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마미아시빌리
1. 개요
미하일 마미아시빌리는 그루지야 출신으로, 레슬링 선수 및 행정가로 활동했다. 1983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러시아 레슬링 연맹 회장과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심판 매수 의혹,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 폭행 논란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2023년에는 파리 올림픽에 전차를 타고 출전하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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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미하일 마미아시빌리 |
|---|---|
| 원어명 | Михаил Мамиашвили |
| 본명 | Михаил Геразиевич Мамиашвили |
| 국적 | 러시아 |
| 이전 국적 | 소련 |
| 출생일 | 1963년 11월 21일 |
| 출생지 |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코노토프 |
| 신장 | 175cm |
| 체중 | 82kg |
| 국가 | 소련 |
|---|---|
| 종목 | 레슬링 |
| 세부 종목 | 그레코로만형 |
| 체급 | 웰터급, 미들급 |
| 소속팀 | CSKA 모스크바 |
| 코치 | 니콜라이 예신 |
| 은퇴 | 1991년 |
| 올림픽 | 1988 서울 그레코로만형 -82kg 금메달 |
|---|---|
| 세계 선수권 대회 | 1983 키예프 그레코로만형 -74kg 금메달 1985 콜보튼 그레코로만형 -74kg 금메달 1986 부다페스트 그레코로만형 -74kg 금메달 1989 마르티니 그레코로만형 -82kg 은메달 1990 오스티아 그레코로만형 -82kg 은메달 |
| 유럽 선수권 대회 | 1986 피레우스 그레코로만형 -74kg 금메달 1988 콜보튼 그레코로만형 -82kg 금메달 1989 오울루 그레코로만형 -82kg 금메달 1984 옌셰핑 그레코로만형 -74kg 동메달 1985 라이프치히 그레코로만형 -74kg 동메달 |
| 세계 유스 선수권 대회 | 1983 크리스티안순 그레코로만형 -74kg 금메달 |
-
러시아의 스포츠 행정가 -
안드레이 라브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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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주 출신 -
안드레이 치카틸로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1978년부터 1990년까지 구 소련에서 53명 이상의 아동과 여성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으로, '로스토프의 도살자'라는 악명과 함께 소련 붕괴 직전 사회주의 체제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1994년 사형 집행되었다. -
수미주 출신 -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예프 (쇼트트랙 선수)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예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적의 쇼트트랙 선수로,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 대표로 출전하여 남자 1000m에서 은메달,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
1963년 출생 -
진중권
대한민국의 미학자이자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인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미학, 예술, 정치, 사회에 대한 저술 및 번역 활동과 진보 정당 활동을 해왔다. -
1963년 출생 -
장하준
장하준은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을 연구하고 신자유주의와 자유 무역을 비판하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며, 《사다리 걷어차기》 등의 저서로 뮈르달 상과 레온티에프 상을 수상했다.
2. 선수 경력
미하일 마미아시빌리는 우크라이나 수미주에서 그루지야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76년에 레슬링을 시작하여, 1978년에 부모와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1982년에 다시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1983년 세계 주니어 74kg급에서 우승한 후, 시니어 세계 선수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소련이 보이콧하여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 대항 대회인 프렌드십 게임에서 우승했다.
1985년에는 세계 선수권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1986년에는 유럽 선수권과 세계 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이후 체급을 82kg급으로 올렸다. 1988년에는 유럽 선수권에서 우승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과 1990년 세계 선수권에서는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74kg급과 82kg급 전적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대회 | 체급 | 결과 |
|---|---|---|---|
| 1983 |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3 | 세계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4 | 프렌드십 게임 | 74kg | 우승 |
| 1985 | 세계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6 | 유럽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6 | 세계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8 | 유럽 선수권 대회 | 82kg | 우승 |
| 1988 | 1988년 서울 올림픽 | 82kg | 우승 |
| 1989 | 유럽 선수권 대회 | 82kg | 우승 |
| 1989 | 세계 선수권 대회 | 82kg | 2위 |
| 1990 | 세계 선수권 대회 | 82kg | 2위 |
2.1. 초기 경력
미하일 마미아시빌리는 우크라이나 수미주에서 그루지야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76년에 레슬링을 시작하여 1982년에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1983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74kg급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시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소련이 불참하여 출전하지 못했지만, 프렌드십 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85년 세계 선수권에서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고, 1986년에는 유럽 선수권 대회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이후 체급을 82kg급으로 올렸고, 1988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과 1990년 세계 선수권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은퇴 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통합 선수단(EUN) 레슬링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01년에는 러시아 레슬링 연맹 회장이 되었고,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부회장직도 겸임했다. 2008년에는 국제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2. 전성기
미하일 마미아시빌리는 우크라이나 수미주에서 그루지야 가정에서 태어났다. 1976년에 레슬링을 시작하여, 1978년에 부모와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1982년에는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1983년 세계 주니어 74kg급에서 우승한 후, 시니어 세계 선수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소련이 보이콧하여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 대항 대회인 프렌드십 게임에서 우승했다.
1985년에는 세계 선수권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1986년에는 유럽 선수권과 세계 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이후 체급을 82kg급으로 올렸다. 1988년에는 유럽 선수권에서 우승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과 1990년 세계 선수권에서는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74kg급과 82kg급 전적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대회 | 체급 | 결과 |
|---|---|---|---|
| 1983 |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3 | 세계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4 | 프렌드십 게임 | 74kg | 우승 |
| 1985 | 세계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6 | 유럽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6 | 세계 선수권 대회 | 74kg | 우승 |
| 1988 | 유럽 선수권 대회 | 82kg | 우승 |
| 1988 | 1988년 서울 올림픽 | 82kg | 우승 |
| 1989 | 유럽 선수권 대회 | 82kg | 우승 |
| 1989 | 세계 선수권 대회 | 82kg | 2위 |
| 1990 | 세계 선수권 대회 | 82kg | 2위 |
3. 행정가 경력
1978년, 부모님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선수와 소련/러시아 레슬링 행정가로서 많은 업적을 인정받아 2008년 FIL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현재 그는 러시아 레슬링 연맹 회장이며, 국제 올림픽 레슬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FILA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EUN 레슬링 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2001년에는 러시아 레슬링 연맹 회장이 되었고,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의 부회장도 겸임했다.
4. 논란
2004년 하계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84kg급 결승에서 러시아의 알렉세이 미친이 스웨덴의 아라 아브라하미안과 대결했을 때, 마미아시빌리가 루마니아 심판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는 이유로 국제 레슬링 연맹의 징벌 위원장이었던 스웨덴의 페레 스벤슨에게 고발당했다. 스벤슨이 그 위반 행위를 마미아시빌리에게 따져 묻자, "더 이상 말하면 너에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참고로, 후에 그 심판이 1500만 엔 이상의 뇌물을 받았다는 매수가 밝혀졌다고 한다.
2015년, 마미아시빌리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려 했지만,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63kg급에서 5위로 마친 러시아의 인나 트라주코바는, 패배에 분노한 마미아시빌리에게 공공연하게 외설적인 말을 들으며 얼굴을 두 번이나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미아시빌리는 이 사건을 부정하지도 않고, 트라주코바가 보인 평범한 퍼포먼스는 국가에 대한 반역이며, 메달을 따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고 보도되었다. 그 후, 마미아시빌리는 트라주코바에게 폭언을 한 것은 인정했지만, 폭력을 행사한 것은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트라주코바에게 사과했다. 트라주코바는 법적으로 고소할 가능성을 보였지만, 많은 목격자들의 협력을 거부당했다. 그러나 마미아시빌리의 사과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 사건을 앞으로 고소할지는 불분명하다. 한편, 러시아 스포츠계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의분(義憤)이 널리 퍼지고 있지만, 마미아시빌리는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친구인 등 크렘린과도 관계가 있어 언터처블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으며,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마미아시빌리는 범죄 조직과 연루되어 있다는 이유로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도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본 레슬링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여자 75kg급에서 3위였던 예카테리나 부키나도 마미아시빌리에게 폭행을 당했다.。마미아시빌리는 57kg급 결승에서 이초 가오리에게 종료 직전에 역전패를 당한 발레리아 코브로바와 69kg급 결승에서 도쇼 사라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하고 2위로 마친 나탈리아 보로베바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이길 수 있었다. 나는 (은메달을) 축복하지 않는다. 죽어도 10초는 버텨야 했다"라고 신랄한 논평을 했다.
2023년 6월에 마미아시빌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침공 이후 국제 사회에서 배제된 러시아가, 파리 올림픽에 난민 선수단의 자격으로 출전하도록 IOC에서 제안받을 경우, 전차를 타고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4.1.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심판 매수 의혹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미하일 마미아시빌리는 러시아 레슬러가 참여한 금메달 매치에서 심판에게 사인을 보냈다는 혐의를 받았다. 스웨덴 국제 레슬링 연맹 이사는 마미아시빌리에게 혐의를 알렸고, 마미아시빌리는 "이것이 당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협박했다. 이는 심판이 매수되었다는 이사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나온 발언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84kg급 결승에서 러시아의 알렉세이 미친이 스웨덴의 아라 아브라하미안과 대결했을 때, 마미아시빌리가 루마니아 심판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는 이유로 국제 레슬링 연맹의 징벌 위원장이었던 스웨덴의 페레 스벤슨에게 고발당했다. 스벤슨이 그 위반 행위를 마미아시빌리에게 따져 묻자, "더 이상 말하면 너에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참고로, 후에 그 심판이 1500만 엔 이상의 뇌물을 받았다는 매수가 밝혀졌다고 한다.
4.2.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 폭행 논란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미하일 마미아시빌리는 러시아 선수가 참여한 금메달 경기 중 심판에게 사인을 보냈다는 혐의를 받았다. 혐의를 제기한 스웨덴 국제 레슬링 연맹 이사에게 "이것이 당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심판 매수 증거에도 불구하고 나온 발언이었다.
2015년, 마미아시빌리는 UWW 라스베이거스 세계 선수권 대회 참석을 위한 미국 비자를 거부당했다.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마미아시빌리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러시아의 인나 트라주코바의 얼굴을 두 번 때린 혐의를 받았다. 그는 트라주코바를 때린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벌을 주려 했다고 주장했다. 트라주코바는 법적 고소를 고려했지만, 목격자들의 협력을 얻지 못했다. 마미아시빌리는 사과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구이자 크렘린과의 관계로 인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레슬링 관계자에 따르면, 여자 75kg급 동메달리스트 예카테리나 부키나도 마미아시빌리에게 폭행을 당했다. 마미아시빌리는 이초 가오리와 도쇼 사라에게 역전패한 발레리아 코브로바와 나탈리아 보로베바에게도 "죽어도 10초는 버텨야 했다"는 비판을 했다.
4.3. 기타 논란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미하일 마미아시빌리는 스웨덴 국제 레슬링 연맹 이사로부터 러시아 레슬러가 참여한 금메달 매치에서 심판에게 사인을 보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이사는 마미아시빌리에게 혐의를 알렸고, 마미아시빌리는 "이것이 당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심판이 매수되었다는 이사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나온 발언이었다. 참고로, 후에 그 심판이 1500만 엔 이상의 뇌물을 받았다는 매수가 밝혀졌다고 한다.
2015년, 마미아시빌리는 UWW 라스베이거스 세계 선수권 대회 참석을 위한 미국 비자를 거부당했다.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마미아시빌리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폴란드의 모니카 미할릭에게 패한 러시아의 63kg급 여자 레슬러 인나 트라주코바의 얼굴을 두 번 때린 혐의를 받았다. 마미아시빌리는 트라주코바를 때린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벌을 주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 스포츠계는 분노했지만, 마미아시빌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구이자 크렘린과도 관계가 있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일본 레슬링 관계자에 따르면, 여자 75kg급에서 3위였던 예카테리나 부키나도 마미아시빌리에게 폭행을 당했다.
2023년 6월, 마미아시빌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가 파리 올림픽에 난민 선수단 자격으로 출전하도록 IOC에서 제안받을 경우, 전차를 타고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