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호
1. 개요
박춘호는 대한민국의 국제법학자이다. 전라남도 순창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 복무 중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추었으며, 학업을 마치고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국제법, 해양법, 에너지법 분야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학술원상, 금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했다.
| 이름 | 박춘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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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30년 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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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2008년 11월 12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남도 남원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대학교수,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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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탑산업훈장 수훈자 -
오명 (정치인)
오명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전두환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요직을 역임하며 한국통신 민영화에 기여하고 아주대학교, 건국대학교 총장, 동아일보 회장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공학자이자 정치가, 행정가이다. -
금탑산업훈장 수훈자 -
김연수 (1896년)
김연수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이자 삼양그룹 창업주로, 기업 경영, 교육 사업, 해외 진출, 제조업 발전, 사회 공헌 활동에 기여했으나 친일 행위 논란이 있으며, 현재 삼양그룹은 그의 손자가 이끌고 있다. -
1930년 출생 -
오극렬
오극렬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북한 핵심 요직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군사 및 정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불법 활동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1930년 출생 -
강능수
강능수는 일제강점기 평양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문화상과 내각 부총리를 지낸 북한의 정치인이자 문학가이다. -
남원시 출신 -
김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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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출신 -
류락진
류락진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남로당, 통일혁명당, 구국전위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으며, 서예가로 활동하다 2005년에 사망했다.
2. 생애
박춘호는 전라도 지리산 자락 평촌리 출신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순창농림중학교(현 순창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 전쟁 발발로 휴학했다. 군 복무 중에는 서남지구 전투사령부에서 통역장교로 활동하며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1955년 전역 후 서울대학교에 복학하여 1959년에 졸업,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문교부(현 교육부) 영어담당 편수관으로 특채되었다. 1965년과 1966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언어학 석사 및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어린 시절 바다를 동경하여 선원이 되고자 했으나 몸이 약해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1967년 두 번째 영국 유학길에 올라 1971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귀국 후 고려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다 1986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되어 1995년까지 국제법을 가르쳤다. 1996년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 2005년 재선되었다. 1997년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세계국제법학술원 정회원으로 위촉되었다. 2007년부터 2008년 별세할 때까지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장을 역임했다.
2.1. 유년기와 청년기
전라도 지리산 자락의 벽촌인 평촌리(坪村里)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해방 후 순창농림중학교(현 순창제일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그해 한국 전쟁이 발발해 휴학하였다.
군에 입대하여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통역장교로 복무하였다. 당시 미군의 전쟁고아 복지사업을 지원하면서 거의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2.2. 학창 시절
전라도 지리산 자락의 벽촌인 평촌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방 후 순창농림중학교(현 순창제일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그해 한국전쟁이 터져 휴학하였다.
군에 입대하여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통역장교로 복무하였다. 당시 미군의 전쟁고아 복지사업을 지원하면서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1955년 전역 후 서울대 정치학과에 1학년으로 복학하여 1959년에 졸업하였다. 뛰어난 영어 실력 덕분에 문교부(현 교육부) 영어담당 편수관으로 특채되어 근무하다가 1965년과 1966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언어학 석사 및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회고록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절 산골 소년이 여수의 친척 집에 갔다가 남해 바다를 보고 바다를 동경하게 되었다.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돌아다니는 꿈을 품고 내성적인 성격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한편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선원이 되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 이를 단념하고 대신 열심히 공부해 바다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학업에 정진하였다.
1967년 문교부 편수관을 사직하고 노모 등 다섯 식구를 셋집에 남겨둔 채 두 번째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하루 4시간만 자고 도서관에서 연구에만 전념한 끝에 1971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3. 국제법학자로서의 활동
1982년 귀국한 박춘호는 고려대학교 등 여러 학교에 출강하던 중 1986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1995년까지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1996년에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독일 함부르크 소재)의 21명의 초대 재판관 선거에서 제1차로 압도적 다수표를 얻어 9년 임기의 재판관으로 선출되었으며, 2005년 재선되었다.
1997년 고려대 국제대학원의 석좌교수로 위촉되었고 세계국제법학술원 제68차 총회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정회원에 당선되었다.
2007년부터 2008년 별세할 때까지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3. 저서 및 상훈
=== 저서 ===
* East Asia and the Law of the Sea영어 서울대 출판부, 2000.
* 지리산골에서 세계의 바다에서한국어 (자전적 에세이), 문학사상사, 1998.09.
* 지해문집(之海文集) IㆍII한국어 (회갑기념논문집), 박춘호박사 문집 간행위원회, 1990.07.
* 국제법, 해양법, 에너지법에 관한 영문 저서 및 편저, 논문 다수
=== 상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