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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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창간된 대한민국의 보수 성향 일간 신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지로서 일제에 저항했으며, 해방 후에는 보수 언론으로서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발행 부수 및 구독률에서 국내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나, 친일 행적 논란, 왜곡 및 편파 보도, 불신 받는 언론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자매 언론기관으로 주간조선, TV조선 등이 있으며, 온라인 서비스와 다양한 부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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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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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조선일보 |
로마자 표기 | Joseon Ilbo |
한자 표기 | 朝鮮日報 |
종류 | 신문 |
형식 | 광폭 신문 |
창간일 | 1920년 3월 5일 |
창립자 | 신소구 |
소유주 | 조선미디어 |
정치 성향 | 우익 보수주의 반공주의 |
역사적 정치 성향 | 극우 친군부 친일파 친제국주의 |
본사 | 서울특별시 중구 |
회장 | 방상훈 |
편집장 | 박두식 |
언어 | 한국어 |
웹사이트 | chosun.com (한국어) english.chosun.com (영어) |
구독자 수 | 5,262,070명 뉴스 구독자 4,000,000명 이상 디지털 전용 1,212,208명 인쇄물 49,862명 어린이용 인쇄물 |
기업 정보 | |
회사 형태 | 주식회사 |
회장 | 방상훈 |
대표이사 사장 | 방준오 |
대표이사 부사장 | 홍준호 |
장소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30 (태평로1가) |
서비스 | 신문 발행업 |
자본금 | 18,020,000,000원 (2019년 12월 기준) |
매출액 | 299,130,897,253원 (2019년 기준) |
영업 이익 | 30,120,594,938원 (2019년 기준) |
순이익 | 25,444,188,359원 (2019년 기준) |
자산 총액 | 597,324,041,776원 (2019년 12월 기준) |
주요 주주 | 방상훈 30.03% 방성훈 16.88% 방일영문화재단 15% 방우영 12.08% 그 외 주주 26.01% |
모기업 | 조선미디어그룹 |
자회사 | 디지틀조선일보 조선방송 조선뉴스프레스 조선미디어렙 |
직원 수 | 479명 (2016년 12월 기준) |
간행물 정보 | |
간행 주기 | 일간 |
종류 | 전국판 종합일간신문 |
판형 | 타블로이드배판 |
발행인 | 홍준호 |
가격 | 1부 1,000원, 월 20,000원 |
발행지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21길 30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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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창간되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동아일보와 달리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띠며, 신간회 결성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80] 홍명희, 박헌영 등 사회주의자들이 참여하여 사회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에는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 보수주의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들이 모여 민족의 '정신적 정부'를 자임했다. 남궁훈, 이상재, 신석우, 안재홍, 조만식 등은 조선일보 사장을 역임한 민족 지도자들이었다.[82]
1940년 조선총독부의 민족 말살정책으로 폐간되었으나, 1945년 11월 23일 복간되었다. 김구는 '有志者事竟成(유지자사경성)' (뜻을 가진 자는 마침내 이룬다)는 친필 휘호로 복간을 축하했다.[77]
해방 이후 조선일보는 한국독립당과 김구를 지지했으며,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노선을 따랐다. 1948년 이승만 정부 출범을 지지했고, 6.25 전쟁 발발 전까지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강력히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제정 시에는 남용 가능성을 비판하며 사용 규범을 제시했다.
6.25 전쟁 중에는 인민군 기관지로 전락했으나, 1950년 10월 1일 국군이 38선을 돌파하면서 대한민국 기관지로 복귀했다. 1954년부터는 보수주의 성향이 강해져 대한민국과 UN 등 국제 자유 진영을 지지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당시에는 국민 편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며 하야를 이끌어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출범을 지지했다.
1964년부터 1969년까지 최석채 주필 재직 시기에는 박정희 정부에 비판적이고 사회적 약자와 노동운동 세력에 우호적이었으나, 1969년 3선 개헌 이후 보수 성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적극 찬양하고 지지했다.
1972년 3월 5일 52주년 기념호에서 독자 50만 명 돌파를 선언했고, 1974년 미국 ASI 조사 결과 정기구독자 비율 1위를 차지했다.[78] 1979년 2월 발행부수 100만 부, 1991년 200만 부를 돌파했다. 1999년 3월 2일 전면 가로쓰기를 도입했다.[17]
2. 1. 창간과 일제강점기 (1920-1945)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3월 5일 대정실업친목회에 의해 창간되었다.[10] 창간 당시 대정실업친목회 부회장이었던 조진태가 초대 사장을 맡았다.[15] 그러나 대정실업친목회가 약속했던 자본금 납입을 하지 못하면서, 5개월 만에 관계가 결렬되었고, 조진태는 1920년 8월 15일 물러나고 변호사 출신 유문환이 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15]창간 한 달 만인 그 해 4월 28일자에는 영친왕과 일본 왕족인 이방자와의 강제결혼을 비판하는 기사로 인해 압수 당했다. 1920년 8월 27일에는 방한한 미국 의원단을 환영하는 조선인들을 일본 경찰이 부당하게 탄압했다고 비판한 논설을 실어 1주간 정간을 당했다. 1920년 9월 5일자에는 "당국의 소위 문화 통치는 奇怪(기괴)치 아니한가"라는 논설로 인해 무기 정간을 당했다.
이후 조선일보의 항일 논조를 부담스러워하던 총독부는 1921년 4월 8일 조선일보 판권을 송병준에게 인수하도록 하였다. 독립 정신이 강했던 조선일보 편집국 분위기를 알고 있었던 송병준은 스스로 사장에 취임하지 않고, 독립투사로 유명했던 남궁훈을 사장으로 영입하였다.[76]
1921년 4월 6일, 창간 1년 만에 재정난으로 인해 휴간에 들어갔다.[15]
1924년 9월 13일,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항일 독립 신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히 했다. 4대 사장인 이상재가 취임한 후에는 신간회 결성을 주도하고 문자보급운동의 일환으로 한글 교재를 무상 배포하는 등 우리나라의 문화보전에 힘썼다.
이후 5대 사장은 조선 독립민족주의 성향의 신석우가 맡았다. 1931년에 재만동포 자금 횡령 사건에 6대 사장 안재홍이 연루되어 구속되고, 7대 사장 유진태, 8대 사장 조만식을 거쳐 1933년 9대 사장 방응모가 취임한 후 한일 학생의 교육차별을 비판하는 논설 '교육필화'로 인해 총독부에게 기사가 압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부사장이던 이광수의 영향으로 민족개량주의까지 합세하여 더욱 항일적인 신문이 되었다.
그러나 1936년부터 총독부의 개입으로 인해 항일 성향이 줄어들었으나, 이후 중일전쟁에서 일본을 평론하는 사설과 신문내용을 여러차례 보내면서 간접적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하였다. 1940년 7월 31일, 조선일보는 사설 연재의 네 번째 부분인 "미국 현실주의의 교훈"을 게재했다.[16] 그 후 조선총독부의 민족 말살정책의 표적이 되어 1940년 8월 10일[16] – 6923호 발행 후 – 일본 지배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간되었다. 창간 이후 20년 동안 조선일보는 일본 정부에 의해 네 차례나 발행이 정지되었고, 1932년 이전에 500회 이상 압수되었다. 당시 사장이었던 방응모는 월간 조광을 창간하면서까지 신문을 이어나갔다.
2. 2. 해방 이후 (1945-현재)
1945년 한국 독립 후, 조선일보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그해 11월 23일에 다시 속간되었다.[77]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는 조선일보의 복간을 축하하며 '有志者事竟成(유지자사경성)', 즉 '뜻을 가진 자는 마침내 이룬다'는 친필 휘호를 보냈다.[77]9대 사장 방응모가 한국독립당에 입당하고 반탁운동에 참여하면서, 조선일보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의 김구와 한국독립당을 지지했다.[77] 1947년 이후에는 민족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노선을 지지했다.[77]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취임하자, 조선일보는 이승만 정부의 출범을 지지했으며,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까지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강력히 주장했다. 한편,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에는 남용 소지를 비판하며 사용 규범을 제시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로 조선일보는 인민군 기관지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1950년 10월 1일 육군 제3사단의 38선 돌파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다시 대한민국 기관지로 회복되었다. 이후 북한의 남침을 비판하는 등 한국전쟁 관련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1951년부터는 이승만 정부와 대한민국 국군을 지지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 대한민국과 국군에 불리한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부터는 보수주의 색채가 강해져 대한민국과 UN 등 국제 자유 진영을 지지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조선일보는 이승만 정부의 부산 정치파동을 다루지 않고,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반공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진보당 사건 등 이승만 정권의 공안정국에는 반공주의적 기준과 이승만 정부를 옹호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또한 금성사 설립 기사와 삼성 관련 기사를 통해 대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능의선 기공식,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 완간, 가짜 이강석 사건 등을 보도하며 국민 통합에 앞장섰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이 일어나자, 조선일보는 국민 편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 제2공화국 장면 정부 수립 전에는 교원노조 운동을 지지했으나, 장면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교원노조 및 노동운동 탄압에 침묵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조선일보는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출범을 지지하고, 1961년부터 1962년까지 5.16 군사정변을 지지하는 신문을 발행했다. 민족일보 사건 등 공안사건에 대해 반공주의적 기준과 박정희 군정을 옹호하는 기사를 냈다. 삼성물산 설립, 문화방송, 한국방송 설립, 군사원호청 발족, 전국경제인연합회 설립,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발족,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발족 기사 등을 보도했다.
최석채 주필 재직 시기인 1964년부터 1969년까지 조선일보는 박정희 정부와 제3공화국에 비판적이었고, 사회적 약자와 노동운동 세력에 우호적이었다. 한일기본조약 강행, 1차 인민혁명당 사건 등의 사법처리 과정에 비판적이었다. 삼척군 해안가 간첩 사건 등 공안사건에는 반공주의적 기준으로 기사를 냈다.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에는 삼성을 비판하는 논조로 보도했다. 한국전력, 중소기업은행 설립을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1967년부터 박정희 정부에 우호적인 기사를 내기 시작했고, 박정희 대통령 재선 성공, 동백림 사건 발생 등으로 조선일보는 다시 보수언론으로 돌아갔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등 공안정국으로 보수언론으로 회귀했다.
1969년 박정희 정부의 3선 개헌 이후 조선일보는 완전히 보수 성향으로 돌아섰다. 유럽 간첩단 사건 등을 보도하고 3선 개헌 지지 보도를 했다. 대한항공 민영화, 삼성전자 설립, 현대자동차 설립, MBC 개국, 진주 남강댐 준공 등을 보도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 찬양 및 지지 기사, 사설을 게재했다.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준공, 정부중앙청사 준공, 병무청 발족, 남산1호터널 개통, MBC 뉴스데스크 첫 방송, 100원 주화 사용 기사 등을 보도했다.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 3선 지지 기사를 게재했다. 공안정국을 보도하고, 실미도 사건,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을 보도했다. 광주 대단지 사건은 정부 입장에서 보도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제4공화국이 들어서자, 조선일보는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고 지지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유신 체제 당시 포항제철 설립,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남해고속도로 개통, 호남고속도로 개통, 삼성중공업 설립, 강남-여의도 개발, 고층건물 건설, 대우중공업 설립 등을 보도했다. 민주공화당과 10월 유신 찬양 기사를 게재했다.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에서 중앙정보부를 옹호했다. 간첩 사건 등을 보도하고, 서울 어린이대공원 개장, 현대중공업 설립을 보도했다. 여간첩 채수정 사건 등 공안정국 확성기 노릇을 했다.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학도 호국단 창설 기사를 게재했다. 민방위대 창설, 부처님 오신 날, 어린이날 공휴일 제정, 영동고속도로 준공 등을 보도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한민통 간첩사건을 보도하며 공안정국 확성기 노릇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유신체제 찬양 기사를 게재했다. 신용보증기금 설립, 용인자연농원 개장, 반월 신도시 건설, KBS 여의도 사옥 설립, 태권V 개봉, 아이미 개발 기사를 게재했다.
1978년 최은희 납북 사건,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자연보호헌장 선포 기사를 게재했다. 1979년 간첩단 사건 등을 보도했다. 10.26 사건 특종 보도, 12.12 쿠데타를 보도했다.
1972년 3월 5일 52주년 기념호에서 독자 50만 명 돌파를 선언하고, 1974년 미국 ASI 조사 결과 정기구독자 비율 1위를 차지했다.[78] 1979년 2월 발행부수 100만 부 돌파, 1991년 발행부수 200만 부를 돌파했다. 1968년 《주간조선》, 1980년 《월간조선》, 1991년 《소년조선일보》를 창간했다. 1999년 3월 2일 전면 가로쓰기 체제를 도입했다.[17] 1995년 (주)디지틀조선일보를 설립, 2008년 3월 5일 ‘아이리더’ 서비스를 시작했다.[79]
3. 논조 및 성향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창립한 조선일보는 일본의 소위 문화정치가 실시되면서 동아일보와 함께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되었다. 창간 당시에는 대정친목회를 모체로 조진태 사장으로 시작하였으나, 자금력 부족으로 송병준에게 넘어갔다. 송병준은 신문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원로 언론인 남궁훈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1924년 남궁훈은 민족주의자였던 신석우가 인수해 민족의 사표(師表)로 추앙 받던 이상재를 추대할 때까지 사장으로 재임했다.[81] 이때 조선일보는 일제와 타협적이던 동아일보와는 달리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띠었다. 좌파와 우파가 연합한 최대 독립운동조직 신간회 결성을 주도했으며, 홍명희, 박헌영, 김단야 등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입사하면서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후 경영 악화로 조만식을 거쳐 방응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고,[81] 보수적인 언론인들이 조선일보사를 주도하면서 보수주의 관점에서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일제시대 초기 조선일보에는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 보수주의자 등 각 분야의 최고 엘리트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민족의 '정신적 정부'를 자임했다. 남궁훈, 이상재, 신석우, 안재홍, 조만식 등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이들은 민족 지도자들이었다. 일제를 규탄하고 총독 암살을 계획했던 독립운동가 방한민(方漢旻), 일제의 조선인 학살 현장에 달려가 목숨걸고 취재한 이석, 한홍정 등은 펜으로 일제의 총칼에 직접 맞선 행동파였다. 독일 유학 후 혁명의 모스크바로 파견된 김준연, 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에서 학력을 쌓은 이관용, 미국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훈구, 중국 내전 현장을 누빈 이상철, 홍양명, 홍종인 등은 세계 정세와 선진 문물을 알리는 전령사들이었다.[82]
해방 이후, 9대 사장 방응모는 한국독립당 입당과 반탁운동 가담을 계기로 보수 성향의 김구와 한국독립당을 지지했으며, 1947년 이후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노선을 지지했다.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취임 후 이승만 정부를 지지했고,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까지 반민족 행위자 강력처벌과 처단을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에는 남용 소지를 비판하며 사용 규범을 제시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조선일보는 북한에 넘어가 인민군 기관지로 전락했지만, 1950년 10월 1일 동부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38선을 돌파하며 전세가 역전되면서 다시 대한민국 기관지로 회복되었다. 북한의 남침을 비판하는 등 한국전쟁 이슈들을 다뤘고, 1951년부터 이승만 정부와 대한민국 국군을 완전히 지지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 대한민국과 국군에 불리한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부터 보수주의 색이 강해져 대한민국과 국군을 도운 UN 등 국제 자유 진영을 지지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조선일보는 이승만 정부의 부산 정치파동을 다루지 않았고,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반공정책을 지지했다. 진보당 사건, 진공관 구입 밀수출 사건, 이승만 암살 음모 사건, 뉴델리 밀회 조작 사건, 금정산 공비 사건, 대구 매일신문 테러 사건, 박정호 간첩 사건, 김정제 간첩 사건 등 이승만 정권의 공안정국에는 반공주의 기준과 이승만 정부를 옹호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금성사 설립, 삼성 관련 기사를 통해 대기업 육성 필요성을 역설했고, 능의선 기공식,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 완간, 가짜 이강석 사건 등을 보도하며 반공주의 기반 국민 통합에 앞장섰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 이후, 제2공화국 장면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교원노조 운동을 지지했다. 그러나 1960년 장면 정부의 교원노조 및 노동운동 탄압에는 침묵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출범과 1961년부터 1962년까지 5.16 군사정변을 지지했다. 민족일보 사건, 사대당 사건, 교원노조 사건, 유족회 사건 등 공안사건에 대해 반공주의적 기준과 박정희 군정을 옹호했다. 삼성물산 설립, 문화방송, 한국방송 설립, 군사원호청,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발족 기사 등을 보도했다.
박정희 대통령 출마 이후, 최석채 주필 재직 시기(1964~1969년) 박정희 정부와 제3공화국에 비판적이었고, 사회적 약자와 노동운동 세력에 우호적이었다. 한일기본조약 강행, 1차 인민혁명당 사건, 미법도 주민 간첩단 사건, 제1차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서울대 문리대 불꽃회 사건, 분지 필화사건, 언론계 침투 무전 간첩단 사건, 경향신문 간첩사건,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 사법처리 과정에 비판적이었다. 삼척군 해안가 간첩 사건, 군내 반정부 음모사건, 진장언 하사 간첩사건, 송추 간첩사건 등 공안사건에는 반공주의적 기준을 유지했다.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은 삼성을 비판했고, 한국전력, 중소기업은행 설립은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1967년부터 박정희 정부에 우호적으로 변했고, 박정희 대통령 재선, 제2차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영호남·서해안 무전 고정간첩단 사건, 동백림 사건, 서울사범대학 독서회 사건을 거치며 보수언론으로 변화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 공안정국을 계기로 보수언론으로 전환했다.
1969년 박정희 정부의 3선 개헌 이후, 유럽 간첩단 사건, 이수근 위장간첩 사건을 보도하고 3선 개헌을 지지하며 보수 성향으로 굳어졌다. 대한항공 민영화, 삼성전자 설립, 현대자동차 설립, MBC 개국, 일간스포츠 창간, 진주 남강댐 준공 등을 보도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 찬양, 지지 기사,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준공, 정부중앙청사 준공, 병무청 발족, 남산1호터널 개통, MBC 뉴스데스크 첫 방송, 100원 주화 사용 기사 등을 보도했다.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 3선 지지,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 일본 거점 간첩단 사건, KAL기 납북미수 사건, 남파간첩 백귀남 사건 등 공안정국을 보도했다. 실미도 사건,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 보도, 광주 대단지 사건은 정부 입장에서 보도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제4공화국이 들어서자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고 지지했다. 유신 체제 당시 포항제철 설립,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남해고속도로 개통, 호남고속도로 개통, 삼성중공업 설립, 강남-여의도 개발, 고층건물 건설, 대우중공업 설립 등을 보도했고, 민주공화당과 10월 유신 찬양 기사를 썼다. 1973년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에서 중앙정보부를 옹호했고, 북제주도 우도 무장 침투 간첩단 사건, 일본 거점 귀화 간첩 사건 등을 보도했다. 전남대 불온 삐라 살포사건, 남산 부활절 예배사건, 고려대 NH회 사건, 서울대 공대 조교수 간첩사건, 나쓰야 간첩사건, 김장현 간첩사건, 김철우 조총련계 간첩사건, 서울 어린이대공원 개장, 현대중공업 설립을 보도했다. 1974년부터 1975년까지 여간첩 채수정 사건, 대전·전주 고정간첩단 사건, 문인간첩단 사건, 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 긴급조치 1,2호 위반 사건, 김영작 간첩사건, 김승효 간첩사건, 부산·경남 거점 고정간첩단 사건, 재일동포 진두현 간첩단 사건,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재일동포 김달남 간첩사건, 재일동포 유정식 간첩사건, 학원침투 유학생 간첩단 사건, 귀화 일본인 간첩단 사건, 박복순 남파 간첩단 사건, 겨울공화국 사건을 보도하여 유신체제 공안정국 확성기 노릇을 했다.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학도 호국단 창설, 민방위대 창설, 부처님 오신 날, 어린이날 공휴일 제정, 영동고속도로 준공 등을 보도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한민통 간첩사건을 보도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찬양했다. 신용보증기금 설립, 용인자연농원 개장, 반월 신도시 건설, KBS 여의도 사옥 설립, 태권V 개봉, 아이미 개발 등을 보도했다.
1978년 최은희 납북 사건,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자연보호헌장 선포 등을 보도했다. 1979년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통일혁명당 재건 음모 사건, 부산·삼천포 고정 간첩단 사건 등을 보도했다. 10.26 사건 특종 보도, 10.26 사건 이후 12.12 쿠데타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등 역사적으로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13] 2019년 4월 6일, 도이치벨레는 조선일보를 "북한에 대한 보도에서 의심스럽고 정치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것으로 악명이 높은 매체"라고 묘사했다.[18] 2019년 5월 31일, 조선일보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북한 핵 특사인 김혁철의 최고 외교관이 북한 정부의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고 보도했으나,[19][20][21][22][23][24] 이틀 후인 6월 2일, 해당 최고 외교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몇 좌석 떨어진 곳에 앉아 공연장에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25][26][27] 한국교육방송공사의 인기 강사 최태성은 자신을 북한 지지자로 매도하는 기사를 게재한 조선일보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28]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옹호 논란으로 "친일반민족행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4]
편집 성향은 보수적이며, 한국 신문 중 강경파에 속한다. 김영삼 정권까지는 정부에 우호적이었으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대에는 정부 비판 여론이 증가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는 우호적이었고,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매우 공격적이고 적대적이었다. 보수·우파층, 기득권층, 재벌, 민족주의파로부터 지지를 얻지만, 좌파, 노동조합, 친북한파로부터는 친독재·친군부·친재벌·친일파라는 비판을 받는다.
한자 부활을 주장하며, “한자 문맹 벗어나자”라는 연재 기사를 연재했다.[34] 이전에는 사설에서만 한자를 직접 사용하고 한글로 루비를 붙였으나, 2008년 1월부터는 한글 뒤 괄호 안에 한자를 넣는 표기법으로 변경되었다. 「월간 조선」은 1998년 한자 부활 캠페인을 전개했고, 「」에서는 한자 교실을 게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으로, 3대 보수 언론(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중동’으로 약칭) 중 가장 강경한 보수 논조를 취한다.[37][38][39][40] 정치적으로는 반공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성향이다.
미성년 자녀 양육을 위한 체벌을 ‘사랑의 매’로 옹호하며,[41] 동성애,[42][43] 이민, 양심적 병역 거부, 장애인과 정신질환자 인권 문제 등에서 사회보수적인 견해를 보인다.
국민보수주의적 성향으로 일본에 호의적이지 않지만, 미국 관련 외교 문제에서는 국민주의적 성향이 크지 않고 친미적이다.
4. 발행 부수 및 영향력
조선일보는 1979년 2월 발행 부수 100만 부를 돌파했고, 1991년에는 사상 최초로 발행 부수 200만 부를 돌파하였다. 1995년 (주)디지틀조선일보를 설립해 인터넷 서비스를 강화했으며, 2008년 3월 5일부터는 조선일보 지면을 PC에서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 '아이리더' 서비스를 시작하였다.[79]
한국ABC협회가 2020년 발행·유료 부수 현황을 공개한 자료에서 조선일보는 121만 부의 공식 발행 부수를 가진 국내 최대 신문이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료 부수 100만 부가 넘는 신문으로 확인되었다. 조선일보는 발행 부수 1,212,208부로 1위를 차지했으며, 유료 부수에서도 1,162,953부로 1위를 기록했다. 2위 동아일보(925,919부), 3위 중앙일보(861,984부)와는 각각 29만, 35만 부 격차였다.
2014년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는 KBS(59.6%)와 조선일보(51.2%)가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가장 열독하는 언론 매체' 조사에서는 조선일보(21.8%)가 2위를 차지했다.[88]
한국갤럽이 2013년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구 구독률에서 조선일보는 11.9%로 1위를 차지했다.[89] 발행 부수는 약 116만 부로 한국 최대이며,[32] 1989년 조사 시작 이후 2009년 현재까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구독률을 기록하고 있다.[33]
대한민국 신문 구독률 36.8% 가운데 조선일보는 11.9%를 차지했으며, 구독 점유율은 24% ~ 30%로 나타나고 있다.[84][85][86] 주간 열독률 조사에서 조선일보의 열독률은 16.2%였다. 2009년 한국ABC협회 집계에서 발행 부수는 1,844,783부였다. 2011년 기준 유료 발행 부수는 1,353,159부였다.[87] 2011년 7월부터 가판 가격은 부당 1,000원으로 인상되었으나, 월 구독료는 15,000원으로 변함없다.
5. 비판 및 논란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많은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적 편향성, 친일 행적, 왜곡 보도, 선정적 보도 등이 주요 비판 대상이다.
조선일보는 1920년 창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 정국,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권력에 영합하거나 비판하는 등 시대 상황에 따라 논조를 달리해왔다.
1945년 11월 23일 복간된 이후, 방응모 사장의 한국독립당 지지와 반탁운동 가담을 계기로 김구와 한국독립당을 지지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를 지지하며, 6.25 전쟁 발발 전까지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주장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에는 남용 소지를 비판하며 사용 규범을 제시하기도 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기관지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전세 역전 이후 대한민국 기관지로 회복되어 북한의 남침을 비판했다. 1954년부터는 보수주의 색채가 강해져 UN 등 국제 자유 진영을 지지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에는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며 하야를 이끌어냈으나, 장면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에는 침묵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지지했으나, 최석채 주필 재직 시기(1964~1969년)에는 박정희 정부에 비판적이었고, 사회적 약자와 노동운동 세력에 우호적이었다.
1969년 3선 개헌 이후에는 다시 보수 성향으로 완전히 돌아서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 체제를 찬양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1972년 3월 5일 52주년 기념호에서 독자 50만 명 돌파를 선언했고, 1974년에는 미국 ASI 조사 결과 정기구독자 비율 1위를 차지했다.[78] 1979년 2월 발행부수 100만 부를 돌파했고, 1991년에는 200만 부를 돌파했다. 1995년 (주)디지틀조선일보를 설립해 인터넷 서비스를 강화했고, 2008년 3월 5일부터는 지면을 PC에서 볼 수 있는 '아이리더' 서비스를 시작했다.[79]
2001년 1월 한국 신문 최초로 일본어 사이트를 개설했고, 2004년 6월 기준 월간 방문자 수는 약 90만 명이었다.[35]
편집 성향은 보수적으로 평가되며, 한국 신문 중에서도 강경파에 속한다. 김영삼 정부까지는 정부에 우호적이었으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비판적이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는 우호적이었으며, 문재인 정부에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한자 부활을 주장하는 신문이기도 하다. 사설에서 한자를 직접 사용하고 한글로 음을 달았으나, 2008년 1월부터는 한글 뒤 괄호 안에 한자를 넣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2002년, 검찰은 방상훈 회장을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로 기소하며 징역 7년과 벌금 120억 원을 구형했다. 방 회장은 증여세 및 법인세 포탈, 회사 자금 횡령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은 방 회장에게 조세포탈 및 회사 자금 유용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 원을 선고했다.[29]
한국신문협회는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보도를 2014년 한국신문상 뉴스취재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언론이 권력자의 탈선된 사생활을 보도하려 할 때 필요한 덕목인 용기를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94]
5. 1. 친일 행적 논란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했다는 논란으로 "친일반민족행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4]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매년 일본 천황가를 과도하게 칭찬하는 기사를 게재했다고 알려져 있다.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가 “문치정책”을 시행하자, 조진태를 중심으로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되었다. 하지만 곧 자금난으로 송병준이 경영권을 인수하고, 황성신문 편집자였던 남궁억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조선일보는 일본과 조선총독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여, 창간 한 달 만에 이은과 방자 여왕의 결혼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사를 썼다가 지면 몰수를 당했고, 이후에도 4차례 폐간 등 탄압을 받았다. 그럼에도 안창호, 이상재가 사장을 역임하고, 홍명희, 박헌영, 김단야 등 좌익 인사들이 집필을 맡는 등 독립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한글 보급을 위해 교재를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방응모 사장 시대에 총독부 교육 정책을 비판한 지면이 몰수된 후, 논조가 당국에 협조적으로 바뀌어 이봉창의 폭탄 테러를 비난하거나, 쇼와 천황, 향순황후 사진을 1면에 싣고 나카지마 지로 총독 담화를 실었다. 1940년 8월에는 총독부 언론 통제로 폐간되었다.
5. 2. 왜곡 및 편파 보도 논란
조선일보는 역사적으로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예를 들어, 남북한 간의 협력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경제력 격차를 완화하며 단절된 소통을 회복하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반대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일보는 북한으로부터 심한 비판과 위협을 받아왔다.[13]2019년 4월 6일, 도이치벨레는 조선일보를 "북한에 대한 보도에서 의심스럽고 정치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것으로 악명이 높은 매체"라고 묘사했다.[18]
2019년 5월 31일, 조선일보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북한 핵 특사인 김혁철의 최고 외교관이 북한 정부의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고 보도했다.[19][20][21][22][23][24] 그러나 이틀 후인 6월 2일, 해당 최고 외교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몇 좌석 떨어진 곳에 앉아 공연장에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25][26][27]
EBS의 인기 강사 최태성은 자신을 북한 지지자로 매도하는 기사를 게재한 조선일보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28]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옹호 논란으로 "친일반민족행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4] 2005년, 노무현 정부와 한국 민족주의 시민 운동가들은 조선일보가 친일파로서 일본 제국과 '협력'했는지 조사했다.[3] 조선일보는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매년 일본 천황가를 과도하게 칭찬하는 기사를 게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1987년까지 조선일보는 한국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도해왔다.[1]
북한 관련 보도에 대해, 조선노동당 고위 간부인 김영철, 김여정, 외교관 김혁철과 가수 현송월[45] 등이 당국의 지시에 따라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하는 듯한 오보가 많이 발생했다.[46][47]
2009년 3월 7일 자살한 배우 장자연의 유서에는 소속사로부터 언론사 사장, 방송국 감독, 재계 유력자들에게 성 접대를 강요당했다는 내용[48]과 “조선일보의 방 모 사장의 룸살롱 접대에 나를 불러 성관계를 요구하게 했다”는 등의 기록이 있었다.[49]
2018년,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장자연 자살 사건의 재수사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3월 25일에는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2만 명을 넘었다.[48] 4월 2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49]
4월 18일에는 조선일보가 사건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전 스포츠조선 사장의 증언이 보도되었다.[51]
5월 28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과거 수사가 “일관성 있는 핵심적인 목격자 진술을 배척한 채 신빙성이 부족한 술자리 동석자 진술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했다”며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했다.
6월 26일,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수사부는 “재수사 결과, 사건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목격자 진술이 일관되고, 목격자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발견되었다”며 전 조선일보 기자를 강제추행죄로 불구속 기소했다.[50][52][53]
- 2012년 9월 25일자 칼럼 “만물상”[56]에서 일본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한 데모에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가 훼손되고 짓밟힌 사실과 에도 시대의 밟는 그림 등을 언급하며 “타인을 짓밟고 쾌감을 느끼는 가학 본능이 일본인의 유전자 속에 지금도 흐르고 있는 것일까”, “일본 문화에는 예전부터 엽기적, 기괴적인 요소가 많다”는 등의 내용이 실렸다.
- 2013년 7월 3일, 일본을 정상화하려면 큐슈, 시코쿠, 오키나와의 2배에 해당하는 영토를 할양한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토를 헌상해야 한다는 칼럼을 작성하였다.
- 2013년 7월 6일에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214편 착륙 실패 사고”에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미담을 열심히 전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조종사의 조종 실수에 대한 보도는 하지 않았다.
- 2013년 8월 29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유엔헌장의 중립성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지적되었던 문제에서 일본 측은 일본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는 사무총장 측의 해명을 받아들여 결론이 났지만,[63] 이에 대해 조선일보의 이한수 기자는 ‘도둑이 제 발 저린 일본 언론’이라며 일본 측을 비난했다.[64]
- 2014년 7월 18일의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65]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방이 7시간 동안 불명확했던 것에 대해 누군가와 은밀히 만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기사를 작성했다.
- 2015년 12월 29일, 전날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합의를 1면 톱으로 보도하면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대신이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게재했지만, 실제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뒤편의 국기에 절을 한 순간을 찍은 것이었다.
- 2019년 7월 16일, 대통령비서실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일보 일본어판의 제목에 대해 “일본에서 반한 감정 고조를 부추기는 매국적인 제목을 선택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비판했다.
5. 3. 불신 받는 언론
2009년 "시사IN"이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어느 매체를 가장 불신하느냐는 질문에 중복응답을 기준으로 할 때 조선일보의 응답률이 20%에서 크게 늘어 34.2%를 차지하여[90]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제치고 1위로 나타났다. 한편 한국기자협회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현직 기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로는 한겨레가 15.4%, MBC 14.3%, KBS 11.2%, 경향신문 8.7%, 한국일보 4.0%에 이어서 조선일보는 2.4%를 차지하였다.[91]'시사IN'이 행한 '가장 불신하는 매체' 조사에서 2017년 2위, 2018년과 2019년에는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2017년 조사에서 조선일보는 '가장 불신하는 매체' 순위 2위, TV조선은 4위에 위치하였다. 2018년 조사에서는 조선일보(25%)와 TV조선(12%)이 각각 1, 2위를 차지하여 조선일보 계열이 '가장 불신하는 매체' 부문에서 약 40% 가량을 독식하였다. 2019년 조사에서도 조선일보가 1위(24%), TV조선이 3위(7%)를 차지하여 조선일보 계열은 2019년에도 '가장 불신하는 매체' 부문에서 30% 가량을 독식하였다. 이는 해당 부문 2위인 KBS (10.7%)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치이다.[92]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2018년 매체신뢰도 순위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이 15개 매체 중 각각 14위, 15위에 올라 조선일보 계열이 최하위권에 머무른 가운데, 2019년 매체신뢰도 순위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이 14개 매체 중 각각 14위, 13위를 차지하여 사실상 2년 연속으로 조선일보 계열의 매체는 가장 신뢰도가 낮은 매체로 꼽혔다.[93]
6. 자매 언론기관 및 사업
조선일보사는 일간지 외에도 주간지 '주간조선', 스포츠지 '스포츠조선', '월간 산', '월간 낚시' 등의 시사지와 잡지를 발행한다. 자회사로는 '디지틀조선', '월간조선', '조선에듀케이션', '헬스조선' 등이 있으며, 이 중 '디지틀조선'은 코스닥에 상장되었고 2004년부터 연간 80억원 정도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1936년부터 조선일보 일요일판에 한 면씩 싣고 있으며, 1937년부터는 별도로 '어린이조선일보'를 발행하고 있다. 일반 단행본과 백과사전들을 편집하는 출판사업도 하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출판한 단행본으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따뜻한 이야기》(1998년), 영화 말아톤으로 유명해진 장애인 배형진 씨의 이야기를 담은 《달려라 형진아》 등이 있다.
온라인 버전 조선닷컴 외에도 영어판, 일본어판, 중국어판 온라인 신문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조선일보 일본어판은 자회사 '조선일보 일본어판'(구 조선일보JNS)에서 운영하고 있다.
2007년에 비즈니스앤을 개국하고, 2008년 11월에는 방송기자와 PD를 모집, 2008년 2월에는 대구방송, KNN과 함께 "아워 아시아"를 제작, 배급하였다. 이 외에도 조선일보는 종합편성방송 심사에서 2위로 통과한 'TV조선'을 소유하고 있으며, TV조선과 조선일보는 보수적 논조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10년 조선일보는 창간 9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와 그 관계사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인 조선미디어를 출범시켰다. 이 외에도 '주간조선', '월간조선' 등을 제작하는 조선뉴스프레스라는 자회사가 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으로 [https://newslibrary.chosun.com/ 뉴스라이브러리] 서비스의 1920년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 무료 열람할 수 있으며, 별도 무료와 유료 서비스이다. 그리고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과거 신문을 제공한다. 일간 신문 외에도 이 회사는 주간조선, 월간조선, 디지털조선, 에듀조선, 조선비즈를 발행한다.
참조
[1]
뉴스
친일·독재 찬양 흑역사는 쏙 뺀 조선일보의 '반쪽 100년사'
https://www.hani.co.[...]
The Hankyoreh
2020-03-10
[2]
서적
개마 고원
1998
[3]
서적
(pt. 1-3)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이유서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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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인물 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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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How partisan newspapers represented a pandemic: the case of the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in South Korea
2017
[7]
학술지
News media's framing of health policy and its implications for government communication: A text mining analysis of news coverage on a policy to expand health insurance coverage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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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학술지
Ideological parallelism: toward a transnational understanding of the protest paradigm
2019
[9]
서적
Korean Communication, Media, and Culture: An Annotated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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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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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Yearbook (2009): Politics, Economy and Society
BRILL
[1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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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3대 사장 남궁훈 "사이토 총독 사직하라" 4대 사장 이상재 취임 후 민족지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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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Fake news on both sides is the n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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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executes nuclear envoy to U.S. after failed Trump summit: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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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executed top negotiator, purged others over failed Trump summit, report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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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executed' officials after failed Trump summit: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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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North Korea Executes Envoy to Failed U.S. Summit -Media; White House Monito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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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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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checking reports North Korea executed envoy, says Pompeo: South Korean paper claims Kim Hyok-chol has been killed and a negotiator put in forced lab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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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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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US checking reports North Korea executed top official after Trump summit, Pompeo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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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Top North Korean official reappears days after purge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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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Senior North Korean official reappears after 'forced labour' report: Photo shows Kim Yong-chol attended an art performance with Kim Jong-un on Sunday.
https://www.theguard[...]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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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Purged? Not purged. Leading North Korean official reemerges in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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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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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BS 강사, 명예훼손 혐의로 조선일보 기자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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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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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훈 조선일보사장 '유죄'…"족벌언론 범죄"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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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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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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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集>毎日新聞社と海外メディア、進む提携 相互理解、促進目指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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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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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ABC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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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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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論調査:本紙が購読率・閲読率でトップを維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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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0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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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from社会部】韓国の若者、漢字で名前を聞く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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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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ペ・ヨンジュン公式サイトに約30万人が訪問~NetRatingsの6月度調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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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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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要なお知らせ】記事公開期限の改定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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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0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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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Fake news on both sides is the n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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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slams LKP for defending info l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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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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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愛のムチ」を訓育するために必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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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性愛のわ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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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全國敎職員勞動組合「同性愛の性観念を教える」 保護者ら、大騒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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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조선일보·TV조선, 가장 불신하는 매체 1·2위 2018년 시사IN 언론신뢰도 조사결과…신뢰도 1위 매체 JTBC(朝鮮日報・テレビ朝鮮、最も信頼できないメディア1・2位 2018年時事INのメディアの信頼性調査結果…最も信頼できるメディアは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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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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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옛애인, 현송월 포르노 찍어 유출 돼 공개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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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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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朝鮮の処刑・粛清説になぜ誤報が多いのか {{!}} 韓国・北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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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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粛清説の金正恩氏側近健在 公演同行、韓国紙は誤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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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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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社説 性接待を強要された女優の自殺、いまこそ事件の真実解明を
http://japan.hani.co[...]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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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手抜き捜査”に終わったチャン・ジャヨン事件…“性接待”疑惑明かされるか
http://japan.hani.co[...]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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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女優の故チャン・ジャヨンへの強制わいせつ容疑の元朝鮮日報記者、在宅起訴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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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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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장자연 사건 수사 때 조선일보 압력 있었다”(「チャン・ジャヨン事件捜査に朝鮮日報圧力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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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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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찰,‘장자연 강제추행’전 조선일보 기자 불구속기소(検察、「チャン・ジャヨン強制わいせつ」元朝鮮日報記者在宅起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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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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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찰 재수사로 '장자연 사건 연루' 전 조선일보 기자 기소(検察の再捜査で「チャン・ジャヨン事件関与」元朝鮮日報記者起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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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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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단독 끝나지 않은 장자연사건 2라운드 하원 전 스포츠조선 사장의 또 다른 이야기‘조선일보 方씨 일가는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나?(単独 終わらないチャン・ジャヨン事件2ラウンドハウス元スポーツ朝鮮社長のまた別の話 朝鮮日報方氏一家は何をそんなに恐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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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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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찰, 고 장자연 강제추행 전직 기자 불구속 기소(検察、故チャン・ジャヨン強制わいせつ元記者在宅起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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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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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萬物相】外国国旗の冒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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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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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には「『加虐本能』が遺伝子の中に流れている」 最大手朝鮮日報が社説で侮辱的暴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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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ASTニュース
201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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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土の一部を戦争被害国に献上すべ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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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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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事故機の操縦士、B777運航経歴わずか43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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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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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死者が中国人でほっとした」―韓国人キャスター発言に非難集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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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201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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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アシアナ機事故 元教官がパイロット養成の内幕を明かした衝撃的メール!―ドイツ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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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china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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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SBの "パイロット過失の主張対応5命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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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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菅官房長官 潘事務総長発言問題視せ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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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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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盗っ人たけだけしい日本メディア、国連総長発言を猛非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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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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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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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1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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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大統領をめぐるうわ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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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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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朴槿恵大統領が旅客船沈没当日、行方不明に…誰と会っ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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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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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本紙ソウル支局長に出頭要請 ウェブ記事「大統領の名誉毀損」 韓国検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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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201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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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岸田外相、産経支局長聴取「報道の自由、心配」 尹外相に伝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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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20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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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岸田外相が頭を下げた! 「慰安婦」日韓合意、日本相手なら何でもあり? 事実に反する韓国紙の“演出”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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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文政権が韓国紙日本語版を「売国的」と批判 事実上言論統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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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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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不買に飛び火した日本製品不買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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ハンギョレ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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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는 2명의 방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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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201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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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도 종편-케이블 방송사업 겸영매체 발행·유료부수
http://kabc.or.kr/ab[...]
한국ABC협회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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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JTBC·중앙일보>조선일보·TV조선>KBS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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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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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3대 사장 남궁훈 "사이토 총독 사직하라" 4대 사장 이상재 취임 후 민족지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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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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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조선일보 역사 읽기' 책은…
http://www.chosun.co[...]
조선일보
200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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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방우영, 편집혁신 통해 '정상 조선일보' 탈환
http://www.chosun.co[...]
조선일보
2010-03-04
[79]
웹사이트
신개념 디지털 페이퍼 '아이리더'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8-03-05
[80]
웹사이트
신간회는 일제강점기 당시 합법적인 단체로 좌-우 연합 독립운동 단체였다. 이 단체는 안재홍, 이상재, 홍명희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 성향의 조선일보 인물들이 중심으로 추진했다.
[81]
서적
조선일보 사람들 일제시대 편
조선일보 사료연구실
2004-12-22
[82]
서적
조선일보 사람들 일제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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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료연구실
2004-12-22
[83]
기타
[84]
뉴스
조중동 ‘방송진입 장벽’ 사라지다
https://news.naver.c[...]
위클리경
2009-07-30
[85]
뉴스
"가장 좋아하는 신문" 조선일보 1위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9-10-22
[86]
뉴스
조·중·동 신문시장 점유율 50%대로 떨어져
https://news.naver.c[...]
경향신문
2008-06-30
[87]
뉴스
종이 신문, 발등에 불 떨어졌다
http://www.sisapress[...]
시사저널
2013-10-27
[88]
뉴스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언론매체 / JTBC의 진격, KBS·MBC의 추락 영향력 조선 2위, 중앙 5위, 동아 8위…한겨레, 신뢰도·열독률 ‘2관왕’
http://www.sisapress[...]
시사저널
2014-09-03
[89]
뉴스
조선일보 177만부(발행 부수)로 압도적 1위
http://biz.chosun.co[...]
조선일보
2013-11-14
[90]
뉴스
“매체 신뢰도 1위 MBC, 불신 1위 조선일보”
http://www.pdjournal[...]
2009-08-10
[91]
뉴스
기자들 ‘한겨레’ 가장 신뢰
https://news.naver.c[...]
한겨레신문
2009-08-19
[92]
웹사이트
http://www.mediatoda[...]
[93]
뉴스
“조중동 지국 98% 신문고시 위반”
http://www.pdjournal[...]
PD저널
2009-06-18
[93]
뉴스
문화부 징계 안해 은폐 논란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08-07-11
[94]
뉴스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보도, 한국신문상 수상
http://www.mt.co.kr/[...]
머니투데이
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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