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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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설공검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1224년에 태어나 1302년에 사망했다. 교동감무를 거쳐 도병마녹사로 임명되었고, 1258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271년에는 세자 심(후일의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우부승선에 임명되었으며, 지공거와 우찬덕 등을 거쳐 밀직부사, 참리 등을 지냈다. 1285년에는 동지공거를 역임했으며, 말년에는 중찬으로 벼슬을 마쳤다. 청렴하고 정직한 인품으로 존경받았으며, 충렬왕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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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력

* 1224년(고종 11년): 태어남.
* 1258년(고종 45): 과거에 급제, 교동감무, 도병마녹사를 거쳐 예부낭중이 됨.
* 1271년(원종 12): 군기감으로 세자(훗날 충렬왕)를 호종해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우부승선으로 승진.
* 1276년(충렬왕 2): 지공거로서 과거를 주관.
* 1277년(충렬왕 3): 우찬덕으로 임명.
* 1278년(충렬왕 4): 음력 9월 왕에게 흰 모시를 바침. 음력 10월 밀직부사로 승진해 비칙치가 됨.
* 감찰대부, 지첨의부사를 거쳐 참리로 승진.
* 1285년(충렬왕 11): 동지공거로서 과거를 주관.
* 찬성사로 물러나려다 중찬으로 벼슬을 마침.
* 1302년(충렬왕 28): 3월 13일(음력 2월 14일) 사망. 향년 79세.

2.1. 관직 진출

1258년(고종 45) 과거에 급제하였다. 교동감무(喬桐監務)가 되었다가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 임명받았다. 여러 관직을 거쳐 예부낭중(禮部郎中)이 되었다.

1271년(원종 12) 군기감(軍器監)으로 세자 심(諶 : 나중의 충렬왕)을 호종해 원나라에 갔다 온 공으로 거듭 승진해 우부승선(右副承宣)으로 임명받았다.

1276년(충렬왕 2) 지공거로서 과거를 주관하였다. 1277년(충렬왕 3) 우찬덕(右贊德)으로 임명받았다.

1278년(충렬왕 4) 음력 9월에 광평공(廣平公) 왕혜(王譓), 지밀직(知密直) 한강(韓康) 등과 함께 왕에게 흰 모시를 바쳤으며, 같은 해 음력 10월에는 밀직부사로 승진해 비칙치[必闍赤]가 되었다.

그 뒤 감찰대부를 거쳐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가 되었다가 곧이어 참리(叅理)로 승진하였다. 1285년(충렬왕 11) 동지공거로서 과거를 주관하였다.

나이가 들어 찬성사(贊成事)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다시 중찬(中贊: 종1품)으로 올라 벼슬을 마쳤다.

2.2. 원나라 파견 및 승진

1271년(원종 12년) 충렬왕이 왕세자 시절 원나라에 갈 때 호종한 공으로 우부승선(右副承宣)으로 승진했다.

1278년(충렬왕 4년) 음력 10월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승진하여 비칙치[必闍赤]가 되었다. 이후 감찰대부(監察大夫),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를 거쳐 참리(叅理)로 승진했다.

2.3. 말년

찬성사(贊成事)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다시 중찬(中贊: 종1품)으로 올라 벼슬을 마쳤다. 1302년 (3월 13일 (음력 2월 14일))에 향년 일흔아홉 살로 사망하였다.

3. 인품

설공검은 성품이 청렴하고 정직했으며 남에게 공손히 대했고 늘 검소하게 생활했다. 조정의 관리 중 6품 이상인 사람에게 부모상(喪)이 나면 평소 모르는 사이라도 반드시 소복을 하고 찾아가 조문했다. 또 누가 찾아오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급히 나가서 맞이했다. 병으로 누워 있을 때 채홍철이 가서 살펴보았는데, 베 이불에 왕골자리를 깔고 간소히 지내는 것이 마치 절간의 중과 같았다. 채홍철은 “우리 같은 이들은 공과 비교하면 이른 바 땅벌레와 노란 학[黃鶴]이 다름과 같다.”고 탄복했다.

4. 상훈과 추모

충렬왕 묘정에 체협공신으로 배향되었다.

5. 전기 자료

설공검은 고려사 〈열전〉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