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호 안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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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빌호 안날라는 핀란드의 정치인이자 학자였다. 그는 헬싱키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통계청에서 근무하며, 보수 성향의 신문 편집진으로 활동했다. 1931년 라푸아 운동에 참여하여 헬싱키 지구 의장을 맡았으며, 이탈리아 파시즘의 조합주의에 영향을 받아 노동계급의 참여를 지지했다. 1932년 애국 인민 운동(IKL)을 창설하여 의장직을 수행했고, 핀란드 의회에서 당을 대표했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요한 빌헬름 랑겔 내각에서 교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헬싱키 대학교로 돌아가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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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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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호 안날라
출생 이름빌호 안날라
출생일1888년 1월 17일
출생지라푸아, 핀란드 대공국
사망일1960년 7월 28일
사망지헬싱키, 핀란드
국적핀란드인
시민권핀란드
모교헬싱키 대학교
직업교수
배우자이네스 미르얌 윙크
소속 정당라푸아 운동, 애국인민운동
직책
직책교통 및 공공사업부 장관
임기 시작1941년 1월 4일
임기 종료1943년 3월 5일
이전칼에리크 에크홀름
이후토이보 이코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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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및 학문 활동

안날라는 라푸아에서 태어났으며, 헬싱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16년부터 1919년까지 학생 신문 율리오필라스레흐티의 편집장을 맡았다. 통계청(Statistics Finland)에서 근무하며 보수주의 성향 일간지 우시 수오미 편집진으로도 활동했다. 1932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핀란드의 주요 공무원이 되었다.

3. 정치 활동

안날라는 요한 빌헬름 랑겔 내각에서 교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는 애국 인민 운동의 마지막 시도였고, 이후 단체는 쇠퇴했으며 안날라는 정치계를 떠났다.

3.1. 라푸아 운동 참여

안날라는 1931년 2월 라푸아 운동에 가입하여 헬싱키 지구 의장을 맡았다. 그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조합주의에 큰 영향을 받아, 노동계급을 라푸아 운동에 참여시키는 것을 지지하고 부유한 산업 자본가들의 영향력에는 반대했다.

3.2. 애국 인민 운동(IKL) 창설 및 활동

안날라는 1932년 4월 헤르만 구메루스, 에르키 라이키엔과 함께 애국 인민 운동(IKL)을 창설했으며, 1936년부터 1944년까지 의장직을 수행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핀란드 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공식 지도자는 비흐토리 코소라였지만, 실제 운동은 안날라와 그의 측근인 브루노 살미알라가 통제했다. 그의 강경한 견해는 정부와 핀란드 복음 루터교회의 비판을 받았지만, 안날라가 운동의 정책을 결정했다.

3.3. 교통부 장관 역임

요한 빌헬름 랑겔 내각에서 1941년부터 1943년까지 교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4. 정계 은퇴 이후

정계에서 물러난 안날라는 헬싱키 대학교로 돌아가 학자가 되었다. 1951년부터 1957년까지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다. 72세의 나이로 헬싱키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