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델 솔
1. 개요
루이스 델 솔은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레알 베티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AS 로마를 거쳐 다시 레알 베티스로 복귀하여 은퇴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UEFA 챔피언스컵과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경험했고, 유벤투스에서도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1962년과 196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2021년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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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루이스 델 솔 카스카하레스 |
|---|---|
| 출생일 | 1935년 4월 6일 |
| 출생지 | 아르코스데할론 , 스페인 |
| 사망일 | 2021년 6월 20일 |
| 사망지 | 세비야, 스페인 |
| 키 | 1.72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별칭 | 7개의 폐를 가진 남자 |
| 유소년 클럽 | 알레그리아 산 헤로니모 레티로 산 미겔 안달루시아 베티스 (1951–1953) |
|---|---|
| 클럽 | 베티스 (1953–1959): 152경기 38골 → 우트레라 (임대, 1953–1954) 레알 마드리드 (1960–1962): 55경기 22골 유벤투스 (1962–1970): 228경기 20골 로마 (1970–1972): 50경기 4골 베티스 (1972–1973): 17경기 0골 |
| 총 출장 및 득점 | 502경기 84골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U-21 (1959): 1경기 0골 스페인 B (1957–1959): 3경기 0골 스페인 (1960–1966): 16경기 3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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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클럽 | 카르모나 헤레스 인두스트리알 (1981–1982) 베티스 B (1982–1983) 베티스 (유소년) (1983–1986) 베티스 B (임시, 1986) 베티스 (1986–1987) 레크레아티보 (1990) 베티스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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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 | 유럽 네이션스컵 우승 (1964년 스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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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아주 출신 -
헤수스 힐
헤수스 힐은 건설업으로 시작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회장과 마르베야 시장을 역임했으나, 부실 공사, 인종차별적 발언, 부패 혐의 등으로 논란과 구속을 겪은 스페인의 사업가이자 정치인, 축구 클럽 회장이다. -
소리아주 출신 -
페르민 카초
페르민 카초는 스페인의 육상 선수로, 1500m에서 올림픽 금메달과 은메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은메달, 유럽 선수권 대회 금, 은,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국제적인 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
레크레아티보 우엘바의 축구 감독 -
로케 올센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로케 올센은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 골잡이로 활약했고, 은퇴 후 코르도바 CF 감독을 시작으로 여러 클럽을 지휘하다 UD 라스팔마스 감독을 끝으로 사망했다. -
레크레아티보 우엘바의 축구 감독 -
빅토르 무뇨스
빅토르 무뇨스는 스페인 출신으로 레알 사라고사, FC 바르셀로나 등에서 활약한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며, 선수 시절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였고 은퇴 후 여러 클럽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며 레알 사라고사 감독 시절 코파 델 레이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이끌었다. -
유벤투스 FC의 축구 선수 -
안젤로 디 리비오
안젤로 디 리비오는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유벤투스와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피오렌티나의 강등 후에도 팀에 남아 승격에 기여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
유벤투스 FC의 축구 선수 -
잔루카 비알리
잔루카 비알리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크레모네세, 삼프도리아, 유벤투스, 첼시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에서 우승을 경험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으며 은퇴 후 감독과 해설가로 활동하다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2. 클럽 경력
레알 베티스에서 8년간 활동하며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기여한 후, 1960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여기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푸슈카시 페렌츠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 UEFA 챔피언스컵 5연패,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1962년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세리에 A 역사상 3번째 선수이자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스페인 선수가 되었다. 이후 AS 로마를 거쳐 1972년 친정팀 레알 베티스로 복귀, 1973년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1. 레알 베티스와 레알 마드리드
델 솔은 소리아도 아르코스 데 할론 출신으로, 생후 2달 만에 가족과 함께 안달루시아 주로 이주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베티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로 활약했다. 특히 베티스에서 1957-58 시즌에 라 리가 승격을 이끌었는데, 이 과정에서 1년 반 동안 40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1960년 4월, 델 솔은 6M ptas의 이적료로 머랭 군단의 일원이 되었다. 마드리드에서의 1년차에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인 17골을 넣었는데, 29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같은 해 페냐롤과의 인터콘티넨털컵 경기에도 선발로 출전했다. 그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푸슈카시 페렌츠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 뛰며 UEFA 챔피언스컵 5연패,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2.2. 이탈리아 무대
1962년 여름, 27세의 델 솔은 해외로 건너가 유벤투스와 계약을 맺어 세리에 A 역사상 3번째 선수이자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스페인 선수가 되었다. 1965년에 오마르 시보리가 나폴리로 떠나면서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토리노에서의 8년 동안 292번의 경기(세리에 A 228경기, 코파 이탈리아 26경기, UEFA 유럽대항전 38경기)에 출전하였고, 29골(세리에 A 20골, 코파 이탈리아 6골, UEFA 유럽대항전 3골)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2년 후의 세리에 A 우승을 도왔다.
1970년, 델 솔은 로마로 이적해 이탈리아 수도 연고 구단 소속으로 2년을 보내면서 57번의 경기에 출전해 4골을 넣었으며, 스페인 국적이었던 호아킨 페이로처럼 구단의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델 솔은 유벤투스와 로마 시절을 합해 이탈리아에서 도합 10년을 보냈다.
2.3. 말년
델 솔은 1972-73 시즌에 베티스로 복귀했다. 소속 구단이 강등되자 38세의 델 솔은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구단의 감독을 맡았는데, 베티스의 유소년부를 맡기도 했으며, 2000-01 시즌에 13경기 동안 베티스 1군 지휘봉을 잡아 1부 리그 승격을 이룩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레알 베티스의 임원으로서 클럽 발전에 기여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델 솔은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16번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1960년 5월 15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첫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렀고, 스페인은 3-0으로 승리했다.
1962년과 1966년 두 차례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총 4경기를 뛰었다.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우승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대회 본선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3.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4. 플레이 스타일
델 솔은 완전한 미드필더로, 1960년대 해당 포지션에서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역동적이며, 지능적이고, 기술적인 재능을 갖춘 선수였다. 빠른 속도, 효율성, 끈기, 체력은 물론, 상대 선수를 추적하는 능력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상대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공 없이 움직일 때와 공을 동료에게 넘길 때 아군의 공격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축구 선수로서의 역량 외에도, 그는 강인한 성격, 지도력, 괴팍함, 그리고 경기에 임하는 헌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경기장 전 영역을 담당할 수 있었기에, 레알 마드리드 시절 동료였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델 솔에게 집배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5. 수상 내역
5.1. 클럽
델 솔은 소리아도 아르코스 데 할론 출신으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가족과 함께 안달루시아 주로 이주했다. 그는 베티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로 활약했다. 베티스 소속으로 1957-58 시즌에 라 리가 승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1년 반 동안 40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1960년 4월, 델 솔은 6M ptas의 이적료로 머랭 군단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이 되었다. 마드리드에서의 첫 시즌에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인 17골을 넣었고, 29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같은 해 페냐롤과의 인터콘티넨털컵 경기에도 선발로 출전했다.
1962년 여름, 27세의 델 솔은 유벤투스와 계약하며 해외로 진출, 세리에 A 역사상 3번째 선수이자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스페인 선수가 되었다. 1965년에 오마르 시보리가 나폴리로 떠나면서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델 솔은 토리노에서 8년 동안 292번의 경기(세리에 A 228경기, 코파 이탈리아 26경기, UEFA 유럽대항전 38경기)에 출전, 29골(세리에 A 20골, 코파 이탈리아 6골, UEFA 유럽대항전 3골)을 기록했다.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2년 후의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했다.
1970년, 델 솔은 로마로 이적해 이탈리아 수도 연고 구단 소속으로 2년을 보냈다. 57경기에 출전해 4골을 넣었으며, 스페인 국적의 호아킨 페이로처럼 구단의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델 솔은 유벤투스와 로마 시절을 합쳐 이탈리아에서 총 10년을 보냈다.
1972-73 시즌, 델 솔은 베티스로 복귀했다. 38세의 나이에 1부 리그 강등을 겪은 후 은퇴했다.
5.2. 국가대표팀
델 솔은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16번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그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60년 5월 15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로, 3-0으로 이겼다.
델 솔은 자국을 대표로 1962년과 1966년 두 차례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4경기를 뛰었고,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을 우승한 선수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대회 본선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6. 최후
2021년 6월 20일, 델 솔은 세비야에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