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가즈나리
1. 개요
마쓰다이라 가즈나리는 1570년에 태어나 1604년에 사망한, 센고쿠 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의 무장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인 후시미성 전투에서 부친이 전사한 후 가문을 계승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영지가 늘어나 다이묘가 되었으며, 사타케 요시노부의 미토 이봉 시 미토 성을 관리하고 반란을 진압했다. 그의 사후 장남 마쓰다이라 시게시게가 가문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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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쓰케국의 번주 -
오타 스케무네
오타 스케무네는 에도 시대 초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다이묘가 된 인물로, 쇼군 측근인 육인중으로 활동하고 막부의 중요 사업에 참여하였다. -
시모쓰케국의 번주 -
마쓰다이라 나리시게
마쓰다이라 나리시게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마쓰다이라 잇쇼의 장남이며, 가독을 이어 영지를 다스리고 오사카 전투에 참전 후 가증 이봉되어 단바 가메야마 번주로서 번의 통치에 힘썼다. -
1604년 사망 -
휴정
휴정은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고 활약했으며, 조선 불교 중흥에 기여하고 종교 간 화합을 강조한 승려이다. -
1604년 사망 -
구와야마 가즈하루 (초대)
구와야마 가즈하루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분로쿠·게이초의 역에 참전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야마토 신조 번 초대 번주가 되었으나 후사 없이 사망했다. -
후다이 다이묘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1634년)
마쓰다이라 다다토모는 에도 시대 이이야마 번을 다스린 다이묘로, 치수 사업, 관개 시설 정비, 신전 개발 등을 통해 번의 기반을 다지고 노다 기자에몬을 등용하여 번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사카 가반 등 요직을 역임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후다이 다이묘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1790년)
마쓰다이라 노부유키(1790년)는 가미야마번의 7대 번주이며, 번교 덴포칸을 설립하고 번 통치에 힘썼으며, 1831년 장남에게 번주직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2. 생애
겐키 원년(1570년), 마쓰다이라 지카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덴쇼 13년(1585년)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섬겼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 된 후시미성 전투에서 부친이 전사했기 때문에 가독을 이었다. 세키가하라 이후, 부친의 무공을 이에야스로부터 포상받아 고즈케 국 산노쿠라 5500석에서 시모쓰케 이타바시 1만 석으로 가증 이봉되어 다이묘가 되었다.
게이초 7년(1602년), 사타케 요시노부가 히타치 국미토에서 데와 국구보타로 이봉되었을 때, 미토성 번을 맡아, 사타케 씨 구신이 획책한 일규를 진압했다. 게이초 9년(1604년) 4월 25일에 사망했다. 향년 35세. 뒤를 장남인 시게시게가 이었다.
2.1. 가독 상속과 세키가하라 전투
겐키 원년(1570년), 마쓰다이라 지카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덴쇼 13년(1585년)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섬겼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 된 후시미성 전투에서 부친이 전사했기 때문에 가독을 이었다. 세키가하라 이후, 부친의 무공을 이에야스로부터 포상받아 고즈케 국 산노쿠라 5500석에서 시모쓰케 이타바시 1만 석으로 가증 이봉되어 다이묘가 되었다.
게이초 7년(1602년), 사타케 요시노부가 히타치 국미토에서 데와 국구보타로 이봉되었을 때, 미토성 번을 맡아, 사타케 씨 구신이 획책한 일규를 진압했다. 게이초 9년(1604년) 4월 25일에 사망했다. 향년 35세. 뒤를 장남인 시게시게가 이었다.
2.2. 미토 성 관리와 잇키 진압
겐키 원년(1570년), 마쓰다이라 지카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덴쇼 13년(1585년)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섬겼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 된 후시미성 전투에서 부친이 전사하여 가독을 이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부친의 무공을 이에야스로부터 포상받아 고즈케 국 산노쿠라 5500석에서 시모쓰케 이타바시 1만 석으로 가증 이봉되어 다이묘가 되었다.
게이초 7년(1602년), 사타케 요시노부가 히타치 국미토에서 데와 국구보타로 이봉되었을 때, 미토성 번을 맡아 사타케 씨 구신이 획책한 일규를 진압했다. 게이초 9년(1604년) 4월 25일에 사망했다. 향년 35세. 뒤는 장남인 시게시게가 이었다.
2.3. 죽음과 가문의 계승
마쓰다이라 가즈나리는 겐키 원년(1570년)에 마쓰다이라 지카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덴쇼 13년(1585년)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섬겼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었던 후시미성 전투에서 부친이 전사하여 가독을 상속받았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부친의 무공을 이에야스로부터 포상받아 고즈케 국 산노쿠라 5500석에서 시모쓰케 이타바시 1만 석으로 영지가 늘어나 다이묘가 되었다.
게이초 7년(1602년), 사타케 요시노부가 히타치 국미토에서 데와 국구보타로 이봉되었을 때, 미토성을 관리하며 사타케 씨 구신이 획책한 일규를 진압했다. 게이초 9년(1604년) 4월 25일에 35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장남인 시게시게가 뒤를 이었다.
3. 가계
마쓰다이라 치카마사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오오쿠보 로쿠자에몬의 딸이다. 정실은 마쓰다이라 타다나리의 딸이다. 마쓰다이라 시게시게의 친부이며, 생모는 정실이다. 딸로는 히네노 요시아키의 정실과 시나노국 다카시마번 가로 스와 요리오의 정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