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모토토모 (기요스에 모리가)
1. 개요
모리 모토토모는 조후번 초대 번주 모리 히데모토의 셋째 아들로, 기요스에번의 초대 번주이다. 1631년에 태어나 1653년 형 모리 미쓰히로의 사망으로 조카 모리 쓰나모토가 조후번을 잇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1만 석을 분여받아 기요스에번을 세웠다. 1677년 장남 모리 모토타케가 사망하고, 1683년 에도에서 5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차남 모리 마사히로가 뒤를 이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 출생 | 간에이 8년 6월 22일 (1631년 7월 21일) |
| 사망 | 덴나 3년 윤 5월 14일 (1683년 7월 8일) |
| 계명 | 고린인 료간 조세이 (高林院涼岸常清) |
| 묘소 | 센가쿠지 (도쿄도미나토구다카나와) |
| 관위 | 종5위하, 형부소보 |
| 번 | 나가토기요스에번 초대 번주 |
| 씨족 | 오에 성모리 씨 |
| 부모 | 아버지: 모리 히데모토, 어머니: 혼코인 (나가누마 씨) |
| 형제자매 | 쇼기쿠시 (모리 나리타카 정실) 미야코 미야마쓰마루 미쓰히로 이마코 나가기쿠시 (나가이 나오유키 정실) 지기쿠시 (야마자키 도요하루 정실) 만기쿠시 (이나바 마사노리 정실) 모토토모 자녀 다케치요시 (도이 도시나가 정실) |
| 정실 | 렌게인 (나나사와 기요무네의 딸)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측실인 호주인의 이복 여동생. 마스야마 마사토시의 양녀. 아오키 도시나가의 딸이라는 설도 있음. |
| 측실 | 후나코시 씨, 오가사와라 씨 |
| 자녀 | 모토타케 모토히라 (마사히로) 이나바 마사카타 |
| 직책 | 기요스에 모리가 당주 |
|---|---|
| 임기 | 1653년 ~ 1683년 |
| 대수 | 1 |
| 전임자 | 모리 히데모토 |
| 후임자 | 모리 모토히라 |
| 직책 | 기요스에번 번주 (기요스에 모리가) |
|---|---|
| 임기 | 1653년 ~ 1683년 |
| 대수 | 1 |
| 후임자 | 모리 모토히라 |
-
기요스에번주 -
모리 마사히로 (에도 시대)
모리 마사히로는 에도 시대 인물로, 나가토 기요스에 번주를 거쳐 조후 번주가 되었으며, 검약령과 농업 장려를 시행했으나 교호 대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1729년에 사망했다. -
기요스에 모리가 -
기요스에번
기요스에번은 모리 가문이 다스리던 1만 석 규모의 번으로, 조후 번에서 분번되었으나 번주 문제로 두 차례 단절과 재흥을 반복했으며, 번정 개혁 시도와 조슈 정벌 참여 등의 역사를 지녔다. -
기요스에 모리가 -
모리 마사히로 (에도 시대)
모리 마사히로는 에도 시대 인물로, 나가토 기요스에 번주를 거쳐 조후 번주가 되었으며, 검약령과 농업 장려를 시행했으나 교호 대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1729년에 사망했다. -
조후 모리가 -
모리 히데모토
모리 히데모토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자 조후번 초대 번주로, 세키가하라 전투 후 막부에 귀순하여 조슈번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도쿠가와 막부의 신임을 얻었으나, 모리 히데나리와의 갈등을 겪었고 에도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평가는 다양하다. -
조후 모리가 -
모리 시게타카 (에도 시대)
모리 시게타카는 에도 시대 조슈 번의 13대 번주로서 재정 개혁, 군비 확충, 경제 부흥을 추진했으나, 가혹한 연공 징수로 민중들의 저항을 겪었다.
2. 생애
모리 모토토모는 조후번의 지번인 기요스에번을 세우고 조슈번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
1677년 적남 모토타케가 20세로 사망하여 차남 모토히라를 후계자로 삼았다.
1683년 에도에서 53세로 사망했다. 뒤는 차남 모토히라(후의 조후번 6대 번주 모리 마사히로)가 이었다. 법호는 고린인 료간 조세이(高林院涼岸常清)이며, 묘소는 도쿄도 미나토구 다카나와의 센가쿠지이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毛利元知일본어는 간에이 8년(1631년 6월 22일) 조후번 초대 번주 모리 히데모토의 셋째 아들로 셋쓰국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쇼오 2년 (1653년)에 조후번 2대 번주였던 형 미쓰히로가 사망하고 조카 쓰나모토가 뒤를 잇자, 아버지 히데모토의 유언에 따라 모토토모는 쓰나모토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기요스에번을 세웠다. 이 기요스에번은 조슈번의 세 지번 중 하나로 후한 대우를 받았다.
엔포 5년 (1677년 7월 25일) 적남 모토타케가 20세로 사망했기 때문에, 차남 모토히라를 후계자로 삼았다.
2.2. 자녀와 후계
모리 모토토모일본어는 1631년 6월 22일, 조후번 초대 번주 모리 히데모토의 셋째 아들로 셋쓰국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653년, 조후번 2대 번주였던 형 모리 미쓰히로가 사망하고 조카 모리 쓰나모토가 뒤를 잇자, 아버지 히데모토의 유언에 따라 모토토모는 쓰나모토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기요스에번을 세웠다. 기요스에번은 조슈번의 세 지번 중 하나로 후한 대우를 받았다.
1677년 7월 25일, 적남 모리 모토타케가 20세로 사망하여 차남 모리 마사히로가 후계자가 되었다.
1683년 윤 5월 14일에 에도에서 53세로 사망했다. 뒤는 차남 모토히라(후의 조후번 6대 번주 모리 마사히로)가 이었다. 법호는 고린인 료간 조세이(高林院涼岸常清)이며, 묘소는 도쿄도 미나토구 다카나와의 센가쿠지이다.
2.3. 사망
덴와일본어 3년 (1683년일본어) 윤5월 14일일본어)에 에도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53세였다. 뒤는 차남 모토히라(후의 조후번 6대 번주 모리 마사히로)가 이었다. 법호는 고린인 료간 조세이(高林院涼岸常清)이다. 묘소는 도쿄도 미나토구 다카나와의 센가쿠지이다.
3. 가계
모리 히데모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혼코인(나가누마 씨)이다. 마스야마 마사토시의 양녀이자 나나사와 기요무네의 딸인 렌게인을 정실로 맞이했다. 측실로는 후나코시 씨와 오가사와라 씨 신코인이 있었다. 슬하에 모리 모토타케, 모리 마사히로(옛 이름 모토히라), 이나바 마사카타(생모 불명) 등 세 아들을 두었다.
3.1. 부모
* 아버지: 모리 히데모토(1579년 - 1650년)
* 어머니: 혼코인(나가누마 씨)
3.2. 처
* 정실: 렌게인 (마스야마 마사토시의 양녀, 나나사와 기요무네의 딸)
* 측실: 후나코시 씨
* 측실: 신코인 (오가사와라 씨)
3.3.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모리 모토타케 | 1658년 - 1677년 | 장남 |
| 모리 마사히로 | 1675년 - 1729년 | 차남, 옛 이름은 모토히라 |
| 이나바 마사카타 | 생몰년 미상 | 삼남, 생모 불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