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슬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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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로슬라브는 945년에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즉위했지만, 아버지 크레시미르 1세 사후 동생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와 왕위 계승 분쟁을 겪었다. 이로 인해 크로아티아는 내전에 휩싸였고, 달마티아 대부분을 상실했으며 비잔티움 제국이 달마티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949년, 그는 귀족 프리비나에게 살해당했으며,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가 왕위를 승계했다.

미로슬라브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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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브의 삽화
통치 기간945년 ~ 949년
이전 통치자크레시미르 1세
이후 통치자미하이로 크레시미르 2세
왕조트르피미로비치 왕조
출생
사망949년
가문
아버지크레시미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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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크레시미르 1세의 아들로 945년에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와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내전에 휩싸였다. 크로아티아 해군은 30척의 선박만 남았고, 보병과 기병도 크게 감소했다. 결국 949년 귀족 프리비나에게 살해당했다.

2.1. 왕위 계승 분쟁과 내전

크레시미르 1세의 아들인 미로슬라브는 945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남동생인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와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인해 크로아티아는 내전에 휩싸였다. 이 내전으로 크로아티아는 달마티아 대부분을 상실했고, 비잔티움 제국은 달마티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내전의 여파로 크로아티아 해군은 30척의 선박만을 보유할 정도로 약화되었고, 보병과 기병 또한 크게 감소했다. 결국 미로슬라브는 949년 크로아티아 귀족인 프리비나(Pribina)에게 살해당했고, 왕위는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에게 넘어갔다.

2.2. 달마티아 상실과 비잔티움 제국의 개입

크레시미르 1세의 아들인 미로슬라브는 945년에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아버지 크레시미르 1세 치세 말기부터 남동생인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와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인해 크로아티아는 내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내전의 결과, 크로아티아는 달마티아의 대부분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 틈을 타 비잔티움 제국이 달마티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개입하게 되었다. 크로아티아 해군은 30척의 선박만을 보유했을 정도로 약화되었고, 보병과 기병 또한 내전으로 인해 크게 감소했다.

2.3. 국력 약화

크레시미르 1세의 아들인 미로슬라브는 945년에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아버지 크레시미르 1세가 사망한 이후, 미로슬라브는 자신의 남동생인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와 왕위 계승 분쟁을 겪으면서 크로아티아는 내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내전은 크로아티아의 국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크로아티아 해군은 30척의 선박만 남을 정도로 축소되었고, 보병과 기병 역시 크게 감소했다. 또한, 내전의 혼란을 틈타 비잔티움 제국이 달마티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크로아티아는 달마티아의 대부분을 상실하게 되었다.

2.4. 암살

949년 크로아티아의 귀족인 프리비나(Pribina)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왕위는 동생인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가 승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