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
1. 개요
FC 서울은 1983년 창단하여 대한민국 프로축구단 중 다섯 번째로 출범한 구단이다.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시작하여 충청도를 연고지로 하였으며, 1990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를 거쳐 2004년 FC 서울로 명칭을 변경했다. K리그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으며, 2010년에는 K리그와 리그컵을 모두 우승하는 2관왕을 달성했다. 최용수, 황선홍, 박진섭 등 여러 감독을 거쳤으며, 2021년에는 박진섭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 클럽 이름 | FC 서울 |
|---|---|
| 풀 네임 | FC 서울 |
| 원어 표기 | FC 서울한국어 |
| 영어 명칭 | Football Club Seoul |
| 별칭 | Black & Reds |
| 창단 | 1983년 |
| 이전 명칭 | 럭키금성 황소 (1983–1989) LG 치타스 (1990–1995) 안양 LG 치타스 (1996–2003) |
| 연고지 | 서울특별시 |
| 홈 경기장 | 서울월드컵경기장 |
| 수용 인원 | 66,704명 |
| 법인 | GS그룹 |
| 구단주 | 허태수 |
| 사장 | 여은주 |
| 단장 | 유성한 |
| 감독 | 김기동 |
| 리그 | K리그1 |
| 시즌 | 2024 시즌 |
| 순위 | 4위 |
| 현재 시즌 | FC 서울 2024 시즌 |
| 웹사이트 | fcseoul.com |
| 색상 | 빨간색 검은색 |
|---|
| 홈 유니폼 | 패턴 상의: _fcseoul20+21h 패턴 하의: 패턴 양말: _redtop 색상 상의: #FFFFFF 색상 하의: #000000 색상 양말: #000000 |
|---|---|
| 원정 유니폼 | 패턴 상의: _fcseoul19-21a 패턴 하의: 패턴 양말: _fcseoul19-21a 색상 상의: #FFFFFF 색상 하의: #FFFFFF 색상 양말: #FFFFFF |
| 서드 유니폼 | 패턴 상의: _seoul24t 패턴 하의: 패턴 양말: 색상 상의: #330000 색상 하의: #330000 색상 양말: #E60000 |
| K리그1 | 6회 |
|---|---|
| FA컵 | 2회 |
| 리그컵 | 2회 |
| 슈퍼컵 | 1회 |
| 마스코트 | 씨드 & 서울이 |
|---|
| 브랜드 가치 평가 | 전 세계 클럽 브랜드 평가 62위, K리그 최고 (2012년) |
|---|---|
| 슬로건 | Soul of Seoul, FC SEOUL (2007년) |
-
대한민국의 축구단 경기 -
수원 FC
수원 FC는 2003년 수원시청 축구단으로 창단되어 내셔널리그를 거쳐 K리그에 참가, K리그1에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며 수원 더비 등 다양한 경기를 치르고, 2010년 내셔널리그 우승을 포함한 컵 대회 우승 경력을 보유한 수원시 연고의 프로축구단이다. -
대한민국 FA컵 우승 구단 -
성남 FC
1988년 창단되어 K리그 3연패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으나 시민구단 전환 후 재정적 어려움과 구단 매각 논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프로축구단이 성남 FC이다. -
대한민국 FA컵 우승 구단 -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는 1979년 새한자동차 축구단으로 시작하여 대우 로얄즈를 거쳐 2005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으로, 대우 로얄즈 시절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과 K리그1 4회 우승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으며 현재는 조성환 감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
K리그1 우승 구단 -
성남 FC
1988년 창단되어 K리그 3연패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으나 시민구단 전환 후 재정적 어려움과 구단 매각 논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프로축구단이 성남 FC이다. -
K리그1 우승 구단 -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는 1979년 새한자동차 축구단으로 시작하여 대우 로얄즈를 거쳐 2005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으로, 대우 로얄즈 시절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과 K리그1 4회 우승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으며 현재는 조성환 감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2. 역사
FC 서울은 1983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창단하여 1985년 K리그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1991년 LG 치타스로 구단명을 변경했다. 1996년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안양 LG 치타스로 구단명을 변경했고, 2000년 K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04년 다시 서울로 복귀하며 현재의 FC 서울로 구단명을 확정했다.
2006년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고, 2010년 K리그와 리그컵에서 동시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2012년에는 K리그 최다 승점, 최다승 우승 기록을 세우며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2013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15년 FA컵 우승, 2016년 K리그 우승 등 2010년대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성적 부진을 겪으며 감독 교체가 잦았고, 2018년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경험했다. 2020년에는 5연패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부진을 겪기도 했다.
FC 서울의 주요 역사 (요약)
| 연도 | 대회 | 결과 |
|---|---|---|
| 1983년 | - |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 창단 |
| 1985년 | K리그 | 우승 |
| 1990년 | K리그 | 우승 (최초 서울 연고 구단) |
| 2000년 | K리그 | 우승 |
| 2006년 | 리그컵 | 우승 |
| 2010년 | K리그, 리그컵 | 더블(우승) |
| 2012년 | K리그 | 우승 (최다 승점, 최다승) |
| 2013년 | AFC 챔피언스리그 | 준우승 |
| 2015년 | FA컵 | 우승 |
| 2016년 | K리그 | 우승 |
2.1. 구단 창단과 초창기 (1983–1989)
FC 서울은 1983년 8월 18일 구단 공식 창단 발표 후 1983년 12월 22일 공식 창단식을 거행하고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대한민국의 프로축구단 가운데 다섯 번째로 정식 출범하였다. 창단 연고지는 충청도를 배정받았으며 마스코트는 황소를 선정하였다.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프로축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기획조정실이 주축이 되어 1982년부터 면밀한 준비 작업을 했으며, 서울특별시를 창단 연고지로 하여 출범할 계획이었지만, 당시 대한축구협회 수퍼리그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충청도를 연고지로 배정하였다.
창단 첫 시즌에는 리그 8개 구단 중 7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1985 시즌에는 박세학 감독의 지휘 아래 태국 출신 피아퐁 등의 활약에 힘입어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첫 번째 K리그 트로피를 얻게 되었다. 피아퐁은 K리그 득점왕과 K리그 도움왕을 동시에 수상했다.
2.2. 서울과 안양 시대 (1990–2003)
1988년 초부터 창단 당시 원했던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했고, 1989년 10월 16일 프로축구 특별위원회에서 충청도에서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이 승인되었다. 1990년 도시지역연고제 시행과 함께 서울운동장 (현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해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 특히 1990 시즌 우승은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서울 연고지 프로축구단의 우승으로 기록되었다. 1991년 모기업의 사명 변경과 함께 "LG 치타스"로 구단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서울 연고지 정착을 위해 다양한 팬서비스와 경품 제공, 개략적인 구단 소식을 전해주는 구단 소식지 '치타스 가족' 발간, 당시 같은 서울 연고 구단이었던 일화·유공 구단들과 공동 마케팅, 서울 지역 축구동호회들과의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여 LG치타스배 축구대회 개최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서울 축구전용구장 건설과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추진한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의해 서울을 떠났다. 1995년 말까지 서울에 전용구장 건립계획 수립이라는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서울 잔류 조건을 내건 이 정책에 구단은 합의했으나, 그 후 구단이 번복한 후, 잔류시 연맹의 리그 제외 방침과 청와대의 이전지침 하달로 강제시행되었다. 후일 FC 서울 단장은 서울을 연고로 하다 등 떠밀리듯 안양으로 옮겼다고 언급하였다. 구단은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 중 마지막까지 서울 연고 고수를 강력희 희망하였고, 팬들 역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지만, 결국 서울 연고지에서 나와 1996년 4월 연고지를 서울의 위성 도시인 안양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구단 공식 명칭을 "안양 LG 치타스"로 변경했다.
그 후 2000 시즌 최용수 선수의 대활약으로 K리그에서 우승하여 구단 통산 세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조별 예선을 통과한 후 에스테글랄 FC를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패하여 우승컵은 따내지 못했다.
2003년 2월 26일 창단 20주년 기념 행사의 의미로 숫자 '20'과 함께 역동적인 선수와 볼을 애니메이션으로 형상화한 창단 20주년 기념 엠블럼을 제작 발표했다.
2.3. 서울 시대의 재개막 (2004–2006)
1998년 11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최한 프로축구 발전을 위한 공청회에서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인 서울 연고지 활용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99년 11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을 철폐하고 서울 연고 구단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안양 LG 치타스는 서울 복귀를 추진하기 시작한다.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서울을 연고로 한 프로축구단 없이는 한국 프로축구 발전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2002년 FIFA 월드컵을 통한 축구붐을 바탕으로 서울 연고 구단 창단에 kt, 금호그룹, 한화그룹,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의 대기업 유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신규 구단 창단이 실패하고 서울월드컵경기장 활용 문제가 제기되자, 서울시는 2004년 1월 15일 100억원 지원금을 포함한 모집 공고를 냈지만, 신청 기업이 없어 무산되었다. 이에 서울시는 1월 29일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통해 서울 연고 구단을 만들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한편, 안양시의 축구전용구장 건설 약속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안양 LG 치타스는 2004년 2월 2일 서울 복귀를 공식 선언했고, 축구계의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2004년 2월 6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는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허용하는 안을 승인했다. 안양 LG 치타스와 부산 아이콘스가 연고지 이전 의향서를 제출했고, 부산 아이콘스가 철회하면서 2004년 3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는 안양 LG 치타스의 서울 입성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후 구단 명칭에서 기업명을 제외하기로 결정하고, 2004년 3월 19일 공모를 통해 FC 서울로 구단 공식 명칭을 변경했으며, 3월 29일 서울특별시와 연고지 협약을 체결했다. 2004년 LG그룹과 GS그룹의 분리로 FC 서울은 GS그룹 산하 (주)GS스포츠로 운영 주체가 변경되었다.
2005 시즌에는 박주영이 입단하여 '박주영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 시즌 최다 관중(45만 8605명)을 기록했다. 2006 시즌 삼성 하우젠컵 2006에서 우승하여 구단 역사상 첫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다. K리그 챔피언십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성남 일화 천마에 0:1로 패배하여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2.4. 귀네슈 감독 체제 (2007–2009)
2002 FIFA 월드컵에서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3위를 달성한 셰놀 귀네슈 감독이 2007 시즌을 앞두고 FC 서울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K리그 25년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 기록이자, 국내 프로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단일 경기 사상 최다인 55,397명의 입장 관중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07년 10월 14일에 벌어진 삼성하우젠 K리그 2007 최종 라운드에서 대구 FC에게 0-1로 패하여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8 시즌에는 기성용, 이청용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 후반기 18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는 등 리그 상위권을 유지했다.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했고,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를 4-2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1, 2차전 합계 2-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7년 만에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9 시즌 개막전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6-1로 대파했으나, 2라운드 홈에서 강원 FC에게 1-2로 패하기도 했다. AFC 챔피언스리그 2009에서는 감바 오사카, 산둥 루넝, 스리위자야 FC와 함께 F조에 속했는데, 조별리그 통과가 어려운 상황에서 감바 오사카를 2-1로 꺾고, 스리위자야 FC가 산둥 루넝을 4-2로 이겨준 덕분에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진출했으나, 움 살랄과의 8강전에서 1차전 안태은의 골라인을 넘은 중거리슛이 골로 인정받지 못하는 불운 속에 합계 4-3으로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정규 리그에서는 3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 6강 PO에서 패하며 최종 순위 5위로 시즌을 마쳤다. 2009년 11월 24일 계약 기간이 만료된 귀네슈 감독은 팀을 떠났으며, FC 서울 홈페이지에 작별 편지를 남겨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귀네슈 감독은 비록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패스를 중시하는 매력적인 공격 축구를 선보이며 언론과 팬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5. 빙가다 감독 체제 (2010)
넬루 빙가다 감독은 귀네슈 감독 사임 이후 2009년 12월 14일 FC 서울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빙가다 감독은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통해 김승용, 이상협, 김치곤, 심우연을 이적시키고, 기성용은 셀틱 FC로 보냈다. 대신 현영민, 방승환, 최효진, 이현승, 이규로, 하대성, 김용대 등을 영입했다.
2010 K리그 개막전에서 대전 시티즌을 5-2로 대파하며 2년 연속 개막전 대승을 기록했다. 2010년 3월에는 호주 국가대표 수비수 사이먼 콜로시모 영입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2010년 5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남 일화 천마와의 쏘나타 K리그 2010 경기에는 60,747명의 관중이 입장하여 프로스포츠 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포스코컵 2010에서는 대구 FC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결승에 진출, 전북 현대 모터스를 3-0으로 완파하며 빙가다 감독 부임 후 첫 우승을 달성했다.
K리그 정규시즌에서는 20승 2무 6패, 승점 62점으로 1위를 차지하며 역대 정규시즌 최고 승점을 기록했다. 또한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60,747명), 단일 시즌(K리그 정규시즌, 포스트시즌-K리그 챔피언십, 리그컵) 최다 총 관중 신기록(546,397명) 등 많은 관중 관련 기록들을 경신하며 K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평가받았다.
2010 K리그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를 1승 1무로 꺾고 10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시즌 총관중 50만 명을 돌파했다.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는 56,759명의 관중이 입장하여 K리그 역대 챔피언결정전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2010년 12월 13일, 빙가다 감독과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 빙가다 감독은 포르투갈로 출국했고, 1년 만에 FC 서울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6. 황보관 감독 체제 (2011)
넬로 빙가다 감독의 후임으로 2010년 12월 28일 황보관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면서 황보관 감독 체제가 출범하였다. 정조국, 김진규 등이 이적하고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 등이 군 입대를 하여 전력 공백이 우려되었으나, 몰리나, 김동진, 제파로프를 완전 영입하면서 전력 보강을 하였다. 그러나 2011 시즌 초반 1승 3무 3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리그 순위가 한때 15위까지 떨어지는 부진에 시달렸고, 이에 책임을 지고 황보관 감독이 2011년 4월 26일 자진 사퇴하였다.
2.7. 최용수 감독 체제 1기 (2011–2016)
황보관 감독의 사임과 동시에 최용수 수석 코치가 2011년 4월 26일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였다. 최용수 감독 대행은 데뷔전인 4월 30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을 역전승으로 이끌며 빠르게 팀을 수습하였고, 시즌 중 구단 최다 연승인 7연승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K리그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에 패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지 못하고 최종 순위 5위로 리그를 마감했다. 하지만 구단은 감독 대행 기간 동안 팀을 정상화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준 것을 높게 평가하여 2011년 12월 9일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최용수는 FC 서울의 제10대 감독이 되었다.
정식 감독 첫해인 2012 시즌에는 선배인 박태하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와 박희도, 김주영 등을 영입했고, 김진규가 1년 만에 구단으로 돌아왔다. 구단 내부에서는 시즌 목표를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확보권인 3위로 잡았고, 시즌 전 네이버 스포츠가 실시한 축구 전문가 및 축구전문기자의 시즌 예상에서 서울을 우승 후보로 단독 지목한 전문가는 1명 밖에 없었다. 시즌 개막 초 최용수 감독과 데얀과의 불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좋지 않게 시즌 초반을 보냈으나 이를 원만히 해결하고, 이후 시즌 내내 기복없는 전력을 발휘하며 29승 9무 6패, 승점 96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종료 3경기를 앞두고 조기 우승을 확정하였고, 역대 최다 승점과 역대 최다승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구단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이번 우승으로 최용수 감독은 K리그 역사에서 최초로 한 클럽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번째 축구인이 되었다. 또한 2012 시즌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데얀의 K리그 최우수선수상 및 최다 관중을 기록한 클럽에게 주는 풀 스타디움상 등 개인·구단 등 각종 부문에서 13개의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최대 라이벌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2013 시즌 지난 시즌 우승의 후유증으로 리그 전반기 부진을 겪었지만 여름부터 구단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인 리그 7연승을 기록하여 다시 선두권에 복귀 하였고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결승전에 진출했던 것에 이어 11년 만인 2013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결승전에 진출하며 다시 한 번 구단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정상 등극을 노렸다. 결승전에서 광저우 헝다와 1, 2차전 모두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접전을 벌였으나 원정 다득점 규칙으로 인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4 시즌을 앞두고 아디가 은퇴함과 동시에 데얀, 하대성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을 이적시켰다. 몰리나 역시 이적을 추진하였으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결렬되어 최종적으론 잔류하게 되었다. 떠난 선수들을 대체하기 위해 하파엘, 이웅희, 오스마르 등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여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들어갔다. 전반기에는 하파엘 등 새로 영입된 선수들의 부진으로 강등권까지 내려가는 모습을 보였으나, 여름 이적 시장 전후로 몰리나가 부상에서 돌아오고 에벨톤 등이 합류하는 등 호재가 나타나 성적이 반등하기 시작하였다.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는 제주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극적으로 3위를 차지하여 AFC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 플레이오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한편 2014년 7월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된 바이엘 04 레버쿠젠과의 친선 경기에 앞서 창단 3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FC 서울의 역대 추억의 올드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우리동네 예체능의 예체능팀과 축구 맞대결을 펼치기도 하였다.
2015 시즌 첫 경기로 열린 2015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3라운드에서는 하노이 T&T를 7대0으로 대파하여 본선에 진출하였다. 이후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광저우 헝다, 가시마 앤틀러스, 그리고 2014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와 한 조에 편성됐고,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전에서 오심으로 골이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꺾으며 죽음의 조에서 탈출하여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하였다. 2015년 3월 10일 알샤바브에서 뛰던 박주영이 2008년 이후 7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FA컵 결승전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3대1로 제압하고 17년만의 FA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32강전부터 90분 이내 5전 전승의 완벽한 우승이었으며 주장인 차두리 선수가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팀의 부주장인 오스마르는 K리그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전 경기(38경기)를 소화하였으며 이 기록으로 연말 리그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2016 시즌 중국 슈퍼리그에 진출하였던 데얀 다먀노비치가 복귀하며 과거 최용수, 김동진, 정조국, 박주영 등 팀에서 스타로 성장하여 해외 진출 후 다시 친정팀으로 복귀하는 클럽 전통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하였다. 그리고, 주세종, 유현 등 선수를 영입하여 리그에서 연승행진을 달렸다.
작년부터 장쑤 쑤닝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아온 최용수 감독은 장쑤의 끈질긴 구애에 2016년 6월 22일 안산 무궁화와의 2016년 FA컵 16강전에서 고별 경기를 가진 후 공식적으로 감독직을 내려놓고 장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선정된 황선홍 감독이 유럽에서 귀국하기 전에, 김성재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이 되어 2016년 6월 25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클래식 원정경기를 담당했다.
2.8. 황선홍 감독 체제 (2016–2018)
2016년 6월 21일, 최용수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의 장쑤 쑤닝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황선홍 감독이 FC 서울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해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전년도 우승팀 전북 현대 모터스를 1-0으로 꺾고 4년 만에 6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ACL 2016 16강에서는 우라와 레즈(일본)를 상대로 원정 1차전에서 0-1로 패했지만, 홈 2차전에서 3-2로 승리하여 합계 3-3(PK 7-6)으로 8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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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도 황선홍 감독 체제가 유지되었지만, 리그 5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18년 시즌 초반 부진한 성적을 거듭하다가 4월 30일 황선홍 감독이 자진 사임하였다.
2.10. 최용수 감독 체제 2기 (2018–2020)
2018년 10월 11일, 최용수 감독이 FC 서울의 12번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최용수 감독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FC 서울을 이끈 경험이 있었다. 2018 시즌 FC 서울은 11위를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고, 부산 아이파크를 합계 4-2로 꺾고 1부 리그에 잔류했다.
2020 시즌 FC 서울은 22년 만에 처음으로 5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을 겪었다. 최용수 감독이 다시 팀을 떠난 후, 김호영, 박혁순 감독 대행이 차례로 팀을 이끌었으며, 박혁순 감독 대행 체제에서 K리그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후 이원준 감독이 새로 부임하여 2020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치앙라이 유나이티드를 5-0으로 대파하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남은 세 경기를 모두 패하며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2020년 10월 30일에는 수비수 김남춘 선수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1 최종전 하루 전날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며 힘든 시즌을 마무리했다.
2.11. 박진섭 감독 체제 (2021)
2021년 9월 6일 박진섭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