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노리야스 (1795년)
1. 개요
마쓰다이라 노리야스(1795년)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로, 니시오 번의 번주이자 막부의 로주를 역임했다. 그는 사사 봉행, 오사카 성대를 거쳐 로주에 올랐으며, 개국·화친을 주장하고 쇼군 계승 문제에서 난키파를 지지했다. 안세이 2년(1855년) 로주에서 면직되었으나, 이후 명예 회복으로 제감간석을 거쳐 다시 로주에 임명되었다. 이이 나오스케 암살 후 사임하고 은거했으며, 만년에 다테야마 만다라를 제작하기도 했다. 1870년에 사망했으며, 묘소는 아이치현 니시오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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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족 | 오규 마쓰다이라가 |
|---|---|
| 묘소 | 아이치현니시오시세이간지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
| 출생 | 간세이 6년 12월 9일 (1795년1월 29일) |
| 사망 | 메이지 3년 7월 6일 (1870년8월 2일) |
| 관위 | 종4위하시종, 이즈미노카미 |
|---|---|
| 막부 | 에도 막부지샤부교, 오사카 성대, 노중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요시 → 이에사다 → 이에모치 |
| 번 | 미카와니시오 번 번주 |
| 아버지 | 마쓰다이라 노리히로 |
|---|---|
| 어머니 | 아베 마사토모 딸 |
| 형제 | 노리야스 마키노 다다에 마키노 다다요시 노리쓰구 미즈노 다다요시 정실 마쓰다이라 모실 마쓰다이라 노부에 실 |
| 배우자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딸 |
| 자녀 | 노리아키라 노리미쓰 노리우지 노리요시 노리쓰구 마쓰다이라 무네히데 정실 마쓰다이라 노리카쓰 정실 마쓰다이라 지카요시 정실 마쓰다이라 지카아키라 정실 |
| 양자 | 노리쓰구 |
| 비고 | 출처 명확히 할 것 |
|---|
| 전임 | 마쓰다이라 노리히로 |
|---|---|
| 후임 | 마쓰다이라 노리쓰네 |
| 직책 | 니시오 번 번주 (오규 마쓰다이라가) |
| 대수 | 4 |
| 임기 | 1839년 ~ 1862년 |
| 전임 | 아오야마 다다나가 |
|---|---|
| 후임 | 마쓰다이라 다다카타 |
| 직책 | 오사카 조다이 |
| 대수 | 63 |
| 임기 | 1844년 ~ 1845년 |
-
니시오번주 -
오타 스케무네
오타 스케무네는 에도 시대 초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다이묘가 된 인물로, 쇼군 측근인 육인중으로 활동하고 막부의 중요 사업에 참여하였다. -
니시오번주 -
미우라 아키쓰구 (1726년)
미우라 아키쓰구는 에도 시대 니시오 번주 미우라 요시노리의 양자가 되어 가문을 상속받고, 미마사카 국으로 이봉되어 가츠야마 번을 건립하고 통치하며 번의 기초를 다진 다이묘이자 서예가였다. -
막말의 막부 사람 -
이이 나오스케
이이 나오스케는 1815년에 태어나 1850년 히코네 번의 번주가 되었으며, 다이로로서 미국과의 통상 조약을 체결하고 막부 정치를 주도했으나 안세이 대옥을 일으켜 비판받았고, 1860년 사쿠라다 문 밖의 변에서 암살당했다. -
막말의 막부 사람 -
오쿠보 다다노리
오쿠보 다다노리는 에도 시대 후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활동한 다이묘이자 귀족으로, 정치적 입장 변화를 거쳐 오쿠보 가문의 당주로 복귀하여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그의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
1870년 사망 -
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대표 소설가로, 사회 비판과 풍자를 섬세한 인물 묘사로 결합한 작품과 빈곤한 어린 시절,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픽윅페이퍼스》,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롤》, 《데이비드 코퍼필드》, 《위대한 유산》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겨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랑받고 있다. -
1870년 사망 -
알렉산드르 게르첸
알렉산드르 게르첸은 러시아의 작가이자 철학자, 혁명가로서 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런던에서 자유 러시아 언론을 설립하여 러시아 지배 체제를 비판하고 농노 해방을 지지했다.
2. 약력
마쓰다이라 노리야스는 3대 번주 마쓰다이라 노리카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베 마사토모의 딸이다. 동생은 에치고 나가오카 번에 양자로 들어가 로주를 지낸 마키노 타다즈미이다. 로주였던 아베 마사히로는 어머니 쪽 사촌이고, 일본 적십자사 창설자 중 한 명인 마쓰다이라 노리카즈(후의 오규 타카시)는 외손자이다.
메이지 3년(1870년)에 사망했으며, 향년 76세. 묘소는 아이치현니시오시의 세이간지이다.
2.1. 막부에서의 활동
사사 봉행, 오사카 성대를 거쳐 로주를 지냈다. 동료 로주인 마쓰다이라 타다마사와 함께 대외 문제에서는 개국·화친을 주장했다. 쇼군 계승 문제에서는 난키파에 가담하여 기슈 번의 도쿠가와 요시토미(후의 이에모치)를 지지했다. 해방 참여관 미토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와 대립했기 때문에, 안세이 2년(1855년) 아베 마사히로의 명령으로 타다마사와 함께 로주에서 면직되어 각외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마사히로 사망 후, 막정의 실권을 잡은 로주 수좌 홋타 마사요시에 의해 명예 회복의 의미를 담아 제감간석에서 루즈메 격으로 영전되었다. 안세이 5년(1858년)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의 천거로 로주에 재임했으나, 나오스케의 암살(사쿠라다몬 밖의 변) 후 입지가 좁아져 만엔 원년(1860년)에 사임했다. 분큐 2년(1862년) 1만 석 감봉된 뒤 은거를 명받았고, 막내 동생 노리치카가 양자로서 가독을 이었다. 막부 멸망 후 노리치카가 사망하자, 막내아들 노리쓰구가 오규 마쓰다이라 가문의 가독을 상속했다.
2.2. 다테야마 만다라 제작
도야마 현립 다테야마 박물관에 전시된 다테야마 만다라 중 하나인 『호센보 본』은 마쓰다이라 노리야스(1795년)가 로주 재직 시절인 안세이 5년(1858년)에 기존의 다테야마 만다라를 보고 그린 것이다. 표장에는 도쿠가와 이에모치(에도 막부 제14대 쇼군)에게 받은 의류를 도쿠가와 요시노부(에도 막부 제15대 쇼군)의 허가를 받아 사용했다. 에도 성 안에서 여러 다이묘와 그 안주인 등에게 공개한 후, 사단 관계(승려와 단가의 관계)를 맺는 호센보에 기증되었다.
그림 안에는 "源乗全書"라는 묵서명과 낙관이 있으며, 뒷면 기록에는 "立山縁起四幅自模写 以寄附 越州立山寳泉坊・西尾拾遺源乗全 安政五年戊午十二月"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3. 연표
4. 가계
| 아버지 | 마쓰다이라 노리히로 |
|---|---|
| 어머니 | 아베 마사토모의 딸 |
| 정실 | 마쓰다이라 타다토미의 딸 |
| 장남 | 마쓰다이라 노리아키 |
| 차남 | 마쓰다이라 노리토오 |
| 삼남 | 마쓰다이라 노리우지 |
| 사남 | 마쓰다이라 노리요시 |
| 오남 | 마쓰다이라 노리쓰구 |
| 딸 | 마쓰다이라 무네히데 정실 |
| 딸 | 마쓰다이라 노리토시 정실 |
| 딸 | 마쓰다이라 지카요시 정실 |
| 딸 | 마쓰다이라 지카사토 정실 |
| 양자 | 마쓰다이라 노리치카 (친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