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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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는 안양암 명부전에 봉안된 불화로, 시왕도 10폭, 일직·월직사자도, 인왕도로 구성되어 있다. 시왕도는 죽은 뒤 망자를 심판하는 10명의 대왕을, 사자도는 지옥사자와 인왕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1922년 고산(古山) 등 화승들이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 시왕도의 도상을 따라 제작했으며, 각 왕의 모습과 관련된 지옥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전체가 완전하게 남아있고 고산의 화풍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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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는 10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그림은 명부에서 망자를 심판하는 시왕과 그 권속,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명부전 좌우에 걸려 있으며, 시왕도와 일직·월직사자도 및 인왕도로 이루어져 있다.[1]
시왕은 죽은 뒤의 세계인 명부(冥府)에서 망자를 재판하는 10명의 대왕으로, 진광대왕(秦廣大王), 초강대왕(初江大王), 송제대왕(宋帝大王), 오관대왕(五官大王), 염라대왕(閻魔大王), 변성대왕(變成大王), 태산대왕(泰山大王), 평등대왕(平等大王), 도시대왕(都市大王),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을 말한다.[1]
각 시왕도는 상단에 시왕과 권속, 하단에 지옥 장면이 묘사된 유사한 구성을 보인다. 각 왕도별 묘사는 다음과 같다.
- 제1왕도: 진광대왕이 성곽을 배경으로 상단에 크게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지장보살과 죄인들, 발설지옥(拔舌地獄)이 묘사되어 있다.
- 제2왕도: 초강대왕이 원유관을 쓰고 수염을 잡은 채 책상에 앉아 있고, 책상 앞에 판관, 녹사, 사자, 장군이 묘사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지장보살, 죄인, 확탕지옥(鑊湯地獄)이 그려져 있다.
- 제3왕도: 송제대왕이 면류관을 쓰고 합장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망자가 추장지옥(抽腸地獄)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 제4왕도: 오관대왕이 원유관을 쓰고 수염 끝을 잡고 있으며, 하단에는 철상지옥(鐵床地獄)과 사자가 묘사되어 있다.
- 제5왕도: 염라대왕과 업경대(業鏡臺)가 상단에, 망자가 좌대지옥(剉碓地獄)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하단에 그려져 있다.
- 제6왕도: 변성대왕이 원유관을 쓰고 책상 앞에 앉아 있고, 하단에는 판관이 망자에게 죄목을 알려주는 장면과 도산지옥(刀山地獄)이 묘사되어 있다.
- 제7왕도: 태산대왕이 원유관을 쓰고 수염을 잡은 채 앉아 있고, 하단에는 한빙지옥(寒氷地獄)이 표현되어 있으며, 상단과 하단의 경계에 산수가 그려진 점이 특징적이다.
- 제8왕도: 평등대왕이 한 손을 책상 앞에 놓은 채 앉아 있고, 하단에는 망자가 압석지옥(壓石地獄)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제9왕도: 도시대왕이 투구를 쓴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거해지옥(鉅解地獄)이 묘사되어 있다.
- 제10왕도: 오도전륜대왕이 투구를 쓴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망자가 육도지옥(六途地獄)으로 보내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1]
그림 위쪽에는 각 왕의 이름과 화기가 적혀 있다. 화기에는 제작 연대(1922년)와 화사(고산, 축박, 학송, 학눌)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 시왕도의 도상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1]
일직·월직사자도 및 인왕도는 시왕도 옆에 걸려 있으며, 그림 가운데 선을 긋고 한쪽에는 지옥사자, 한쪽에는 인왕을 그렸다. 화기가 없어 정확한 제작 연대와 화사는 알 수 없으나, 시왕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1]
2. 1. 구성 및 특징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는 좌우 각각 4개의 그림을 하나의 판에 그리고, 1개는 별도의 판에 그려 따로 걸었다는 특징이 있다. 시왕은 죽은 뒤 명부(冥府)에서 망자(亡者)를 재판하는 10명의 대왕을 말한다.[1]- 향우측: 제1왕 진광대왕(秦廣大王), 제3왕 송제대왕(宋帝大王), 제5왕 염라대왕(閻魔大王), 제7왕 태산대왕(泰山大王), 제9왕 도시대왕(都市大王)
- 향좌측: 제2왕 초강대왕(初江大王), 제4왕 오관대왕(五官大王), 제6왕 변성대왕(變成大王), 제8왕 평등대왕(平等大王), 제10왕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각 그림은 상단에 시왕과 권속, 하단에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다. 그림 상단에는 각 왕의 이름과 해당 왕이 다스리는 지옥, 그리고 그 지옥에 떨어지는 중생의 출생년도가 기록되어 있다.[1]
하단에는 시주자 명단과 함께 발원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신앙 형태와 불화 제작 후원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1]
시왕도는 1922년 고산(古山), 축박(竺迫), 학송(鶴松), 학눌(學訥) 등이 그렸으며,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 시왕도의 도상을 그대로 따라 제작한 작품이다.[1]
일직사자도 및 인왕도(日直使者圖 및 仁王圖)와 월직사자도 및 인왕도(月直使者圖 및 仁王圖)는 시왕도 옆에 걸려 있는데, 그림 가운데에 선을 긋고 한쪽에는 지옥사자, 한쪽에는 인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정확한 제작연대와 화사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말~20세기 전반 서울·경기지역에서 유행하던 도상이므로 시왕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1]
2. 2. 각 왕도별 묘사
요약과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주어진 결과물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원본 소스와 요약 정보가 제공되어야 지시사항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고 위키텍스트 형식으로 출력할 수 있습니다.3. 안양암 명부전 일직·월직사자도 및 인왕도
안양암 명부전에는 시왕도 외에 일직사자도, 월직사자도, 인왕도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 그림들은 명부전 좌우에 걸려 있는데, 일직사자도와 인왕도는 향우측, 월직사자도와 인왕도는 향좌측에 모셔져 있다. 그림 가운데에 선을 긋고 한쪽에는 지옥사자, 한쪽에는 인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기(畵記)가 없어 정확한 제작 연대와 화사(畵師)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도상이므로 시왕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4. 화풍 및 도상적 특징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는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 시왕도의 도상을 그대로 따라 제작되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시왕도는 1922년 고산(古山) 축박(竺迫), 학송(鶴松), 학눌(學訥) 등이 그렸다.[1] 고산 축박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불화승으로, 그의 화풍은 안양암 시왕도에 잘 반영되어 있다.
각 왕들의 그림 상단에는 왕의 이름과 함께 화기가 적혀있다.
일직·월직사자도 및 인왕도(日直·月直使者圖 및 仁王圖)는 시왕도 옆에 걸려 있는데, 일직사자도와 인왕도는 향우측, 월직사자도와 인왕도는 향좌측에 있다. 그림 가운데에 선을 긋고 한쪽에는 지옥사자, 한쪽에는 인왕을 그렸다. 화기(畵記)가 없어 정확한 제작 연대와 화가는 알 수 없으나, 이 역시 19세기 말~20세기 전반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도상이므로 시왕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1]
5. 의의 및 평가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는 시왕도 10폭과 사자도가 모두 완전하게 남아있는 드문 사례이다.[1]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 불화의 특징과 고산 축박의 화풍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1]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도상적 가치가 높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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