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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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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사》는 고려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 시대의 관찬 사서이다.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고 고려의 멸망을 교훈 삼기 위해 편찬되었으며, 기전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세가, 지, 표, 열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도전이 편찬한 《고려국사》를 세종이 수정하여 1451년 문종 때 완성되었다. 편찬 과정에서 조선 왕조에 유리하도록 고려 말 왕들의 기록이 왜곡되었고, 주자학적 가치관에 따라 고려 시대의 문화가 부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의 노력으로 사실에 충실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고려 시대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현재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며, 현대 한국어 번역 작업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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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고려사 정보
고려사
원제高麗史
저자정인지
김종서
기타
국가조선
언어한문
주제한국사
장르고대 역사
출판일1451년
개요
편찬 방식기전체
체제세가

열전
연표
목록
편년체편년체적 요소 포함
추가 정보
편찬 시작태조 때 조준 등에게 고려사 편찬을 명함
제출 완료김종서 등이 새로 완성된 고려사를 제출함
인쇄 요청춘추관에서 고려사 인쇄를 요청함
참고 자료고려사(高麗史) History of Goryeo
태조실록
세종실록
Koryŏsa: the history of Koryŏ, annals of the kings, 918-1095
고려사 시리즈 정보
편집자정인지 등 (一覧)
국가이씨조선
언어한문
학문 분야기전체 역사서, 조선사
출판사이씨조선
출판일경태 2년 8월 25일 (1451년9월 19일)
권수137권

2. 편찬 과정

《고려사》는 1392년부터 1451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작성과 수정을 반복하며 편찬되었으며, 고려 34대 국왕이 다스린 474년 동안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 왕의 기록은 세가(世家)에 작성하여 격하하였다.[6] 체제는 사마천의 《사기》를 본떠 세가(世家) · 지(志) · 표(表) · 열전(列傳)의 항목으로 나누어 기전체로 서술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 태조의 명으로 1392년 10월 13일, 정도전, 정총, 박의중, 윤소종에게 편찬을 명하여, 1395년 고려 태조부터 공양왕까지 총 37권의 《고려국사》가 완성되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1414년(태종 14년), 《고려국사》에 공민왕 이후 고려 말기의 일이 잘못 기록된 것을 개수하기 위해 하윤, 남재, 변계량에게 명하였으나, 1416년 하윤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

1419년(세종 1년), 세종유관변계량에게 개수 작업을 명하였고, 1423년(세종 5년) 다시 개수하게 하면서 《고려실록》의 묘호시호를 사용하고, 정도전의 편향된 시각을 수정하는 등 전면적인 개수를 지시했다.

1424년(세종 6년), 윤회가 교정한 《고려사》를 올렸다. 이후 신개, 권제 등이 편찬에 참여했고, 이계전, 어효첨에게 교정을 명했다. 1449년(세종 31년) 춘추관에 다시 편찬을 명하고,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에게 감독을,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 당대 최고 문관들이 실제 작업에 참여했다.

1451년(문종 1년) 《고려사》 편찬이 완료되어 세가 46권, 지 39권, 연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으로 구성되었다. 1452년(문종 2년) 김종서가 《고려사》를 요약한 《고려사절요》 35권을 만들었고, 1454년(단종 2년) 《고려사》 간행이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에 일부만 수입되어 마에다 쓰나노리와 도쿠가와 미쓰쿠니가 경쟁한 결과 가가번이 입수했으나, 컬렉션으로써 사장되었다. 일본에서 조선반도사·일조 관계사의 근거가 된 것은 미쓰쿠니가 간행한 『동국통감』이며, 메이지 초기까지 이어졌다. 『고려사』를 참고한 연구서는 1891년 야마다 야스이에의 『복적편』이 처음으로 여겨진다.

2. 1. 편찬 목적

《고려사》는 고려 시대 국왕과 신하들의 행적, 자취를 참고하여 새로운 조선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편찬되었다. 관찬사서인 《고려사》는 이후 조선 역사서 편찬의 모범이 되었으며,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고 무신정권기부터 우왕, 창왕 시대의 폐정을 경계하여 교훈을 얻고자 하였다.[6]

조선 건국 직후인 1396년, 정도전 주도로 고려 역사를 기술한 최초의 시도인 『고려국사』(高麗國史)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정도전이 왕자의 난으로 사망한 후, 『고려국사』는 고려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과 논란에 직면했다. 세종은 정도전이 정적 정몽주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개인적인 편견을 반영했다고 비판하며, 보존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6][8]

세종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며 사관들에게 고려 시대 어휘 변경을 금지했고(이실직서(以實直書)),[8] 조선 왕조 건국 정당화를 위해 고려를 불공정하게 묘사했다고 믿었다. 세종은 『고려사』 완성 1년 전에 사망했다.[12]

『고려사』의 전신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서문만 전해진다.[13] 고려사는 조선 건국 군주 이성계가 우왕과 창왕을 폐위, 암살한 사건을 배경으로 조선 학자들이 편찬했기에, 조선 건국 정당화를 위한 서술을 담았다. 우왕과 창왕은 왕의 연대기(세가)에서 제외, 열전에 편입되어 신돈의 후손으로 기록되었다. 고려사 서문은 초기 고려를 선정, 말기 고려를 혼란의 시대로 묘사하여 사회 안정을 위한 고려 멸망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고려 말기 사회에 대한 자기합리적인 서술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조선 초기의 고려에 대한 공식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조선 문인 사회를 지배한 주자학 또한 편향의 원인이었다. 15세기 중반까지 불교가 조선 사회에 영향을 줬지만, 가족 관계에 대한 견해는 고려와 달랐다. 고려 왕실은 근친혼이 흔했고 선호되었으나, 비왕족과의 결혼은 혈통 손상으로 여겨졌다. 고려와 조선 모두 일부다처제를 실시했지만, 고려는 여러 아내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반면, 조선은 정실부인과 여러 첩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조선 문인들의 주자학적 가치관에 맞지 않아 일부 고려 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원사료에 충실하고 과장 없는 사실적 어조를 유지한다. 세종은 정치적 편견을 경계하며 유교적 이상 강조나 새 왕조에 대한 아첨을 위한 역사 왜곡을 금지했다. 정몽주김진양은 고려에 충성하며 이성계에 반대했지만, 고려사에 충직하고 존경받는 신하로 기록되었다.[20][4]

2. 2. 편찬 및 개수 과정

1392년(태조 1년) 10월 13일, 태조의 명으로 정도전, 정총, 박의중, 윤소종 등이 《고려국사》 편찬을 시작했다.[6] 1395년(태조 4년) 고려 태조부터 공양왕까지 총 37권의 《고려국사》가 편찬되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1414년(태종 14년) 《고려국사》에서 공민왕 이후 고려 말기 기록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하윤, 남재, 변계량에게 개수를 명했다.[7] 그러나 1416년(태종 16년) 하윤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

1419년(세종 1년) 세종유관변계량에게 개수 작업을 재개하도록 명했다.[8] 1423년(세종 5년) 《고려실록》의 묘호시호를 사용하고, 정도전의 편향된 시각을 수정하는 등 전면적인 개수를 지시했다.[8][9]

1424년(세종 6년) 윤회가 교정한 《고려사》를 올렸다. 이후 신개, 권제 등이 편찬에 참여했고, 이계전, 어효첨에게 교정을 명했다. 1449년(세종 31년) 춘추관에 다시 편찬하도록 명하고,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에게 감독을 맡겼다.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 당대 최고 문관들이 참여했다.

1451년(문종 1년) 《고려사》 편찬이 완료되었다. 세가 46권, 지 39권, 연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으로 구성되었다. 1452년(문종 2년) 김종서가 《고려사》를 요약한 《고려사절요》 35권을 편찬했고, 1454년(단종 2년) 《고려사》 간행이 시작되었다.

《고려사》는 1392년부터 1451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작성과 수정을 반복하며 편찬되었다.

3. 구성

《고려사》는 총 137권으로, 기전체 형식에 따라 세가, 지, 표,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사''의 구성
종류권수내용
세가(世家)46권태조부터 공양왕까지 역대 국왕의 기록
지(志)39권천문, , 오행, 지리, 예, 악, 여복 등
표(表)2권고려와 종주국의 연호 대조표
열전(列傳)50권왕비, 왕자, 고관대작, 역적 등



1392년부터 1451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작성과 수정을 반복하여 편찬되었으며, 고려 474년 동안 34명의 국왕이 다스린 각종 사건과 각 시대별 인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19] 조선 건국 주도 세력인 사대부들의 역사관을 담아 후세의 정치적 지침으로 삼고자 하였다. 고려 왕의 기록은 본기(本紀)가 아닌 세가(世家)에 작성하여 격하하였다.[12]

〈지〉 중 제24권(악일, 樂一)에는 아악, 제25권(악이, 樂二)에는 속악과 삼국 속악, 용속악절도(用俗樂節度)가 기록되어 있어 고려사악지라고도 불린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았고, 특수한 경위 때문에 제32대 우왕과 제33대 창왕은 가짜 왕족으로 여겨 신우(辛禑), 신창(辛昌)으로 낮춰 기록하였다.

3. 1. 세가(世家)

《고려사》 〈세가(世家)〉는 총 46권으로, 태조부터 공양왕까지 역대 국왕의 통치 기록을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에 따라 국왕 즉위 다음 해를 원년으로 표기하였으나, 태조와 공양왕은 즉위년을 칭하지 않았다.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자식으로 간주하여 세가에서 제외하고 열전에 '신우', '신창'으로 기록하였다.[19][12]

  • 〈충렬왕세가〉에서는 충렬왕이 충선왕에게 양위한 8개월 간(1298년 1월~7월)의 기록이 공백처리되었고, 이 부분은 〈충선왕세가〉에 수록되었다.
  • 〈충선왕세가〉에서는 충선왕이 충렬왕에게 양위를 받았던 8개월 간(1298년 1월~8월)의 기록이 수록되었으나, 폐위되어 복위하기까지의 공백기간(1298년 9월~1308년 6월)은 〈충렬왕세가〉에 수록되었다.
  • 〈충숙왕세가〉에서는 충숙왕이 처음 왕위에 올랐던 시기(1313년 1월~1330년 7월)의 기록을 먼저 서술한 후, 복위한 후의 기록(1332년 2월~1339년 3월)은 이전의 재위기간과 구분하여 연도를 후년(後年)이라 표기하였다. 중간의 공백기간은 〈충혜왕세가〉에 수록되었다.
  • 〈충혜왕세가〉에서는 충혜왕이 처음 왕위에 올랐던 시기(1330년 7월~1332년 2월)의 기록을 먼저 서술한 후, 복위한 후의 기록(1339년 4월~1344년 1월)은 이전의 재위기간과 구분하여 연도를 후년(後年)이라 표기하였다. 중간의 공백기간은 〈충숙왕세가〉에 수록되었다.


《고려사》는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후손으로 묘사하여 세가에서 제외하고, 초기 고려를 선정, 말기 고려를 혼란의 시대로 묘사하였다. [20][4] 또한, 조선 문인들의 주자학적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부 고려 왕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편향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대체로 원사료에 충실하며, 특히 세종은 정치적 편견을 배제하고자 노력하였다.

권수제목재위 기간
권1태조 1918년~930년
권2태조 2·혜종·정종·광종·경종931년~981년
권3성종·목종981년~1009년
권4현종 11009년~1022년
권5현종 2·덕종1023년~1034년
권6정종1034년~1046년
권7문종 11046년~1056년
권8문종 21057년~1071년
권9문종 3·순종1072년~1083년
권10선종·헌종1083년~1095년
권11숙종 11095년~1101년
권12숙종 2·예종 11102년~1107년
권13예종 21109년~1114년
권14예종 31115년~1122년
권15인종 11122년~1128년
권16인종 21129년~1138년
권17인종 3·의종 11139년~1152년
권18의종 21153년~1168년
권19의종 3·명종 11169년~1178년
권20명종 21179년~1197년
권21신종·희종·강종1197년~1213년
권22고종 11213년~1230년
권23고종 21231년~1250년
권24고종 31251년~1259년
권25원종 11259년~1263년
권26원종 21264년~1270년
권27원종 31271년~1274년
권28충렬왕 11274년~1278년
권29충렬왕 21279년~1284년
권30충렬왕 31285년~1293년
권31충렬왕 41294년~1300년
권32충렬왕 51301년~1308년
권33충선왕 11298년
1308년~1310년
권34충선왕 2·충숙왕 11311년~1319년
권35충숙왕 21320년~1330년
1332년~1339년
권36충혜왕1330년~1332년
1339년~1344년
권37충목왕·충정왕1344년~1351년
권38공민왕 11351년~1355년
권39공민왕 21356년~1361년
권40공민왕 31362년~1364년
권41공민왕 41365년~1369년
권42공민왕 51370년
권43공민왕 61371년~1372년
권44공민왕 71373년~1374년
권45공양왕 11389년~1390년
권46공양왕 21391년~1392년


3. 2. 지(志)

권수제목비고
권47지 권 제1 천문 1
권48지 권 제2 천문 2
권49지 권 제3 천문 3
권50지 권 제4 역 1
권51지 권 제5 역 2
권52지 권 제6 역 3
권53지 권 제7 오행 1
권54지 권 제8 오행 2
권55지 권 제9 오행 3
권56지 권 제10 지리 1
권57지 권 제11 지리 2
권58지 권 제12 지리 3
권59지 권 제13 예 1
권60지 권 제14 예 2
권61지 권 제15 예 3
권62지 권 제16 예 4
권63지 권 제17 예 5
권64지 권 제18 예 6
권65지 권 제19 예 7
권66지 권 제20 예 8
권67지 권 제21 예 9
권68지 권 제22 예 10
권69지 권 제23 예 11
권70지 권 제24 악 1
권71지 권 제25 악 2
권72지 권 제26 여복 1


3. 3. 표(表)

권수제목비고연대
권86표 권 제1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 덕종, 정종, 문종, 순종, 선종, 헌종, 숙종, 예종, 인종, 의종태조 원년(918년) ~ 의종 24년(1170년)
권87표 권 제2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 원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신우, 신창, 공양왕명종 원년(1171년) ~ 공양왕 4년(1392년)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려 역대 왕들의 재위 기간과 중국 왕조의 연호를 대조한 연표이다. 고려와 중국과의 관계,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3. 4. 열전(列傳)

총 5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비, 왕자, 공신, 문신, 무신, 충신, 간신, 반역자 등 다양한 인물들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인물 중심의 서술을 통해 고려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특히 우왕과 창왕은 반역 열전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서술로 해석된다. 고려사의 저술가들은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왕과 창왕을 왕씨 가문이 아닌 신돈의 후손으로 묘사하고 있다.[19]

고려사 열전 목록
권수제목주요 내용
권88열전 권 제1
후비 1
태조부터 원종까지의 왕비
권89열전 권 제2
후비 2
충렬왕부터 공양왕까지의 왕비
권90열전 권 제3
종실 1
태조부터 명종 시대의 왕자
권91열전 권 제4
종실 2 · 공주
신종부터 공양왕 시대의 왕자, 태조부터 공양왕 시대의 공주
권92열전 권 제5홍유 (附 : 배현경 · 신숭겸 ·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최언위 (附 : 최광윤 · 최행귀 · 최광원)
왕유 (附 :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왕순식 (附 : 이총언 · 견금 · 윤선 · 흥달 · 선필 · 태평) · 공직 · 박영규
권93열전 권 제6서필 · 최승로 (附 :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유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권94열전 권 제7서희 (附 : 서눌 ·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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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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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95열전 권 제8최충 (附 : 최유선 · 최사제 · 최약 · 최윤의)
이자연 (附 : 이자량 · 이자인 · 이혁유 · 이자현 · 이자덕 · 이예 · 이공수 · 이지저 · 이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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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 (附 : 임원후 · 임극충 · 임극정 · 임보 · 임유 · 임익 · 임항) · 김한충
권96열전 권 제9최사추 · 김인존 · 윤관 (附 : 윤언이 · 윤인첨 · 윤세유 · 윤상계) · 오연총
권97열전 권 제10김부일 (附 :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附 : 이궤) · 곽상 (附 : 곽여) · 유재 (附 : 호종단 · 신안지)
김경용 (附 :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附 : 유록숭)
김준 · 유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附 :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권98열전 권 제11김부식 (附 : 김돈중 ·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附 : 이위) · 허재
권99열전 권 제12양원준 · 최유정 (附 : 최당 · 최린 · 최선 · 최종준 · 최온 · 최문본 · 최평 · 최옹)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유공권 (附 : 유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유응규 (附 :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附 : 최보순 ·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권100열전 권 제13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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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01열전 권 제14민영모 (附 : 민식) · 송저 · 김광중 (附 :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정 · 왕규
차약송 (附 : 기홍수) · 정극온 · 유광식 · 권경중
김태서 (附 : 김약선 · 김미) · 문한경 (附 : 권세후 · 백돈명) · 노의수 · 김의원
권102열전 권 제15금의 · 이규보 (附 :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附 : 김승무) · 이공로
이인로 (附 : 오세재 · 조통 · 임춘) · 조문발
이순목 (附 :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附 : 하천단) · 채송년 (附 : 채정) · 손변 · 권수평
이순효 (附 :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권103열전 권 제16조충 (附 : 조변) · 김취려 (附 : 김문연 · 김변) · 이적 · 채정 · 박서 (附 : 송문주)
김경손 (附 :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권104열전 권 제17김방경 (附 : 김구용 · 김제안 · 김흔 · 김순 · 김영돈 · 김영후 · 김사형 · 박구) · 한희유
나열 (附 :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附 : 김심 · 김종연 · 김석견)
권105열전 권 제18유경 (附 : 유승 · 유돈 · 유만수)
허공 (附 : 허종 · 허관 · 허금 · 허부 · 허유)
홍자번 (附 : 홍승서 · 홍영통) · 정가신
안향 (附 : 안우기 ·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조인규 (附 : 조서 · 조연 · 조덕유 · 조린 · 조연수 · 조위)
권106열전 권 제19백문절 (附 :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附 : 이행검) · 장일 · 김구
이승휴 (附 : 이연종) · 김훤 (附 : 김개물) · 정해 (附 : 정오 · 정포 · 정공권)
조간 · 심양 · 추적 (附 : 이인정 · 채우) · 김유성 (附 : 곽린) · 윤해 (附 : 윤택)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항 · 박유 · 홍규 (附 : 홍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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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30열전 권 제43 반역 4한순 · 다지 · 흥복원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조이 (附 : 김유 ·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권131열전 권 제44 반역 5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권132열전 권 제45 반역 6신돈
권133열전 권 제46 반역 7신우 1
권134열전 권 제47 반역 8신우 2
권135열전 권 제49 반역 9신우 3
권136열전 권 제49 반역 10신우 4
권137열전 권 제50 반역 11신우 5


4. 판본

《고려사》는 1454년(세조 2년)에 처음 인쇄되어 널리 배포되었지만, 이 초판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으로는 을해자 번각본, 목판본, 필사본 등이 있다.



《고려사》의 현대 한국어 번역은 2001년 동아대학교 석당학원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작되었다.[16] 2009년 국립한국역사연구원은 구점본(句點本)을 제공하기 시작하여,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의 원본 이미지와 함께 온라인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0년에는 구두점, 색인 태그(인명, 지명, 직책, 관직), 항목 제목을 포함한 표점본(標點本)을 포함하도록 웹사이트가 확장되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최종 단계에서 웹사이트는 《고려사》의 현대 한국어 번역을 제공하기 시작했다.[17][18]

4. 1. 을해자 번각본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고려사》는 총 139권 75책으로 된 완질본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이 판본은 1482년(성종 13년)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을해자본(乙亥字本)을 1613년(광해군 5년)에 번각한 목판본이다. 인출 시기는 동일한 판본의 초쇄본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의 태백산사고본과 대조해 본 결과, 자면(字面)이나 계선(界線)에서 나뭇결이나 터짐 현상 혹은 탈락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규장각 소장본보다 후쇄본임을 알 수 있다.[23]

이 책은 총 75책 139권으로 분량이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빠진 책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상태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전래본 중 가장 일찍 인출된 것은 1482년(성종 13년)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을해자본이나, 을해자본은 완질본이 전해지지 않는다. 을해자본 다음으로 간인된 이 판본의 완질본은 현재 4질 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그 내용이 전해지는 사료가 부족하여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正史)로서 사료적 가치와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자료이기 때문에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되었다.[24]

4. 2. 목판본

백련사 《고려사》는 목판본으로 모두 65책이다. 표지는 모두 개장되었으나, 인쇄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며 파손된 부분은 거의 없다. 65책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고려사》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있으며, 고려사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24]

세조 2년(1454년)에 《고려사》가 처음으로 인쇄되어 널리 배포되었지만, 이 초판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매우 잘 보존된 완본은 1613년에 목판으로 인쇄된 복각본이다. 이는 을해자(乙亥字)라고 알려진 42개의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1482년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판본을 기반으로 한다. 2010년 부산광역시는 1613년 판본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14] 부산 남구 백련사에 소장되어 있는 또 다른 부분본은 2014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14] 그 외에도 여러 판본이 전해져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며, 프랑스 국립고등사범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판본 등이 포함된다.[15]

4. 3. 필사본

《고려사》의 필사본은 전질의 경우 규장각에 소장된 61책과 꼴레쥬 드 프랑스에 소장된 71책이 알려져 있다.[14]

2015년 2월 28일 한국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열상고전연구회 제69차 정례학술발표회에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중국인 학자가 필사한 고려사 전질(139권 19책)이 소장되어 있음을 발표하였다. 이 필사본은 괘선지에 해서체로 필사한 것으로, 중국 청나라의 금석학자 유희해(1793년~1852년)가 소장하였고 《해동금석원》을 펴는 데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석학자 옹방강(1733년~1818년)의 아들인 옹수곤(1786년~1815년)과 장서가 고천리(1766년~1835년) 등의 손을 거쳐 주청영국공사이자 중국고서수집가였던 토마스 웨이드가 기증한 것으로 확인된다.[15]

5. 평가 및 비판

《고려사》는 《고려사절요》와 함께 고려 시대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받고 있다.


  • 우창비왕설의 정당화: 이성계 세력이 폐가입진을 정당화하려고 만든 설인데, 《고려사》가 간행된 지 2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1454년, 단종 2년) 1475년(성종 6년) 경연에서 성종은 우왕은 신돈의 자식이 아니라고 말했고,[31] 현대 연구자도 마찬가지로 우왕이 신돈의 자식이 아니라고 본다.[32]
  • 금석문, 다른 문헌자료와의 연월일 차이: 묘지명, 개인 문집 등과 《고려사》를 비교해 보면 연월일이 적게는 하루(서공)부터 많게는 9년(대원공)이나 차이가 난다.
  • 인물의 누락: 묘지명이나 개인 문집에만 나오고 《고려사》에는 아예 나오지 않거나 드문드문 언급되는 인물들이 많다.[33]
  • 열전에서 인물 평가의 불공정성: 현대 연구자와 학자들은 류청신[34], 권한공[35], 변안렬[36] 등에서 인물 평가가 공정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 오탈자, 연문: 《고려사》 안에서 같은 사실을 전하는 문장을 비교해 보면 오탈자나 연문이 많다.[37]
  • 내용·연월일 오류 및 누락: 편찬 과정에서 틀린 부분들이 고쳐지지 않았고, 일부 사실들은 누락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일부 연도는 내용이 없다.[38]


《고려사》는 고려의 후신 국가인 조선의 학자 관료들이 편찬하였는데, 조선 건국의 군주인 이성계가 우왕을 폐위하고 창왕을 암살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고려사》의 저술가들은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는 서술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 결과, 우왕과 창왕은 왕의 연대기(세가)에서 제외되고 열전으로 편입되어 의심스러운 혈통을 가진 허위 군주로 묘사되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우왕과 창왕은 왕씨 가문이 아닌 불교 승려 신돈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의 서술은 초기 고려를 선정의 시대, 말기 고려를 혼란의 시대로 묘사하여 사회 안정을 위해 고려의 멸망이 정당화되었음을 보여주는데, 《고려사》 서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後王失道, 權臣擅政, 姦宄競起, 伺覦神器, 驯致大乱, 至于再易位, 四易姓, 弑逆相仍, 宗社几絶。|후대의 왕들은 길을 잃고 권세가 있는 신하들은 마음대로 행동하여, 왕위를 탐내며 스스로 군대를 일으켰다. 이는 인종(1122년~1146년) 때부터 시작되어, 의종(1146년~1170년) 때 더욱 악화되었다. ... (중략) ... 그리고 허위 군주들로 인해 나라의 기반이 극도의 위험에 처하였다. 그때 고려의 운명은 진정한 통치자에게 넘어갔다.중국어

— 김종서, 《고려사》 서문[19][12]

이러한 자기 합리화적인 서술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조선 초기의 고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다른 편향의 원인은 조선 문인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주자학이었다. 비록 불교는 15세기 중반까지도 조선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조선 사회의 가족 관계에 대한 견해는 고려 사회와 달랐다. 예를 들어, 고려 왕실에서는 근친혼이 흔했고, 심지어 선호되기까지 했는데, 비왕족과의 결혼은 혈통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와 조선 모두 일부다처제를 실시했지만, 고려의 일부다처제는 여러 아내들이 동등한 지위를 가진 반면, 조선의 일부다처제는 한 명의 정실부인과 여러 명의 첩으로 구성되었다. 그 결과, 《고려사》는 조선 문인들의 주자학적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부 고려 왕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일반적으로 원래의 역사 자료에 충실한 것으로 간주되며, 과장 없이 사실적인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세종은 《고려사》가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도록 노력했다. 예를 들어, 그는 역사가들에게 유교적 이상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왕조에 아첨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생략하거나 변경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정몽주김진양은 끝까지 고려에 충성하며 이성계에 반대했지만, 《고려사》에는 충직하고 존경받는 신하로 기록되어 있다.[20][4] 다만, 《고려사》는 고려 시대의 이름난 승려들에 대한 기록은 생략하고 있다.[4]

6. 국외 전래

《고려사》는 중국일본에도 전래되었다. 청나라 주이준의 《曝書亭集》 권44에 '서고려사후'(書高麗史後)라고 하여 《고려사》를 읽고 난 뒤에 쓴 글이 실려 있어, 중국에도 《고려사》가 유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39]

7. 현대 한국어 번역

2001년 동아대학교 석당학원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고려사》의 현대 한국어 번역 사업을 시작하였다.[16] 2009년 국립한국역사연구원에서 구점본(句點本)을 온라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2014년부터 2015년까지는 최종 단계로 현대 한국어 번역본을 제공하였다.[17][18]

참조

[1] 웹사이트 Taejo Orders Cho Jun et al. Compilation of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2] 웹사이트 Kim Jong-seo et al. Submit Newly Completed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3] 웹사이트 Chunchu Office Requests Printing of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4] 웹사이트 고려사(高麗史) History of Goryeo https://encykorea.ak[...] 2023-08-29
[5] 서적 Koryŏsa: the history of Koryŏ, annals of the kings, 918-1095 University of Hawaiʻi Press 2024
[6] 웹사이트 Compilation of Goryeosa and Goryeosajeolyo http://contents.hist[...]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7] 웹사이트 King Orders Yoo Gwan et al. Revision of Chŏng To-jŏn's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8] 웹사이트 King Orders Yoo Gwan and Yoon Hoe Revision of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9] 웹사이트 Yoon Hoe Submits Revised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10] 웹사이트 Sejong Rebukes Gwon Je et al. Who Tampered With Historical Records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11] 웹사이트 Chunchu Office Discusses Revision of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12] 웹사이트 Kim Jong-seo et al. Submit Newly Compiled Goryeosa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13] 서적 Koryŏsa: the history of Koryŏ, annals of the kings, 918-1095 University of Hawaiʻi Press 2024
[14] 웹사이트 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백련사 고려사 (白蓮寺 高麗史) : 국가유산포털 -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
[15] 웹사이트 『고려사』 필사본 완질 발견 https://www.overseas[...] 2015-02-16
[16] 웹사이트 Korean Translation of Koryŏsa DB http://db.mkstudy.co[...]
[17] 웹사이트 고려사 Goryeosa http://db.history.go[...] 2022-01-03
[18] 웹사이트 Goryeosa http://112.220.123.1[...]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19] 서적 Koryŏsa: the history of Koryŏ, annals of the kings, 918-1095 University of Hawaiʻi Press 2024
[20] 웹사이트 김진양(金震陽) Kim Jin-yang https://encykorea.ak[...] 2023-08-29
[21] 웹사이트 고려왕조실록 http://147.46.181.11[...]
[22] 웹사이트 조선왕조 실록 및 사서 소장 금지 # URL 정보 없음
[23] 간행물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문화자료 지정,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및 해제 부산광역시장 2010-09-29
[24] 간행물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부산광역시장 2014-03-19
[25] 서적 국역 고려사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10-20
[26] 논문 고려조관료제의연구 법정대학출판국
[27] 기타 봉작을 받은 부인
[28] 기타 국가 행사나 기타 의식에 참가하는 의장대 및 호위병
[29] 기타 왕실의 의장제도
[30] 서적 표준국어대사전
[31] 서적 성종실록 1475-10-23
[32] 논문 恭愍王代 辛旽의 개혁정치와 禑昌非王說
[33] 기타 고려시대 인물 목록
[34] 논문 원 간섭기 立省論과 柳淸臣
[35] 논문 고려말⋅조선초 권한공에 대한 세평의 변화
[36] 서적 대은 변안열의 생애와 업적 지식산업사 2013
[37] 논문 『고려사』의 편찬과정에서 발생한 오류(誤謬)의 제양상(諸樣相) 2015
[38] 논문 缺失된 忠肅王 後三年 記事의 復原을 위한 試圖 2016
[38] 논문 『新編高麗史全文』의 편찬을 위한 방안 2017
[39] 서적 전쟁의 문헌학 열린책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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