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오 우나무노
1. 개요
빅토리오 우나무노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했다. 알라베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라 리가 2회,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레알 베티스에서 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1939-40 시즌에는 트로페오 피치치를 수상했다. 그의 동생 비센테 우나무노 역시 축구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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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Victorio Unamuno Ibarzabal |
|---|---|
| 출생일 | 1909년 5월 21일 |
| 출생지 | 베르가라 |
| 사망일 | 1988년 5월 20일 |
| 사망지 | 두랑고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연도: 1924–1927 클럽: 아우레라 베르가라 |
|---|---|
| 프로 클럽 | 연도: 1927–1928 클럽: 알라베스 출장: ? 득점: ? 연도: 1928–1933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 출장: 45 득점: 36 연도: 1933–1936 클럽: 베티스 출장: 55 득점: 29 연도: 1939–1942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 출장: 44 득점: 36 |
| 총 출장 및 득점 | 출장: 144 득점: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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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가라 (스페인) 출신 -
아시에르 가리타노
아시에르 가리타노는 스페인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현재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 아틀레틱 빌바오 2군을 거쳐 하위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로서 CD 레가네스를 상위 리그로 승격시키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다른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
기푸스코아도 출신 -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완벽한 재단 기술로 "쿠튀르계의 건축가"라는 찬사를 받은 스페인 패션 디자이너로, 스페인 왕족을 위한 의상을 만들다 파리로 이주하여 독창적인 구조적 디자인으로 패션계를 장악하고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유산을 기리는 박물관이 고향에 설립되고 그의 삶을 다룬 TV 시리즈가 제작되기도 했다. -
기푸스코아도 출신 -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스페인의 탐험가이자 초대 필리핀 총독으로, 1565년 필리핀 탐험대를 이끌어 세부와 마닐라를 정복하고 스페인 식민 통치를 시작했으며, 가톨릭 개종과 마닐라를 수도로 선포, 마닐라 갤리온 무역 창출에 기여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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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선수 경력
우나무노는 기푸스코아도 베르가라에서 태어나 1927년부터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알라베스에서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28년 코파 델 레이 4강 진출에 기여했다.
1928년 여름 아틀레틱 빌바오에 입단하여 라리가 우승 2회, 코파 델 레이 4회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1933년에는 레알 베티스로 이적하여 1934-35 시즌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스페인 내전으로 선수 생활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종전 후 아틀레틱 빌바오로 복귀하여 1939-40 시즌 트로페오 피치치를 수상했다. 1942년, 33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클럽 경력
우나무노는 기푸스코아 도 베르가라 출신으로, 알라베스 소속으로 1928년 코파 델 레이에서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1928년 여름 아틀레틱 빌바오에 입단하여, 리그 첫 해부터 11골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전국 리그가 출범할 시기에 전성기를 보낸 구단 소속으로 활약하게 된 그는 라 리가에서 2번, 코파 델 레이에서 4번 연속 우승하였는데, 바타, 기예르모 고로스티사, 호세 이라라고리, 치리 2호, 라푸엔테와 함께 막강한 공격진을 구성하였다.
1933년 여름, 우나무노는 베티스로 이적하였다. 1934-35 시즌에는 13골을 득점하였고, 베티스는 현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리그 정상에 올랐다.
세비야 연고 구단을 떠난 우나무노의 현역 생활은 스페인 내전으로 중단되었고, 종전 후 아틀레틱에 복귀하였다. 1939-40 시즌에는 20골을 넣어 16골을 기록한 고로스티사를 제치고 트로페오 피치치의 주인공이 되었다. 1942년, 33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