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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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마윤은 서진 시대의 인물로, 277년에 복양왕에 봉해졌으며, 289년에는 회남왕이 되었다. 그는 조왕 사마륜이 권력을 잡으려 하자 이에 대항하여 거병했으나, 복윤의 배신으로 살해당했다. 사마윤은 사마륜을 몰아내려 했으나 실패했고, 사후 회남충장왕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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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윤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사마윤 |
| 생몰년 | (? ~ 299년) |
| 가계 | |
| 아버지 | 사마염 |
| 어머니 | 왕원희 |
| 형제 | 사마궤 |
| 자녀 | 사마희 |
| 관력 | |
| 봉호 | 회남왕(淮南王) |
| 시호 | 은(隱) |
2. 생애
277년 8월, 사마윤은 복양왕(濮陽王)으로 봉해졌고, 289년에는 회남왕(淮南王)으로 봉해져 진남대장군(鎮軍大將軍) 겸 도독양강2주군사(都督揚江二州軍事)에 임명되어 가절을 가지고 봉국으로 갔다.
299년, 조왕 사마륜이 가남풍을 폐위하자 사마윤은 표기장군, 개부의동삼사가 되어 중호군을 관장하게 되었다. 그는 침착하고 굳건한 성격으로 숙위하는 장령들과 병사들의 두려움을 샀다. 사마륜과 손수가 황제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 사마윤은 몰래 병사를 길러 그들을 몰아내려고 했다.
그해 가을 8월, 사마륜은 사마윤의 병권을 빼앗기 위해 그를 태위로 임명하려 했으나, 사마윤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손수는 어사 유기를 보내 사마윤을 압박하고 그의 부하들을 체포했다. 또한 손수는 사마윤이 조서를 거부했다는 명목으로 탄핵했는데, 사마윤은 조서가 손수의 필체임을 확인하고 크게 분노하여 유기를 가두고 목을 베려 했다. 유기가 도망가자 사마윤은 그의 영사 두 명의 목을 베었다.
사마윤은 회남국의 군사와 장하에 있는 700명을 이끌고 조왕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외치며 자신을 따를 사람은 옷을 왼편으로 여미라고 외쳤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귀부했다. 궁궐로 향했지만 상서좌승 왕여가 액문을 닫아걸어 들어가지 못하자, 상국부를 포위하고 사마륜을 공격하여 몇 차례 승리했다. 사마윤은 승화문 앞에 진을 치고 궁노를 일제히 발사했다. 진준이 사마윤을 돕기 위해 사마충에게 백호번을 보내 싸움을 해산시키려 했고, 사마독호 복윤이 기병 400명을 거느리고 나갔다.
그러나 복윤은 여음왕 사마건의 설득에 넘어가 사마륜을 돕기로 하고, 글자가 없는 공판을 가져와 사마충이 회남왕을 도우라는 거짓 조서를 내렸다고 속였다. 사마윤은 수레에서 내려 조서를 받으려다 이 틈을 노린 복윤에게 살해당했다.
2. 1. 초기 생애
함녕 3년(277년) 8월, 사마윤은 복양왕(濮陽王)에 봉해졌다. 태강 10년(289년) 11월, 회남왕으로 개봉되어, 아버지 무제의 뜻에 따라 이복 형인 진왕 사마간, 초왕 사마위와 함께 봉국(회남)으로 부임하여, 진동대장군·도독 양강 2주 제군사에 임명되어 가절을 받았다.그 후, 무제가 사망하고 이복 형인 혜제(사마충)가 즉위하자, 영평 원년(291년) 2월에 낙양으로 귀환했다. 같은 해(원강 원년) 6월, 황후 가남풍은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여남왕 사마량과 녹상서사 위관을 배척하기 위해, 사마위에게 밀지를 내려 그들의 체포를 명했다. 이때, 사마윤은 사마위의 산하에 들어가 궁문을 제압했다. 8월, 제왕에게 출진이 명해지자, 사마윤도 또한 봉국인 회남국으로 귀환했다.
원강 9년(299년), 다시 낙양으로 귀환했다. 12월, 가남풍은 평소에 꺼려했던 황태자 사마휼의 죄를 날조하여 폐립한 후 서민으로 강등시켰다. 이때, 사마휼을 대신하여 사마윤을 황태제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영강 원년(300년), 가남풍이 사마휼을 암살하자, 이를 계기로 조왕 사마륜이 거병하여 가남풍을 폐위시켰다. 사마윤은 표기장군·시중에 임명되었고, 더 나아가 개부의동삼사의 특권과 중호군의 지휘권이 주어졌다. 사마윤은 침의(침착하여 사물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한 기성이었으므로, 숙위의 장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복했다고 한다.
2. 2. 사마륜과의 대립
299년, 조왕 사마륜이 가남풍을 폐위한 후, 사마윤은 표기장군, 개부의동삼사가 되어 중호군을 관장하게 되었다. 사마윤은 굳건한 성격으로 병사들의 두려움을 샀으며, 사마륜과 손수가 황제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몰래 병사를 길러 그들을 몰아내려고 했다.그해 가을 8월, 사마륜은 사마윤의 병권을 빼앗기 위해 그를 태위로 임명하려 했으나, 사마윤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손수는 어사 유기를 보내 사마윤을 압박하고 그의 부하들을 체포했다. 또한 손수는 사마윤이 조서를 거부했다는 명목으로 탄핵했는데, 사마윤은 조서가 손수의 필체임을 확인하고 크게 분노하여 유기를 가두고 목을 베려 했다. 유기가 도망가자 사마윤은 그의 영사 두 명의 목을 베었다.
사마윤은 회남국의 군사와 장하에 있는 700명을 이끌고 조왕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외치며 자신을 따를 사람은 옷을 왼편으로 여미라고 외쳤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귀부했으며, 궁궐로 향했지만 상서좌승 왕여가 액문을 닫아걸어 들어가지 못했다. 사마윤은 상국부를 포위하고 사마륜을 공격하여 몇 차례 승리했다. 그는 승화문 앞에 진을 치고 궁노를 일제히 발사했다. 진준이 사마윤을 돕기 위해 사마충에게 백호번을 보내 싸움을 해산시키려 했고, 사마독호 복윤이 기병 400명을 거느리고 나갔다.
그러나 복윤은 여음왕 사마건의 설득에 넘어가 사마륜을 돕기로 하고, 글자가 없는 공판을 가져와 사마충이 회남왕을 도우라는 거짓 조서를 내렸다고 속였다. 사마윤은 수레에서 내려 조서를 받으려다 복윤에게 살해당했다.
사마륜이 패배했을 때,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사마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탄식했다.
이후 사마륜이 주살되자, 제왕 사마경은 상소를 올려 사마윤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마윤은 사도로 추증되고 회남충장왕(淮南忠壯王)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사마윤의 아들들은 모두 살해되었으므로, 사마경의 아들 사마초가 회남왕을 이었다.
2. 3. 거병과 죽음
299년 여름 4월, 사마륜이 가남풍을 폐위하면서 사마윤은 표기장군, 개부의동삼사가 되었고 중호군을 관장하게 되었다. 사마윤은 성격이 침착하고 굳건하여 숙위하는 장령들과 병사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복종했다. 그러나 사마윤은 사마륜과 손수가 황제 자리를 찬탈하려는 다른 뜻을 품고 있음을 알고, 몰래 병사들을 훈련시켜 이들을 몰아내려 했다.가을 8월, 사마륜은 사마윤의 병권을 빼앗기 위해 그를 태위로 임명하려 했으나, 사마윤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벼슬을 받지 않았다. 손수는 어사 유기를 보내 사마윤을 압박하고 그의 부하들을 체포했다. 또한 손수는 사마윤이 조서를 거부하고 대역 불경한 죄를 지었다는 명목으로 탄핵했다. 이에 크게 분노한 사마윤은 어사 유기를 가두려 했으나, 유기가 도망치자 그의 영사 두 명을 대신 죽였다.
사마윤은 회남국의 군사와 장하에 있는 700명을 이끌고 "조왕(사마륜)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외치며 자신을 따를 사람은 옷을 왼편으로 여미라고 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귀부했다. 궁궐로 향했지만 상서좌승 왕여가 액문을 닫아걸어 들어가지 못하자, 상국부를 포위하고 사마륜을 공격하여 여러 차례 승리했다. 사마윤은 승화문 앞에 진을 치고 궁노를 일제히 발사했다. 이때 진준이 사마윤을 돕기 위해 사마충에게 백호번을 보내 싸움을 해산시켜야 한다고 건의했고, 사마독호 복윤이 기병 400명을 거느리고 나갔다.
그러나 복윤은 사마건의 설득에 넘어가 사마륜을 돕기로 하고, 글자가 없는 공판을 가져와 사마충이 회남왕을 도우라는 거짓 조서를 내렸다고 속였다. 사마윤은 이를 믿고 진을 열어 복윤을 들였다가, 수레에서 내려 조서를 받으려는 순간 복윤에게 살해당했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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