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이디고라스
1. 개요
산티아고 이디고라스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주로 활약했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7년간 1군 선수로 활동하며 1980-81 시즌 라리가 우승을 경험했고, 멕시코 푸에블라, 발렌시아,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한 경기에 출전했으며, 197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종목에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고향에서 체육관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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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산티아고 이디고라스 빌바오 |
|---|---|
| 출생일 | 1953년 6월 24일 (세) |
| 출생지 | 오냐티, 스페인 |
| 키 | 1.83m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레알 소시에다드 |
|---|
| 연도 | 1972–1974 |
|---|---|
| 클럽 | 산 세바스티안 |
| 출장 | (정보 없음) |
| 골 | (정보 없음) |
| 연도 | 1974–1981 |
| 클럽 | 레알 소시에다드 |
| 출장 | 204 |
| 골 | 39 |
| 연도 | 1981–1982 |
| 클럽 | 푸에블라 |
| 출장 | 34 |
| 골 | 12 |
| 연도 | 1982–1983 |
| 클럽 | 발렌시아 |
| 출장 | 16 |
| 골 | 4 |
| 연도 | 1983–1985 |
| 클럽 | 알라베스 |
| 출장 | (정보 없음) |
| 골 | (정보 없음) |
| 총 출장 | (정보 없음) |
| 총 골 | (정보 없음) |
| 연도 | 1975–1976 |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아마추어 |
| 출장 | 6 |
| 골 | 1 |
| 연도 | 1977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U21 |
| 출장 | 2 |
| 골 | 0 |
| 연도 | 1977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
| 출장 | 1 |
| 골 | 0 |
-
푸에블라 FC의 축구 선수 -
다니엘 오소르노
다니엘 오소르노는 멕시코의 전 축구 선수로, 클루브 아틀라스에서 데뷔하여 멕시코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CONCACAF 골드컵과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경험했고, 은퇴 후에는 밴드를 운영하고 있다. -
푸에블라 FC의 축구 선수 -
하레드 보르헤티
멕시코의 은퇴한 축구 선수 하레드 보르헤티는 공격수로 활약하며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득점 2위, 산토스 라구나에서 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했고, 볼턴 원더러스 FC에서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멕시코 선수로 뛰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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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53년 출생 -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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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출생 -
박덕흠
박덕흠은 충청북도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소속 4선 국회의원으로, 건설업계와 학계 경력을 바탕으로 국토교통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정보위원장직을 역임했으나 보수 성향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2. 클럽 경력
기푸스코아 주 오냐티 출신인 이디고라스는 인근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군을 거쳐 1974-75 시즌에 1군으로 승격, 라리가 데뷔전을 치렀고, 첫 시즌에 리그 4위를 기록했다. 바스크 연고 구단에서 7년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80-81 시즌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오냐티의 바이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총 255경기에 출전, 47골을 기록한 후 멕시코의 푸에블라로 이적했다.
푸에블라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발렌시아로 이적하며 스페인 무대로 복귀했다. 발렌시아에서 1982-83 시즌을 보낸 후, 알라베스에서 2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2.1. 레알 소시에다드
기푸스코아 주 오냐티 출신인 이디고라스는 인근 레알 소시에다드의 유소년부를 졸업했다. 2군에서 2년을 보낸 그는 1974-75 시즌에 1군으로 승격되었고, 1974년 9월 15일에 0-1로 패한 셀타 비고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 리가 첫 경기를 치렀다. 그는 파랑 하양 군단 (레알 소시에다드의 별칭)의 1군에서 보낸 첫 해를 25경기 출전으로 마쳤고, 소속 구단은 리그 4위를 기록했다.
이디고라스는 바스크 연고 구단 소속으로 7년을 보내며 1군 주축으로 활약했는데, 매년 최소 25경기는 출전했으며, 1980-81 시즌에는 리그를 우승했다. 이 해에 그는 29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중 21번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고, 3골을 기록했다. 그는 창백한 피부와 금발머리로 인해 오냐티의 바이킹(El Vikingo de Oñati)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디고라스는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총 255번의 경기에 출전해 47골을 기록하고 팀을 떠나 멕시코의 푸에블라에 입단했다.
2.2. 푸에블라
이디고라스는 레알 소시에다드를 떠나 멕시코의 푸에블라에 입단했다. 푸에블라는 당시 바르셀로나 선수였던 후안 마누엘 아센시와 레알 마드리드 선수였던 피리를 영입하며 우승 경쟁을 위한 선수단을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푸에블라는 플레이오프전 진출에 실패했다.
2.3. 발렌시아
1982년 여름, 해외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이디고라스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발렌시아에 합류하여 마리오 켐페스와 한 팀을 이루었다. 그는 1982-83 시즌에 악전고투를 벌였는데, 시즌 중반에는 주전 지위까지 상실했고, '동지'는 15위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2.4.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이디고라스는 1985년에 32세의 나이로 3부 리그에 속한 알라베스에서 2년을 보내고 은퇴했는데, 소속 구단은 2년 연속 3위 성적을 거두었지만 플레이오프전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이디고라스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1번 출전했는데,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77년 2월 9일에 더블린에서 아일랜드를 1-0으로 이긴 친선경기였다. 그는 몽레알에서 열린 1976 하계 올림픽에서 자국을 대표로 출전했는데, 스페인은 이 대회의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4. 은퇴 후
은퇴 후, 이디고라스는 고향 산세바스티안에서 체육관을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