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푹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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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막푹하이는 1540년 대월 막 왕조의 황제가 된 인물이다. 같은 해 아버지 막등영이 죽자 반국공에 봉해진 후 황위에 올랐으며, 조부 막등용이 태상황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명나라의 침략 위협 속에서 막등용이 명나라에 항복하면서 막푹하이는 친정을 시작했고, 이후 후 레 왕조 세력과 대립했다. 1545년에는 완감 암살 시도가 있었으며, 1546년에 사망하여 아들 막복원이 뒤를 이었다. 재위 기간 동안 광화 연호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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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푹하이 | |
---|---|
기본 정보 | |
칭호 | 대월 황제 |
이름 | 막푹하이 (莫福海) |
성 | 막 (莫) |
묘호 | 헌종 (憲宗) |
시호 | 현황제 (顯皇帝) |
연호 | 광화 (廣和) |
왕조 | 막 왕조 |
재위 기간 | 1540년–1546년 |
출생 | 알 수 없음 |
사망 | 1546년 |
왕위 계승 | |
선대 군주 | 막 태종 |
후대 군주 | 막 선종 |
가계 | |
부친 | 막당영 |
모친 | 알 수 없음 |
배우자 | 알 수 없음 |
자녀 | 알 수 없음 |
기타 정보 | |
사후 칭호 | 막 헌종 |
2. 생애
막푹하이의 생년은 미상이나, 막등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540년 막등영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했다.[1] 1541년 할아버지 막등용이 사망하면서 직접 정치를 시작했다.[1] 재위 기간 동안 후려조 부흥 세력과 대립하였고, 명나라에 통합을 결정하여 막 왕조의 권위가 저하되기도 하였다. 1545년 막조의 장수 양집일(楊執一)이 완감을 암살하여 후려조에 혼란을 일으켰다.[1] 1546년 사망하여 아들 막복원이 뒤를 이었다.[1]
2. 1. 즉위 이전
1540년, 반국공(蟠國公)에 봉해졌다가, 같은 해 막등영이 죽자 그 뒤를 이어서 황제로 즉위하였다. 조부 막등용이 태상황으로 생존해 있었고 권력을 잡고 있었다.[1]명나라는 막씨가 후려조의 제위를 찬탈한 것으로 보고 군사를 이끌고 막조를 치려 하였다. 태상황 막등용은 이를 두려워 하였고, 막푹하이(막복해)는 머물러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막등용이 대신들을 거느린 후 유의관(友誼關)으로 가서 명나라에 항복하였다. 명나라는 막 왕조의 항복을 받아들였고, 막등용을 안남군통사(安南都統使)에 봉하였다.[1]
1541년, 태상황 막등용이 죽자, 막푹하이는 친정을 시작하였으며 후려조 후기 세력의 주축인 응우옌낌(완감), 정검과 대치하였다.[1]
2. 2. 황제 즉위와 명나라의 압박
1540년 막등영이 사망하자 막푹하이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막등용이 태상황으로 생존하여 권력을 잡고 있었다.[1]명나라는 막씨가 후려조의 제위를 찬탈한 것으로 보고 군사를 이끌고 막조를 치려 하였다. 태상황 막등용은 이를 두려워 하였고, 막푹하이는 머물러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막등용이 대신들을 거느린 후 유의관(友誼關)으로 가서 명나라에 항복하였다. 명나라는 막 왕조의 항복을 받아들였고, 막등용을 안남군통사(安南都統使)에 봉하였다.[1]
1541년 태상황 막등용이 죽자, 막푹하이는 친정을 시작하였다.[1]
2. 3. 친정과 후 레 왕조와의 대립
1540년 막등영이 죽자 그 뒤를 이어 막 왕조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할아버지 막등용이 태상황으로 생존하여 권력을 잡고 있었다.[1]명나라는 막씨가 후려조의 제위를 찬탈한 것으로 보고 군사를 이끌고 막 왕조를 치려 하였다. 태상황 막등용은 이를 두려워 하였고, 막푹하이는 머물러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막등용이 대신들을 거느린 후 유의관(友誼關)으로 가서 명나라에 항복하였다. 명나라는 막 왕조의 항복을 받아들였고, 막등용을 안남군통사(安南都統使)에 봉하였다.[1]
1541년 태상황 막등용이 죽자, 막푹하이는 친정을 시작하였으며, 후려조 후기 세력의 주축인 완감, 정검과 대치하였다.[1]
1545년 막조의 장수 양집일(楊執一)이 완감에게 패배하자 거짓으로 항복한 후 그를 암살하여 후려조에 혼란을 일으켰고, 이후 정검과 완황의 대립이 일어났다.[1]
2. 4. 사망
1540년 아버지 막등영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했다. 1541년 할아버지 막등용이 사망하면서 직접 정치를 시작했다. 재위 기간 동안 후려조 부흥 세력의 중심 인물인 찐끼엠과 계속해서 대립하였다.[1]1545년 막조의 장수 양집일(楊執一)이 찐끼엠의 장인인 완감에게 거짓 항복 후 암살하여 후려조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1]
1546년에 사망하여 아들인 막복원이 뒤를 이었다.[1]
3. 연호
4. 가계
관계 | 이름 |
---|---|
형 | 막낀디엔 |
형 | 막돈느엉 |
아들 | 막푹응웬 |
4. 1. 형제
- 막 낀 디엔 (Mạc Kính Điểnvi)
- 막 돈 냥 (Mạc Đôn Nhượngvi)
4. 2. 아들
- 막푹응웬 (막홍익)
참조
[1]
서적
Southeast Asia: A Historical Encyclopedia Volume 1 - Page 805
2004
[2]
서적
The A to Z of Vietna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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