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피드로 산 미라
1. 개요
샌피드로 산 미라는 1932년 또는 1934년 와이오밍주 샌피드로 산에서 발견된 작은 크기의 미라로, 발견 당시 앉은 자세에 키는 약 15~18cm, 몸무게는 약 450g으로 추정되었다. 발견 직후 미라의 정체를 두고 논란이 일었으며, 과학적 분석 결과 무뇌증을 가진 유아의 시신으로 밝혀졌다. 두 번째 미라도 발견되었으며, DNA 검사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여자 유아로 확인되었다. 샌피드로 산 미라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며, 현재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 이름 | 샌피드로 산 미라 |
|---|---|
| 다른 이름 | 페드로 리틀 피트 |
| 발견 위치 | 미국 와이오밍주 샌피드로 산 |
| 발견 날짜 | 1932년 |
| 보관 장소 | 불명 |
| 종 | 호모 사피엔스 (추정) |
|---|---|
| 성별 | 불명 |
| 추정 나이 | 65세 |
| 신장 | 약 36cm |
| 피부색 | 검은색, 가죽 같은 질감 |
| 눈 | 눈에 띄게 튀어나옴 |
| 두개골 특징 | 편평한 정수리, 기름 발린 듯한 물질로 덮여 있음 |
| 주요 논점 | 미라의 정체 및 기원 |
|---|---|
| 제시된 가설 | 기형 아기 성인 난쟁이 외계 생명체 |
| 과학적 조사 | X선 검사, DNA 분석 시도 |
| 현재 상태 | 미라의 행방은 1950년대 이후 알려지지 않음 |
| 관련 설화 |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작은 사람들"에 대한 전설 |
|---|---|
| 언론 보도 | 발견 당시 다양한 신문 기사에 보도됨 |
| 대중 문화 | 여러 다큐멘터리 및 소설의 소재로 활용됨 |
-
와이오밍주의 역사 -
존슨군 전쟁
존슨군 전쟁은 1892년 와이오밍주 존슨 카운티에서 대규모 목장주와 소규모 자영농 간의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진 사건으로, 와이오밍 가축 사육자 협회의 불리한 정책 추진과 용병 고용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연방군 개입으로 종결되었으나 서부 개척 시대의 폭력과 불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
미국의 고고학 -
메인 페니
메인 페니는 1957년 메인주에서 발견된 11세기 은화로, 아메리카 원주민 거주지에서 펜던트 형태로 발견되었으며 원주민 교역망을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
미국의 고고학 -
클로비스 문화
클로비스 문화는 약 13,000년 전 북아메리카에 존재했으며 홈이 파인 첨두기 석기 도구를 사용하고 매머드와 같은 대형 동물 사냥에 능숙했던 고고학 문화로, 한때 북미 최초 거주민으로 여겨졌으나 현재는 아메리카 대륙 초기 인류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미라 -
제러미 벤담
영국의 법철학자이자 사회개혁가인 제러미 벤담은 공리주의 철학의 창시자로, 법 개혁과 사회 개혁에 헌신하며 공리주의를 체계화하고 판옵티콘 감옥 모델을 제안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
미라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2. 발견 경위
1930년대 초 와이오밍주 샌피드로 산에서 첫 번째 미라가 발견된 이후, 이 미라를 둘러싸고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1979년 7월 7일 자 캐스퍼 스타트리뷴 기사에 따르면, 발견 직후부터 이것이 날조된 것인지, 실제 아기의 미라인지, 혹은 전설 속의 '소인'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이 미라는 와이오밍주 미티츠의 한 약국에 전시되어 몇 년간 지역 명물로 여겨졌으나, 이후 캐스퍼의 사업가 이반 T. 굿맨에게 팔렸다. 그 후 뉴욕의 사업가 리오너드 워들러(Leonard Wadler)에게 넘어갔고, 현재는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당시 캐스퍼 스타트리뷴은 진화론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미라를 찾는 사람에게 10의 상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첫 번째 미라는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기형 두개골 때문에 작은 어른처럼 보인" 무뇌증 아기의 미라로 밝혀졌다. 이후 1990년대에 와이오밍 대학교의 조지 길(George Gill)과 덴버 어린이병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두 번째 미라 역시 무뇌증을 앓았던 아기로 확인되었다. DNA 검사 결과, 이 아기는 아메리카 원주민이었으며,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17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2.1. 최초 발견
페드로로 알려진 미라는 1932년 또는 1934년에 미국 와이오밍주 카본 카운티의 샌피드로 산에서 금을 찾던 광부 세실 메인(Cecil Main)과 프랭크 카(Frank Carr)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들은 금을 찾기 위해 동굴을 폭파하여 열었고, 그 안의 선반 위에서 앉아있는 자세의 미라화된 시체를 발견했다. 발견된 미라는 키가 약 약 15.24cm~약 17.78cm이고, 무게는 약 약 0.45kg이었다. 미라가 서 있을 경우의 키는 약 43.18cm로 추정되었다. 미라가 발견된 장소는 패스파인더 저수지 근처의 리틀 맨 광산 채굴권 내였을 가능성이 있다.
3. 과학적 분석 및 논란
1936년, 세실 메인은 선서 진술서를 통해 미라가 당시 호머 F. 셔릴의 소유이며 시카고의 필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밝혔으나, 박물관 측에는 관련 기록이 없다. 네브래스카 출신의 셔릴은 이 미라를 초기 인류의 표본으로 전시했다. 이후 미라는 수년간 와이오밍주 미티트시의 한 약국 창문에 전시되기도 했다. 1940년대에는 캐스퍼의 자동차 딜러 아이반 굿맨이 미라를 구입하여 나무 받침대에 놓고 유리 돔 안에 넣어 전시하며, 65세의 "피그미"가 "실제로 살았던 모습 그대로 보존된 것"이라고 광고했다. 굿맨은 1950년 사망 직전 뉴욕에서 미라를 분실했거나, 혹은 1979년 캐스퍼 스타-트리뷴 기사에 따르면 레너드 와들러에게 판매했으며, 와들러는 이후 플로리다로 이주하여 198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라의 작은 크기와 성인처럼 보이는 외모는 쇼쇼니족의 소인 전설인 니머리가르와 연관되었으며, 미국 원주민이 아닌 이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피그미" 인디언 민속과도 연결되었다. 1941년 8월, 밀워키 저널은 "피그미 종족이 한때 미국에 살았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미라를 소개하기도 했다.
과학적 조사 결과, 미라는 무뇌증을 앓던 유아의 시신이며 성인처럼 보이는 외형은 머리 기형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메리카 자연사 박물관의 해리 L. 샤피로, 필드 박물관의 폴 마틴, 와이오밍 대학교의 조지 W. 길 등이 이러한 결론을 지지했다. (자세한 조사 내용은 하위 섹션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었다. 2005년에는 뉴욕주 그랜비의 존 아돌피가 기존의 인류 진화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미라의 소재를 찾는 데 10의 현상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3.1. 초기 조사
1979년 7월 7일자 캐스퍼 스타트리뷴 기사에 따르면, 미라가 발견되자마자 이것이 날조된 것인지, 실제 아기인지, 아니면 전설 속의 '소인'인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1950년 캐스퍼 트리뷴-헤럴드는 산 페드로 미라의 X-레이 검사 결과, 성인의 척추와 치아가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또한 미라의 위 내용물과 골절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 후반 아메리카 자연사 박물관의 인류학자 해리 L. 샤피로가 주도한 검사와 1950년 필드 박물관의 폴 마틴이 실시한 검사 결과는 달랐다. 이들은 미라가 실제로는 무뇌증을 앓던 유아의 시신이며, 작은 성인처럼 보이는 외형은 머리뼈의 기형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발견된 첫 번째 미라에 대한 초기 X-레이 검사에서도 "기형 두개골 때문에 작은 어른처럼 보인" 무뇌증 아기라는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와이오밍 대학교의 조지 W. 길 역시 X-레이 사진을 검토한 후, 미라가 무뇌증 아기라는 전문가들의 결론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 X-레이 필름은 이후 분실되어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미라의 작은 키와 성인과 유사한 외모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를 쇼쇼니족의 소인 전설인 니머리가르와 연관 짓기도 했다.
3.2. 추가 연구
1940년대 후반 아메리카 자연사 박물관의 해리 L. 샤피로와 1950년 필드 박물관의 폴 마틴은 각각 미라를 조사하여, 이것이 무뇌증을 가진 유아의 시신이며 성인처럼 보이는 외형은 머리 기형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와이오밍 대학교의 조지 W. 길 역시 X-레이 사진을 검토하고 이 결론을 지지했으나, 해당 X-레이 필름은 이후 분실되었다.
1990년대에는 길과 덴버 어린이병원이 발견된 두 번째 미라를 공동으로 조사했는데, 이 미라 역시 무뇌증을 앓았던 아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가적인 DNA 검사 결과, 미라는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으로 밝혀졌으며,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연대가 약 1700년대로 추정되었다.
4. 두 번째 미라
1994년, 텔레비전 쇼 《미스터리 해결》에 샌피드로 미라가 소개된 후, 체옌의 한 가족이 첫 번째 미라와 유사한 또 다른 미라를 공개했다. 이 미라는 1929년경 지역 양치기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치키타"라고 불렸으며, 키는 약 약 10.16cm였다. 이후 진행된 검사를 통해 치키타는 선천성 무뇌증을 앓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여자 아기의 자연 미라로 확인되었다.
4.1. 발견 및 검사
1994년, 인류학자 조지 길은 텔레비전 쇼 《미스터리 해결》의 한 에피소드를 위해 유진 배셔와 함께 샌피드로 미라에 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유진 배셔는 쇼쇼니족의 전설에 나오는 작은 사람들, 니메리가르(Nimerigar)의 증거를 찾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체옌의 한 가족이 약 10.16cm 높이의 비슷한 미라를 제시했는데, 이 미라는 1929년경 와이오밍 지역의 양치기에게서 구입한 것이었으며 "치키타"라고 불렸다.
라라미의 이빈슨 기념 병원과 덴버 어린이 병원에서 실시한 X-레이 및 DNA 검사를 통해, 이 미라(치키타)가 자연적으로 미라화된 선천성 무뇌증을 앓은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여자 유아임이 확인되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는 약 1500년 또는 1700년경으로 추정되었다. 이후 치키타를 소유한 가족은 미라에 대한 추가적인 접근을 거부했다.
샌피드로 미라와 치키타, 두 미라는 모두 팔을 다리에 감싼 채 앉은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이는 와이오밍 아메리카 원주민의 일반적인 매장 방식과는 다르다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치키타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는 드물게 금발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선천성 무뇌증을 앓은 유아의 미라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사례 외에는 이 두 미라가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5. 미라의 행방
첫 번째 미라는 발견 직후부터 그 정체를 두고 논쟁이 있었으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소유자는 뉴욕의 사업가 레너드 워들러(Leonard Wadler)였으나, 그 이후 미라의 현재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라진 미라를 찾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 1979년 캐스퍼 스타트리뷴은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미라를 찾는 사람에게 10의 현상금을 제안했다. 2005년에는 뉴욕주 그랜비의 존 아돌피(John Adolfi)가 인류 진화에 대한 기존 설명을 반박하기 위해 동일한 금액의 상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5.1. 소유권 이전
1936년, 발견자 중 한 명인 메인은 선서 진술서에서 미라가 당시 호머 F. 셔릴의 소유이며 시카고의 필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나, 필드 박물관에는 관련 기록이 없다. 네브래스카 출신인 셔릴은 이를 초기 인류로 전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라는 수년 동안 와이오밍주 미티츠의 한 약국 창문에 전시되어 지역 명물로 여겨졌다. 1940년대에 캐스퍼의 자동차 딜러이자 사업가인 이반 T. 굿맨이 이 미라를 구입했다. 굿맨은 미라를 나무 받침대에 설치하고 돔형 유리 병에 넣어 65세의 "피그미"이며, "실제로 살았던 모습 그대로 보존됨"이라고 광고하며 전시했다.
미라의 다음 소유권 이전과 행방에 대해서는 약간의 혼선이 있다. 1950년 굿맨이 사망하기 직전 뉴욕에서 미라를 잃어버렸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한편, 1979년 캐스퍼 스타트리뷴 기사에 따르면 굿맨은 미라를 뉴욕의 사업가인 레너드 워들러(Leonard Wadler)에게 판매했으며, 워들러는 이후 플로리다로 이주하여 1980년대에 사망했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워들러에게 넘어간 이후 미라의 현재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1979년 캐스퍼 스타트리뷴은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라진 미라를 찾는 사람에게 10000USD의 상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뉴욕주 그랜비의 존 아돌피(John Adolfi)가 인류 진화에 대한 기존 설명을 반박하기 위해 미라를 찾는 대가로 10000USD를 제안했다.
6. 대중적 관심과 논란
샌피드로 산 미라가 발견되자마자 그 정체를 두고 날조된 것인지, 아기인지, 아니면 전설 속의 '소인'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첫 번째로 발견된 미라는 와이오밍주 미티츠의 한 약국에 전시되어 몇 년간 지역 명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미라는 캐스퍼의 사업가 이반 T. 굿맨이 구입했다. 굿맨은 미라를 나무 받침대에 설치하고 유리 돔 안에 넣어 65세의 "피그미"로 광고하며 전시했다. 굿맨이 사망하기 직전인 1950년경 미라는 뉴욕의 사업가 레너드 워들러에게 넘어갔거나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로는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미라의 작은 크기와 성인처럼 보이는 외모는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으며, 쇼쇼니족의 소인 전설과의 연관성이나 인류 진화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과학적 조사를 통해 미라의 정체는 무뇌증을 앓았던 아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1990년대에 추가로 발견되어 분석된 두 번째 미라 역시 무뇌증에 걸린 아메리카 원주민 아기로 확인되었고,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17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6.1. 소인족 전설과의 연관성
미라의 작은 키와 성인과 같은 외형 때문에, 이 미라는 쇼쇼니족의 소인 전설인 니머리가르와 연관 지어 해석되기도 했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닌 이주민 사회에서 전해 내려오던 "피그미" 인디언에 대한 민속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었다. 1941년 8월, 밀워키 저널은 "피그미 종족이 한때 미국에 살았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미라에 대해 보도하며 이러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시간이 흘러 2005년에는 뉴욕주 그랜비의 존 아돌피라는 인물이 기존의 인류 진화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미라를 찾는 사람에게 10의 현상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적인 조사 결과는 이러한 전설과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1940년대 후반 아메리카 자연사 박물관의 해리 L. 샤피로와 1950년 필드 박물관의 폴 마틴이 각각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 미라는 무뇌증을 앓았던 유아의 시신이며, 성인처럼 보이는 외형은 머리의 기형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와이오밍 대학교의 조지 W. 길 역시 X-레이 사진을 통해 이 결론을 지지했다. (비록 해당 X-레이 필름은 이후 분실되었다.) 1950년 캐스퍼 트리뷴-헤럴드는 X-레이에서 성인의 척추와 치아가 나타났다고 보도했으며, 위 내용물과 골절에 대한 보고도 있었지만, 이는 이후 진행된 과학적 조사 결과와 배치된다.
6.2. 진화론 논쟁
샌피드로 산 미라의 발견은 그 정체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이 미라가 인류 진화에 대한 기존의 과학적 설명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1979년 7월 7일 자 캐스퍼 스타트리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신문사는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한다는 명목으로 사라진 첫 번째 미라를 찾는 사람에게 10의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2005년에는 뉴욕주 그랜비의 존 아돌피 역시 인류 진화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미라를 찾는 데 10를 제안했다.
그러나 미라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는 이러한 주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발견된 첫 번째 미라에 대한 엑스레이 검사 결과, "기형 두개골 때문에 작은 어른처럼 보인" 무뇌증을 앓던 아기의 시신으로 밝혀졌다. 1940년대 후반 아메리카 자연사 박물관의 해리 L. 샤피로와 1950년 필드 박물관의 폴 마틴이 수행한 검사 역시 미라가 무뇌증을 가진 유아이며, 성인처럼 보이는 외형은 머리 기형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와이오밍 대학교의 조지 W. 길 또한 엑스레이 필름을 검토한 후 이 결론을 지지했다. 이후 1990년대에 발견되어 분석된 두 번째 미라 역시 무뇌증에 걸린 아메리카 원주민 아기였으며,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17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