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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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방순원(方順元, 1914년 1월 2일 ~ 2004년 10월 21일)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본관은 온양(溫陽), 호는 온산(溫山)이다.
생애충청남도 천안군 출신으로 선린상업고등학교와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법원 서기 및 통역생으로 일하며 법조계에 들어섰다. 1940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함흥지법 사법관 시보를 거쳐 1943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판사로 임용되었다. 1945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장을 지냈고, 미군정 하에서도 판사로 근무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제1공화국 수립과 함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취임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1961년부터 1973년까지 대법원 대법관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들을 가르쳤다. 대양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세종대학교 이사로도 활동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조무제 전 대법관과 함께 '3대 청빈법관'으로 꼽힌다. 평판사 시절부터 도배할 돈이 없어 신문지로 도배하거나, 쌀이 없어 부인이 동료 법관 집에 쌀을 빌리려 다녔다고 한다. 대법관 재직 시절에는 대법원장이 예산을 집행하고 남은 돈을 대법원 판사들에게 수당으로 나눠주자 재량권 남용이라며 반납했다고 한다. 법조인의 사표로서 한국법률문화상, 청조근정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만 60년간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생애에 가장 기뻤던 일은 복음을 전했던 일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88세의 고령에도 무료 법률 상담을 위해 매일 일터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변호사로서 수입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사회 봉사자로서 역할을 감당하고자 노력했으며, 신앙인으로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선교활동을 했고, 가진 것 없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을 주님의 뜻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학력
-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 경성법학전문학교 졸업
경력
- 함흥지방법원 사법관 시보
-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판사
-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장
-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대법원 대법관
- 사법연수원 교수
- 대양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세종대학교 이사
수상
- 한국법률문화상
- 청조근정훈장
- 국민훈장 무궁화장
저서
- 신민사소송법
기타
- 새문안교회 장로로 활동했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재판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의해 납북된 피해자 중 한명이다.
방순원은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 법조계에서 활동한 인물로, 청렴한 법관으로 기억되지만 친일 행적과 관련된 논란도 있는 인물이다.
방순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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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방순원 |
출생 | 1933년 |
사망 | 2004년 10월 22일 |
직업 | 대한민국의 법조인 |
경력 | |
주요 경력 | 대법원 판사 변호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
기타 경력 | 사법연수원 교수 |
기타 | |
별세 | 2004년 10월 22일 |
출판사 | 조선일보 |
날짜 | 2004년 10월 22일 |
쪽 | A30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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