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1. 개요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은 유희좌 자세를 취하고 있는 조선 초기 금동 보살상이다. 통통한 뺨과 반개한 눈 등 여성적인 얼굴 표현, 큰 규모로 인해 왕실 또는 지배층의 발원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1818호로 승격되었다. 조선 초기 귀족적인 보살상 형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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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
|---|---|
|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1818 |
| 지정일 | 2014년 3월 11일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자 | 보타사 |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개운사길 60-46 (안암동5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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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불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83호)은 7세기 신라 시대에 제작된 높이 약 93cm의 금동 반가사유상으로, 삼산관을 쓰고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조각 기법과 깊은 사색에 잠긴 얼굴 표현이 특징이다. -
금동불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
머리에 일월식 삼면보관을 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은 날씬한 신체와 우아한 옷매무새가 특징이며, 6세기 후반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신라 또는 고구려 제작설이 공존하고, 미륵신앙과 관련된 상징성과 예술적 가치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
좌상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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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그 안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들로, 불상의 조형성과 조각적 완성도가 뛰어나며 조선 후기 복장 의례 연구, 불상 연대 추정, 직물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서울 성북구의 문화유산 -
한량무
한량무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에서 유래하여 진주 교방에서 전승되는 7인의 춤으로, 한량, 별감, 승려, 색시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풍자하며, 북, 장구 등 악기 반주에 맞춰 춤사위를 펼친다. -
서울 성북구의 문화유산 -
정릉 (신덕왕후)
조선 태조의 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은 신덕왕후 사후 태종에 의해 후궁으로 격하되어 능이 천장되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이후 왕후로 복권되고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2.1. 제작 배경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을 보면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얼굴 모습은 금강산에서 출토된 금동아미타삼존불좌상(1429년, 평양력사박물관), 수종사 석탑에서 나온 금동불좌상(1459~1493년, 국립중앙박물관), 무위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1478년) 등 15세기에 만들어진 불상들과 비슷하다. 특히 1501년에 만들어진 기림사 건칠보살좌상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2.2. 양식적 특징
이 불상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금동관음보살상으로,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 무릎을 위로 올리고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 바닥을 딛는 유희좌(遊戱坐)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유희좌 자세는 중국 북송 시대부터 유행하여 한국에서는 고려 후기에 유행하기 시작해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얼굴은 통통한 뺨, 반쯤 뜬 눈, 작고 아름다운 입술 등 여성스러운 모습이 느껴진다. 어깨에 천의(天衣)를 숄처럼 걸치고 그 한 자락을 수직으로 늘어뜨리는 옷차림은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등 조선 초기 보살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얼굴에 살이 많고 조각 면이 넓으며 입이 작고 턱 부분이 약화된 얼굴 표현은 금강산 출토 금동아미타삼존불좌상(1429년, 평양력사박물관), 수종사 석탑 출토 금동불좌상(1459-1493, 국립중앙박물관), 무위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1478년) 등 15세기 불상과 비슷하며, 특히 1501년 기림사 유희좌건칠보살좌상과 가장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2.3. 보존 상태
이 불상은 조선시대의 금동관음보살상으로, 현재 보타사 요사채의 유리를 부착한 장방형 불감(佛龕) 안에 모셔져 있다. 왼발을 나무로 보수하여 다리 부분에 붙여 놓은 것과 보계가 없어진 것을 제외하면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보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경의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이 유사하여 고려 말 조선 초 윤왕좌 유희좌상의 양식적 계보를 잇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3. 문화재적 가치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은 조선 초기에 왕실이나 지배층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여성적인 얼굴 표현과 큰 규모, 어깨에 천을 두른 모습 등은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을 비롯한 당시 보살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선 초기 귀족적인 보살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어 조선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3.1. 유형문화재 지정 및 보물 승격
2006년 9월 14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216호 보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으로 지정되었고, 2009년 6월 4일 보타사 금동 보살좌상(관음보살)으로 문화재 지정 명칭이 변경되었다, 문화재청장이 2014년 1월 13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절차를 거쳐, 2014년 3월 1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18호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으로 지정되었다.
3.2. 학술적 의의
이 불상은 통통한 뺨, 반개한 눈, 작고 아름다운 입술 등에서 여성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얼굴 표현과 조선 전기 금동상으로는 규모가 큰 점을 볼 때, 조선 초 왕실이나 지배층이 발원한 상으로 추정된다. 어깨에 천의(天衣)를 숄처럼 걸치고 그 한 자락을 수직으로 늘어뜨리고 있는데, 이는 국보 제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등 조선 초기 보살상에서 볼 수 있는 착의법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에 중앙에서 유행했던 귀족적인 보살상 형식을 보여주는 예로서, 조선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