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크 퓌어 페른제엘렉트로니크
1. 개요
베르크 퓌어 페른제엘렉트로니크(WF)는 동독 시기 진공관, 브라운관, 광전자 부품을 생산하던 기업이다. 1900년대 초 AEG의 진공관 생산 부문에서 시작하여, 동독 시기 국영 기업으로 전환되어 텔레비전 브라운관 생산을 시작했다. 1960년부터 WF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1970년대 에르푸르트 전자 콤비나트에 편입되었다. 독일 재통일 이후 삼성SDI에 인수되어 브라운관 생산을 이어갔으나, 2005년 공장과 연구소가 폐쇄되었다. WF는 문화 공간과 여름 캠프를 운영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도 했다.
-
동독의 경제 -
경제상호원조회의
경제상호원조회의는 소련이 마셜 플랜에 대응하여 1949년 설립한 사회주의 국가 경제 협력 기구로, 소련의 영향력, 경제적 불균형, 비효율적 계획경제로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1991년 해체되었다. -
동독의 경제 -
동독 커피 위기
1970년대 후반 동독에서 세계적인 커피 가격 폭등과 외환 부족으로 발생한 동독 커피 위기는 대체 커피 도입에 대한 시민 반발과 제3세계 국가와의 물물교환을 야기하며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베트남 커피 산업 발달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
2005년 해체된 기업 -
부산교통공사
부산교통공사는 부산 도시철도 1~4호선을 운영하며, 1981년 부산직할시 지하철 건설본부로 출범하여 현재의 조직으로 전환되었고, 한국어와 영어 안내방송을 제공하며 자체 축구단을 운영한다. -
2005년 해체된 기업 -
진로그룹
1924년 진천양조상회로 시작한 진로그룹은 진로소주를 기반으로 성장하여 한때 재계 24위까지 올랐으나, 1997년 외환 위기로 부도 후 해체되었고, 주류 사업 부문은 하이트맥주에 인수되어 하이트진로로 재편되었다. -
1945년 설립된 기업 -
한진그룹
한진그룹은 1945년 조중훈이 설립한 대한민국의 대기업으로, 항공, 육운, 해운, 택배 등 물류 사업을 영위하며 미군 수송 계약으로 급성장, 대한항공 인수 및 한진해운 설립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오너 일가 갑질 문제와 한진해운 파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는 대한항공 중심의 사업 운영과 더불어 정석인하학원을 비롯한 여러 비영리 재단도 운영하고 있다. -
1945년 설립된 기업 -
스바루
스바루는 1953년 설립된 일본의 자동차 및 항공우주 제조 회사로,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과 안전성을 강조하며 토요타 자동차와 협력, 북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2. 기업 역사
1900년대 베를린 오버쇠네바이데 지역이 개발되면서 AEG를 비롯한 기업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1938년 AEG는 진공관 생산 부문을 AEG 진공관 공장 오버슈프레(AEG-Röhrenfabrik Oberspree)로 통합했다.
1945년 동독의 소련군정은 과거 AEG의 진공관 생산 공장을 접수하여 오버슈프레 연구소, 설계국, 실험실을 설립했다. 1950년에는 다른 기업과 합병하여 베르크 퓌어 페른멜데베젠(텔레비전 공장)으로 개명했다. 1952년 5월 1일, 독일 텔레비전 방송의 설립과 더불어 국민에게 텔레비전을 보급하기 위해 브라운관 생산을 시작하면서, 오버슈프레 공장의 법적 형태는 인민 기업(Volkseigener Betrieb)으로 변경되었다. 1960년부터 베르크 퓌어 페른제엘렉트로니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독일 재통일 이후 베르크 퓌어 페른제엘렉트로니크(WF)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법적 형태도 유한회사로 변경되었다. 1993년 삼성SDI는 WF를 1마르크에 인수하고, 회사 이름을 Samsung Elektronische Bauelemente GmbH로 변경했다. 삼성SDI는 인수 후 여러 투자를 통해 브라운관 생산 공정을 현대화하고 효율을 개선했다. 2000년대 초반 LCD 디스플레이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브라운관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고, 결국 삼성SDI는 2005년에 공장과 연구소를 폐쇄했다.
2.1. 초기 역사
1900년대 베를린 오버쇠네바이데(Oberschöneweide) 지역이 개발되면서 AEG를 비롯한 기업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1913년 AEG는 오버슈프레 케이블 공장(AEG-Kabelwerk Oberspree)을 설립하였고 진공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텔레풍켄이 오버쇠네바이데 지역에서 전파 송신기를 생산했다. 1938년 AEG는 과거 자동차 공장의 부지를 인수하여 진공관 생산 부문을 AEG 진공관 공장 오버슈프레(AEG-Röhrenfabrik Oberspree)로 통합했다.
2.2. 동독에서의 역사
1945년 동독의 소련군정은 과거 AEG의 진공관 생산 공장을 접수하여 오버슈프레 연구소, 설계국, 실험실(Labor, Konstruktionsbüro und Versuchswerk Oberspree)을 설립했다. 설립 1년 후 약 2000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었고, 1946년에는 소련의 오소아비아힘 작전의 일부로 230명의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소련으로 징용되어 소련에서 새로운 생산 시설을 건립하는 데 투입되었다. 같은 해 회사의 법적 형태는 소련 주식회사(Sowjetische Aktiengesellschaft)로 바뀌었고 정식 명칭도 오버슈프레 공장(Oberspreewerk)으로 간략화되었다. 1950년에는 다른 기업과 합병하여 베르크 퓌어 페른멜데베젠(텔레비전 공장, Werk für Fernmeldewesen)으로 개명했다. 1952년 5월 1일 오버슈프레 공장의 법적 형태는 인민 기업(Volkseigener Betrieb)으로 변경되었다. 독일 텔레비전 방송의 설립과 더불어 국민에게 텔레비전을 보급하기 위해 1959년부터 브라운관 생산을 시작했다.
1960년부터 베르크 퓌어 페른제엘렉트로니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70년대의 대형 콤비나트 설립과 맞물려 에르푸르트 전자 콤비나트(Kombinat Mikroelektronik Erfurt)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983년 흑백 브라운관 생산이 중단되었고, 1984년부터 컬러 브라운관을 생산하기 위해 오스트엔트슈트라세(Ostendstraße)에 새로운 생산 시설을 건립했다.
2.3. 독일 재통일 이후, 삼성SDI
독일 재통일 이후 베르크 퓌어 페른제엘렉트로니크(WF)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진공관 및 반도체 생산을 일부 중단했다. WF의 법적 형태도 유한회사로 변경되었고, 직원도 9000명에서 1400명 수준으로 줄었다. 1990년 5월에는 동독 시기에 개발한 제품을 전시하는 기업 박물관(Technik im Turm)을 설립했다.
1993년 삼성SDI는 WF를 1마르크에 인수하고, 회사 이름을 Samsung Elektronische Bauelemente GmbH로 변경했다. 이 시기에 박물관은 폐쇄되고 전시품은 기업 내 창고로 옮겨졌다. 1994년에는 이전 생산 기지에 삼성 연구소(Samsung Forschungszentrum)를 설립했다. 삼성SDI는 인수 후 여러 투자를 통해 브라운관 생산 공정을 현대화하고 효율을 개선했다.
2000년대 초반 LCD 디스플레이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브라운관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결국 삼성SDI는 2005년에 공장과 연구소를 폐쇄했다. 폐쇄 후에도 삼성은 부지를 소유하다가 2009년에 매각했다. 2018년 말 기준 공장 건물은 비어 있으며, 일부 건물은 사무실로 재건축되었다. 1990년에 설립한 기업 박물관의 일부는 인두스트리살롱 쇠네바이데(Industriesalon Schöneweide)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한편 WF의 사업부 중 일부는 삼성에 인수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존했다. WF의 센서 기술 연구원들은 Iris GmbH 및 First Sensor GmbH를 설립했다. First Sensor는 현재도 오버쇠네바이데 지역에 있다.
3. 생산 품목
WF의 주 생산 품목은 진공관, 브라운관 및 광전자 부품(LED, 광트랜지스터, 옵토커플러 등)이었다. 1974년 동독 수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탁상 시계 Digitale Wohnraumuhr Kaliber 44-03을 생산했으며 당시 공장 직원에게 기념품으로 증정했다. 주 사업 영역이 아니었던 제품으로는 전자 오르간 EKI 1이 있으며, 동독 경제 정책으로 인해 이 기업에서 생산했던 경공업 제품 중에는 숯불구이용 집게가 있었다.
--
--
--
--
--
--
--
--
4. 사회 공헌
동독 시절 WF는 오버쇠네바이데 지역에 문화 공간(Kulturhaus)을 설립했고, 프라우엔제(Frauensee) 인근에 회사 소유의 여름 캠프를 설립했다. 문화 공간은 통일 이후에도 WF 소유로 남아 있었고 베를린 주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요리 및 문화 시설 개보수 계획이 있었으나 실패했다. 이 건물은 베를린의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한편, 통일 이후 여름 캠프 시설을 활용하기 위해 1991년 10명의 발기인이 모여 Kindererholungsdorf Frauensee를 설립했다. 이 여름 캠프는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연간 수백만 유로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