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
1. 개요
자장은 신라 시대의 승려로, 진골 출신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출가하여 당나라에서 유학하며 불교를 배우고 돌아와 분황사 주지, 대국통을 역임했다.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을 건의하고, 통도사를 창건하는 등 신라 불교 발전에 기여했으며, 당나라의 연호 사용을 건의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강릉 수다사를 짓고 태백산 석남원에서 입적했으며, 저서로 《아미타경의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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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년 출생 -
대하굴가
당나라에 투항한 거란족 추장 대하굴가는 당 태종으로부터 이씨 성을 받아 이굴가로 개명하고 송막도독부 도독 겸 무극현 남작에 임명되어 당나라의 고구려 전쟁에 참전했으며, 그의 손자 이진충 또한 당나라에서 활약했다. -
590년 출생 -
교황 마르티노 1세
교황 마르티노 1세는 7세기 중반에 재임하며 단의설 문제로 동로마 황제와 갈등을 겪다 유배되어 사망했으나, 사후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모두에서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658년 사망 -
저수량
저수량은 당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서예가로, 해서에 뛰어나 당 태종을 보좌하고 측천무후의 황후 등극을 반대하다 유배되어 사망했으며, 안탑성교서를 남겼다. -
658년 사망 -
법융
법융은 당나라의 승려로, 삼론종 대명법사에게 선종을 배웠으며 건초사 주지를 지냈고, 유마경에 대한 이해와 불교 경전 저술로 불교 사상 발전에 기여했다. -
삼척시 출신 -
김진만 (1918년)
김진만은 대한민국의 7선 국회의원으로, 자유당에서 정계에 입문하여 민주공화당에서 요직을 역임하고 당 주도권 장악을 시도했으며, 언론, 교육, 문화 분야에서도 활동했지만 신군부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하는 시련을 겪은 정치인이다. -
삼척시 출신 -
엄현성
엄현성은 대한민국 해군의 예비역 대장으로,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해군참모총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고 국방 개혁에도 기여했으며, 퇴역 후에는 석좌교수와 여러 협회 활동을 통해 후학 양성과 해군 발전에 기여하고 대통령표창과 보국훈장을 수훈했다.
2. 생애
자장은 진골 출신으로, 선덕여왕의 명으로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후 신라 불교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승려이다.
자장은 출가 전 선덕여왕이 재상 자리를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승려가 되었다. 636년(선덕여왕 5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는 등 불도를 닦았다. 귀국 후에는 분황사 주지로 있으면서 불교 경전을 강론하고, 대국통이 되어 승려의 규범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을 건의하여 645년에 완공하였고, 통도사와 금강계단을 세우는 등 불교 건축에도 업적을 남겼다. 또한 중국 제도를 본받아 신라 최초로 관복을 도입하고, 650년 (진덕여왕 시기)에는 당나라 연호 사용을 건의하여 시행되게 하였다.
만년에는 강릉부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태백산에 석남원(정암사)을 세워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아미타경의기》, 《출관행법》, 《제경계소》 등이 있다.
2.1. 출가 전
자장은 진골 출신 관리 호림공(虎林公)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자, 처자를 버리고 원녕사(元寧寺)를 지어 고골관(枯骨觀, 인생의 무상함을 마른 뼈와 같이 여기는 관념)을 닦았다. 이때 선덕여왕이 재상에 임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2.2. 당나라 유학
636년(선덕여왕 5년) 왕명으로 제자 승실 등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았다. 훗날 화엄종의 시조가 되는 두순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선에게 배운 뒤 643년(선덕여왕 12년) 장경 1부와 불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자장은 당나라에서 7년 동안 유학하였다. 장안에 도착한 후 태종의 후한 대우를 받아 승광별원에 안치되었고, 종남산에서 3년간을 보냈다. 오대산에서 문수보살과 대화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3. 귀국 후 활동
643년(선덕여왕 12년) 장경 1부와 불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분황사 주지로 있으면서 궁중과 황룡사에서 《대승론》, 《보살계본》 등을 강론하였다. 그 후 대국통이 되어 승려의 규범과 승통의 일체를 주관하였다.
황룡사 9층 목탑의 창건을 건의하여 645년에 완성하였으며, 통도사와 금강계단을 세웠다. 전국 각처에 10여 개의 사탑을 세웠고, 중국의 제도를 본받아 신라에서는 처음으로 관복을 입게 하였다. 이어 650년 진덕여왕 때 당의 연호 사용을 건의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무열왕을 보좌하여 대국통에 임명되어 승려와 비구니를 통솔하고, 통도사를 창건하여 계단을 설치하고, 궁중에서 『섭대승론』을 강의하는 등 계율 정착에 힘썼다. 백제에게 국내 서부의 40여 개의 성을 빼앗기는 국난을 겪자, 당나라에 파병을 요청하는 상표문을 작성했다. 또한 외적 격퇴를 기원하며 황룡사지 9층탑 건립을 건의하고, 당나라의 연호 채택과 의관을 당나라 풍으로 고치는 의관제 도입에 공헌했다.
만년에는 강릉부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후에 태백산에 석남원(정암사)을 세워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2.4. 주요 업적
636년(선덕여왕 5년) 왕명으로 제자 승실 등 10여 명과 함께 중국 당나라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았다. 훗날 화엄종의 시조가 되는 두순(杜順)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선(道宣)에게 배운 뒤 643년(선덕여왕 12년) 장경 1부와 불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 사리 조각, 부처의 나무로 만든 바루와 가사, 그리고 "사리" 100과를 받았다.
분황사 주지로 있으면서 궁중과 황룡사에서 《대승론》, 《보살계본》 등을 강론하였다. 대국통이 되어 승려의 규범과 승통의 일체를 주관하였고, 황룡사 9층 목탑의 창건을 건의하여 645년에 완성하였다. 통도사와 금강계단을 세웠고, 전국 각처에 10여 개의 사탑을 세웠으며, 중국 제도를 본받아 신라에서 처음으로 관복을 입게 하였다. 650년 진덕여왕 때 당의 연호 사용을 건의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백제에 국내 서부 40여 성을 빼앗기는 국난을 겪자, 당에 파병을 요청하는 상표문을 작성했다. 외적 격퇴를 기원하며 황룡사 9층 목탑 건립을 건의하고, 당나라 연호 채택과 의관을 당나라 풍으로 고치는 의관제 도입에 공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