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철 (축구인)
1. 개요
박병철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코너킥, 프리킥, 페널티킥을 전담했으며, 30m 이상의 롱 드로인 능력을 갖췄다. 1973년 U-20 대표팀을 거쳐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럭키금성 황소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 이름 | 박병철 |
|---|---|
| 출생일 | 1954년 11월 25일 |
| 출생지 | 울산광역시 |
| 신체 | 키 175cm |
| 포지션 | 감독 (과거 공격형 미드필더) |
| 청소년 클럽 | 부산상업고등학교 (1967-1969) |
|---|---|
| 대학교 | 한양대학교 (1970-1974) |
| 클럽 | 국민은행 축구단 (1975-1976) 해군 축구단 (1977-1978) 경남버스 축구단 (1979) 해봉 (1980-1983) 부로바 SA (1983-1984) 럭키금성 황소 (1984) |
| 국가대표 | 대한민국 U-20 (1973) 대한민국 B (1976-1978) 대한민국 (1974-1979) |
| 국가대표 출장수 (골) | 55 (7) |
| 감독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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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Bak Byeongche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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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중학교 동문 -
박성화
박성화는 K리그 우승과 MVP 수상, 국가대표로 활약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프로팀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 등의 성과를 냈으나 논란도 있었던 인물이다. -
남창중학교 동문 -
이석현 (축구 선수)
이석현은 선문대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데뷔하여 FC 서울,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등에서 활약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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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베스트
조지 베스트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나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다 59세에 사망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벨파스트 공항 이름이 변경되고 초상이 그려진 지폐가 발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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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천
박이천은 대한민국 축구 선수로서 양지, 상무, 국민은행에서 활약하며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국가대표팀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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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허정무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선수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국가대표로 104경기 30골을 기록했으며,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 차례 역임하며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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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증
조영증은 전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제일 은행, 포틀랜드 팀버스, 시카고 스팅, 럭키금성 황소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하며 A매치 113경기에 출전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행정가로 활동했다.
2. 유소년 시절
본래 운동에 소질이 있었지만 공부에도 소질이 있었던 데다 집안의 장손이었기에 아버지의 반대로 중학생 때까지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지 못하였다. 하지만 부산상업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본 시험에서 떨어졌고, 당시 부산상업고등학교는 흔히 '출세의 지름길'이라고도 불렸으며 집안에도 부산상업고등학교 출신 인물이 여럿 있었기에 어떻게든 부산상고에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의해 축구 특기생으로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우게 되었다.
3. 클럽 경력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팀들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었지만, 당시 집안의 장손이기 때문에 대학을 가야한다는 집안의 권유로 한양대학교 축구부에 입단하였다. 이후 럭키금성 황소(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1984시즌 활약하였다. 대표팀 은퇴 이후에는 해외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잠시 홍콩 무대에서 뛰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박병철은 1973년 U-20 대표팀에 처음 소집된 후 곧바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주전으로 활약했다. 프리킥 등 대표팀의 전담 키커로도 활약했으며, 독일 보루시아 베를린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군 문제로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다.
4.1. 국제 대회
박병철은 1978년 제7회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5. 플레이 스타일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며, 정확도 높은 킥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코너킥, 프리킥, 페널티킥을 전담했다. 왕성한 활동량, 힘, 슈팅 파워 역시 그의 장점이었다. 30m 이상의 롱 드로인도 대표팀의 중요한 공격 옵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