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호 안날라
1. 개요
빌호 안날라는 핀란드의 정치인이자 학자였다. 그는 헬싱키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통계청에서 근무하며, 보수 성향의 신문 편집진으로 활동했다. 1931년 라푸아 운동에 참여하여 헬싱키 지구 의장을 맡았으며, 이탈리아 파시즘의 조합주의에 영향을 받아 노동계급의 참여를 지지했다. 1932년 애국 인민 운동(IKL)을 창설하여 의장직을 수행했고, 핀란드 의회에서 당을 대표했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요한 빌헬름 랑겔 내각에서 교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헬싱키 대학교로 돌아가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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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대학교 교수 -
유하 얀후넨
유하 얀후넨은 북아시아 언어, 특히 몽골어족, 우랄어족, 거란 소자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몽골어족 관련 저서와 거란 소자 연구 참여, 일본어 기원에 대한 독자적인 가설 제시 등의 활동을 했다. -
애국인민운동의 정치인 -
마르티 피흐칼라
마르티 피흐칼라는 핀란드의 교육자, 우생학 지지자, 기업가, 정치인으로, 핀란드 내전과 라푸아 운동에 참여하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과의 관계 유지를 주장했다. -
라푸아 출신 -
라우리 코스켈라
라우리 코스켈라는 1930년 라푸아 운동에 의해 납치되어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은 핀란드 내 사회 불안을 심화시키고 라푸아 운동의 쿠데타 시도 실패로 이어져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
라푸아 출신 -
안넬리 예텐메키
안넬리 예텐메키는 핀란드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중도당 대표, 법무부 장관, 유럽 의회 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이라크 게이트' 스캔들로 총리직에서 사임했으나 핀란드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2. 초기 생애 및 학문 활동
안날라는 라푸아에서 태어났으며, 헬싱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16년부터 1919년까지 학생 신문 율리오필라스레흐티의 편집장을 맡았다. 통계청(Statistics Finland)에서 근무하며 보수주의 성향 일간지 우시 수오미 편집진으로도 활동했다. 1932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핀란드의 주요 공무원이 되었다.
3.1. 라푸아 운동 참여
안날라는 1931년 2월 라푸아 운동에 가입하여 헬싱키 지구 의장을 맡았다. 그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조합주의에 큰 영향을 받아, 노동계급을 라푸아 운동에 참여시키는 것을 지지하고 부유한 산업 자본가들의 영향력에는 반대했다.
3.2. 애국 인민 운동(IKL) 창설 및 활동
안날라는 1932년 4월 헤르만 구메루스, 에르키 라이키엔과 함께 애국 인민 운동(IKL)을 창설했으며, 1936년부터 1944년까지 의장직을 수행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핀란드 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공식 지도자는 비흐토리 코소라였지만, 실제 운동은 안날라와 그의 측근인 브루노 살미알라가 통제했다. 그의 강경한 견해는 정부와 핀란드 복음 루터교회의 비판을 받았지만, 안날라가 운동의 정책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