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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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남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대웅전 옆 칠성대 암벽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이다. 네모진 감실 안에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넓적하고 평평한 얼굴에 저고리 형태의 옷을 입은 모습이다. 주변 암벽에는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글씨 14곳이 새겨져 있고, 이규승이 세운 망경암칠성대중수비와 망경암소비가 있다. 고려시대 왕들이 망경암에서 복을 빌었다는 기록과 함께,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마애불 제작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성남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일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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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암 마애여래좌상
이름망경암마애여래좌상 (望京菴磨崖如來坐像)
영문 이름Rock-carved Seated Buddha of Manggyeongam Hermitage
국가대한민국
경기도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553-1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102
지정일1980년 6월 2일
시대대한제국시대
소유자망경암
수량1좌
참고성남 망경암
문화재청 ID21,010200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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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2.1. 고려시대

2.2.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조선 왕실에서는 세종의 7째 아들인 평안대군과 제안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칠성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1897년(광무 1년), 이규승이 관음상을 새기고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불상 주위에 남아있다. 이규승은 망경암칠성대중수비와 망경암소비를 세워 망경암의 역사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

3. 특징

3.1. 마애여래좌상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대웅전 옆 칠성대라고 불리는 암벽 위에 위치한다. 네모진 형태로 조성된 감실(龕室) 안에 높이 120cm, 폭 75cm 크기의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불상의 머리 모양은 분명하지 않으며 넓적하고 평평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드러나 있다. 귀는 일반적인 불상의 모습처럼 어깨에 닿을 듯이 길게 표현되었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넓은 천을 양 어깨에 걸치는 형태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양팔이 확연히 보이는 저고리 형태의 옷이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놓고 있다. 이러한 손의 모양은 부처가 악마를 항복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 한다.

마애여래좌상 주변 바위에는 글씨가 14 군데 새겨 있다.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복을 축원하는 내용이다. 불상과 글씨들은 조선 왕실 자손인 이규승(李奎承)이 대한제국 이전과 이후 두 차례 이상의 시간 차를 두고 조성하였다.

암벽 앞에는 이규승이 세운 망경암칠성대중수비(望京庵七星臺重修碑)와 망경암소비(望京庵小碑)가 있다. 이 중 망경암칠성대중수비에는 고려시대 왕들이 망경암에 와서 복을 빌었다는 내용이 있다.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한국 마애불 제작 전통이 조선 말기까지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 밖에 망경암에 새긴 글씨는 19세기말 조선의 사회상을 알려주고 있어 매우 주목된다.

3.2. 주변 명문

마애여래좌상 주변 바위에는 14곳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복을 축원하는 내용이다. 불상과 글씨들은 조선 왕실 자손인 이규승(李奎承)이 대한제국 이전과 이후 두 차례 이상의 시간 차를 두고 조성하였다.

4. 의의