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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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는 1953년 사우드 국왕의 칙령에 의해 각료 회의와 함께 창설되었다. 초기에는 왕족 간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총리직이 불안정하게 운영되었으나, 이후 국왕이 총리직을 겸임하는 형태로 2022년까지 이어졌다. 2022년 살만 국왕이 무함마드 빈 살만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국왕과 총리직이 분리되었으며, 현재 무함마드 빈 살만이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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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 | |
---|---|
기본 정보 | |
![]() | |
직책 | 총리 |
국가 | 사우디아라비아 |
관저 | 알-야마마 궁전 (리야드) 알-살람 궁전 (제다) |
임명권자 |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 |
스타일 | 전하 |
정치 | |
정치 체제 | 사우디아라비아 |
임기 시작 | 2022년 9월 27일 |
선임자 | 공석 |
역사 | |
설립일 | 1953년 10월 9일 |
기타 | |
구성 | 각료평의회 |
2. 역사
사우디아라비아 총리직은 1953년 사우드 국왕의 칙령으로 각료 회의와 함께 창설되었다. 사우드 국왕은 이복동생인 파이살 왕세자를 초대 총리로 임명했으나, 둘 사이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1960년 파이살이 사임하고 사우드가 정부를 장악했다. 그러나 왕족 내부의 불만은 계속되었고, 결국 1962년 파이살이 총리로 복귀했다. 1964년 사우드가 퇴위하면서 파이살은 국왕에 즉위함과 동시에 총리직을 겸임하게 되었다.[2]
칼리드 국왕 시대부터는 국왕이 직접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거나,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 노인 정치 국가가 되면서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총리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재 총리직은 살만 국왕의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맡고 있다.[2]
2. 1. 총리직 창설과 초기 권력 투쟁 (1953년 ~ 1964년)
사우드 국왕의 칙령에 의해 1953년 10월 9일 각료 회의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총리직이 창설되었다.[2] 사우드 국왕의 통치에 대한 왕족 내부의 불안으로 인해, 사우드는 이복동생인 파이살 왕세자를 총리로 임명해야 했다.[2] 두 사람 사이의 권력 투쟁은 1960년 파이살의 사임으로 이어졌고, 사우드는 정부를 다시 장악했지만, 불만이 계속되면서 1962년 파이살이 총리로 복귀했다.[2] 1964년 사우드의 퇴위 이후, 파이살은 국왕의 자리를 계승하면서 총리직을 유지했다.[2]2. 2. 파이살 국왕의 총리 겸임과 국왕 중심 통치 (1964년 ~ 1975년)
1964년 사우드의 퇴위 이후, 파이살은 국왕의 자리를 계승하면서 총리직을 겸임했다. 파이살은 이미 1953년 사우드 국왕의 칙령에 의해 각료 회의와 함께 창설된 총리직에 임명된 적이 있었다. 이는 사우드의 통치에 대한 왕족 내부의 불안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이살과 사우드 간의 권력 투쟁으로 1960년 파이살이 사임했고, 사우드가 다시 정부를 장악했다. 하지만 불만이 계속되면서 1962년 파이살은 총리로 복귀했다.[2]이후 살만 국왕이 무함마드 빈 살만을 총리로 임명하기 전까지 국왕과 총리직은 통합된 상태로 유지되었다.[2] 칼리드 국왕 통치 시기부터는 국왕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거나,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 노인 정치 국가가 되면서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총리 역할을 수행하는 권력을 얻게 되었다. 현재는 국왕의 최측근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2. 3. 국왕 겸임 총리 시대 (1975년 ~ 2022년)
파이살 국왕은 1964년 사우드 국왕을 퇴위시키고 왕위를 계승하면서 총리직을 겸임했다. 이후 살만 국왕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총리로 임명할 때까지 국왕이 총리직을 겸임했다.[2] 칼리드 국왕 시대부터,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노인 정치 국가가 되면서, 국왕이 고령으로 인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거나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다른 인물들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이들은 주로 국왕의 총애를 받는 인물들이었으며, 사실상 총리 역할을 수행했다.[12]2. 4. 무함마드 빈 살만 총리 시대 (2022년 ~ 현재)
살만 국왕이 무함마드 빈 살만을 총리로 임명하기 전까지 국왕과 총리직은 통합되어 있었다.[2] 칼리드 국왕 통치 시기부터,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왕국이 노인 정치가 되면서 국왕이 업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들이 실질적인 업무를 많이 수행했다.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총리가 되는 권력을 얻었으며, 현재는 국왕의 최측근인 무함마드 빈 살만이 총리직을 맡고 있다.3. 역대 총리 목록
(출생–사망)

(1902 – 1969)
국왕 1953 – 1964

(1906 – 1975)
(1902 – 1969)
국왕 1953 – 1964
(1906 – 1975)
국왕 1964 – 1975

(1920, 1921 또는 1923 – 2005)
국왕 1982 – 2005

(1924 – 2015)
국왕 2005 – 2015

(1935년 출생)
국왕 2015 –

(1985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