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케르 아와달라
1. 개요
바비케르 아와달라는 1917년 수단에서 태어난 정치인이다. 고든 기념 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수단 의회 하원 의장을 역임했다. 1964년 10월 혁명을 주도했고, 혁명 후 수단 대법원장이 되었으나, 수단 공산당 복권 거부 정부에 항의하여 사퇴했다. 1969년 쿠데타에 참여하여 총리 겸 외무장관, 부총리, 부통령을 역임했다. 국제 연합 회의에서 중동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말년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거주하다 201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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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일주 출신 -
시르 알하팀 알할리파
수단의 교육자, 정치인, 외교관이었던 시르 알하팀 알할리파는 교육감, 하르툼 공과대학교 학장, 교육부 장관, 대통령 고문 등을 역임하며 수단의 교육 발전에 기여했고, 1964년 혁명 이후 과도 정부 총리로 지명되었으며, 이탈리아와 영국 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
수단의 아랍 민족주의자 -
이스마일 알아즈하리
수단의 정치인이자 초대 총리인 이스마일 알아즈하리는 수단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아시카당을 결성하여 수단 독립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시절에는 수단-이집트 관계 설정, 정부 조직 구성, 남수단 통합 문제 해결, 그리고 수단 독립 선언 등의 업적을 남겼다. -
수단의 아랍 민족주의자 -
가파르 니메이리
가파르 니메이리는 1969년 쿠데타로 수단의 대통령이 되어 초기에는 사회주의 개혁과 내전 종식을 추구했으나, 후반기에는 이슬람주의 강화와 독재로 논란을 겪다 1985년 쿠데타로 축출된 수단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
하르툼 대학교 동문 -
이브라힘 아부드
이브라힘 아부드는 1958년 쿠데타로 수단을 통치한 군인이자 정치가였으나, 남부 수단 문제에 대한 강압적인 정책으로 1964년 10월 혁명으로 퇴진하며 수단 현대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
하르툼 대학교 동문 -
모함메드 아메드 마흐구브
3. 경력
아와달라는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수단 의회 하원 의장을 역임했다. 1964년에는 당시 수단을 장악하고 있던 군부에 맞서 10월 혁명을 촉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혁명이 성공한 후, 1964년부터 수단의 대법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1967년, 수단 법원이 위헌적으로 의회에서 활동을 금지했다고 판결한 수단 공산당의 복권을 정부가 거부하자 이에 항의하며 대법원장직에서 물러났다.
4. 내각
아와달라는 가파르 니메이리가 대통령이 되는 계기가 된 1969년 5월 쿠데타에 참여하였다.
가파르 니메이리가 이끄는 군사 정권 하에서 아와달라는 수단 혁명 지휘 평의회의 유일한 민간인 구성원이었다. 그는 여러 주요 직책을 역임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5. 국제 연합
1969년 9월 23일 유엔 총회 회의에서 아와달라는 미국이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이 중동에서 핵무기 사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