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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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산청 척화비(山淸 斥和碑)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고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에 세운 비석 중 하나입니다. 1871년(고종 8년)에 세워졌으며, 원래는 산청읍 관아 근처 환아정(換鵝亭)이라는 정자 앞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두 조각으로 훼손되어 땅에 묻혔다가 산청초등학교를 지을 때 발견되어 현재는 학교 교정에 복원되어 있습니다.
산청 척화비의 특징:
- 형태: 거북 모양의 받침돌(귀부) 위에 비몸을 세우고, 윗변 양쪽을 비스듬히 다듬은 형태입니다. 지붕돌(옥개석 또는 이수)은 없습니다.
- 재질: 화강암
- 크기: 높이 135㎝, 가로 45㎝, 세로 25.5㎝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당시 기준)
- 비문:
- 큰 글씨: "洋夷侵犯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 작은 글씨: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우리 만대 자손은 경계하라.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우다)
- 역사적 의의: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겪은 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 현재 위치: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산청리 290-1, 산청초등학교 교정
- 문화재 지정: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 14번 문제에 산청현 지도(1872년 제작)의 일부와 함께 척화비가 등장하여, 당시 조선 정부의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습니다.
산청 척화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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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척화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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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경상남도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294 |
지정일 | 1993년 12월 27일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산청리 295-1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면적 | 4m2 |
수량 | 1기 |
문화재청 ID | 21,02940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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