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오 우나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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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빅토리오 우나무노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했다. 알라베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라 리가 2회,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레알 베티스에서 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1939-40 시즌에는 트로페오 피치치를 수상했다. 그의 동생 비센테 우나무노 역시 축구 선수였다.

빅토리오 우나무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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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아틀레틱 빌바오에서의 우나무노
본명Victorio Unamuno Ibarzabal
출생일1909년 5월 21일
출생지베르가라
사망일1988년 5월 20일
사망지두랑고
포지션공격수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연도: 1924–1927
클럽: 아우레라 베르가라
프로 클럽연도: 1927–1928
클럽: 알라베스
출장: ?
득점: ?
연도: 1928–1933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
출장: 45
득점: 36
연도: 1933–1936
클럽: 베티스
출장: 55
득점: 29
연도: 1939–1942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
출장: 44
득점: 36
총 출장 및 득점출장: 144
득점: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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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우나무노는 기푸스코아도 베르가라에서 태어나 1927년부터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알라베스에서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28년 코파 델 레이 4강 진출에 기여했다.

1928년 여름 아틀레틱 빌바오에 입단하여 라리가 우승 2회, 코파 델 레이 4회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1933년에는 레알 베티스로 이적하여 1934-35 시즌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스페인 내전으로 선수 생활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종전 후 아틀레틱 빌바오로 복귀하여 1939-40 시즌 트로페오 피치치를 수상했다. 1942년, 33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클럽 경력

우나무노는 기푸스코아 도 베르가라 출신으로, 알라베스 소속으로 1928년 코파 델 레이에서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1928년 여름 아틀레틱 빌바오에 입단하여, 리그 첫 해부터 11골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전국 리그가 출범할 시기에 전성기를 보낸 구단 소속으로 활약하게 된 그는 라 리가에서 2번, 코파 델 레이에서 4번 연속 우승하였는데, 바타, 기예르모 고로스티사, 호세 이라라고리, 치리 2호, 라푸엔테와 함께 막강한 공격진을 구성하였다.

1933년 여름, 우나무노는 베티스로 이적하였다. 1934-35 시즌에는 13골을 득점하였고, 베티스는 현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리그 정상에 올랐다.

세비야 연고 구단을 떠난 우나무노의 현역 생활은 스페인 내전으로 중단되었고, 종전 후 아틀레틱에 복귀하였다. 1939-40 시즌에는 20골을 넣어 16골을 기록한 고로스티사를 제치고 트로페오 피치치의 주인공이 되었다. 1942년, 33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2.2. 개인 수상

* 트로페오 피치치: 1939–40

3. 클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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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대회우승 연도
아틀레틱 빌바오라리가1929-30, 1930-31
코파 델 레이1930, 1931, 1932, 1933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1928–29, 1930–31, 1931–32, 1932–33, 1939–40
레알 베티스라리가1934-35

4. 사생활

우나무노의 동생 비센테(1917~1988, '우나무노 2호'로도 알려졌다)도 축구 선수였으며,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형제는 1939-40 시즌에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함께 뛰었지만, 비센테는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고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에 함께 출전했다. 비센테는 1부 리그에서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선수 생활 대부분을 2부 리그 이하에서 보냈다. 빅토리오 우나무노는 비스카이아 도 두랑고에서 79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