 전국 최다 기록인 36골을 넣어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에 일조했다. 그는 이후 오비에도로 이적하였고, 1972년 9월 2일에 1-2로 패한 라스 팔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 리가 신고식을 치러 골도 기록했다.

마리아닌은 1972-73 시즌트로페오 피치치 주인공이 되었는데, 아스투리아스 연고 구단은 시즌을 12위로 마감했다. 이 시즌에 19번 골망을 갈랐는데, 단 한 골도 페널티 킥으로 넣지 않았고, 이 시즌 최고의 순간은 1972년 11월 26일에 3-3으로 비긴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원정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을 때로, 이시드로 랑가라에 이어 득점왕에 오른 2번째 오비에도 선수가 되었다.

마리아닌은 1973-74 시즌에 강등의 쓴맛을 보았으나, 이듬해에 프로 무대 역대 최고인 20골을 기록해 소속 구단이 1년 만에 승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77년 6월, 그는 31세의 나이로 오비에도를 떠나 쿨투랄 레오네사와 데포르티보 파베로에서 도합 2년을 보내고 축구화를 벗었다. 그는 오비에도에서 모든 대회 기록을 도합하여 65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