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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묘는 동아시아 문명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의미하는 한자이다. 작위와 토지를 상속받은 가문의 상층부, 통치자가 제사를 올리고 업무를 보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통치자가 제사를 지내는 건축물의 의미로 굳어졌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사당 건물 유형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특히, 가묘는 일반 사대부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의미하며,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널리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종묘, 문묘, 가묘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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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정의제사, 곧 조상 숭배를 위해 세워진 유교 사당
유형사당
상세 정보
설명묘(廟)는 한국에서 제사를 위해 조상을 기리는 유교 사당의 한 종류이다. 일반적으로 가묘(ko)로 알려져 있으며, 집안에서 조상을 숭배하는 데 사용된다.

2. 역사와 의미

'묘'(廟)라는 한자는 본래 동아시아 문명에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작위와 토지를 상속받은 가문의 상층부를, 둘째는 통치자가 머무르며 제사를 지내고 업무를 보는 장소를 의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통치자가 제사를 올리는 건축물로서의 의미로 재편되었으며, 조선종묘중국태묘가 대표적인 예시다.[8]

2. 1. 한국 문명에서의 묘

한국 문명에서 '묘(廟)'라는 표현이 사용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는 유교적 의례에 따른 '종묘'가 아닌 넓은 의미의 '시조묘'(始祖廟)에 가까운 개념이었다.[9]

그러나 '묘'(廟)는 황제, 제후 등 통치자가 제사를 지내는 건축물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었는데, 가정에서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일컫는 가묘(家廟)가 그 예시이다. 본래 동아시아권에서 제사에 쓰이는 건축물을 일컫는 말로는 사당가묘가 있었다. 사당은 먼 조상이나 성현을 제사 지내는 곳이었고, 가묘는 일반 사대부 등이 조상을 제사 지내는 곳이었다. 그러다 남송 시대 주자가 쓴 '가례'에서 가묘를 사당으로 대체하면서 가묘는 쓰임이 줄었다.[10]

그럼에도 조선은 가묘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널리 사용했다는 점에서 중화권과 차이를 보인다. 조선은 건국 초기 숭유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상류층에게 부모에 대한 제사를 국가적으로 강제했는데, 이때 부모에게 제사를 지낼 장소를 가리키는 어휘로 주로 사용된 것은 사당이 아닌 가묘였다.[11] 이에 따라 오늘날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묘'(廟)는 제사를 지내는 장소(사당)로서, 제사를 지내는 주체와 무관하게 종묘, 문묘, 가묘 등을 널리 통틀어 일컫는 의미로 쓰인다.[12]

2. 2. 중국 문명에서의 묘

중국에서 "묘"(廟)는 묘 사당과 사당(祠堂) 또는 사(祠)라는 용어로 구분되었다. 묘 사당은 왕족이나 유명한 영웅, 성현과 같이 고귀한 존재에게 헌정된 유교 사당을 의미했다. 반면 사당(祠堂) 또는 사당(祠)은 왕족 외의 일반적인 사대부 가문을 위한 유교 조상 사당을 주로 지칭했다.[4] 남송 시대 주희는 가묘라는 용어를 더 넓은 의미의 사당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면서, 중국 문화에서 가묘의 사용이 줄어들었다.[4]

3. 조선시대의 묘

조선 시대 건축 용어로서 '묘'(廟)는 일반적으로 열린 제단을 의미하는 '단'(壇)과 비교되는 사당 건물 유형을 가리켰다.[3]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숭유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상류층에게 부모에 대한 제사를 국가적으로 강제했는데, 이때 부모에게 제사를 지낼 장소를 가리키는 어휘로 주로 사용된 표현은 '사당'이 아닌 '가묘'(家廟)였다.[11] 이는 남송 시대 주자가 쓴 '가례'에서 '가묘'라는 표현을 '사당'으로 대체하면서 중국에서 '가묘'의 쓰임이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10]

조선 후기에는 조상의 초상을 모신 가문 조상 사당을 묘사하기 위해 '사묘'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고, '가묘'는 신주를 모신 전형적인 조상 사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6]

참조

[1] 저널 Royal religiosity: Confucian thoughts in Joseon Jongmyo shrine https://www.tandfonl[...] 2024-03-10
[2] 저널 The royal Jongmyo (宗廟) composition and the Jongmyo system of the King Muyeol lineage (武烈王系) https://www.kci.go.k[...] 2024-03-10
[3] 저널 Ming Loyalist Families and the Changing Meanings of Chojong'am in Early Nineteenth-Century Chosŏn https://muse.jhu.edu[...] 2024-03-14
[4] 서적 한국문화사 제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http://contents.hist[...] 두산동아 2007
[5] 서적 한국문화사 제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http://contents.hist[...] 두산동아 2009
[6] 저널 A Perspective on the History of Korean Portrait Painting https://www.ijkaa.or[...] 2024-03-14
[7] 서적 Exploring Korean History through World Heritage https://www.aks.ac.k[...] Academy of Korean Studies Press 2014
[8] 저널 Royal religiosity: Confucian thoughts in Joseon Jongmyo shrine https://www.tandfonl[...] 2024-03-10
[9] 저널 신라 武烈王系 왕실의 宗廟 구성과 宗廟制 운영 https://www.kci.go.k[...] 2024-03-10
[10] 서적 한국문화사 제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http://contents.hist[...] 두산동아 2007
[11] 서적 한국문화사 제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http://contents.hist[...] 두산동아 2009
[12] 웹인용 "묘7(廟)" https://stdict.korea[...] 국립국어원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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