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셸린 버트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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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셸린 버트런드는 미국의 배우이자 프로듀서, 인도주의 활동가였다. 1971년 배우 존 보이트와 결혼하여 제임스 헤이븐과 안젤리나 졸리를 낳았으며, 1970년대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1983년 프로듀서로 전향하여 우즈 로드 프로덕션스를 설립했으며, 2005년 다큐멘터리 '트루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또한 원주민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난소암 연구를 지원하는 등 인도주의 활동을 펼쳤다. 1999년 난소암 진단을 받은 후 투병 생활을 하다 200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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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셸린 버트런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본명 | 마샤 린 버트런드 |
| 출생일 | 1950년 5월 9일 |
| 출생지 | 블루아일랜드, 미국 |
| 사망일 | 2007년 1월 27일 |
| 사망지 | 로스앤젤레스, 미국 |
| 직업 | 배우, 제작자, 인도주의자 |
| 활동 기간 | 1971년–2007년 |
| 사생활 | |
| 배우자 | 존 보이트 (1971년 결혼, 1980년 이혼) |
| 파트너 | 빌 데이 (1978–1980, 1982–1989), 존 트루델 (?–2007) |
| 자녀 | 제임스 헤이븐, 안젤리나 졸리 |
| 민족 | |
| 혈통 | 프랑스계, 이로쿼이족 |
2. 초기 생애
버트런드는 일리노이주 블루 아일랜드에서 로이스 준(구웬스)과 롤랜드 F. 버트런드의 딸로 태어났다.[1] 그녀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네덜란드인, 독일계 혈통이었으며, 여동생 데비와 남동생 랠리가 있었다.[6] 1965년, 버트런드의 가족은 시카고 지역에서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비벌리힐스 고등학교에 다녔다.[7][2]
버트런드는 리 스트라스버그에게서 연기를 배웠다.[15] 1971년, 텔레비전 쇼 ''아이언사이드'' 시즌 4 에피소드 "사랑, 평화, 형제애, 그리고 살인"에서 코니 역을 연기했다. 10년 후, 1982년 영화 ''떠나기 좋은 때''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전 남편인 존 보이트가 공동 집필하고 출연했다. 이듬해 버트런드는 1983년 코미디 영화 ''여자를 사랑한 남자''에서 마지막 영화 역할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1977년 프랑스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버트런드와 그녀의 파트너인 존 트루델은 원주민의 문화적, 경제적 생존을 지원하기 위해 올 트라이브스 재단을 설립했다.[8] 2007년까지 이 재단은 부족의 삶의 방식을 강화하고 원주민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는 지역사회 기반 프로그램에 800000USD 이상을 지원했다.[8]
마셸린 버트런드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5] 프랑스계 캐나다인[21]과 이로쿼이 족[22]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 1965년, 버트런드 가족은 시카고 지역에서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로 이사했으며, 비벌리힐스 고등학교에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다녔다.[7][2] 2007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3. 배우 경력
이후 버트런드는 프로듀서로 활동 방향을 전환했다. 1983년, 당시 파트너였던 빌 데이와 함께 우즈 로드 프로덕션스를 설립했다. 2005년, 버트런드는 다큐멘터리 ''트루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이 영화는 파트너이자 산티 수족 음악가이자 활동가인 존 트루델의 삶과 작품을 기록한 것이다. ''트루델''은 선댄스 영화제와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공식 선정작이었으며, 시애틀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특별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17]
4. 인도주의 활동
2003년 국제 여성의 날에 버트런드와 트루델은 유엔 난민 기구와 협력하여 아프가니스탄 여성 난민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8]
1999년 난소암 진단을 받은 버트런드[14]는 트루델과 함께 기브 러브 기브 라이프(Give Love Give Life)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들의 목표는 음악을 통해 난소암 및 기타 부인과 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었다.[9] 첫 번째 기브 러브 기브 라이프 콘서트는 2004년 2월 웨스트 할리우드의 록시 극장에서 열렸다.[9] 버트런드와 트루델은 부인과 암의 징후와 증상에 대한 국가적 홍보 및 교육에 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인 조안나 법에 대한 음악 및 영화계의 전략적 지원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 법안은 2007년 1월 12일에 발효되었다.[9] 버트런드가 암으로 사망한 지 한 달 후인 2007년 2월, 세다스-시나이 메디컬 센터의 여성 암 연구소를 지원하기 위해 두 번째 기브 러브 기브 라이프 콘서트가 로스앤젤레스의 깁슨 원형 극장에서 열렸다.[9]
5. 사생활
5. 1. 가족 관계
버트런드는 일리노이주 블루 아일랜드에서 로이스 준(구웬스)과 롤랜드 F. 버트런드의 딸로 태어났다.[1] 프랑스계 캐나다인, 네덜란드인, 독일계 혈통이었으며, 여동생 데비와 남동생 랠리를 두었다.[6]
1971년 12월 12일, 배우 존 보이트와 결혼했다.[3] 1972년 유산을 겪었으나,[14] 이후 두 자녀 제임스 헤이븐과 안젤리나 졸리를 낳았고, 둘 다 배우가 되었다. 버트런드와 보이트는 1976년에 별거했으며,[15] 1978년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여[14] 1980년에 이혼이 확정되었다.[13]
보이트와 법적으로 별거한 후, 버트런드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빌 데이와 11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결혼하지는 않았다.[18][16] 말년에는 활동가이자 음악가인 존 트루델과 교제했다.[4]
사망 당시 버트런드는 딸로부터 네 명의 손주를 두었다.[14] 이듬해 태어난 또 다른 손녀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미들네임으로 "마셸린"을 받았다.[12]
6. 사망
버트런드는 말년을 사생활을 중시하여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14] 약 8년간 난소암 및 유방암 투병 끝에 2007년 1월 27일 56세의 나이로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 센터에서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다.[10][14][19] 버트런드의 어머니와 여동생 또한 암으로 사망했다.[19][20] 그녀의 딸은 "할머니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엄마는 늘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죠."라고 설명했다.[11]
7. 출연 작품
에피소드: "사랑, 평화, 형제애, 그리고 살인"
총괄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