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
1. 개요
서혜는 문인 집안 출신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신동'으로 불린 인물이다. 측천무후와 같은 날에 입궁하여 당 태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첩여, 충용의 직위를 거쳤다. 당 태종에게 간언을 올리기도 했으며, 태종 사후 슬픔으로 병을 얻어 2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현비로 추존되어 소릉에 배장되었다. 2014년 중국 드라마 《무미랑전기》에서 장균녕이 서혜 역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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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서혜는 문인 집안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5개월 때 말을 하고 4살에 《모시》와 《논어》를 읽었으며, 8살에 글을 쓸 정도로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렸다. 측천무후와 같은 날에 입궁하여 재인이 되었고, 뛰어난 글 솜씨와 정치적 식견으로 당 태종의 총애를 받아 3품 첩여를 거쳐 2품 충용에 봉해졌다.
정관 말년, 당나라는 잦은 군사 원정과 궁궐 건축 사업으로 백성들이 노역에 지쳐 있었다. 서혜는 당 태종에게 "교만함과 조급함을 멀리하시며 나라를 세우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려우니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간언했다.
649년 당 태종이 서거하자, 서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이듬해인 650년에 2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현비(賢妃)로 추존되었으며, 소릉에 배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