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내설악 만경대
1. 개요
만경대는 설악산 내설악에 위치한 해발 922.2m의 봉우리로, 용아장성, 공룡능선, 흑선동계곡, 나한봉 등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 불렀으나 훼손된 후, 조선 인조 21년(1643) 설정이 다시 세운 오세암이 만경대 앞에 위치해 역사적, 문화적, 경관적 가치를 더한다.
| 이름 | 설악산 내설악 만경대 |
|---|---|
| 영문명 | Man-gyeongdae in Naeseorak, Seoraksan Mountain |
| 지정 종류 | 명승 |
| 지정 번호 | 104 |
| 지정일 | 2013년 3월 11일 |
| 면적 | 134,640m2 |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 12-21 / 산75 |
| 특징 | 설악산 내설악에 위치한 경승지로, 기암괴석과 수려한 계곡,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룸. |
|---|---|
| 역사/문화적 가치 |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음. |
| 자연적 가치 |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자연경관이 뛰어나 학술적 가치도 높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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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경대의 경관
만경대는 오세암 바로 앞의 해발 922.2m인 봉우리로 용아장성, 공룡능선, 흑선동계곡, 나한봉 등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조망 지점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 하였다가 허물어진 것을 인조 21년(1643)에 설정(雪淨)이 다시 세운 오세암(五歲菴)이 바로 앞에 있어 역사 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더욱 뛰어나다.
2.1. 주변 명소
만경대는 오세암 바로 앞의 해발 922.2m인 봉우리로 용아장성, 공룡능선, 흑선동계곡, 나한봉 등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조망 지점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 하였다가 허물어진 것을 인조 21년(1643)에 설정(雪淨)이 다시 세운 오세암(五歲菴)이 바로 앞에 있어 역사 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더욱 뛰어나다.
2.2. 오세암
만경대에서 바라보면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 하였다가 허물어진 것을 조선 인조 21년(1643)에 설정(雪淨)이 다시 세운 오세암이 바로 앞에 있어 역사 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더욱 뛰어나다.
3. 역사적 배경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오세암 자리에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 하였다. 관음암은 이후 허물어졌다가 조선 인조 21년(1643)에 설정(雪淨)이 다시 세웠다. 만경대에서 바라보면 오세암이 바로 앞에 있어 역사 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더욱 뛰어나다.
3.1. 오세암 창건 설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오세암 자리에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 하였다. 관음암은 이후 허물어졌다가 조선 인조 21년(1643)에 설정(雪淨)이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