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드라키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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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찬드라키르티는 7세기 경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중관파 철학자로, 남인도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는 나가르주나의 중관파 철학을 계승하여, 모든 현상은 본질적인 자성이 없다는 무자성(無自性)을 주장했다. 특히, 찬드라키르티는 귀류논증(prāsaṅga)을 통해 상대방의 주장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을 선호했으며, 유가행파의 관념론을 비판했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나가르주나의 《중론》에 대한 주석서인 《프라산나파다》와 《중론입》 등이 있으며, 티베트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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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라키르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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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찬드라키르티 |
다른 이름 | [[파일:Candrakirti.gif|월칭]] |
출생 | 서기 600년경 |
출생지 | 남인도 |
사망 | 서기 670년경 |
국적 | 인도 |
종교 | 불교 |
종파 | 중관학파 |
교육 | 날란다 |
스승 | 나가르주나 |
주요 관심사 | 불교 철학 |
2. 생애
찬드라키르티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티베트 자료에 따르면 그는 남인도에서 태어나 불교 승려가 되었으며, 붓다팔리타의 제자인 카마라붓디의 제자였다고 한다.[4] 부톤과 타라나타는 찬드라키르티가 날란다에서 활동했으며, 그곳에서 주지가 되었다고 기록했다.[5]
카렌 랭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부톤과 타라나타에 따르면 찬드라키르티는 남인도에서 태어나 수도원에 들어가 모든 불교 경전을 통달했다. 타라나타는 그가 스리하르샤의 아들인 쉴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삼안타에서 태어났다고 덧붙인다. 그는 나가르주나의 논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바바비베카와 붓다팔리타의 두 라이벌 해석가의 제자들과 함께 그것들을 연구했다. 그는 마드야마카 가르침에 대한 붓다팔리타의 해석을 선호했고, 비즈냐나바다 (의식 교리) 학파의 이상주의적 입장을 지지하는 문법학자 찬드라고민과의 유명한 논쟁에서 이를 옹호했다.[6]
티베트 자료에 따르면, 그는 생애 후반기에 남인도로 돌아가 '코웅쿠나' 지역에 머물렀으며, 이곳에서 많은 비불교도들을 굴복시키고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7]
2. 1. 날란다 사원에서의 논쟁
부 스톤과 타라나타는 모두 찬드라키르티와 시인이자 재가 학자인 찬드라고민 사이의 날란다에서 벌어진 논쟁을 언급한다.[4] 찬드라키르티는 찬드라고민이 파니니의 문법, 수트라(sūtra), 탄트라에 관해 많은 청중 앞에서 강의하는 것을 보고 논쟁을 시작했다. 찬드라키르티는 찬드라고민에게 날란다로 가서 승가에 등록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의견 불일치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으며, 찬드라키르티는 중관파의 입장을 옹호하고 찬드라고민은 유가행파의 견해를 취했다. 이 논쟁은 많은 청중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논쟁 과정에서 찬드라키르티는 찬드라고민의 입장을 꺾지 못했고, 누군가가 찬드라고민을 은밀히 가르치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전설에 따르면, 찬드라고민은 보살 관세음보살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부 스톤과 타라나타는 모두 이 논쟁이 7년 만에 끝났다고 기록하지만, 승자가 누구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3. 철학 사상
찬드라키르티는 나가르주나의 중관파 철학을 따랐다. 중관파는 모든 현상(''법'')이 본질적인 본성이나 스스로 존재하는 것(산스크리트어: ''스바바'')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붓다, 사성제, 열반을 포함한 모든 불교 현상에도 적용된다.[5] 찬드라키르티에 따르면 중관파는 존재와 비존재를 모두 부정하고, 모든 개념과 견해(''dṛṣṭi'')를 철저히 부정하여 극단적인 견해를 거부하는 중도(中道)로 나아간다.[5]
찬드라키르티는 모든 현상이 스바바를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이 현실의 본성에 대한 무지로 인해 경험에 스바바를 부여한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현상이 정신적으로 부여된 의존적 명칭(''prajñāptirupādāya'')이자 개념적 구성물(''prajñaptimatra'')일 뿐이라고 주장했다.[5]
툽텐 진파는 찬드라키르티의 주요 철학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8]
-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형식적 추론을 거부하고, 상대방 입장의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는 결과적 추론에 의존.
- 디그나가와 달마키르티가 발전시킨 불교 인식론의 핵심 교리를 거부.
- 언어와 사고로는 궁극적 진리에 접근할 수 없다는 급진적인 이해.
- 철학적 근거 대신 일상적인 직관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일상적 진실에 대한 이해.
- 자신의 테제가 없다는 나가르주나의 진술에 대한 독특한 해석.
- 붓다 상태에서 마음과 정신적 요소가 중단될 가능성.
찬드라키르티는 붓다팔리타의 중관파 방식을 옹호하고 바비베카의 견해에 반대했다. 그는 중관파가 논쟁에서 자율적인 추론(''svatantrānumāna'')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14] 바비베카는 중관파의 견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독립적인 추론과 형식적인 삼단논법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5][17] 찬드라키르티는 상대방 견해의 부조리한 결과를 보여주는 귀류 논법(prāsaṅga)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6][5]
찬드라키르티는 삼단논법적 논증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본질주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고 보았다.[5][14][9] 그는 나가르주나가 그러한 논증을 사용하지 않고 ''프라상가''에 의존했다고 지적하며, 바비베카와 같은 인물들을 중관파가 아닌 논리학자로 비판했다.[20]
찬드라키르티는 디그나가와 같은 비중관파 인식론자들의 견해도 비판했다.[12] 그는 모든 인식이 궁극적인 관점에서 무지를 포함하며 어떤 인식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추론은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모든 견해를 부정하는 데에만 유용하며, 스스로를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찬드라키르티는 그의 저서 ''중론입(中論入)''에서 유식(唯識) 학파 또는 요가차라(Yogācāra) 학파를 비판했다.[28] 그는 이 학파를 일종의 주관적 관념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2] 찬드라키르티는 요가차라(Yogācāra) 학파가 의식의 공성(空性)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세 가지 본성 이론과 아뢰야식(Ālaya-vijñāna) 이론을 반박했다.[10]
찬드라키르티는 붓다의 공(空)에 대한 앎은 실제로 어떤 것도 아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붓다에게는 모든 마음과 마음 작용(cittacaitta)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했다. 일반 사람의 관점에서는 붓다가 가르침을 설하고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붓다의 관점에서는 의식적인 결정이나 인지가 일어나지 않는다.[14]
3. 1. 두 가지 진리 (이제설)
모든 중관파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찬드라키르티는 반-기초주의적인 두 가지 진리 이론을 주장한다.[9] 찬드라키르티에 따르면, 모든 것(''bhāva'')은 현상적인 것과 궁극적인 것, 두 가지 본성을 가진다.[10][9]현상적 진리(''saṁvṛti'' ''satya'')는 현상이 본성 또는 실존(''bhāva'')을 가진다는 것이다.[5] 예를 들어, 불의 속성은 열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 세계의 진리(''lokasaṁvṛtisatya'')이자 현상적 거래의 진리(''vyavahārasatya'')이다.[10] 그러나 찬드라키르티는 현상적 진리조차 내재적 본성이 비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적 속성은 내재적 본성(''svabhāvas'')이 아니라고 본다. 이는 내재적 본성의 "현상적 실존"을 긍정하는 바비베카와 같은 다른 중관파 학자들과 구별되는 점이다.[9][11]
궁극적 진리(''paramārtha satya'')와 관련하여, 불의 궁극적 본성을 분석하면 불을 뜨겁게 만드는 독립적인 본질은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불(시간 및 인과관계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포함한 모든 것)은 궁극적인 본질이나 본성을 갖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궁극적 진리, 즉 공( ''śūnyatā'') 또는 자아 없음(''niḥsvabhāva'')이다.[5][9] 현상적 진리 안에 내재적 본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적 진리는 변화하고 인과적 효능(''arthakriya'')을 가질 수 있으며, 따라서 연기( ''pratītyasamutpāda'')가 될 수 있다.[9]
3. 1. 1. 세속제의 본질
소남 탁초에 따르면, 세속적인 것은 "세속적인 인지 과정의 영역이며, 평범한 존재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9] 세속적 진실은 잘못된 인지를 바탕으로 한 세속적 허위와 대조될 수 있다.[10] 올바른 인식은 손상되지 않은 감각 능력에 의해 잘못된 인식과 구별된다. 찬드라키르티가 제시하는 관련 구별은 평범한 존재들의 관점에서 인식론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세속적 관습(''lokasaṃvṛti'')과 세상을 반영하지 않는 관습(''alokasaṃvṛti'') 사이의 구별로, 이는 세속적인 기준에서도 기만적이다.[9]찬드라키르티에 따르면 "세속적"(''saṁvṛti'')은 "덮음"을 의미할 수 있으며 망상이나 무지(''avidyā'')와 관련이 있다.[10][9] 또한, 그는 이 용어를 상호 의존적(''paraparasaṃbhavana'')이며 기호화된 것(saṃket) 또는 세속적 관습(''lokavyavahāra'')으로 풀이한다.[9]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속적 진실(현실을 실체화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은폐되고 망상적인 종류의 진실이다.[12][9] 궁극적인 관점에서 볼 때, ''saṁvṛtisatya''는 실제로 진실이 아니다.[10] 찬드라키르티는 세속적 현상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신기루에 비유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세속적 현상이 세속적인 관점에서 어떤 인과적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물은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신기루는 그렇지 않다).[9]
더욱이, 이러한 세속적 현상은 본질적인 본성이나 사물에 부과되는 본질과 같은 세속적으로 환상적인 실체(세속적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음) 및 세속적으로 비현실적인 실체(토끼의 뿔과 같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와 구별되어야 한다.[9] 이 두 가지 비현실적인 현상의 주요 차이점은 세속적으로 비현실적인 실체는 평범한 사람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이해하는 반면, 본질적인 본성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본질적인 본성을 세속적 현상(예: 물 등)에 부과하고 그것들을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것으로 인식한다(성스러운 존재만이 이것이 환상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본질적인 본성은 평범한 존재의 마음속에서 개념적인 허구이다.[9]
세속적인 것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찬드라키르티는 부처가 언어와 세속적 표현을 사용하여 언어를 초월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적 진리로 사람들을 인도했다고 말한다.[12]
찬드라키르티에게 있어 평범한 존재가 세속적인 것을 경험하는 방식은 깨어난 성자 또는 성스러운 존재(''āryas'')가 세속적인 것을 경험하는 방식과 매우 다르다. 찬드라키르티는 성자들이 세속성을 경험하는 방식을 지칭하기 위해 ''단순한 관습'' (티베트어: ''kun rdzob tsam'')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세속적으로 현실적인'' 또는 ''세속적으로 참된''(''kun rdzob bden pa'') 것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평범한 존재는 현상을 붙잡고 오해하여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므로 세속적인 ''현실''을 경험한다. 반면에 깨달은 존재는 실체화되지 않은 종류의 외관만을 경험하며, 이는 마치 반사된 이미지처럼 비현실적인 구조물로 인식된다.[9]
3. 1. 2. 승의제의 본질
찬드라키르티는 궁극적 진실을 "현실을 지각하는 자들의 특별한 고귀한 인지 과정(예셰스)을 통해 발견되는 사물의 본성"으로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추가로 정의한다:[9]> "궁극적인 것은 대상이며, 그 본성은 현실을 지각하는 자들의 ''특별한'' 고귀한 인지 과정을 통해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의 ''내재적 객관적 실재''(svarūpatā / bdag gi ngo bo nyid)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다."
찬드라키르티에게 궁극적 진실은 사물의 실제 모습을 보는 특별한 고귀한 지각을 통해 발견되는 모든 현상의 본성이다. 그러나 이 본성은 진정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9]
찬드라키르티에 따르면, 궁극적 진실인 공(空)은 무아의 두 측면, 즉 인격의 무아(pudgalanairātmya)와 현상의 무아(dharmanairātmya)를 갖는다. 그는 인격, 현상(dharmas), 그리고 공 자체가 모두 비실재적이고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논증을 제시한다.[9]
모든 현상에 내재하는 자성이 없다는 궁극적 진실은 또한 현상이 전혀 일어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비록 관습적 현상이 연기에 의해 발생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외관은 비실재적이고 환상적이다.[9] 따라서 궁극적 진실을 깨닫는 지혜는 현상(dharmas)이 자신으로부터, 다른 것으로부터, 자신과 다른 것 모두로부터, 또는 원인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12] 나가르주나와 마찬가지로, 찬드라키르티는 현상의 발생에 관한 모든 입장을 반박하며,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9]
> 개체는 원인 없이 발생하지 않으며, 예를 들어 신과 같은 원인을 통해 발생하지도 않는다. 또한 스스로나 다른 것으로부터, 또는 둘 다로부터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상호 의존적으로 발생한다.
모든 현상은 근본적으로 비실재적이며 환상과 같다. 이는 그들이 진정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9]
찬드라키르티에 따르면, 이 궁극적 진실(즉, 공과 비발생) 자체도 공하며, 이는 그것 역시 연기적 귀속이라는 잠정적 진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내재적 본성이 없는 것만이 의존적으로 발생하고 인과적으로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9]
찬드라키르티는 공의 공(空)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9]
> 사물의 내재적 실재의 공(空)은 현명한 자들에 의해 '공(空)'이라고 불리며, 이 공(空) 역시 어떤 내재적 실재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공(空)'이라고 불리는 것의 공(空)은 '공의 공(空)'(śūnyatāśūnyat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공(空)을 내재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객관화(bhāva)하는 것을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찬드라키르티의 "공의 공" 교리에 따르면, 궁극적 진실은 절대적 실재, 실존적 기초, 존재론적 기반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단지 부재를 의미하며, 사물의 환상적이고 비실재적인 특성을 의미한다.[5][9]
3. 2. 귀류논증 (프라상가)
찬드라키르티는 붓다팔리타의 중관파 방식을 옹호하며 바비베카의 견해에 반대했다. 찬드라키르티에 따르면 중관파는 논쟁에서 자율적인 추론(''svatantrānumāna'')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14] 이 방식은 불교 인식론자 디그나가가 개발하고 바비베카와 같은 중관파가 채택한 것이다.[15][16] 바비베카는 중관파의 견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독립적인 추론(''svatantrānumāna'')과 형식적인 삼단논법(''prayoga'')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17]찬드라키르티는 바비베카를 비판하며, 중관파 사상가들은 상대방 견해의 부조리한 결과를 보여주는 귀류 논법(prāsaṅga, 문자적으로 "결과")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6][5] 귀류 논법은 상대방의 입장을 상대방의 용어로만 반박하며, 대립되는 입장을 제시하거나 중관파를 논증의 원칙과 결론에 얽매이게 하지 않는다.[19] 중관파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상대방 견해의 부조리함만 지적하며 간접적으로 진실을 가리킨다.[19]
찬드라키르티는 "독립적으로 유효한 논리적 논증(추론)의 관점에서 말하는 사람은 어떤 결점을 얻는다. 우리는 그것들에 의존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 논증의 유일한 열매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무효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20] 그는 삼단논법적 논증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본질주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고 주장한다.[5][14][9] 또한 나가르주나가 그러한 논증을 사용하지 않고 ''프라상가''에 의존했다고 지적한다. 찬드라키르티는 바비베카와 같은 인물들을 중관파가 아닌 논리학자로 보며, 이들의 철학적 실천은 "결함이 잇따라 쌓이는 거대한 저수지"가 된다고 비판한다.[20]
찬드라키르티는 중관파와 본질주의자가 삼단논법적 추론에 필요한 기본적인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독립적인 삼단논법을 개발할 기초가 되는 기본적인 전제에 합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22][14] 독립적인 삼단논법의 타당성은 용어가 논쟁 당사자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 달려 있지만, 중관파와 현실주의자 간의 논쟁에서는 논쟁의 주제 자체가 논의 대상의 존재 방식이기에 불가능하다.[23]
''프라상가'' 논증은 부정적이며, 긍정적인 테제나 견해를 요구하지 않고 상대방의 논증을 해체한다. 찬드라키르티는 ''프라상가'' 논증이 중관파 철학의 단정적 부정 방식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5][12] 중관파는 어떠한 긍정적인 견해도 제시하지 않으며, 나가르주나의 ''비그라하비아바르타니''를 인용하여 "나는 테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14]
찬드라키르티는 디그나가와 같은 비중관파 인식론자들의 견해도 비판한다.[12] 그는 모든 인식이 궁극적인 관점에서 무지를 포함하며 어떤 인식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공성에 대한 명상은 어떤 대상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궁극적 진리는 평범한 마음을 넘어선다고 한다.[14][24] 추론은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모든 견해를 부정하는 데에만 유용하며, 스스로를 부정해야 한다.[14] 찬드라키르티에게 추론과 개념적 사고는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없는데, 궁극적인 것은 모든 개념과 담론적 증식(''prapañca'')을 넘어섰기 때문이다.[25] 그러나 추론은 궁극을 설명하는 데 있어 이성과 사고의 한계를 이해하고, 궁극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가 모순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26]
3. 3. 유가행파 비판
찬드라키르티는 그의 저서 ''중론입(中論入)''에서 유식(唯識) 학파 또는 요가차라(Yogācāra) 학파와 같은 여러 불교적 견해에 대한 반박을 제시했다.[28] 그는 이 학파를 일종의 주관적 관념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12] 찬드라키르티에 따르면, 요가차라(Yogācāra) 학파는 의식의 대상보다 의식에 존재론적 특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의식의 공성(空性)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찬드라키르티는 이 둘은 모두 똑같이 공(空)하며, 어느 쪽도 존재론적 우선성이나 궁극적 실재를 갖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찬드라키르티에게 요가차라는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이 조건 지어져 있고 공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14][12]찬드라키르티는 또한 세 가지 본성 이론과 아뢰야식(Ālaya-vijñāna) 이론을 포함한 요가차라의 기본적인 이론들을 검토하고 반박한다.[10] 그는 아뢰야식이 간접적인 의미(''neyartha'')를 가진 임시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능가경(楞伽經)''을 인용한다.[29] 그는 또한 요가차라가 외부 대상(''bāhyārtha, bahirartha'')의 지식을 부정하는 것과 ‘자기 인식’(''svasamvedana, svasamvitti'') 이론을 비판한다.[29]
더 나아가, 찬드라키르티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등 관념론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승 경전의 다양한 진술을 요가차라 학파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것은 마음이다"와 같은 경전의 가르침은 우리의 고통이 외부의 힘과 행위자에 의해 야기된다는 생각을 반박하기 위해 부처가 설한 것이다. 찬드라키르티는 이러한 그릇된 견해를 반박하고 사람들이 우리의 고통이 주로 우리가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부처가 모든 것이 마음(''citta-matra'') 또는 생각/인상(''vijñapti-matra'')이라고 가르쳤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문자 그대로 존재론적 진술로 받아들여 의식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실수라고 주장한다.[12]
3. 4. 붓다관
찬드라키르티는 붓다의 공(空)에 대한 앎은 실제로 어떤 것도 아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의 무정형적 관점에 따르면, 붓다의 공에 대한 앎은 대상도 없고 대상을 아는 행위에 관여하는 마음도 없는 무지(無知, non-knowing)이다. 따라서 찬드라키르티는 붓다에게는 모든 마음과 마음 작용(cittacaitta)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 사람의 관점에서는 붓다가 가르침을 설하고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붓다의 관점에서는 의식적인 결정이나 인지가 일어나지 않는다.[14] 그러나 듄(Dunne)이 지적하듯이, 찬드라키르티는 붓다가 세상과 어떤 인지적 관계도 없이 중생을 가르치고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27]4. 주요 저작
- 물라 마디야마카 브리티 프라산나파다(중도 근본 게송에 대한 명확한 말씀의 주석): 줄여서 프라산나파다(명확한 말씀)로 알려져 있으며, 나가르주나의 ''물라 마디야마카카리카''에 대한 주석이다.
- 마디야마카아바타라(중도 입문): 자가 주석과 함께 ''[https://www2.hf.uio.no/polyglotta/index.php?page=volume&vid=1113 중도입-바샤]''가 있다.[30] ''마디야마카아바타라''는 대부분의 티베트 사찰에서 중도에 대한 연구의 주요 교재로 사용된다.
- 아리아데바의 ''사백론''에 대한 주석인 ''차투샤타카 티카''(사백 게송에 대한 주석)가 있다.[31]
- 나가르주나의 ''육티샤쉬티카''에 대한 주석인 ''육십유리 브리티''(논리에 관한 육십 게송에 대한 주석)가 있다.
- 나가르주나의 ''순야타사프타티''에 대한 주석인 ''공성칠십송 브리티''(공성에 관한 칠십 게송에 대한 주석)가 있다.
- ''판차스칸다프라카라나''(다섯 묶음에 대한 논의)가 있다.
- 『입중론』[44](『중관 입문』[45]): 보살의 수행에 따라 공(空)의 사상을 서술한다.
- 『사백론주』(『보살 요가행 사백론 광주』[46]): 아리아데바의 『사백론』에 대한 주석이다.[44]
- 『쁘라산나빠다(정명구론)』[44](『명백한 언어』[47]): 표제는 "맑고 깨끗한 구절"의 의미[48]이다. 나가르주나의 저서인 『중론(중의 송)』에 대한 주석서이며, 산스크리트어 원본이 현존한다.
- 『공 70론 주석』[44](『70공성론 주석』[46])
- 『60송 여실론 주석』[44]
- 『입중론』 (법존 번역)
- 찬드라키르티의 중관 사상 (기시네 토시유키 대동출판사, 2001.2.)
이후 찬드라키르티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 기타바타케 토시치카, "청변과 월칭의 이제론", 『인도학 불교학 연구』, 1963-01
- 우루우즈 타카마, "찬드라키르티의 아트만 비판", 『인도학 불교학 연구』, 1963-03
- 이토 쿄겐, "찬드라키르티와 귀류 논법", 『인도학 불교학 연구』, 1971-12
- 오쿠즈미 타케시, "공성의 논증--찬드라키르티의 프라상가 아파티", 『니쇼가쿠샤 대학 논집』, 1973-03
- 탄지 아키요시, "찬드라키르티의 논리관에 대한 고찰", 『간사이 대학 동서 학술 연구소 기요』, 1979-12
- 오가와 카즈요리, "보살의 대비에 대해--찬드라키르티의 보살관", 『일본 불교학회 연보』, 1985
- 탄지 아키요시, "찬드라키르티의 자립 논증 비판", 『난토 불교』, 1987-03
- 탄지 아키요시 "찬드라키르티의 "인식 수단"관", 『난토 불교』, 1988-03
- 카토 히토시, "중관파에 있어서 vicara의 실천적 의미 찬드라키르티의 경우", 『인도학 불교학 연구』, 1989
- 우에다 노보루, "찬드라키르티의 무아론", 『불교학』, 1990-03
- 헨미 미츠마, "찬드라키르티와 길장의 열반 해석의 비교", 『밀교학 연구』, 1992-03
- 타치바나 히로아키, "찬드라키르티의 무아관의 고찰", 『불교학 연구』, 1993-03
- 나가사키 켄센, "찬드라키르티의 연기 해석에 대한 고찰 나가르주나의 제 저작과의 관련에 대해", 『철학・사상론총』 1999-01[http://www.tulips.tsukuba.ac.jp/limedio/dlam/M36/M362331/5.pdf]
- 카네코 무네모토, "중관파 이제설의 사상적 전개 (류코쿠 대학에서의 제50회 학술 대회 기요(1))", 『인도학 불교학 연구』, 1999-12
- 나가사키 켄센, "찬드라키르티의 연기 해석에 대해--나가르주나의 저작과 "상호 의존" 해석과의 관련을 중심으로 (류코쿠 대학에서의 제50회 학술 대회 기요(1))", 『인도학 불교학 연구』, 1999-12
- 나스 마유미, "찬드라키르티의 vyavahara", 『인도학 불교학 연구』, 2000-03
- 나스 마유미, "중관파에 있어서의 '공'과 밀교에 있어서의 '공'--총카파의 이해를 단서로", 『밀교학 연구』, 2005-03
- 이케다 미치히로, "제(satya)에 대한 찬드라키르티의 견해", 『불교학』, 2007-12
- 타무라 마사미, "찬드라키르티의 자성 이해--불가언의 자성", 『비교 논리학 연구』, 2008
- 이케다 미치히로, "찬드라키르티의 소지장 해석의 행방", 『Acta Tibetica et Buddhica』, 2008
5. 후대의 영향 및 주석
찬드라키르티에 대한 인도 주석은 12세기 카슈미르 학자 자야난다가 쓴 『중관입론』 주석이 유일하다.[32] 프라즈냐카라마티(950–1030)는 샨티데바의 『보리차리야바타라』 주석에서 『중관입론』을 반복적으로 인용한다.[33] 아티샤 (982–1054)는 『두 진리에 대한 입문』(''Satyadvayāvatāra'')에서 찬드라키르티를 인용하고, 궁극적 진리에 대한 타당한 인식(''pramana'')의 적용 가능성을 거부하는 그의 견해를 옹호한다.[34]
마이트리파다(c. 1007–1085)는 찬드라키르티의 입장을 고수한 후기 인도 저자로, 카규 학파 프라상기카 계보의 원천 중 하나로 여겨진다.[35] 찬드라키르티는 『좋은 언어집』 등 후기 인도 불교 탄트라 저작에서도 인용되는데, 이는 그가 아리아 계통의 ''구히야사마자 탄트라'' 인도 탄트라 저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아리아 계통에는 나가르주나, 아리아데바, 찬드라키르티(9세기 또는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탄트라 저작들이 포함되며, 초기 중관 철학자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36] 후기 티베트 저자들은 탄트라 인물과 중관 철학자가 동일 인물이라고 믿었다.[37]
찬드라키르티에 응답하는 비판적인 인도 저자는 후대의 바바비베카 또는 바바비베카 2세(''중관의 의미를 모아 놓은 책''과 ''중관의 보석 램프''의 저자)인데, 최초의 바바비베카 (c. 500 – c. 578)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루에그에 따르면, 이는 탄트라 바브야키르티(c. 1000)와 동일 인물일 수 있다.[38]
찬드라키르티의 『중관입론』과 자가 주석의 첫 번째 티베트어 번역은 아티샤의 제자인 낙초 로차와가 완성했다.[39] 찬드라키르티에 대한 초기 티베트 주석가로는 찬드라의 주요 저작 대부분을 번역한 파트삽 니마 드라그 (12세기)가 있다.[40][41] 논리학자 차파 초키 셍게(12세기)는 찬드라키르티의 견해를 논하고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적 전통을 옹호하며 반박했다.[41] 차파의 제자인 마브자 창춥 쵄드루 (1109–1169)는 찬드라키르티에 대해 글을 쓴 또 다른 초기 인물이다.[14] 마브자는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과 찬드라키르티의 중관을 조화시키려 했다.[42] 찬드라키르티는 티베트인들에 의해 우마 델규르(dbu ma thal 'gyur) 학파, 즉 중관 철학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분류되었으며, 로 역번역되거나 "귀결론자" 또는 "변증법자" 학파로 번역된다.[43]
이러한 초기 주석가들의 영향으로 티베트에서 찬드라키르티의 인기가 높아졌다. 총카파, 왕축 도르제 (제9대 카르마파) 및 잠곤 미팜과 같은 후기 중요 티베트 불교 인물들도 『중관입론』에 대한 주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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